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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우리말의 어원 연구
3.4. Chinamitl[치나미뜰](치나미틀), <채소(밭) 틀>
우리는 앞에서 chinamitl(치남이틀)이 ‘치남밭’, 즉 ‘채소밭’을 만드는 기본 틀이라는 설명을 보았다. 이 명사를 우리말의 형태소 구조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a) chi(치) : ‘치’는 앞에서 설명했다.
b) nam(남): 남새(북한), 채소, 나물
c) i(이) = 관형격 접사 ‘이’
d) tl(틀) = 틀
e) chinamitl의 뜻 = 채소밭 틀
이 어휘의 형태소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i(이)’이다. 이것은 나와들어와 우리말에 매우 많이 사용되는 관형격 접사이기도 하고, 명사 뒤에 뜻 없이 붙어 사용되는 접사이기도 하다. 이 어휘에서는 선행하는 명사 nam(남)이 ‘틀’을 수식하도록 하기 위한 관형격 접사로 사용되었다. 나와들어 ‘i(이)’와 우리말의 ‘이’가 정확하게 같은 문법소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성격으로 증명된다.
먼저, 둘 다 앞의 마지막 음절의 모음 ‘ㅣ’로 끝나면 생략된다. 나와들어 예로는 우리가 앞에서 본 macaquitl(마까기틀)이 있다. 이 말은 형태소 구조가 ‘macaqui(마까기) + tl(틀)’ 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까기’의 마지막 음절이 모음 ‘ㅣ’로 끝나므로, 접사 ‘i(이)’가 생략되었다. 우리말에서도 ‘병지→ 병지 옷’에서 보듯이 생략된다.
둘 째, 앞의 마지막 음절의 모음이 ‘ㅣ’가 아닐 때는, 이 접사가 사용된다. 나와들어의 예가 바로 chinamitl(치나미틀)이다. 이 어휘의 형태소 구조는 위에서 본 대로 chinam(치남)과 tl(틀) 사이에 관형격 접사 ‘i(이)’가 사용되었다. 우리말의 예는 매우 흔하다: 갑돌→갑돌이 신, 갑순→갑순이 옷.셋 째, 모음 ‘이’는 아무런 뜻 없이 나와들어와 우리말에서 명사 어미에 붙어 사용된다.나와들어의 예도 매우 흔하다.
82) 나와들어 pan(판)이 우리말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우리말에서 ‘판판’은 ‘땅이 평평할 때’ 쓰는 말이다. 즉 ‘판판하다’고 말한다. 멕이코 동부 베라크루스 주에는 Papantla[빠빤따]라는 곳이 있다. 이것을 우리말 발음으로 읽으면 ‘파판따’이고, 앞에서 보았듯이 ‘따’는 ‘땅’의 고어이다. 그리고 첫 음절 ‘pa’에 탈락한 n을 복원하면 Panpantla가 되어, 결국 ‘판판땅’이 된다. 즉 우리말 발음에 준하여 해석하면 ‘판판한 땅’이 된다. 실재로 이 지역은 주변에 비하여 평평한 땅이다. 이 해석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있다.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우리민족의 후예라는 증거가 그곳의 고고학적 발굴과 피라밋에 나타난다. 이에 대하여는 별도의 연구에서 밝히기로 한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신대륙 발견 이전에 이미 중미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으로 이동한 후, 남미로 건너갔다. 나와들어의 증거로 볼 때, 우리말의 ‘판’은 부여의 고리족 언어로 판단된다.
a) 나와들어 예
centli(센털이): 센털 +이, 껍질 까기 전의 옥수수
tochitli(토치들이): 토끼들+이
Tlachitli(다치들이): 다치들+이. 아스텍의 격구 놀이, ‘다 치는 것들’을 뜻함.
Tzompantli(좀판들이): 좀+판 +들+이, 해골을 모아 놓은 곳, ‘좀’은 우리말 ‘족두리’의‘족’에 해당하고, 뜻은 ‘머리’를 의미한다.‘족’의 ‘ㄱ’이 ‘ㅁ(m)’으로 바뀐 이유는 그 뒤에 양순음 ‘ㅍ(p)’ 때문에 동화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좀판’은 해골판,즉 해골들을 모아 둔 곳을 뜻함.
Tecuhtli(태구흐들이): 태+구 +ㅎ+들+이, 신성한 굿들이, 무당을 의미함. ‘구’는 우리말‘굿’을 뜻한다. ‘ㅎ’은 우리말에서 ‘ㅎ종성체언’과 관련 있다.
Huitzilopochtli(귀질로포치들이): 귀질로포치+들+이, 아스테카인들을 아스달에서 인도해 온 지도자 이름
Acamapichtli(아까마피치들이): 아+까마+피+치+들+이, 아스텍제국 초대 황제, (‘우리의 까만 피 사람’의 뜻으로 이해 됨)
Camaxtli(까마흐들이): 까마+ㅎ+들+이, 까만 것들 (아스텍 제국에서 검게 칠한 신(神)을 뜻함)
b) 우리말 예
새 이름: 수진이(매), 날진이(매)
사람 이름: 갑식이, 지순이, 은순이, 곰돌이 등 매우 많다.
지명: 서남댕이(영동-설계), 부릉이(용산-부릉), 비암칭이(양산-죽산), 구마이(매곡-수원) 등 매우 많다83).
예문(b)에 제시된 우리말의 예들에 사용된 접사 ‘이’는 우리말에서도 참 특이한 요소이다. 이 요소를 이해하기 위하여 나와들어에 사용된 ‘i(이)’를 연구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들어에 나오는 ‘i(이)’는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사람을 의미하는 것: tlatoan-i (다도안이) <다 도와주는 사람=왕),tlamatin-i(다마틴이) <다 맞히는 사람= 점쟁이)
(2) 지시 형용사: i-cal(이갈) <이 집>
(3) 관형격 접사: chinam-i-tl (치남이틀) <채소밭 틀>
(4) 명사 뒤에 사용된 접사: 위의 (a)에 소개된 예들 나와들어의 네 가지 용법은 우리말의 ‘이’의 용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83) 우리나라 전국 지명에 뜻 없는 접사 ‘이’가 사용된 예가 매우 많다. 지명은 일반적으로 언어 변화에 가장 저항적인 어휘로서, 세월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지명에 이 접사가 많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옛말에 이러한 특징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뜻 없는 접사 ‘이’를 가진 지명의 많은 예들을 보려면 다음 연구를 참조 하세요: 성희제, 『지명어의 구성』, 한국 지명학회, 2006, 지명학 연구 12.
그런데 (4)의 경우를 필자가 나와들어 자료를 통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말의 서술어 종결어미인 ‘~이다’의 고어 형태로 보인다. 즉 우리말에서 서술형 종결어미에서 ‘~다’는 19세기에 와서야 정착되었고, 그 이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갑식이다’는 ‘내가 갑식이’로 된다. 바로 이와 같은 형태의 문장이 나와들어에 매우 많다84). 예를 들어, 우리말 일인칭 대명사 ‘나’를 뜻하는 나와들어 어휘는 ‘나, 내, 니’가 있고, 우리말 삼인칭 대명사 ‘그, 그녀’에 해당하는 나와들어 대명사는 ‘야(ya)’이다.'야’도 우리말 삼인칭 대명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고 나와들어에서 사용된 주격 조사는 앞에서 이미 언급 했듯이 ‘이. 가. 는’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오늘날의 우리말과 나와들어 문장을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말 나와들어
내가 갑식이다. → 내가 갑식이 (Neka kapsiki).
그가 왕이다. → 야가 다도안이 (Yaka tlatoani).
위에서 설명했듯이, 우리말 서술어 종결어미 ‘~이다’의 ‘다’는 19세기에 와서야 정착되었고, 그 이전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위 문장에서 서술어 종결어미‘다’를 생략하면, 그대로 나와들어 문장과 같아진다. 따라서 우리말에서 지명(地名)이나 사물 명칭 등에 붙는 접사 ‘이’는 그 근원이 고대 우리말의 서술어의 잔재일 수 있다. 즉 오늘날의 서술어 ‘~이다’의 옛날 형태일 수 있다. 우리말의 화용적 언어생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학생은 누구지? → (쟤는) 갑식이. 갑순이, 갑돌이
이와 같은 질문에 우리는 ‘갑식’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반드시 ‘갑식이’라고 대답한다. 마찬가지로 ‘갑순, 갑돌’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반드시 ‘갑순이, 갑돌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이’는 서술어 ‘~이다, ~이야’의 줄임 말이다.
이러한 일치에 대하여, <주84>에서 설명했듯이, 필자는 나와들어의 어법이 고대 우리말의 사용 형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나와들어의 화용적 어법은 우리 선조들이 고대 시대에 사용하던 우리말 사용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84) 우리 국어의 과거 실체를 규명하는데 아스텍 제국의 나와들어가 현재 한반도의 과거 어떤 기록보다 더 소중한 자료일 수 있다. 한반도의 우리 국어는 4세기말~5세기 초부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시점까지 무려 1천년 동안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이에 비하여 아메리카로 건너 온 우리민족은 신대륙이 발견되어 유럽인들과 접촉하기까지 나와들어, 즉 아메리카의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비록 방언적 분화 발달은 있었지만 민족 고유의 언어 실체는 기본적으로 16세기 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발음을 스페인 인들이 스페인어 알파벳과 발음체계로 옮겨 적은 것이 나와들어이다. 따라서 16세기 스페인 신부들이 적어둔 나와들어 자료를 평음, 경음, 격음의 구별과 같은 우리말 소리로 복원한다면, 한반도의 우리말 자료보다 더 분명한 우리말의 과거 실체를 접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명사 뒤에 붙는 뜻 없는 접사 ‘이’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말 ‘얘가 갑식이다’를 나와들어로는 ‘야가(는) 갑식이 [yaka kapsiki]’ 라고 한다. 유럽과 미주 지역의 학자들은 나와들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동사가 없다고 말한다.
이 예문에서 ‘갑식이’의 마지막 음절 ‘이’를 단순한 접사로 본다면 be동사에 해당하는 동사가 없는 샘이다. 우리국어 문법에서는 ‘~다’를 서술형 어미로 본다. 즉 ‘얘가 갑식이다’에서 ‘~다’가 붙음으로서 ‘~다’가 be동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서술형 어미는 15세기 이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따라서 15세기 이전에는 ‘얘는 갑식이’ 라고 했을 것이다. ‘이’를 단순한 접사로 본다면, 이 문장은 나와들어 학자들의 주장처럼 be동사가 없는 문장이 되고 만다. 문장의 정상적 구조는 동사가 없을 수 없다. 따라서 ‘갑식이’의 ‘이’가 접사가 아니라 ‘서술형 접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즉 우리말에서 많은 지명, 인명, 사물 명칭 뒤에 붙었고, 지명에서는 아예 지명 자체의 일부로 알려진 이 ‘이’가 실은 고대 우리말의 서술형 어미, 즉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서술어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3.5. Maíz[마이스](맛있어), <맛있어>
Corn[콘](콩), <콩>
필자는 지금까지 일련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민족이 매우 오랜 세월동안 대규모로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아메리카에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살았다고 암시해 왔다. 지금부터는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어권에 사용되어 온 maíz[마이스]<옥수수>와 북미에 사용되는 corn[콘]<옥수수>라는 용어를 검토해 보겠다.
아스텍제국에서 원주민들의 주식(主食)은 옥수수였고,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maíz[마이스]라고 했다. 이 어휘는 멕이코를 정복한 이후 스페인어에도 도입되었다. 옥수수의 원산지가 멕이코 남부 지역이었으므로, 신대륙 발견 이전에는 유럽인들은 옥수수도 몰랐고, 그 명칭도 몰랐다. 아스텍제국에서는 이 옥수수를 치남바(chinampa)에서 재배함으로서 식량이 매우 풍부했다. 옥수수를 가리키는 멕이코 원주민 말은 두 개가 있었다. Maíz[마이스]와 Centli[센털이]이다. 후자는 껍질을 까지 않은 옥수수를 뜻했다. 껍질을 까지 않은 옥수수의 특징은 수염, 즉 털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centli(센털이)라고 부른 이유는 ‘센털’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말이다. 따라서 maíz(마이스)도 우리말일 가능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그런데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를 광범위하게 연구했던 스와데쉬(Mauricio Swadesh)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85).
<인용1>
“우토-아즈테간 언어들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어휘들에는, 예를 들어 maíz, frijol과 같은 아메리카 농업의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인용문에 따르면, maíz(마이스)라는 명칭이 우토-아스테칸 언어지역에서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토-아스테칸 언어 지역은 미국의 서부 지역으로서, 캘리포니아주, 유타주, 뉴멕이코주 아리조나주와 멕이코 북부 지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을말한다. 그리고 필자가 『Studies in Uto-Aztecan grammar vol. 1~4』를 바탕으로 연구해 본 바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상당수의 우리말이 광범위하게 나왔다. 그리고 여러 학자들도 이 지역의 원주민들이 멕이코의 나와틀족(아스텍족+고리족)과 언어, 문화, 종교가 매우 유사하고, 혈통적으로도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리조나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원주민 말이 ashkii[아쉬키]이다86).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아새끼’라는 우리말이다. 우토-아스테칸 언어 지역은 우리민족의 후예들이 퍼져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85) Swadesh, Mauricio, Swadesh, Maurico, 「Estudios sobre Lengua y Cultura」, 1960, p. 91
86) Theodore B. Fernald &Paul R. Platero, 『The Athabaskan Languages』,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p. 33
따라서, 이 지역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maíz(마이스)라는 용어는 우리말이고, 그 실체는 ‘맛있어’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민족은 옥수수 알갱이와 같이 생긴 것을 ‘콩’이라고 부른다. 우리민족은 모든 종류의 콩을 ‘콩’이라고 부르는 언어 습관이 있다. 그리고 콩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콩은 옥수수이다. 따라서 멕이코와 우토-아스테칸 언어 지역에 거주 하던 우리 민족이 옥수수 콩을 ‘맛 있어’라고 말했고, 이것을 스페인어로 차음 표기하면 반드시 maíz가 된다. 영어권에서는 이 어휘를 maize로 표기하는 경향이 있다. 옥수수를 영어권에서 corn(콘)이라고 한다. 아래는 corn의 어원에 관하여 wiki-어원사전의 설명이다87).
<인용2>
"grain," O.E. corn, from P.Gmc. *kurnam "small seed" (cf. O.Fris., O.S. korn "grain," M.Du. coren, Ger. Korn, O.N. korn, Goth. kaurn), from PIE base *gre-no- "grain" (cf. O.C.S. zruno "grain," L. granum "seed," Lith. žirnis "pea"). The sense of the O.E. word was "grain with the seed still in" (e.g. barleycorn) rather than a particular plant. Locally understood to denote the leading crop of a district. Restricted to corn on the cob in America (c.1600, originally Indian corn,
‘알갱이, 영어 고어 corn, 원시 독일어에서 온 듯. *kurnam “작은 씨앗” (비교. 프리시아 고어, 색슨고어 korn “알갱이”, 중세 네덜란드어 coren, 독일어 Korn, 노르웨이 고어 korn, 고트(동부독일)어 kauren), ... 영어 고어의 의미는 “특정 식물을 가리키기 보다는 씨앗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알갱이”... (1600년경, 원래는 indiancorn...)’
이 설명을 요약하면, “corn은 ‘알갱이’를 뜻하며, 이 어휘는 옛날 독일과 그 주변 지역에 korn, coren, kaurn 등의 형태로 사용되었고, 영어 고어의 의미는 ‘특정 식물이 아니라 그냥 씨앗 안에 있는 알갱이’를 뜻한다” 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1600년경에 원래는 ‘인디언콩’이라고 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영어 corn은 독일어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영어 고어’는 중세 시대의 영어를 말한다. 또 위의 설명에서 독일과 주변 지역에서 korn 등의 용어를 사용한 시기도 대략 중세시대 이거나 혹은 조금 빠른 중세시대를 뜻한다.
그리고 영어에서는 모든 콩을 bean(빈)이라고 한다. 옥수수는 신대륙 발견 이후에 유럽에 알려진 식물이다. 따라서 오늘날 옥수수를 뜻하는 corn이라는 어휘가 중세시대에 유럽 언어에 있었을 리가 없다. 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인들이 1492년에 했지만, 영국인이나 네덜란드인들은 1620년경에서야 비로소 왔다. 도착 지역도 지금의 미국 뉴욕 주변지역이었다.
87) © 2001-2010 Douglas Harper, Logo design by LogoBee.com, Page design and coding by Dan McCormack, Sponsored Words, http://www.etymonline.com/index.php?term=corn
88) 한남대 역사교육과 한창균 교수는 충북 옥천 대천리 신석기시대 집터에서 콩을 발견했고(2000년 5~10월), 시기는 대략 5000년전의 것으로 추정했다. 권신한(1983), 이성우(1984) 등은 『한국콩연구지』에서 콩 재배의 시작은 우리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콩은 원산지가 우리민족이 거주하던 만주 일대와 한반도이다88). 그리고 그 콩의 재배 시기도 기원전 3000여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즉 유럽의 corn/korn(콘)보다 우리말‘콩’의 기원이 훨씬 오래되었고, 원산지가 만주일대이므로, 여기서부터 콩은 우리말 ‘콩’과 함께 유럽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영어사전에서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콩에 대한 설명이다.
<인용3>
이 설명에서도 corn은 ‘Indian corn’으로 나온다. 즉 corn이라는 어휘는 인디언 언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즉 아메리카로 건너 간 우리민족은 ‘콩’이라는 어휘를 아메리카로 건너가기 전부터 사용했던 사람들이다. 멕이코 고대 문헌에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1523년 멕이코에 온 모톨리니아(Motolinía) 신부가 스페인 국왕 칼르로스(Carlos)5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멕이코 원주민의 문명은 콜와(Colhua-부여 고리족)인들이 가져 온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땅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들은 오토미(Otomí)인들이지만, 그 다음에 들어 온 사람들은 콜와(Cohua)인들로서 멀고 먼 땅에서 왔으며, 이들이 여러 가지 씨앗과 가금(家禽)류들을 가져왔고, 이들이 집을 짓고 농사를 시작했다.89)”
멕이코에서는 신대륙 발견 훨씬 이전부터 치남밭(chinampa)에서 콩, 옥수수, 호박, 고추 등을 재배했다. 원산지가 만주인 콩을 콜와인, 즉 부여의 고리족들이 멕이코로 가져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아메리카로 건너 온 뒤에 멕이코까지 이동하면서, 원하는 씨족이나 집안은 중간 중간에 남아서 머물러 살도록 하였다. 따라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corn 이라고 하는 것은 1620년대 이후에 아메리카에 온 영국인이나 네덜란드인의 어휘가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유의 어휘, 즉, 우리말 ‘콩’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여기서 필자는 미국 뉴멕이코주의 산타페 주변 지역에 살고 있는 태와(Tewa-태워=태양을 의미)족의 다음 전설을 인용하겠다90).
<인용4>
89) Sejourné, Laurette, 『Arqueología del valle de México, Culhuacan』, 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ía e Historia, 1970, p. 14
90) Kroskrity, Paul V., 『Language, History and Identity』, The University of Arizona Press, 1993, p. 3
“멀고 먼 곳, 그곳에는 조개들이 파도에 출렁이는데 그곳으로부터 태와(Tewa)인들이 콩(corn)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언제나 이야기 해주 던 것이고, 이것은 우리 할머니들이 언제나 이야기해 주던 것이다.“
이 전설에서 corn이라고 한 것은 ‘옥수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콩’을 의미한다. 옥수수는 멕이코 남부 지역이 원산지이고, 태와족은 우리민족 부여의 고리족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주54>에 밝혔듯이 이미 아메리카 학자들도 태와족 인디언들이 멕이코 나와들족91)과 혈통적으로 같은 계열이라고 밝혔다. 이 전설에서 말하는 corn은 발음 그대로 우리말의‘콩’을 의미하며, 조개가 파도에 출렁이던 곳이란 ‘그들이 건너 온 알루산 열도’를 의미한다. 인용문 위의 제목에 아리조나 태와족(Arizona Tewa)라고 한 것은 이 종족이 뉴멕이코 북부와 아리조나 북부에 퍼져 살기 때문이다. 아리조나 북부에서는 호피(Hopi)족과 어울려 사는데, 이들은 서로 친척간이라고 밝히고 있다. 콩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재배하던 매우 중요한 식물로서, 그들의 주식(主食)에 해당했다.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있다. 우리말에는 ‘콩’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매우 특별한 언어습관이 있다. 바로 ‘콩알만 한 게 뭘 안다고’, ‘콩알만 한 게 어딜 간섭해’, ‘콩알만 해’ 등과 같은 표현이 있다. 우리말에서 ‘콩알’은 ‘콩+알’로 구성된 말로서 ‘작다’를 뜻하는 우리 고유의 표현이다. 그런데 바로 이 표현이 영어 사전에 있다.
91) 아스텍족과 고리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나와들어라고 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나와들족 또는 나와족이라고 한다. 나와들어의 원래 명칭은 ‘나와다들이(Nahuatlatli)’이다. 이 명칭의 의미 해석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다. 혹자는 나와들(Nahuatl)이 언어명칭이고, 뒷부분은 설명 않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나와(Nahua)가 언어명칭이고 다들이(Tlatoli)는 ‘분명한’을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는 ‘나와 다들이’ 즉 ‘우리 모두가’를 뜻하는 우리말로 보고 있다. 언어명칭은 일반적으로 국명을 사용하여 정한다. 신대륙을 건너간 스페인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너희들은 무슨 말을 사용하는가”를 물었다. 원주민들은 그 당시에 국가 개념이 없어서, 각 종족이 사는 곳을 ‘~곳’ 또는 ‘~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멕이족이 사는 곳을 ‘멕이곳(México)’ 라고 불렀고, 고리족, 즉 콜와족은 그들이 사는 곳을 ‘콜와칸’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너희들은 무슨 말을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에 원주민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마도 “나와 다들이 (그렇게) 말한다”라는 정도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스페인인들은 ‘~ 말한다’라u45716 . 표u54788 . 앞u50640 . 주u50612 .로사u50857 .된부u48516 . ‘나u50752 . 다u46308 .이’를 목적어로 인식하여 ‘나와다들이어를 말한다’로 인식한듯하다. 원주민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초기 스페인인들이 이런식으로 범한 오류가 매우 많다. 특히 그들은 주격조사의 개념이 없어서 ‘나와 다들이’의 주격조사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명사의 일부로 인식했다.
<인용5> 92)
이 사전의 설명에 보면, 영어단어 kernel은 원래 ‘corn +el’로 구성되어 있고, el에는 ‘작다’는 의미가 있음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의 ‘콩알’도 ‘콩 +알’로 구성되어 있고, ‘작다’는 의미는 ‘알’에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대응관계가 성립한다.
kernel → corn + el (작다)
콩알 → 콩 + 알 (작다)
이 대응관계에서, 영어의 kernel과 우리말 ‘콩알’의 형태소 구조가 같고, 각 형태소의 발음이 비슷하며, 뜻도 일치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kernel은 우리말, 즉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미국 땅에 정착한 우리민족의 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차음하여 기록한 어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용2>의 설명에 나오는 kurnam도 바로 kernel과 같은 어휘이다. 즉 이 어휘들의 구조를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다:
kernel → kern + el
kurnam → kurn + am
이 대조에서, 우리말 ‘콩’을 kern, kurn, corn으로,‘알’은 el 또는 am으로 표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어휘를 이렇게 서로 다르게 쓴 이유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차음하여 기록하는 과정에 일어난 저자들 사이의 표기법의 차이일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하면, Corn(콩)이라는 어휘 자체가 원래는 영어 어휘가 아니라 원주민 어휘였다는 것과, 콩의 원산지가 만주일대라는 것과, '콩'에 '알'이라는 어휘를 붙이면 ‘작다’는 뜻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현상이라는 것과 태와족의 전설을 감안한다면, 영어의 corn은 우리말 ‘콩’일 것이다.
92) 제이씨현(주), 전자사전 Udea, D300. 이 사전은 금성출판사의 Grand 영한 사전을 바탕으로 한 것임.
따라서 영어의 corn은 우리말 ‘콩’을 차음하여 기록한 말이고, 콩 중에서 가장 맛있는 옥수수 콩을 다른 콩과 구별하여, 원주민들이 ‘맛있어’라고 했고, 이것을 차음하여 기록한 어휘가 maíz[마이스]일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인용1>에서 보았듯이, 우리말이 많이 나오는 우토-아스테칸 언어지역에서 특히 maíz/maize(맛있어)가 사용되었던 원인도 결국 그 원주민들이 우리민족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우토-아스테칸 언어지역의 원주민 언어에는 매우 다양한 우리말이 발견된다. 이 지역에서는 corn(콩)이라는 어휘와 maíz/maize(맛있어)라는 어휘가 함께 사용되었다. 미국 인디언들은 모든 종류의 콩을 ‘콩’이라고 했으나, 1620년 이후 영국으로부터 청교도들이 대거 들어와서, 점차 미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영어의 언어적 지배를 받게 되었다. 즉,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경작되었던 모든 종류의 콩은 영어의 영향으로, 영어 어휘 bean(빈)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직 유럽에는 없었던 옥수수 콩만 원주민들이 원래 부르는 명칭corn(콩)으로 계속해서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옥수수를 몰랐던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콩’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그대로 차음하여 indian corn 또는 줄여서 corn 이라고 했고, 어떤 저자들은 kern, kurn이라고 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원래 언어였던 ‘콩’은 ‘모든 종류의 콩’을 뜻하던 의미에서, 영어 어휘 bean의 확산으로 인하여 ‘옥수수 콩’만을 뜻하게 되었다. 즉 영어의 언어적지배로 말미암아, bean이 보통명사로서 ‘모든 종류의 콩’을 뜻하는 어휘로 보편화되었고, ‘콩’은 의미가 축소되어 오직 옥수수만 가리키게 되었다93).
콩은 먹기가 힘든 식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곧 굳어서 돌처럼 단단해진다. 따라서 이 콩을 음식으로 먹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래는 우리나라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갈판, 멕이코 아스텍 시대의 갈판, 그리고 1913년 미국 아리조나 투산에서 갈판에 콩을 갈고 있는 인디언 여인 사진이다94).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20세기 초까지도 갈판을 이용하여 콩을 갈아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들과 우리의 식문화 가운데 공통점 하나는 빈대떡일것이다. 그들도 우리의 빈대떡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다. 빈대떡은 콩가루를 사용했다95).
93) 필자는 2010년 12월 20일경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 주변 지역에 사는 태와(Tewa)족 마을들을 답사했다. 그 때 만난 그 지역 노인들 중 극히 일부가 아직도 ‘모든 종류의 콩’을 corn(콩)이라고 말하고, 일인칭 주어 ‘나’를 na(나)라고 했다.
94) 아스텍 유물은 Hanns J Prem &Ursula Dyckerhoff, 『El Antiguo Mexico』, Plaza &Janes Editores S.A., 1986, p. 44에 나오고, 미국 아리조나 유물은 Ian varnes, 『The historical atlas of Native americans』, Chartwell books Inc, 2009, p. 79에 나온다.
95) 미국 아리조나 1913년의 사진에서 인디언 여인이 신체의 아랫부분은 가렸지만 윗부분은 드러내놓고 있다. 멕시코 고문헌에는 서부해안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여인들이 저고리 같은 윗옷을 입었으되, 젖가슴은 드러내고 있는 모습의 그림들이 여러 점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의 사진에 여인들이 저고리를 입었으되 젖가슴을 드러낸 모습들이 매우 흔하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것도 우리민족의 어떤 씨족의 풍습이 이어져 내려 온 것일 것이다.
이외에도 영어에는 우리말 어휘가 더 있다. 예들 들어, 미국 동부 지역의 태풍을 hurricane(허리캐인)이라고 한다. 이 어휘는 카리브해 연안 원주민들의 말을 스페인인들이 차음하여 기록한 huracán[우라깐](우라캉)에서 비롯된 말이다. 원주민들이 천둥칠 때의 소리를 흉내 내어 사용하던 의성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청둥소리를 ‘우릉쾅’이라고 한다.
‘우릉쾅’을 스페인어로 차음하여 기록하면 huracán(우라캉)이 될 수밖에 없다. 음성적 특징은 ‘우르’보다는 ‘쾅’을 항상 강하게 발음한다. 카리브 연안 원주민들도 같은 부분을 강하게 발음했음이 틀림없다. 그 근거는 스페인인들이 차음하여 기록하면서 huracán의 can[깐]을 강하게 발음하도록 악센트를 찍어서 표시했기 때문이다. 영어의 hurricane(허리캐인)도 cane(캐인)을 강하게 발음한다. 즉 우리말과 카리브 연안 원주민들의 말과 이를 차음한 스페인어 기록, 그리고 이를 차용한 영어에 이르기까지 이 어휘의 음성적 특징이 일치한다. 카리브 연안에도 우리민족의 흔적들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어 어휘의 어원은 우리말 ‘우릉쾅’일 것이다.
4. Cóndor[꼰도르](큰도르), <큰 새>
가수로서 유명한 샤이먼 앤 가펀클( Simon &Garfunkel)의 노래 중에 ‘El cóndor pasa (새는 날아가고)’가 있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 노래에 등장하는 cóndor(큰도르)를 분석하겠다. 이 새의 명칭은 북미와 남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어휘이다. 아래 사진 (a)는 북미 캘리포니아의 독수리 cóndor[꼰도르](콘도르)이고, (b)는 남미의 안데스의 독수리 cóndor [꼰도르](콘도르)이다. Cóndor(콘도르)는 각 지역의 원주민들이 그 지역의 독수리에 붙인 이름이다.
이 두 마리의 독수리를 비교하면, 외양이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 독수리는 머리와 목 부분이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이 다채롭게 섞여있고, 머리 부분도 일부가 까맣다. 목 주위에는 검고 윤기 나는 목도리 같은 긴 털이 나 있다. 이에 반하여 안데스 독수리는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이며, 목 주변에도 긴 털이 없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원주민들은 똑 같은 이름으로 이 새들을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마리의 새가 왜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가
형태소 구조: conetl = co(크) +n(ㄴ) +e(애) +tl(들)
질 수밖에 없다. 질문의 요점은 신대륙 발견 이전에 이 두 지역의 원주민들이 상호 교류를 했는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로 요약될 것이다.
먼저 상호 교류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 안젤레스에서 남미 페루의 리마까지 직선 거리로만도 약 7천 킬로미터의 거리이다. 그리고 최대 영토를 지배했던 아스텍제국 최고 번성기에도, 현재 멕이코 영토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멕이코 북부 지역은 아스텍제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이것은 아스텍제국조차도 멕이코 북서부 지역과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다 거리가 먼 캘리포니아 원주민들과 중미 지역 원주미들사이도 인적 물적 교류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남미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과의 교류는 더구나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마리의 새의 명칭이 같다.
당연히 우연의 일치 가능성은 없다. 아무리 사물이 같을 지라도 언어적 교류가 없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지역에서, 같은 사물에 대해 같은 명칭을 우연히 사용한 예는 전혀 없다. 더구나 새의 외양조차도 다른데도 불구하고 명칭이 우연히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필자가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해온 주장은 ‘우리민족이 아메리카로 이동하여 퍼졌고, 고리족은 남미까지 이동했다’이다. 명칭이 같은 이유는 북미 캘리포니아 원주민도 남미 안데스의 원주민도 모두 우리민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즉, cóndor(콘도르)는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a) Sullivan의 설명
“큰애들/ 크네드/ 어린아이”
나와들어 conetl[꼰애뜰](큰애들)은 ‘아이(들)’을 의미한다. 스페어식 발음으로는 [꼰애뜰]이지만, 여기서 인용한 슐리반(Sullivan)의 발음표기에 따르면, ‘큰애들’로 발음된다. 다시한번 스페인어식 발음이 아스테카인들의 원래의 발음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어휘를 우리말 형태소 구조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이 구조 분석에서 보듯이, con(큰)은 우리말 형용사 ‘크(co)’에다 관형격 접사 ‘ㄴ(n)’이 사용된 어휘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우리말 모음 ‘ㅡ’는 스페인어로 표기될 수 없고, 그래서 모음 ‘o(ㅗ)’로 대체되었다96). 나와들어 conetl(큰애들)이 우리말 ‘큰 애들’이라는 것은 발음과 뜻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래 Simeón의 사전에서 이것을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b) Siemón사전의 설명
96)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알파벳 ‘o’ 를 발음할 때 입술 모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말의 모음 ‘ㅡ’ 발음할 때의 입술 모양과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이 두 소리가 비슷하게 들린다.
형태소 구조: cóndor = con(큰) + dor(도르)
“conetl(큰애들) 일반적으로 엄마들이 사용한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를 의미한다.... 존칭어로 noconetzin[노꼰애찐](노큰애친) 이라고 하며, 뜻은 나의 아드님, 나의 따님을 의미한다...”
이 사전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엄마들(아주머니들)’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 우리민족의 언어생활에서 ‘큰 애/ 작은 애’라는 용어는 주로 엄마들이 사용하고, 아버지들은 ‘큰 넘, 작은 넘’ 같은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우리민족의 언어습관인데. 그것을 초기 스페인 선교사들은 흥미롭게도 관찰하여 이렇게 기록해 두고 있었다. 또 이 사전의 설명대로 우리말의 ‘큰 애들’은 남자아 이든 여자아이든 다 칭할 수 있다.
위의 두 인용문으로 우리는 conetl(큰애들)이 뜻과 발음에서 우리말과 일치한다는 것 뿐 아니라, 이 어휘의 사용주체가 주로 여인네(엄마)라는 것도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휘의 발음과 뜻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그들이 우리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충분하지만, 이에 더하여 그 사용하는 미묘한 언어적 환경까지 일치한다는 것은 필자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증거이다.
참고로, noconetzin(노큰애친)을 간단히 보기로 한다. ‘노(no)’는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그 뜻은 ‘나의’에 해당한다. ‘친(tzin)’은 몽골어에 나온다. 대원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원래 이름은 ‘테무친’이었다. ‘테무’는 ‘철’을 의미하고, ‘친’은 ‘높은 사람’을 뜻하는 몽골어 이다. 즉 테무친은 ‘철같은 분’을 뜻한다. 우리말에서는 ‘치’로 나온다. ‘벼슬아치, 장사치, 가바치’ 등의 ‘치’이다. 이 말은 현대어에서는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존칭어’였다고 1930년대 국어학자 방종현선생님이 밝히고 있다97). 필자는 나와들어 ‘chin (친)’이 우리민족의 어휘였는지 아니면 몽골족의 어휘였는지는 판단하지 않는다98). 다만 부여의 고리족은 몽골인들과 매우 친밀하게 살았으므로, 그들 간에 언어적 상호 교류 또는 공통어가 있었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제 논의의 초점을 다시 cóndor(콘도르)로 돌아가기로 한다. 우리는 앞의 논의로부터 condor의 con(콘)이 우리말 ‘큰’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독수리의 명칭은 다음과 같은 우리말 형태소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다.
97) 방종현, ‘「티」와 「치」에 대한 생각 일편’, 『조선어문학회보 제3호』, 조선어문학회,1932, 12~15쪽
98) 이유는 몽골인들 일부도 아메리카로 건너간 흔적이 분명하게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아스텍 제국안에 거주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스텍 제국을 건설하기 직전에 아스테카인들을 도와주었던 아스카포잘고 (Azcapotzalco) 중심으로 살던 테파테카(tepaneca)인들이 그들이 아닐까 연구 중이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몽골인들과 우리의 부여계 선조들이 역사적으로 매우 가깝게 지냈으므로, 일부 어휘는 두 민족이 공통으로 사용했을 것이고, 그 중 하나가 ‘친(chin)’일 수도 있다.
이제 남은 어휘는 ‘dor(도르)’뿐이다. 이 어휘는 무슨 뜻일까? 상식적으로 독수리는 새 중에서 가장 큰 새이다. 북미의 콘도르도 남미의 콘도르도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새’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con = 큰’이라는 사실을 발음과 의미의 대응관계로 찾아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을 추론하면 자연스럽게 ‘dor = 새’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남미와 북미의 dor(도르)는 바로 ‘새’를 의미하는 어휘이고, 그 어휘의 주체는 고리족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고리족의 상당수는 남미로까지 내려가서 잉카제국을 세웠다. 잉카제국의 어휘에는 부인하기 어려운 우리말이 나오고, 그들의 지명에도 나오며, 그들이 남긴 고고학적 유물에는 우리민족의 고고학적 유물과 매우 비슷한 것들이 있다.
‘도르(dor)’가 우리민족 고리족의 언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방증은 일본어 ‘도리(とり= 새)’이다. 일본인들은 역사적으로 기원전 약 4세기 까지 동북아 만주의 부여 근처에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최초의 발달된 문화인 야요이 문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나 백제와 많은 인적·물적 교류관계를 맺어 왔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고, 백제는 다시 고구려에서 나왔다. 고구려와 백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은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따라서 부여-고구려어의 잔재가 일본어에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어 ‘도리(とり)’는 우리가 한반도에서는 잃어버렸지만 일본어에서는 살아남은 부여-고구려어의 어휘이고, ‘도르(dor)’는 아메리카에서 살아남은 부여-고구려의 어휘가 아닐까?
결론적으로, 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독수리나 남미 안데스의 독수리가 모두 cóndor(콘도르)라고 불리는 원인은 이 어휘가 우리의 부여계 선조들이 사용하던 어휘로서, ‘새’를 뜻하는 말이었고, 부여계 선조들은 북미를 거쳐서 남미까지 진출하였음을 증거하는 어휘라고 생각한다. 즉 이 어휘는 우리민족 부여계 고리족이 남미까지 이동했다는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본다. Cóndor(콘도르)는 우리민족이 사용했던,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말 ‘큰 도르’이며, 그 뜻은 ‘큰 새’이다. 이것은 또 남미 안데스 지역뿐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도 부여의 고리족들이 16세기 이후에도 정착해 살았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언어 문화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아메리카로 건너 온 부여의 고리족은 작은 집단이 아니었고, 또 단 기간에 한두 번 건너 온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이동은 약 일천년에 걸쳐서 대규모 집단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들의 후예는 풍부한 자연 환경 속에서 인구가 번성하여 북미와 남미 전역에 퍼졌다. 그 언어적 고고학적 문화적 증거들이 남미와 북미 전역에서 발견된다.
‘콘도르(condor)’와 관련하여 아스텍제국 문헌에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아스텍 제국 역사서에 ‘codornice/ codornise[꼬도르니세](코도르니세)’라는 어휘가 가끔 나타난다. 물론 ‘새’의 명칭이다. 이 새는 아스텍의 무당들이 제사를 올릴 때, 미리 다른 새들과 함께 목을 잘라서 피를 바쳤던 새이다. 목을 자를 때는 칼로 자르지 않고, 목을 비틀어 뽑았다. 이렇게 목을 자르는 방법도 우리 무속인들이 아직까지 은밀하게 행하는 방법이다99).
그런데, ‘codornice(코도르니세)’도 중간에 자음 ‘n(ㄴ)’을 첨가하면, ‘condornice(콘도르니새)’가 된다. 우리는 앞에서 나와들어를 스페인어로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받침소리를 생략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말로 분석할 때 이 받침소리를 복원해야 할 경우가 많다. 형태소 구조는 ‘콘도르(condor) + 니(ni) + 새(ce)’이다. 훈민정음운해에 ‘니르고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말하고자’를 뜻한다. 즉 ‘니= 말하다’이고, ‘-르고자’는 ‘하고자’를 뜻하는 말, 즉 ‘의도’를 나타내는 서술어일 것이다. 따라서 ‘condornice(콘도르니새)’는 ‘큰 도르(라고) 말하는 새’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아스테카 제국 건설의 주체인 멕이족(아스테카족)은 ‘새’를 ‘새’라고 하고, 부여 고리족은 ‘도르’라고 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두 지역, 즉 요동 지역과 만주 지역의 선조들 간에 언어적으로 차이가 일부 있었음을 암시한다. 또 820년경에 요동의 아스땅(아사달)을 출발한 맥이족의 언어가 현재의 우리말과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을 암시한다.
99) 필자는 어린 시절 새의 목을 비틀어 뽑아 자르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멕이코 역사 기록에 따르면, 멕이족이 13세기 말에 처음 고리족을 만났을 때, 언어가 통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콘도르라고 말하는 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condor(콘도르)’를 하나의 고유 명사로 인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멕이족과 고리족 간의 어휘적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 차이는 우리민족 언어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멕이족이 아스달(아스땅)에서 출발했다고 멕이코 고대 문헌 기록에 나오고,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멕이족이 살던 곳은 요동이므로, 결국 요동지역의 언어와 부여의 고리족이 살던 만주지역의 언어 사이에 어휘적으로 방언적 차이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5. 맺음 말
필자는 본 연구에서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원주민들의 말을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차음하여 기록한 나와들어에서 원주민들의 원래의 발음을 복원하기 위하여, 즉 우리말 발음을 복원하기 위하여, 나와들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제안하였다. 이어서 우리민족 역사에서 중요한 ‘태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또 나아가서 피라밋을 칭하던 민족 고유의 어휘도 찾아내었다. 그리고 멕이코의 중요한 지명들,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무기의 명칭, 밭의 명칭 등이 모두 우리말로 되어 있음을 형태소 구조 분석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각 형태소는 발음과 뜻이 우리말의 해당 형태소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그 형태소들의 결합 방식과 결합후의 전체 구조와 그 뜻까지도 우리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와들어 각 명칭의 형태소 분석에서 찾아낸 여러 개의 문법소들이 우리말의 해당 문법소와 발음, 기능, 사용위치에서 정확하게 같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문법소는 뜻은 없고 기능만 있는 어휘이다. 뜻이 없는 언어 요소는 다른 외래어에서 차용해 올 수도 없고, 반대로 차용되어 갈 수도 없다. 문법소는 각 언어 고유의 것이다. 나와들어와 우리말은 같은 문법소를 가지고 있고, 이 사실은 두 언어가 같은 언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corn(콘)이라는 말도 우리말 ‘콩’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condor(콘도르)’를 통하여 북미와 남미로 흩어진 우리 민족의 흔적들까지 콘도르(condor)라는 어휘를 통하여 추적하여 찾아내었다.
필자의 이 연구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나와들어의 연구를 통하여, 고대 중국인들이 우리민족에 관한 기록을 남길 때 한자로 차음하여 기록해 두었으나, 그 뜻을 알지 못했던 어휘의 의미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 필자가 다룬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 고고학적 언어적 증거들은 매우 많고, 그 증거들이 나오는 지역도 아메리카 전역이다. 미국 전역에서 우리민족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필자는 이것을 순서에 따라 하나씩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할 것이다.
본 논의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필자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언어들을 비교언어학적 시각에서 깊게 연구한 스와데시(Mauricio Swadesh)의 다음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다100).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신대륙의 언어들은 아시아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들어 온 여러 가지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인용에서 ‘여러 가지 언어들’이라고 한 부분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여러 가지 언어가 아니라 우리말의 방언적 차이’로 본다. 부여계 고리족은 씨족단위로 또는 몇 개의 가까운 씨족 집단 단위로 만주 일대와 아무르 강 북쪽의 방대하게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이들은 간단한 농사와 사냥을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던 유목민이었다. 따라서 풍속과 언어에서 다소의 지역적 방언적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렵을 하며 살던 유목민들은 작은 씨족 단위로 쪼개어져 살면서, 오랫동안 주변의 다른 씨족들과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갖지 못하여, 사용하는 언어와 생각이 단순해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다른 씨족들과 언어적 차이, 즉 방언적 차이가 심해지게 되었다101).
부여의 고리족들은 씨족 별로 이러한 방언적 차이를 가지고 알류산 열도를 통하여 아메리카로 건너와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까지도 그들은 우리민족으로서 언어적 문화적 공통점이 많았다. 그러나 아메리카로 건너오는 시기도 씨족 집단별로 그 시기가 매우 달랐고, 건너 온 후에도 넓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각 씨족 집단별로 흩어져 수백 년 또는 천년 이상 언어 문화적 교류 없이 살게 되었다. 따라서 방언적 차이는 점점 더 그 차이가 확대될 수밖에 없었고, 또 다양한 지리 환경적 차이에 적응하느라 각 지역에 정착한 씨족들 간에는 문화적 차이도 점차 확대될 수 밖에 없었다. 또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늘어난 각 씨족들은 다른 씨족들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 씨족 구성원들의 단결을 위하여 다른 씨족들과 다른 자신들 만의 독특한 문신이나 장식을 몸과 의복에 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방언적 차이는 점점 심화 확대되어, 오늘날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체 언어가 무려 2000여개로까지 확대·분류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많은 수로 언어를 분류한 원인은 아메리카 학자들이 그들의 모태어인 우리말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방언으로 분류했을지라도 그 언어들에는 모태어가 가지고 있는 공통어들, 즉 우리민족 고유의 어휘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연구한 학자들 가운데 우리민족의 문화나 언어를 알고 연구한 학자는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 16세기 예수교의 선교사 호세 데 아코스타(José de Acosta)가 처음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북쪽 베링해가 얼어붙었던 빙하기에 건너왔을 것이라고 말한 뒤에, 이 설(說)을 받아들인 사람도, 반대한 사람도 우리민족의 문화나 언어를 알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1799년 6월 5일, 5년 동안의 멕이코 여행길에 올랐던 독일의 남작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도 ‘그들이 아시아에서 왔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우리민족에 대하여 아는 것은 없었고, 20세기 초의 대표적 고고학자로서 멕이코 아스텍 문명을 연구하여 오늘날 멕이코 고고학의 기초를 세웠던 독일학자 에두아르드 젤러(Eduard Seler)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아시아로부터 건너 온 사실을 부인했지만, 역시 우리민족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학자였다.
100) Swadesh, Mauricio, Swadesh, Maurico, 「Estudios sobre Lengua y Cultura」, 『Acta anthropologica 2a, Epoca II2』, 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ía e Historia, Comite editorialAura Marina Arriola외 6명, 1960, p. 149
101) Vaillant, George C., 『Aztecs of México』p. 27
필자는 지금까지 일련의 연구를 통하여 멕이코의 아스텍 문명, 그 이전에 존재했던 태오티와칸 문명도 모두 우리 선조들이 건너가서 일으킨 문명임을 증명하고, 또 제시해 왔다. 필자는 우리민족 가운데 특히 고리족은 멕이코 문헌 기록에 따라서 기원후 50년경부터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기원 수백 년 전부터 아메리카로 건너왔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고고학적으로 청동기 시대에 우리민족이 세웠던 고인돌도 멕시코의 가장 오래된 문명과 남미 잉카 문명 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 고리족의 후예들은 아메리카 전 대륙에 광범위하게 퍼져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언어적 문화적 고고학적 증거의 편린들을 보았다. 필자는 이 방대한 연구의 초석을 세우고자, 지역적으로 그 증거가 가장 잘 남아있는 멕이코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연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