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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신종교와 종말예언 : 오옴신리교와 아곤슈를 중심으로ㅣ글 : 박규태
ㅣ. 일본의 종말예언종교
II. 오옴신리교와 종말예언
III. 아곤슈와 종말예언
IV. 나오는 말
● 1 . 틀어가는 말:
일본의 종말예언종교 야마토노미야( 大和之宮) 교단의 여성교조 아지키 멘케이(安食天惠)에게 선들련 테레베트는 지구의 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이 지구는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습니다. 모든 것이 진창에 빠져 있고 파 멸로 향해 달음박질하고 있어요 우련 이 사실올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많은 이들 에게 전해주고 싶어 멸리 금성에서 왔습니다.
(중략)
지구는 이미 죽은 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경고합니다. 지구파멸올 막기 위해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오염된 물' 입니다. 오염된 물을 마심으로써 사람들의 마음도 오염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安食天惠 1985: 81 쪽). 파멸에 대한 이런 류의 예언은 일본사회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屬蘭進)에 의하면 일종의 천년왕국주의라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종말예언은 이미 텐리교(天理敎)ㆍ마루야마교OL山敎)ㆍ오오모토교(大本敎)ㆍ혼미치ㆍ텐쇼코타이진구교(天照皇太神宮敎) 뿐만 아니라 레이유카이(훌友會)ㆍ세이 * 한양대학교 동양언어문화학부 교수 226 종교와 문화 효노이에(生長(/)家), 세차이큐세이교(世界救世敎) 소오카각차이(創價學會) 둥과 같은 (구)신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사회에서 종말예언의 등장은 시대상황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다. 가령 1920년경 ~ 1935 경까지, 그리고 차대전 직후의 시기에 종말예언이 상당히 활발하게 주장되었다가 1950년대에서 {씨년대로 들어서면 파국적 위기를 언급하는 신종교 교단은 그다지 눈에 띠지 않았다. 그러 다가 60년대말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컨대 1974년에 이치겐노미야(一元 宮) 교단의 교조 모토키 교손{元木敎尊:1905 ~ 1981)은 대지진 이 임박했음을 예언했다가 그것이 빗나가자 할복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80 년대로 접어들면서 절박한 파국의식이 일본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처럼 1970년올 전후하여 재둥장한 종말예언의 담론은 방금 언급한 야마토노미야를 비롯하여 통일교회ㆍ여호와의 중인ㆍ마히카리(훌光)교단ㆍ코오후쿠노카가쿠{幸福끼 科學)ㆍ아곤슈{阿含宗)ㆍ오옴신리교(才 ηι훌理敎) 둥의 (신)신종교1)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가령 마히카리 교단은 1962년 월 일부터 이른바 ‘불의 세례’ 의 년차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물질문명이 극에 달한 현대세계는 바야흐로 신적 영주(훌主)사상올 근본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원리로 전환하고 있으며, 만일 인류가 이런 흐름에 따르지 않는다면 불의 세례를 받아 대지진ㆍ대 폭발ㆍ대홍수ㆍ핵전쟁(인류 최종전쟁) 둥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島蘭進ㅣ2001 : 62 ~ 65쪽)
ㆍ쓰시마 미치히토(對馬路A)는 이와 같은 종말예언과 판련된 신종교 교단을 ‘종 말예언종교’ 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는 이 종말예언종교의 특정올 무엇보다 절망감과 기대감이 착종된 이율배반적인 감정에서 찾았다. 즉 현실에 대한 절망이 크 면 클수록 구원이리든가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팽창되고 나아가 파국 자체를 구원의 절대적 계기로 대망한다든가 혹온 결정적인 파국의 회피 자체 를 하나의 구원으혹 간주하는 관점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대對馬路λ 1985). 하지만 종말예언종교라 해도 위기와 파국의 강도와 절박성은 시대와 교단에 따라 다양한 빛깔로 나타난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 점올 염두에 두면서, 밀접한 상관성을 가지면서도 결정적인 차이점을 노정하는 오옴신 리교와 아곤슈에서의 종말예언에 대해 비교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ㅣ. (구)신종교와 (신)신종교에 관해서는" (박규태, 2α)()c) 참조 일본신종교와 종말예언 227
II. 오옴신리교와 종말예언 1995년 월 20일,일본 도쿄의 지하철역 두 곳에서 사린 독가스가 무차별 살포되어 10명이 사망하고 천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통상 ‘오옴사건’ 이라고 불리워지는 이 사건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은 같은 해 일본열도롤 강타한 한신대지진의 상처보다도 훨씬 더 깊고 치유되기 어려운 상혼으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대량 무차별 테러, 납치감금 및 살해, 약물투여, 신도학대, 대량살육병기의 연구제조, 무장 반란계획 둥을 실행한 오옴교단이 일본사회에 끼친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불허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시마조노 스스무는 오옴사건이 “현대 일본 의 사회와 문화 속에 이런 종교집단올 배양한 토양과 배경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島蘭進, 1995: 쪽)고 지적한다.
즉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예컨대 교육의 황폐화, 기존종교의 무력화, 가치관의 붕괴, 소외의 만연, 문화의 퇴폐, 정치적 빈곤 둥이 오옴사건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혹자는 오옴사건이 70년대 이후에 진행된 허구의 시대의 정점에서 발생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패전 후 일본인들에게는 경제적 부의 창출이라든가 서구식 민주주의와 같은 지향해야 할 뚜렷한 목표와 이상올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이상의 시대는 막올 내리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포스트모던적 허구의 시대로 전환되었으며, 그런 허구의 시대의 막다른 골 목에서 오옴사건이 터진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후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사건을 주도하고 조종한 오옴신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꿇見, 1955 ~ 현재)는 어떤 인불인가-72)
그는 1955년 구마모토(熊本)현 야츠시로(八代)시에서 다다미 직인의 넷째 이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력이 약했던 그는 1975년에 현립맹아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대학 진학을 목표로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 무렵 그는 정신적으로 장래에 대한 회망과 절망, 자신감과 열둥감 사이에서 극도의 불안정한 혼들림올 경험하면서 종교적인 물옴들에 눈! 9된다.
1) 당시의 심경에 대해 그는 이렇 게 술회하고 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멈추어 서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난 무얼 하러 태어난 것일까, 이런 무상감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롤 ... 모두가 가끔은 이련 느낌에 젖을 때가 있겠지만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올 것이다. 사 2) 아사하라의 생애에 관해서는 특히(島園進. 1995) 와 (團田格 1995) 률 참조했다. 218 종교와 문화 람에 따라서는 직업올 바꾼다든지 훌연히 사라져 버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혀 다른 방향을 걷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것, 부동의 것을 찾아 나서자는 마음 이 싹댔고 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미련없이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는 것올 의미했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말이다.
이는 대단한 용기와 신념과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초능력, 비밀의 개발법.!l 1986년).
이리하여 아사하라는 1977년 치바{千葉)현 후나바시(船橋)시에서 침술사로 개업한 이래 다음 해에는 ‘한방아세아당 약국’ 올 여는 한편, 기공학, 시주추명학, 선도(仙道), 중국의 전통의학, 도교적인 건강법 둥에 심취했다.
이런 그에게 직접적인 종교생활 의 계기를 열어준 것은 후술할 아곤슈에의 입문이었다.
아곤슈에서 그는 천일 동안 집에서 매일 40분 정도 공양수행올 계속하는 이른바 ‘천좌행’(千座行)을 실천했다. 이 년간 그는 이전보다 더 많은 번뇌에 빠진 듯싶다.
마음의 안정올 잃고 몇 번이나 천좌행올 그만두려 했지만 무엇이든 철저히 갈 데까지 가보아야 한다는 생각으호 천화행올 마쳤으며 그 결과 1981 년에는 문달리니3) 각성체험(해탈체험) 올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해탈체험은 아사하라에게 강한 종교적 아 이덴티티를 부여해 주었다.
이후 한 때 약사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벌금 20만 엔올 납부한 적도 있었던 아사 하라는 1984년 도쿄 시부야(밟짝)구에서 요가도장올 열고 주식회사 ‘오옴’ 을 설립하는가 하면, 공중부유를 체험하고 시바신으로부터 초능력자들에 의한 이상세계 즉 삼발라 왕국을 건립하라는 계시롤 받는 둥{1985년) 본격적인 종교인으로서의 삶올 살게 된다. 이때부터 아사하라는 정력적인 저술활동올 펼치는 한편,4) 1986년에 ‘오 옴신선회’ 를 창립하고 다음해인 1987년에는 ‘오옴신리교’ 로 개칭했다. 이어 1989년에는 ‘진리당’ 을 설립하고 다음 해 24명의 교단간부들과 함께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전원이 낙선하는 해프닝을 연출하여 장안의 화셋거리가 되기도 했다.
ㆍ오옴사건이 발생했던 1995년 당시 일본내 신자 수 약 1만명 가운데 출가수행자
3). 니선형의 생명에너지롤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요가전통에서는 이 문달리니가 무라 다라 차크라{회옴부)ㆍ스바디스타나 차크리{성기)ㆍ마니푸라 차크라(배꼽>. 아나하타 차크라{가슴)ㆍ비슈타 차크리{목)ㆍ아쥬나아 차크리{이마)ㆍ사하스라라 차크라{정수리) 둥의 '영적 중추{차크라)툴' 지나 우주에 충만한 생명에너지와 교통하게 되는 것올 해탈의 경지로 간주한다.
4) 아사하라의 주요 저술로는 『초능력, 비밀의 계발법J(986) , 생사를 넘어서~(1986) , 『초능력 비밀의 커리률럽/건강편~(1987) , 이니시에이션~(1 987) , ~마하야나 수트라」 (988), "멸망의 날~(l 989) , 인류멸망의 진실ψ(99 1), ~그리스도 선언.!l(l 991) , 노스 트라다무스 비밀의 대예언.!l 099l), 아사하라 쇼묘 전율의 예언~(1 993) 둥이 있다.
일본선종교와 종말예언 229는
1. 1 00여명 정도였는데 이 중 대다수는
2. 30대의 젊은층이 차지하고 있다.
5) 이처럼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요인은 오옴신리교가 ‘정신세계’
6) 붐올 타고 초능력의 세계를 그렬 듯하게 상품화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만, 이와 더불어 아사하라가 내세웠던 강렬한 내향적 지향성이라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아사하라는 초능력 비밀의 개발법』에서 “나는 불경을 읽 고 영상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죄임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오염된 인 간임올 안 순간, 눈물이 그칠새 없이 훌렀다" 고 술회하는가 하면,
“이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행자로서 적합치 않다. 왜냐하면 그런 자는 아직 막다른 골목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략)
참된 자아는 공덕ㆍ악덕ㆍ행동의 세 가지 누구나에 영향을 받는다. 그럼으로써 점점 자기 본래의 모습올 상실하 고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이 절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고통을 느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고통과 무의미함을 통절하게 느끼게 될 거라는 말이다.
(중략) .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었다. 어리석은 지는 여기 오렌지를 하나 산다. 먹고 또 먹는 다. 물릴 때까지. 그런 다음 사과를 산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한다. 끝이 없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다르다. 지혜로운 자는 오렌지에 물렸올 때 이미 그 원인을 생각한다. 쓸데없이 사과니 바나나니 하며 옮겨다니지 않는다. (중략) 깨달음을 얻 으면 돈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된다. 좋은 차? 미인 여자친구? 그런 건 하나도 중 5) 젊은 세대의 신자가 많은 것은 (신)신종교의 특정 중의 하나이다. 오옴신리교는 이런 특정올 가장 현저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신)신종교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교단에 속한다.70년대에서 80년대 전반에 걸쳐 급속한 교새의 성장율 이룬 신뇨엔(훌如웰), 오야마네즈노미코토신지(大山紙命神示)교회, 통얼교회, 마히카라(훌光)계, GLA, 이곤 슈 동의 교단을 차 (신)신종교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오옴신리교는 코후쿠노 가가쿠{幸福 科學), 월드메이트(혹은 코스모메이트), 조도신슈신란카이(ì爭土 宗親뿔 會) 동과 함께 차 (신)신종교 교단에 속한다고 말활 수 있다. 오옴신리교는 (1)젊 은 세대의 활동이 두드러진다는 정에서는 통일교회, 코후쿠노가가쿠, 월드메이트、 조 도신슈신란차이와, (2) 완강한 포교방식과 거액의 헌금 및 기업행 외각단체를 적극 활 용한다는 점에서는 통일교회와; (3) 화려한 광고선전 및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 에서는 아곤슈, 코후쿠노끼}가쿠, 월드메이트와" (4)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강한 관 심에 있어서는 조도신슈신란카이, 코후쿠노가가쿠에, (5) 신비적인 초상현상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는 마히카리, GLA. 아곤슈, 월드메이트에. (6) 지도자 숭배를 강조하고 타종교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는 통일교회, 코후쿠노가가쿠와, 그 리고 (7)종말관 및 파국적 위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마히카리, 통일교회, 아곤슈, 코후쿠노가가쿠, 월드메이트와 각각 유사한 특성올 공유하고 있다(島뼈進, 1995: 5-6 , 6) ‘정신세계’에 관해서는" (박규태, 2α)()c) 참조 230 종교와 운화 요하지 않게 된다. (중략) 하루 하루륜 어떻게 충실하게 살 것인가? 참된 자아가 정말로 원하는 절대자유, 절대행복, 참된 환회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이런 문제 로 늘 고민하면서 수행하고 해탈을 추구할 일이다… .. (('이니시에이션.! 1987l.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이 단조롭고 툴에 얽매인 풍요로옵에 물린 나머지 이와 같은 현 세부정적이고 내면적인 교리에 강한 매력을 느낀 것일까? 하지만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오옴신리교의 이런 현세이활적인 성향이 곧바로 파국적인 위기의식과 직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아직 위기의식은 막연하고 온건한 것이었다. 물론 오옴교단은 처음부터 인류의 운명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해 왔 었다. 그래서 개인의 운세는 물론 천재지변과 국제정세 둥올 천체의 움직임과 관 련지어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이와 동시에 아사하라는 낙관적인 이상사회 건설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른바 ‘일본 삼바라화 계획’과 ‘로터스 빌리지’의 청사진이 그것이다.80년대말에 나온 교단소개 팝플렛 ‘한없이 투명한 세계에의 시션’에 의하면, 인도의 전설적인 이상향인 양바라는 시바신이 통치하는 왕국이며 오직 우주의 진리를 통달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다. 현재 일본과 세계정 세는 에고의 급속한 확대로 인해 매우 위험한 상태이다. 미일 경제마찰, 방위비 중대, 후지산의 분화, 태평양 플레이트의 이상징후 둥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많다. 이 상태대로 악의 에너지가 증대되도록 그냥 놓아둔다면 세기말의 해전쟁을 피하 기 어렵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일본 삼바라화 계획이 필요하다. 이 계획은 일본 전 체에 오옵의 성스러운 공간올 확장시켜 일본을 세계구제의 거점으로 삼고자 한다. 즉 먼저 일본에다 진리에 입각한 사회를 건설하고 많은 영혼들이 해탈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한다. 그런 다음 전세계를 삼바라화하는거다. 이 런 계획을 위한 구체적인 안으로 나온 것이 로터스 빌리지의 청사진이었다. 일종 의 코윤공동체인 이 로터스 빌리지에서는 모두가 진리에 입각한 생활을 한다. 그 곳은 의식주에서 수행생활, 의료、 교육, 관혼상제, 고용 둥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기관이 구비된 진리의 사회로서의 오옴마율이다. 그러나 1990년올 전후한 시기로부터 급속히 자기폐쇄적인 집단으혹 변질되기 시작한 오옴교단은 외부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종말예언들이 남발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좀더 상세히 그 변천과정올 추적해 보자}) 아사하라는 최초의 단계에서 종말의 회피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가령 1986년 『트와이라이트존d1 (6 월호) 및 1987년 월에 출판한 『하르마 7) 이하는 주로(武田道生, 1996: 66-68쪽)올 참조했다. 얼본선종교와 종말예언 231 켓돈」에서 아사하라는 87 년에서 88 년 사이에 후지산이 분화하고 90년 이후에는 미일 무역마찰이 일어날 것이며 93 년에 일본이 재군비률 하게 되고 1999 년과 년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었으나 곧 이런 입장 에 변화를 보였다. 즉 1987 년 후반기에 출판한 『이니시에이션JJ(7 월) 및 『트와이라 이트존~(9 월호)에서 아사하라는 핵전쟁의 발생 시기롤 2003년?호 연기하는 한편 “성취자가 우주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어 대재난을 피활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 웠다. 그런데 다음 해인 1988년 『트와이라이트존~(1 월호)부터는 예언의 내용이 보 다 상세하게 구체화되는 한편, 종말회피의 가능성에 대한 입장도 바뀌기 시작한다. 예컨대 일본이 바다 속으로 침몰하게 휠 것이고 SDI 병기에 의한 미/쇠이슬람/일 본간의 전쟁이 발생할 것임을 예언했으며 하르마켓돈 즉 최종전쟁은 피할 수 없 음을 명시했다. 그 최종전쟁에서 살아남는 자는 오직 성취자와 해탈자 둥의 이른 바 ‘신인류’ 뿐이다. 그들이 새로운 왕국을 세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펀으로 낙관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한쪽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즉 총 체적인 일본침몰은 피할 수 없지만 부분적인 일본침몰은 300명의 해탈자만 나오 면 피할 수 있다든가 후지산 분화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니 한 사람이 라도 더 많은 성취자를 내어 총체적인 멸망을 피하자는 것이 오옴교단의 주장이 었다{W 마하야나.~ 88년 12월호). 한편 1989년 월에 발간한 『멸망의 날』에서 아사 하라는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은 실은 시바신이 아사하라 자신을 종말기의 구세주 로 명하기 위해 요한으로 하여금 쓰도록 한 것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시바신은 먼저 천재지변을 통해 악한 카르마를 씻어낼 젓이다. 그게 잘 안되면 이 번에는 최종전쟁으로 악한 차르미를 총체적으로 떨어낼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옴교단은 종말기의 구세주로서 아사하라가 출현할 것이 이미 노스트라다무스에 의해 예언되었다고 주장했다{O"마하야나.~ 89년 월호). 80년대와 90년대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 였다ß) 오옴신리교는 이런 시대의 유행을 타고 대중문화에서 소비되고 있던 노스 8) 일본사회에 최초로 노스트라디·무스의 예언을 소개한 사랍은 고지매五島짧)였다. 그 는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1/ 임박한 1999년 월, 인류멸망의 날~(1973) 과 『노스 트라다무스의 대예언2/ 1999년의 파국을 불러용 대십자~(1979) 률 비롯하여 11 권의 관련저서를 펴냈다. 고지미에 의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인류는 멸망의 위기 에 처해 있으며, 그 위기에 배경에는 유대=기독교 문명 혹은 유대인과 백인세력이 있다 이들의 세계지배가 계속되는 한, 상황은 절망적인데, 이런 멸망용 피할 수 있 는 유일한 희망은 다음과 같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에 둥장하는 ‘또 다른 것’ (autre, another) 의 가능성이다. 20년 동안의 달의 지배시대가 지나가고 / 또 다른 232 종교와 문화 트라다무스류의 종말예언 담론을 받아들여 극한적인 형태로 증폭시켜 아예 아사하 리를 구세주로 둔갑시켜 버련 것이다. 또한 아사하라는 ‘미록’( 인류멸망의 진실』 91 년 월). ‘재럼예수’( 그리스도 선언~ 91 년 12 월). ‘헤르메스’ ('01 상세계,J 92 년 9 월호 및 10월호) 등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92 년 10 월 이 후에는 종말에 대한 혜언들이 극적인 절박성올 띠고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1996 년에서 1998년 월에 걸쳐 일본에 대한 핵공격이 행해절 것이며 그 결과 일본의 인구는 십분의 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한 1997 년에 최종전쟁이 시작될 것이 며 유대인들이 마인드콘트롤, 지진병기, 독가스 세균병기를 이용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대 『아사하라 쇼코、 전율의 예언.J 93 년 월). 요컨대 오옴의 신념체계는 불교적 요소가 주류를 차지하지만 예배대상은 힌두 교의 시바신이 중심을 이루며 명상수행의 시스댐은 주로 인도와 티뱃 전통올 따 르고 있다. 그러나 종말예언은 인도나 중국보다는 중동과 서구 전통으로부터 대부 분의 아이디어를 벌어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사하라는 「요한계시록』과 노스트 라다무스의 예언을 두 축으호 하고 거기에다 근대 신지학, 오컬티즘, 신영성운동 9) 요소들올 가미했다고 볼 수 있다{島蘭進. 1997: 124쪽). 그렇다면 아사하라에 게 적지 않은 영향올 끼친 이곤슈의 경우에 종말예언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 는가? m. 아곤슈와 종말예언 통상 밀교계의 새로운 불교교단으로 간주되는 신종교 교단인 아곤슈는 80년대 초에 급격히 교세를 확장하여 오늘날 신자수 30여만을 넘는 대교단으로 자리잡았 다. 교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총본부 ‘석가산대보제샤(釋週山大홈提츄)가 있는 이 교단은 이른바 (신)신종교의 전형적 교단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교조 기리야마 세이유{樞山靖雄 1921- 현재)는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세 때 관동대지진을 경험했 는데, 그때의 기억이 그의 잠재의식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 법도 하다. 도 것이 7α)()년대에 그의 왕국율 세울 것이다 / 태양이 저물던 그의 시대를 회복하게 될 때 / 나의 예언은 달성되어 끝나게 되리라“ (Les Centurie 1-48) 여기서 ‘또 다 른 것’이란, 서구 기독교문명과는 다른 가치관, 다른 종교판에 기초한 문명 즉 불교 를 중심으로 한 통양문명용 뜻한다는 것이다. 9) 신영성운동에 관해서는. (박규태. 1999) 및 (박규태. 2000c) 참조 일본선종교와 종말예언 233 쿄에서 신문배달올 하면서 중학교롤 다니다가 중도에 자퇴한 후 출판사에 근무하 면서 문학 동인지 활동올 하는 둥 한 때는 작가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0 대 후반기에 결핵올 앓아 장기간 입원생활용 하면서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매우 비관하게 된다. 그러다가 1946년 치과 여의사와 결혼한 후 한 때 제분기와 정미 기 장사에서 성공적인 사업수완올 보이기도 했으나 수산사업에서 대실패하고 다시 맥주 제조업에 뛰어들었지만 가짜맥주를 만들어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처럼 평탄치 않은 인생여정에서 그에게 삶의 희망올 불어 넣 어준 것이 「관음경』이었다. 이리하여 관음신앙에 깊이 빠져든 그는 운명학에 대해 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으며 이옥고 1954 년 월에 요코하마에서 줄테이판음10) 올 본존으로 삼아 아곤슈의 전신인 관음자혜회(觀音慧惠會)를 설립하였다. 집세도 제 때 내지 못할 만큼 생활이 어려웠지만 그는 단식과 수행올 게올리하지 않았으며 법화경』을 비롯한 대숭경전을 철저히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해 이유고 밀교에 경도되었으며 1970년부터는 밀교식 호마{護摩)공양올 올리기 시작 했다. 그 가운데 점차 신자집단이 형성되었고, 1971 년에 펴낸 저서 『변신의 원리』 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기리야마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그는 밀 교를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시켜 주는 하나의 시스댐’으로 파악하였다. 즉 밀교 수행울 통해 사물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예지, 정확한 선택농력, 고도의 창조력, 자신올 바꾸고 타인을 옴직이며 뭇한 바대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 강인한 체력 과 탁월한 정신력, 강력한 염력 둥을 얻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리야마 의 주장이 당시 젊은이들 사아에 일어난 밀교붐에 적지 않은 역할올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후 그는 정력적인 집필활동을 계속하여 지금까지 %여종에 가까운 저서를 펴냈다,11) 이 와중에서 1978년 기존의 ‘관음자혜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 고 ‘아곤슈’를 설립한다. 이때 ‘아곤슈’(阿含宗)란 『아함경』의 종교를 가리킨다. 기 리야마는 대숭불교에서 얄보는 아함경이야말로 석존이 직접 설한 유일한 경전이며 이 아함경에 참된 성불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는 확신올 가지고 교단 이름을 바 꾼 것이었다. 이런 입장은 다음과 같은 아곤슈 교단법인의 목적에서도 뚜렷이 확 10) 신곤슈(A:言宗)에서 중시하는 대관음 중의 하나 11) 주요저서로 『밀교: 초능력의 비밀』, 『밀교정성술 .n, Ii"채널올 바꿔라'.n, Ii"밀교입문.n, 『인간개조의 원리와 방법』, 『아함밀교냉Ii"수호령과 함께』, 『영장{훌障)율 극복하다.n. 1i" 1999년 카르마와 영장으로부터의 탈출 , 『간뇌 사고』, 『사랑융 위한 지혜, 지혜를 위한 사옮, 『수호불의 계보』, 『불타의 법』, 『인간온 윤회전생하는7h , ~당선은 누구 의 윤회전생인가」 둥을 들 수 있다. 234 종교와 문화 인된다 “석존 직설의 가르침을 전숭한 아가매아함경)에 입각하여 니르바나를 획 득하는 것이 본교의 목적이다, 륜테이 관음보살을 본존으로 삼으며, 아함경의 가 르침을 후기대숭인 밀교의 방법에 의해 편성한 즉신성불과 인연해탈의 수행을 실 천하.ï!.자 한다…"( /J 빼敬和, 1994: 76쪽). 여기서 특히 ‘인연해탈’이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었다. 아곤슈의 신념체계에 서 인연론은 매우 독특하고 중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리야마는 인연의 ‘인’ 을 당사자의 내적 조건으로、 그리고 ‘연’올 환경이나 인간관계와 같은 외적 조건으 로 이해한다. 이 양자 즉 인연의 종합적인 결과가 바로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운명이자 인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곤슈에서 말하는 인연은 인간의 운명을 톨짓는 요소 혹은 조건올 의미한다. 인간은 다양한 인연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런 인연을 융직이는 험 혹은 존재와 운명의 근본적인 동력을 기리야마는 차르마{업) 라고 보았다. 여기서 인연이라든가 차르마는 대체로 인간 불행의 원인으로 말해진 다 .. 12) 그렇다면 왜 이런 나쁜 인연들이 생기는 걸까? 기려야마는 그 이유를 ‘영 장’(훌障)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아곤슈 특유의 관념인 이 영장이란 집착과 집념 혹은 강한 미련 때문에 영계에 들어가지 못한 불성불령(不成佛훌)이 인간에게 끼 치는 불행과 재난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자면 영장이란 나쁜 영적 에너지를 뭇한 다. 이런 영장은 두 가지 인연과 관계가 있다. 하나는 종적 인연 즉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인연이며, 다른 하나는 횡적 인연 즉 자신의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인연 이다. 이때 영장이 후손들에게 나쁜 영향올 미치는 방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 다. 하나는 비참한 인생올 보낸 조상이 자손도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살도록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조상으로 인해 불행한 일올 겪은 사람의 원 념이 그 조상의 지손에게 나쁜 인연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나쁜 인연 혹은 차르마로부터 벗어니는 길온 없는 걸까? 기 리야마는 그 열쇠가 아함경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함경의 주된 목적이 나쁜 12) 아곤슈 신자들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수행자좌우보감:J(峰行者座右숲짧)에 의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인연으로는, 기운쇠퇴의 인연, 중도좌절의 인연, 운기부 정(運氣不定)의 인연(주거나 직업이 일정치 않고 뿌리 없는 풀과 같은 인생), 육친 및 혈연 상극의 인연, 자녀 운기 상극의 인연, 배반의 인연, 남편 운기 상극의 인연, 부부연 장애의 인연, 부부연 절단의 인연, 형원Jff.歸)의 인연, 육체 장애의 인연, 횡 변사의 인연, 뇌장애의 인연, 이중인격의 인연, 암의 인연, 순환기 장애의 인연, 색정 의 인연, 편업의 인연, 재운 · 물의 인연, 두령운의 인연(지도자가 휠 운이나 항상 고 독하고 만년에 가정적으로 불행), 자녀연이 없는 인연, 출산액의 인연 둥이 있다고 한다. 일본선종교와 종말예언 235 인연으로부터의 해탈에 있으며, 그 구체적인 수행법이 곧 ‘성불법’이라고 이해했다. 아함경의 성불법이란 곧 생자 혹은 사자의 카르마를 끊고 인연을 해탈하여 붓다 가 되는 방법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칠과삼십칠도풍’(七科三十七道品) 즉 가 지 시스댐과 37 가지 커리률렴을 뜻한다. 사념주(四念住. 깨달음을 얻기 위한 네 가지 명상법), 사정단(四正斷, 악을 끊고 션을 행하도록 노력하는 네 가지 수행법), 사신족(四神足,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얻기 위한 네 가지 수행법), 오근(五根, 자유 롭게 활동하는 능력올 발휘해l 위한 다섯 가지 수행법), 오력(五力, 오근을 더 심 화시켜 주는 다섯 가지 수행법) 칠각지({:뿔支 고도의 집중력과 지혜에 관련된 일곱 가지 수행법), 팔정도(八正道,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여닮 가지 실천덕목)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기리야마가 특히 주목한 것은 사신족의 성불법이다. 사신족 이란 욕신족{鋼빼足, 인간의 생명력, 특히 육체의 근원적 조건을 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수행), 근신족(動神足, 육체적 제조건올 비약적으로 높이는 수행법), 심신족 (心神足, 정신적 능력올 향상시키는 수행법), 관신족(觀神足, 영성의 자리인 간뇌를 열어주는 수행법) 등의 네 가지 수행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두뇌를 개조하고 영적 능력을 완성시키는 방법 범부를 천재로 만들고 붓다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법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이 낸족법올 성취하면 자신의 카르마 를 넘어서서 나쁜 인연들을 끊고 생자와 사자 모두가 해탈성불하여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신족법의 구체적인 수행방식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문달리니 요가13) 이다. 이상에서 언급된 아곤슈의 특정을 다시 정리해 보자'. (1)아곤슈의 대중적 매력은 초능력과 선조공양으로 집약된다. 초능력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프로그랩으로 전개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요가와 밀교의 수행법올 통해 제시되었다. 그것이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매력으호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편 ‘선조공양의 총본산 아곤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아곤 슈는 일본인의 기충신앙에 깔려 있는 선조공양이라는 요소에다 현대적인 옷올 입혀 사람들의 시선올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아곤슈가 짧은 기간 중에 급숙한 성장 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2) 교조인 기리야마 세 이유가 지닌 영적 차리스마와 인간적 매력올 들 수 있다. 기리야마는 교단내에서 석가가 설한 성불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유일한 인물, 해 13) 요가에서 차크라{인간 몸에 숨겨져 있는 잠재적 힘올 발생시키는 장)롤 각성시키고 활성화하는 특수한 호홉법 236 종교와 문화 탈공 J-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이 런 종교적 카리스마를 더욱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 왔다. (:))아곤슈는 기성의 대숭 불교에 대한 강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교단의 목자성과 개성을 강조해 왔 다. (4) 아곤슈는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입장에 서 었다. 가령 아곤슈는 과학 의 담론을 선조공양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적절히 이용해 왔다 즉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곤슈는 지극히 원초적인 종교성에 입각한 션조공양에다 과학이라는 현대적인 포장을 입혀용 것이다. 이 밖에 아곤슈가 전용 위성회선을 가지고 었다는 사실 또한 아곤슈와 과학의 친화성을 시사한다. (5) 아곤슈에는 다양한 수행법(호흡 법, 명상법, 밀교수행법 둥)이 잘 정비되어 있다 (6) 아곤슈는 각종 이벤트를 중시함 으로써 대중적 관심올 끌어 모으는데 매우 민감한 교단이다. 가령 월에 교토의 총 본부에서 열리는 아곤슈 최대의 축제인 ‘호시마츠리’(星옳 ") 1) )에는 매년 50여만 정 도의 인파가 몰려든다고 한다'. (7) 아곤슈는 다양한 방식옳 동원하여 대중포교에 힘 을 쏟아 왔다. 예컨대 도쿄 아오야마{좁山) 교토 둥지에 ‘명상센터’(현재는 구문지 스쿨)를 세워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고 있으며. 198. 년에는 도쿄의 간 다 서점가에 ‘삼바라’라는 이름의 잣집을 운영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 라 밀교 식품을 판매하는 ‘화광식품’올 설립하였으며. 1990년 코베(神戶)에 ‘메시아 관’이리는 점집을 개설했고 1992년에는 요코하마에 ‘샤리라’라는 점집을 개장하여 밀교 점성술에 의한 점과 인생상담에 임해 왔다. 무엇보다 교조 자신의 방대한 저 서들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판매함으로써, 그리고 교단에서 발행하는 종교 저널 ‘아가마를 통해 일반 학자들올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아곤슈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 리는 고도의 간접포교전략을 구사해왔다. (8) 아곤슈는 타종교와의 교류와 협력을 강조해 왔다.
가령 아곤슈는 “사랑을 설하는 기독교와 지혜룰 설하는 불교는 지금까지 각자의 길올 걸어 왔다. 그것은 큰 불행의 씨앗이었다. 사랑올 방향지워 주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를 키워주는 것이 사량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세계적인 종교가 나타나야만 할 때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달라이 라마와의 친밀한 관계, 스리랑카 와의 교류, 바티칸과의 우호적 관계를 추구해 왔다.
그리하여 아곤슈는 인류가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서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방불교, 남방불교, 티뱃불교} 가 하나가 되어 21 세기의 참된 불교를 만들어 내자고 제안한다. 불교를 참된 세계적 종교로 다시 태어나게 하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환태평 J-: 권 불교’ 라고 하는 아곤슈 특유의 비견이다 14) 14)
이상의 아곤슈에 관한 기술은 주로(/J '-I*敵[], 1994) 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선종교와 종말예언 '2 37
그러나 본고의 맥락에서 볼 때
아곤슈의 특정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종말예언이 갖는 성격에 있다.
기리야마는 1981년 월 간다의 서점가에서 고지마{(五島 행)의 저서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3~} 을 발견하고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이 책에 나오는 '1999의 해 의 달 / 하늘로부터 공포의 대왕이 오리라 / 앙골모아의 대왕을 소생시키기 위해 / 그 전후로 요행히 화성이 지배하게 되리라“ (Les Centurie X -72) 는 예언시 구절로부터 엄청난 전율과 공 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 구절에 나오는 앙골모아의 대왕이 아가마{아함경)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앙골모아의 대왕에 대한 불교적 해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고지마는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2JJ 에서 앙골 모아의 대왕이 몽골리안의 대왕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 메(中村元)에 의하면 석가족 출신의 붓다는 실은 몽골리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면 앙골모아의 대왕은 몽골리안의 대왕 죽 '붓다' 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