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2. 25(목)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숨은 달란트 개발하기

세상에는 정상인의 몸도 아닌데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미키마우스>, <101마리 달마시안>등
우리가 잘 아는 만화를 그린 사람도
아홉 살 때까지 글을 읽지 못하는 학습 장애아 였다.
그의 이름은 바로 월트 디즈니.
디즈니는 자기의 배운 것을 글로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세계적인 영화배우 톰 크루즈는 글을 읽지
못하는 난독증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대본을 제대로 읽지 못해 개인 트레이너가
이야기하면 귀로 듣고 외운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역시
지체 장애인이어서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는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 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예로 들 수 있다.
손가락이 네 개뿐이고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없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의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고
여러 상을 수상했고, 현재는 광주 국제 공연 예술제
홍보 대사와 피아이스트를 겸하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
멀쩡한 몸을 가지고도 내안의
달란트를 찾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의 한계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 여사는
박사 학위까지 받아 강연하지 않았던가.
혼자 서는 법을 깨우치는
사람만이 진정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 삶을 대신 해줄 수 없다.
남에게 의존 하기 보다는 내 안의
숨은 달란트를 찾아 그것을 개발해 보자.
- 아이러브미/에스더 스촐노키, 니나 폴만' 중에서 -
월드 디즈니스

월터 일라이어스 "월트" 디즈니(영어: Walter Elias "Walt" Disney, 1901년 12월 5일 ~ 1966년 12월 15일)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이며 사업가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부터 상업 미술에 뜻을 두고 광고 만화 등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미키 마우스'를 창조하여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그 뒤 <미키> <도널드> 등 많은 만화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삼원색 방식에 의한 최초의 천연색 영화인 <숲의 아침>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 뒤에도 <돼지 삼형제>를 비롯하여 많은 걸작 만화를 만들었다.

1937년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제작하여 개봉하였는데 당대에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장편 영화 상영 도중 잠시 틀어주는 소품같은 개념이어서 월트 디즈니의 도전은 무모하다고 여겨졌지만 개봉 직후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함 포템킨의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은 백설공주를 본 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자연 과학 영화, 기행 단편 영화, 기록 영화 등 수많은 우수한 영화를 제작하였다. 그는 TV용 영화도 만들어 대호평을 받았다. 1955년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어린이 유원지를 설립하여 영화 제작자 이상의 사업가로서도 자리를 굳혔다.

그가 영화 업계와 세계 오락 산업에 미친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방대하게 남아있으며 여전히 대중문화 역사 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그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엔터테이너이자 가장 유명한 비정치적 공인'이라고 일컬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형인 로이 디즈니와 함께 1923년에 창립했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1966년 폐암 말기로 진단받고 불과 한 달 만에 사망했다. 화장되어 글레데일의 묘에 매장되었다. 한때 월트 디즈니가 냉동보관되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톰 크루즈 (Tom Cruise)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이다. 1962년 7월 3일생. 170cm. 67kg.
본명은 토머스 크루즈 메이보더 4세(Thomas Cruise Mapother IV)[4]. 그러나 후에 '메이보더'라는 성을 지우면서 미들네임인 '크루즈'가 성이 됐기 때문에 현재 본명은 '토머스 크루즈(Thomas Cruise)'이다. 부모로부터 독일계, 아일랜드계, 잉글랜드계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5] 대대로 판사 등의 법조계 인사가 많은 집안이었다고 한다. 어 퓨 굿 맨에서의 연기가 실감나는 이유가 있었다.

80년대 데뷔 이후 줄곧 세계최고의 미남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자녀로는 두번째 부인인 니콜 키드먼과 결혼생활을 할 때 입양한 딸 이사벨라 제인 키드먼-크루즈, 코너 앤서니 키드먼-크루즈와 세번째 부인인 케이티 홈즈와 낳은 딸 수리 크루즈가 있다. 친아버지와는 어렸을 때 이후로 만나지 않았고 임종 때에서야 만났다는 듯. 전처들은 미미 로저스, 니콜 키드먼, 케이티 홈즈이다. 서구권 팬들은 Tommy, 또는 Tommy C 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막내딸의 이름 수리 크루즈에서 유래한 '수리애비' 라는 별명이 유명하다.
존 F. 케네디

존 피츠제럴드 "잭" 케네디(John Fitzgerald "Jack" Kennedy, 1917년 5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또는 약어로 JFK는 미국의 35번째(제44대) 대통령이다. 1961년부터 1963년에 암살당하기까지 겨우 2년 동안 대통령직에 있었지만 미국의 자유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남태평양에서 PT-109 고속 어뢰정의 해군 장교로 근무했는데, 자신의 배가 일본군에게 격침되자 위협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한 것으로 영웅이 되었다. 케네디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하원의원으로,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상원의원으로 미 의회에 있었으며, 19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케네디는 대통령직에 1961년 1월 20일부터 1963년 11월 22일까지 있었고, 임기 동안에 피그스 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베를린 장벽, 우주 경쟁, 베트남 전쟁 간접 개입, 흑인 인권 운동 등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서투른 명문가 도련님이라는 우려도 받았으나 역사가들은 케네디를 링컨, 루즈벨트, 워싱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라는 점과, 상류사회에서 잉글랜드계 혈통에 밀리던 아일랜드계 혈통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를 내세운 개신교 세력의 반발과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생 애

존 F. 케네디는 1917년 5월 29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브루클라인 빌즈 가 83번지에서 태어났다. 케네디의 집안은 아일랜드인의 후손으로 19세기 후반 아일랜드에 닥친 대기근으로 인해 미국 매사추세츠 주로 이주한 가톨릭 집안이다. 개신교가 사회의 주류여서 직업선택 등에서 차별받던 로마 가톨릭 교회 집안 출신이었는데, 그 집안의 형제 중에서 한명쯤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원했던 대(大) 조지프 P. 케네디의 아들로 태어나 1940년 하버드 대학을 국제관계학을 전공으로 쿰 라우데 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 중에 해군으로 복무했었다.1950년대를 전후하여 민주당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196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세 도중 그는 미국이 소련보다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뒤졌기 때문에 '미사일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케네디는 오하이오 주에서 패배한 후보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는 이른바 오하이오 징크스를 깬 유일한 대통령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오하이오 주의 선거인단을 장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유일한 대통령이였다.
이희아

이희아(1985년 7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이다. 손가락이 양 손에 각 2개밖에 없고 다리도 짧은 기형아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피아노 연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헬렌켈러(Helen Adam)

s Keller, 1880년 6월 27일 ~ 1968년 6월 1일)는 미국의 작가, 교육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그녀는 인문계 학사를 받은 최초의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이다.[2][3] 헬렌 켈러의 장애로 인해 가지고 있던 언어적 문제를 앤 설리번 선생과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한 유년시절을 다룬 영화 《미라클 워커》로 인해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책소개(아이러브 미)

이 책은 여자들의 매일을 행복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마음가짐, 태도에 관한 260가지 지침이 담겨 있다.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때로는 진지한 자기 성찰로, '오늘'을 로맨스 영화처럼 근사하고 코미디 영화처럼 유쾌하게 연출하는 지혜를 소개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크고 작은 일들을 적어보고 점수 매기는 '오늘의 행복지수', 나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해보는 '인생의 나무 그리기', 과거 애인이 준 선물을 정리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해주는 '과거 애인에게서 벗어나는 날' 등 ‘PRIDE’ ‘SUCCESS’ ‘STYLE’ ‘CULTURE’ ‘LOVE’ 등 여자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할 10개의 테마 아래 260가지 상큼발랄한 아이디어가 화려하고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펼쳐진다.
저자 소개(에스더 스촐노키, 니나 폴만)
에스더 스촐노키는 독일 뮌헨의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니나 폴만은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매주 새로운 일을 저지르기로 약속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 책은 그 유쾌한 결과물이다. 260가지 발랄한 제안 가운데 두 저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것은 196번과 231번이라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지난밤 이야기)
감기가 심한 것 같아 오전 회의 후, 단체로 식사를 가자는 청을 거절하고 혼자 원효로 소재의 '엣날 식당'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붐볐기에 행여 감기라도 옮길까 걱정이 되어 구석진 곳에 혼자 앉았습니다. 음식이 쓰게 느껴지는 것은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관계로 입맛이 없는 탓일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 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금방 회의를 하였는데도 또다시 찾는 것이 많이 못마땅스러웠습니다. 몸이 불편한 오늘따라 찾는 이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몇차례 어려운 입장을 설명한 바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주사장이 회사를 방문하여 확실한 제안서까지 제출하고 갔습니다. 이어 오후 3시경에는 송추의 한식당 운영자와 목동의 일식도시락 업체와 장시간 미팅 시간을 갖었습니다. 퇴근시간이 임박 할 즈음 마나님이 용문동에 모임이 있어서 왔는데 퇴근 할때는 집으로 같이 가자는 연락이 왔기에 몸도 불편한지라 오랫만이 일찍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집에 가자고 마나님께 전화를 했는데, 스마트폰을 진동으로 놓아 두어 무려 30분이나 용문동 새마을 금고 앞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렸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불편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심하게 짜증을 많이 내었습니다. 흑~흑~흑~ 그렇지만 용문동 시장에서 오뎅과 그 국물을 마시며 추위를 식힌 뒤, 이내 마음을 고처먹고 모처럼 야심한 밤 마나님과 야간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귀가했지요. 귀가 길은 어쩔 수 없이 강변북로를 경유하여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홍은동 램프로 빠지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나님이 용문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만나자고 했기에 강변북로 길이 편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내부순환로 길 정릉 지역일대에 대핸 보수공사로 인하여 차량통행 제한을 할 줄 알고 과연 통행이 될까 싶어 걱정이 되긴 했으나, 그건 기우였습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우려를 갖고 이 길을 회피한 탓으로 그날 내부순환로의 홍은동 길까지는 아주 논스톱으로 잘 달릴 수 있었으니깐요.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마나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의 일기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