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익사체가 떠내려온다 어둠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저 길 잃은 영혼들 눈을 뜨고 죽은 사람도 눈을 감고 죽은 사람도 잠시 우리 집 창가에 머물렀다 떠난다 깊은 밤 전등을 끈 채 창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노라면 그들은 뭔가 내게 들려줄 말이 있다는 듯이 유리창에 붙어 입술을 달싹거린다. 그 어떤 위안도 희망도 소용없어진 내게 그들은 읽을 수 없는 문장을 전해주고 간다. 간혹 창문을 두드리며 방안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이도 있지만 팔짱을 낀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 익사체는 덧없이 먼 어둠 속으로 헤엄쳐가고 다시 또 다른 시체가 떠밀려온다 때로는 비에 젖어 때로는 흰 눈사람이 되어 끊임없이 내 집 창문을 기웃대는 그들 그 어떤 땅이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 어떤 기도 그 어떤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별똥별 하나 내 이마에 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밤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흔들리는 방 흔들리는 거리를 지나 죽은 자들에게 이끌려 나는 한없이 어두운 밤의 밑바닥을 정처 없이 떠내려간다. ……누군가 창문 저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 시집『죽은 자를 위한 기도』1996 ................................................................. 남진우의 초기 시는 이렇듯 두텁고 짙은 망토를 뒤집어 쓴 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광배에 드리우고 있어 우리들 평균치의 독자로서는 그 의미의 실체에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얼마간 인내심을 할애하여 그가 죽은 자와의 소통을 꾀하고 그들을 감지해내기 위해 기대어선 유리창 옆에 나도 함께 세운다. 요즘의 엽기적이고도 괴상망측한 죽음에 한 발 다가가 그들 주검이 힘겹게 내뱉는 말들을 조금이나마 듣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는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 전이된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빤히 쳐다보고 있노라니 삶과 죽음이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로 섞여있는 상태다. 시에서는 끝없이 따라붙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냉정하게 거리감을 두며 거절하는 듯 뵈지만 우리의 현실은 도무지 그렇지 못하다. 유리창 건너편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죽음들에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창 밖 당신들만의 죽음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죽음을 피해 어디로 도망한들 무사하고 태평할 수 있을까. 풍광 좋은 산과 바다에도 그들은 어른거리고 영화관이나 책 속에서도 그들은 입을 달싹이고 있다. 아직 4월의 혼령들이 눈을 채 감지도 않았는데, 선거에서 이겼다고 한 패거리들은 이미 논의가 진전된 특별법마저 궤변을 늘어놓으며 뒤로 물리려는 기가 막힌 판국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이런 식으로 나가면 그들 죽음의 힘이 계속해서 그들을 끌고 들어갈 게 빤한데도 말이다. 사연을 안고 죽은 이들이 전하는 '읽을 수 없는 문장'일지언정 반드시 우리 산 자들이 함께 해독해가야 하며, 그런 다음 그들에게 어떤 기도가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하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주검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때마다 분노하고 부끄러워하기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살인이고 죽음들이 아닌가. 이미 이러한 죽음들은 사회적 죽음이고 곧 우리들의 생사문제가 되었음에도 우린 너무 쉽게 분노했다가 푹석 사그라지면서 무뎌져가는 건 아닐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지만, 그들을 방관한 우리까지 처참하고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오히려 산 자들이 겪을 고통이 죽은 자의 그것보다 끔찍할 수가 있다. 문제는 이런 특수한 죽음들이 곧 나와 내 가족들에게도 닥칠 보편적인 죽음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는 방식과 죽는 장소, 죽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죽음도 인간의 존엄이 내동댕이쳐져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날 사망진단서에 기재되는 사망 원인이 3천 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1999년 32세의 건장한 남자가 차를 몰고 가다 벽을 가볍게 들이받았고 에어백이 작동했음에도 숨졌다. 경찰은 약물 과다복용이나 혈관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부검을 했다. 그런데 부검 결과 이 남자의 기도에서 막대사탕이 발견됐다. 막대사탕을 물고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자 에어백이 터졌는데 이로 인한 충격이 막대사탕을 기도 안으로 밀어넣어 질식사한 것이다. 그 이후로 에어백 경고 문구에 운전 도중 막대사탕을 먹지 말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미국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은 목을 감싼 긴 스카프 자락이 자동차 뒷바퀴에 걸려 목이 부러져 그 자리에서 질식사 했다. 그리스의 화가 제우시스는 너무 신나게 웃어재끼다가 혈관이 터져 죽었고, 제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뉴욕의 센트럴 공원에서 부인의 애견을 데리고 산책하다가 그 개의 개줄에 발이 걸려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었다. 재수 더럽게 없는 죽음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들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만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타인의 죽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하는 지적 모험만을 즐길 것인가.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죽음은 선명해지는 법이거늘 그렇다면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감내해야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원혼을 외면하지 않는 게 가장 먼저여야 할 것이다. 그 씻김굿으로 우리들 몸속에 내재한 어둠의 언어도 스스로 소멸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권순진(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죽은 자를 위한 기도 ㅡ남진우
이 밤 대지 밑 죽은 자들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내 잠을 깨운다
지하를 흐르는 검은 물줄기가 누워 있는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와 몸 가득히 어두운 말을 풀어놓은 시각 죽은 자의 입에 물린 은전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 몸 곳곳에 번져나간다
죽은 자들로 가득 찬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가 보면 멀리 밤하늘에 떠 있는 차가운 달의 심장
대지 저 밑에서 죽은 자들의 손톱과 머리칼이 소리없이 자라듯 나는 이 밤 그들의 말이 두근대는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어둠 저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의 눈빛을 막막히 마주보고 있다
—시집『죽은 자를 위한 기도』(1996) ...................................................... 삶을 어떻게 살든 누구나 마지막 결말은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석가모니가 자식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살려달라는 한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마을 집집마다 찾아가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에서 공양을 얻어와 봐라. 그러면 아이를 살려줄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집안은 없으며 석가모니도 예수도 죽음만은 어쩌지 못했다. 장자는 죽음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두려울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고 했지만 보통사람들에게 죽음은 가장 낯설고 두려운 과정임이 틀림없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사람이 있긴 해도 누구도 죽어본 경험은 없고 아무도 그 죽음을 진술해주지 못한다. 또한 죽음은 항상 미지의 공포이면서 때때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호머의 일리아스에는 불사신인줄만 알았던 아킬레스의 영웅적인 인생이 나약한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화살 한 방으로 막을 내린다. 장례식장에서 아킬레스의 시신이 화장을 위해 제단 위에 누워있고, 그의 양 눈에 황금색 주화 두 개가 놓여진다. 눈 위에 동전 두 개를 올려놓는 것은 고대 유대의 풍습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스틱스 강이 흐르고,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죽은 영혼을 배에 태워 저승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이때 뱃삯으로 은화 한 닢을 받았는데, 망자의 입 속에 넣는 풍습이 있었다. 그 ‘은전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 몸 곳곳에 번져나간다’ 옛날에는 누군가 죽으면 ‘별똥별 하나 내 이마에 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고 했다.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꾸면 누군가 죽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꾼 게 아니라 실제로 생니 하나가 부러졌다. 2주 전 지난 4월 8일이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아이들 어미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부음을 들었다. 김포의 살던 아파트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타살도 자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망에 이를 정도의 심각한 지병을 앓고 있지도 않았다. 국과수의 부검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현장 정황상 토사곽란 상태에서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사망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입관 전 시신은 부어있었고 검붉은 반점이 가슴과 등에 넓게 포진되어 있었다. 작은아이는 꼼꼼하게 제 어미의 시신을 확인하였으나 큰 아이는 흘낏 한번 보고는 외면하는 듯했다. 내게 이 죽음은 그녀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물증이기도 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지만 혼자 살다 죽었으니 아이들 외가에서는 내가 배우자로 초상을 치러주길 바랬다. 아이들이 상주 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지만 나로선 난처하고 난감했다. 처제는 살았을 적 언니가 했던 말을 언급하면서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다. 좋은 게 좋다고 선심 쓰듯 나도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둘레에 부고할 입장도 아니거니와 졸지에 당한 터라 형편조차 여의치 않았다. 마침 다른 일로 통화가 된 한 지인에게 사정을 말했던 것이 ‘작가회의’문자로 알려졌고 긴가민가하는 안부전화와 몇몇 분들로부터는 염치없게도 정성어린 조의까지 받았지만 애초의 의사는 아니었다. 일을 치루고 뒷일을 수습하는 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은 많아졌으나 글은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죽음이 내게서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것이 호시탐탐 내 손을 잡으려 들거나 어깨를 툭 치거나 자주 옷깃을 스치며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둠 저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의 눈빛을 막막히 마주보’면서 다만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내 두려움을 회피할 밖에.ㅡ 권순진(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시 ㅡ 남진우
물고기는 제 몸속의 자디잔 가시를 다소곳이 숨기고 오늘도 물 속을 우아하게 유영한다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물고기는 오늘도 물 속에서 평안하다 이윽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사납게 퍼덕이며 곤곤한 불과 바람의 길을 거쳐 식탁 위에 버려질 때 가시는 비로소 물고기의 온몸을 산산이 찢어 헤치고 눈부신 빛 아래 선연히 자신을 드러낸다
........................................................... 고통을 무릅쓰고라도 살고 싶은 게 삶이다. 비록 육체는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몸을 벗어버리고 싶을 지경에 이를지언정, 마음은 더 웅숭깊어져 생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보이는 게 무릇 생명의 섭리이다. 미약한 우리들 육체적 현존은 고통과 결핍을 통해 오히려 그 삶에의 의지와 가치를 부여받곤 한다. 범상하기 그지없어 무료하기만 하던 일상도, 아파보면 비로소 그 소중함을 새삼 각별하게 인식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들 존재란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살아가는 물고기에 다를 바 없다. 고통과 결핍은 이렇듯 가시처럼 우리들 현존을 단련(鍛鍊)시키는 각성제 같은 것일 터. 그 가시는 우리가 마침내 숨을 거둘 때에야, “불과 바람의 길을 거쳐” “온몸을 산산이 찢어 헤치고/ 눈부신 빛 아래 선연히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고통은 그제야 이토록 찬란하게, 산화(散華)할 것이다. 엄원태(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
제1부 저녁빛 모래사나이 11월의 마지막 날 기다림 타오르는 책 책 읽는 남자 공포소설을 읽는 밤 비행접시 랩소디 인 블루 겨울 저녁의 시 도서관에서의 기도 겨울 저녁의 방문객 무한 속으로 영원의 풍경 환 제2부 달은 계속 둥글어지고 족장의 가을 1 족장의 가을 2 초록 달팽이의 길 비단길 모래구름 아래서 항아리 속의 시인 항아리에 대한 단상 앵무새에 관한 명상 기침 솔라리스 유리병에 담긴 소식 저 짐승 먼지 속의 속삭임 주사위 놀이 새 제3부 정오 장님 행렬 불면 나무 뿌리는 힘이 세다 정육점의 시인 은빛 달팽이의 추적 유적지 화려한 유적 겨울 저녁의 예감 지구 최후의 날 달 피를 부르는 청동 불꽃 머리 둘 곳을 찾아 자정 차가운 눈 멀리 먼 곳에서 저무는 거리에서 깊은 밤 깊은 곳에 단식 사라지는 책 나그네는 길에서 쉬기도 한다 ▨ 해설·청년 신비주의자의 비애·김주연 [알라딘 제공]
꽃구경 가다 ㅡ남진우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엔 으레 저승사자가 하나씩 붙어 있다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에 다가가면 저승사자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오라, 너도 꽃구경 온 게로구나 이 꽃 저 꽃보다 나랑 진짜 꽃구경하러 갈까, 한다 저승사자 손에 이끌려 꽃밭 사이 무수한 꽃들 위에 엎으러지고 뒤집어지다가 하늘하늘 져 내리는 꽃잎을 이마로 받고 가슴으로 받고 팔다리로 받다가 아 이 한세상 꽃처럼 속절없이 살다 가는구나 싶어 고개를 들면 저승사자는 그윽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길가 꽃그늘에 앉아 잠시 숨 고르고 꽃들이 내뿜는 열기 식히노라면 저무는 하늘에 이제 마악 별이 돋아나고 내가 가야 할 길 끝에 환히 열린 꽃마당이 보인다 저승 대문 닫히기 전 저 꽃 마저 보지 않으련, 은근히 속삭이는 저승사자 뒤를 따라 걸어가는데 아무리 걸어도 꽃대궐 가까워지지 않고 으슬으슬 추위가 내 몸을 감싼다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에서 한 시절 놀다 풀려나오면 현기증처럼 아득하게 졸음 쏟아지고, 마악 잠 속으로 몸을 처박을 찰나 저승사자가 스윽 웃으며 나타나 저승꽃 한 송이 건네고 간다
—《현대문학》2010년 6월호
-----------------
새 ㅡ남진우
새는 그 내부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물거품처럼, 부서짐으로써 스스로의 나타냄을 증거하는 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지저귐이 샘솟는 연못과 같다
—《詩가 흐르는 서울》
-----------------
카프카 ㅡ남진우
城은 멀다 짙은 안개 속 날개 잘린 새들이 더듬거리며 벽을 기어내려온다 단식광대가 쇠창살에 매달려 멍한 눈으로 해 지는 지평선을 보고 있다 이불을 둘둘 감고 고치 속에서 이제 막 빠져나오는 사내의 여윈 손 시골의사가 조심스레 죽은 자의 눈꺼풀을 쓸어내린다 어느 길모퉁이에선 또 한 사람이 돌멩이에 맞아 개처럼 죽어가고 영원히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서성이던 이는 마침내 몸을 돌려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써!
-----------------------------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아야 한다." 그런 충격적인 일격을 당하면, 이 삶을 처음부터 써 내려갈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다시 쓸 수 없어서 인생은 소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다시 쓸 수 있어 삶도 소설처럼 심오하고 아름답다고 믿는 시인에게 저는 한 표! ㅡ진은영 (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인의 집 ㅡ남진우
죽은 시인의 생가는 길 가는 구름들로 붐빈다 비를 머금은 우울한 얼굴들이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넘나들며 죽은 시인이 걸쳤던 양복과 코트와 베레모 사이를 스며들었다 빠져나온다 죽은 시인이 죽은 후 그의 음성은 마른풀처럼 시들다가 누렇게 바랜 종이에 찍힌 활자로 부스러져내린다 빛바랜 영정사진 속 흐리게 빛나는 그의 미소 아득한 시절 저편 우연히 만난 내게 시인이 건넨 술잔이 있었다 어두운 선술집 난로 위 주전자 물 끓는 소리 들으며 쓰디쓴 술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구름은 이미 그가 묻힐 허공의 관을 만들고 있었으리라 그가 썼던 파이프와 낡은 가죽지갑 안경과 문진 유리관 속에 보존된 유품을 돕다가 그가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몇 개의 조약들과 녹슨 열쇠를 떠올린다 생전의 영광과 사후의 추문 사이 밀려든 구름들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창문에 몸을 부비는 것을 바라본다 백악기의 동굴 한켠에 남은 화석일까 그의 지문이 찍힌 노트와 원고지를 보면 죽은 시인은 모두 고생대나 먼 후세를 살다 간 것 같다 절판된 시집 폐간된 문예지 자비출판한 동인지 이 모든 것이 죽은 시인의 덧없는 영광을 떠받들고 있다 폐관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느릿느릿 먼지 뒤집어쓴 기념품들이 늘어선 매점을 지나 저 멀리 가고 있는 죽은 시인의 그림자 마른풀을 태우듯 입속에서 죽은 시인이 남긴 구절들이 연기로 새어나온다
너 외로운 자여, 죽은 시인의 생가를 지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라 모자를 벗고 허름한 마당 한켠 허물어진 우물에 얼굴을 비춰보라 거기 너를 닮은 죽은 시인이 흘러가는 죽음 위로 부지런히 엮고 있는 거미줄이 보일 것이다
—《문학동네》 2011년 겨울호
------------------
모자 이야기 ㅡ남진우
내 낡은 모자 속에서 아무도 산토끼를 끄집어낼 수는 없다 내 낡은 모자 속에 담긴 것은 끝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일 뿐 내 낡은 모자 속에서 사람들은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깊은 밤 내 낡은 모자에 귀를 갖다 대면 기적 소리와 함께 시커먼 화물 열차가 달려 나오기도 한다 내 낡은 모자를 안고 오늘 나는 시장에 갔다 하지만 해 저물도록 아무도 사는 이 없어 나는 구름과 놀다가 기차를 타고 훌쩍 머나먼 사막으로 떠났다
누군지 모르는 그대여 내 낡은 모자를 사다오 달리는 화물 열차 끝에 매달려 오늘도 나는 내 모자를 쓸 그대를 찾아 헤맨다
-------------------------------- 모자는 마술사들이 묘기를 펼쳐 보일 때 흔히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그것은 단지 도구일 뿐 마술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모자에 내포된 의미나 상징을 따져보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자 속에서 파도소리나 바람소리가 날 턱이 없으니까요. 시인은 모자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독자를 배반하고자 합니다. 친절한 시인이라면 시장에 좌판을 펼쳐놓고 모자가 팔리기를 기다렸을 겁니다. 하지만 시인은 어느새 달리는 화물열차 끝에 매달려 헤맨다고 말합니다. 구매자에 대한 철저한 배반입니다.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세계와의 불화 시가 보편성에 의지할 때 일상적 문법과의 냉전을 포기한다. 그곳에는 익숙한 세계가 익숙한 표정으로 서 있다. 안정적인 보법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노류장화(路柳墻花)처럼 위무와 위안의 기능을 한다. 시의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그래, 시는 이래야 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은 암호에 지나지 않아.” 그러나 시는 세상과의 냉전을 통해 몰락과 좌절의 끝에서 최초의 표정으로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타협과 순응만으로는 세계를 전복할 수도 없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도 없다. 이것이 시의 운명이다. 화자는 모자를 들고 있다. 그러나 마술사처럼 모자 안에서 토끼를 꺼내들고 관객을 놀라게 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다. 관객들은 “파도 소리”나 “바람 소리”처럼 편안한 자연의 부드러운 손길을 기대하지만 화자는 여지없이 그 기대를 저버린다. 모자 안의 내용물은 단지 “끝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일 뿐”이다. 영원한 시간 위에 잠시 내려앉은 한 점 티끌에 지나지 않는 것. 대신 모자 안에서는 “시커먼 화물 열차”가 달려 나온다. “바람 소리”와는 전혀 다른 역동적이고 거친 삶의 육체가 육박한다. 화자의 시선이 단순한 즐거움이나 호기심의 충족에 있지 않고 피와 근육이 살아 꿈틀대는 실체로서의 삶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관객의 기대에 대한 배반이다. 관객은 달콤한 위안과 편안한 자연의 품을 기대하지만 화자는 그 기대에 등 돌리고 서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서 세계와의 불화가 발생한다. 아무도 화자의 모자를 사지 않는다. 이미 모자는 상품성을 잃은 사물에 지나지 않고, 소용 가치를 잃은 사물은 가차 없이 외면되거나 폐기되는 것이 현실의 냉혹한 논리다. 화자와 세계는 결국 극과 극으로 대치한다. 현실에서 거부된 모자의 주인은 “머나먼 사막”으로 “기차를 타고” 떠난다. “사막”은 현실의 질서가 부정되고 몰각되는 공간이다. 정신의 고양이 이루어지는 형이상학적 자리인 셈이다. 화자는 자신의 낡은 모자의 효용 가치를 알아줄 사람을 대중 속에서 찾고자 한다. 외롭고 고단한 사유의 노정이다. 현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와의 충돌은 늘 비극적 색깔을 띤다. 그러나 시인이라는 존재는 무용성의 가치에 일찌감치 눈뜬 존재들이다. 그것이 그들의 불행이면서 행복이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시인들이 무용성의 놀이에 기꺼이 자기 생의 중요한 부분을 헌납하고 창조의 신열로 뜨겁게 달아올라 밤의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역정은 언제나 세계를 배반하고, 그 자리에 낯선 세계를 건축한다. —홍일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백 ㅡ남진우
내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함은 입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과 같으니 입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며 아름다운 동그란 불꽃 하나 만들어 그대에게 보이는 것과 같으니 아무리 속삭여도 불은 이윽고 꺼져가고 흘러내린 양초에 굳은 혀를 깨물며 나는 쓸쓸히 돌아선다 어두운 밤 그대 방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 내 속삭임을 대신해 파닥일 뿐
----------------- 사랑의 시작과 그 끝에 대한 시는 많다. 그러나 그 처음과 중간과 끝을 통째로 꿰뚫은 시는 드물다. 우리의 마음에 썰물이, 혹은 밀물이 밀려와 흘러넘치는 일은 많아도 그것의 들어오고 나감이 온전히 바라보이는 일은 드물다. 사랑의 설렘이라느니 이별의 뼈아픔이라느니 좀 물렸다. 여기 사랑의 물밀어 오름과 흘러내려 스러짐이 통째로 드러났다. 그리고 빈 방,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에 대한, 남겨두고 온 사람의 염려가 있다. 썰물이 가고 난 뒤 다시 밀물이 온다고 하지만 애초에 물러간 그 밀물은 아니러니, 그 되돌릴 수 없음이 저릿하다. 여기 바람이 불어도 살아야 하고, 바람이 안 불어도 살아야 하는 헐수할수없는 유전자가 있다. 썰물이 또 올 줄 알면서 밀물을 받는 개펄이 있다.ㅡ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타오르는 책 ㅡ 남진우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을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ㅡ시집ㆍ타오르는 책ㆍ 문학과지성사ㆍ2000.07.05
------------------------------------------- 남진우의 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의 언어화를 지향한다. 언어의 무력함을 언어로 극복하려는 역설의 시학은 그의 시를 각각의 말이 서로를 빗대 세운 상징의 숲으로 만든다. 대상의 너머를 투시하고 감각의 즉흥성에 현혹되지 않길 바라면서, 그의 시선은 지상에서 사라진 원초적 신비와 신성의 자취를 더듬는다. 때론 고통스럽게, 때론 강렬한 희열에 사로잡혀, 태초의 이미지에 닿으려는 그의 언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란 상상된 관념의 것이 아니라 거기 있었으되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것임을 말하려 한다. 그래서 남진우의 시적 도정은 외롭고 고독하며, 경건하고 의지적이며, 투명한 비애로 가득 차 있다. 세 번째 시집의 표제작인 『타오르는 책』은 환상과 사실, 관념과 경험의 영역을 넘나드는 시이다. 펼치는 순간 불타는 책이란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환상물이다. 하지만 이 시의 ‘불’이 책에서 영감 받은 영혼의 울림과 마음의 동요를, 지적 흥분이나 예지의 움틈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독서 행위와 경험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러한 ‘불’을 가득 품은 책은 상투적이고 빛바랜 말이 아니라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언어로 읽는 이의 머릿속에 꿈과 희망, 의지와 열의를 북돋우며 한바탕 “불놀이”를 선사한다. 책은 다만 물체가 아니다. 의식을 지배하기도 하고, 삶 전체를 뒤흔들기도 하며, 뜻밖의 길로 사람을 움직이기도 한다. 내 안의 간절한 욕망이 책의 내용과 하나가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것도, 남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책에서 “읽은 모든 것이 불”일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영원히 타는 불이 없듯, 순수한 열정으로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시절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오르는 책”은 밝게 빛나던 젊음을, 열렬했던 청춘의 시간을 동시에 내포한다. “식어버린 죽은 말들” 곁에서 ‘내’가 느끼는 지극한 슬픔은 더 이상 진실한 책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장을 불태우듯 읽던 순진무구한 힘과 열렬한 순정이 내게서 사라졌음을 깨닫는 데서 비롯한다. 강계숙 / 문학평론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일각수(一角獸) ㅡ남진우
단 하나의 뿔로 너는 내 가슴을 들이박고 안개 자욱한 새벽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두 손으로 받으며 나는 망연히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너를 들이박은 적 있었지 그때 벌어진 네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어떤 영혼의 갈증을 적셔주었던가
피는 끊임없이 흘러내려 손을 넘쳐흐르고 나는 아물지 않는 상처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새알 같은 심장을 어루만진다
다시 거듭 둔중하게 내 가슴에 와 박히는 뿔, 뿔, 뿔들
—시집『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서 --------------------------- 이유 없이 상처를 받을 때면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지. 내가 준 그 부당함이 돌고 돌아 다시 내게 온 게지. 단 하나의 뿔을 지닌 일각수가 그 뿔로 내 가슴을 들이박았을 땐 그 또한 목숨을 걸었다는 얘기. 그러므로 그 피는 영혼의 피, 새 심장을 만들어내는 피. _ 신경숙(작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폐선에 기대어 ㅡ남진우(1960∼)
이른 아침 눈뜨면 머리맡에 배 한 척 밀려와 출렁이고 있네 찢긴돛폭사이말간햇살들바삭거리며부서져내리고있네
그 배 문가에 기대어 놓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한없이 걸어가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어디론가 가고 없는 배
잠들기 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종이를 접어 배를 만드네 한 척 두 척 내 손을 떠난 배는 내 방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나가고 험한 물살에 시달리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버리고
다시 누워서 눈을 감으면 이 밤도 저 멀리서 흔들리며 다가오는 배가 보이네 물살에 실려 그 배는 이리저리 떠돌다 잠에서 깰 무렵이면 어느덧 내 머리맡에 와 있네
배를 얻고 잃기를 되풀이하며 매일 낮 매일 밤 나 세상을 떠돌았네 닿을 길 없는 부두를 찾아 덧없이 헤매 다녔네
어느덧 늙고 지친 내가 눈을 뜨면 어김없이 머리맡에 와 나를 굽어보고 있는 낡은 배 한 척 부서진 뱃전에 머리 기대고 나 다시 떠나야 할 하루의 먼 길을 헤아려보네
.......................................................................... “내 얘기네….” 이 시의 설득력 있는 쉬운 은유에 동감할 직장인이 많을 것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서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폭삭 지쳐서 집에 돌아오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어느새 노년! 대다수 현대인의 삶이다. 그중 어떤 이는 간간, 잠들기 직전이나 잠에서 막 깼을 때, 까마득히 잊었던 젊은 날의 꿈이 찰랑거리며 밀려와 가슴이 아리기도 할 테다. 그런 때가 있었지. 훤칠한 돛을 올리고 꿈을 향해 늠름하게 떠날 참인 새 배 같았던 나! 그런데, 여기가 어딘가요,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한 채, 이제는 아무 지향도 없이 용골 삭은 배가 되었구나. 화자는 어영부영하다가 이렇게 된 게 아니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걸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세파에 시달리고, 그때마다 배도 흔들려 마모됐단다. 자아의 투영이며 자아실현의 꿈인 배. 그 배는 화자가 현실을 버텨나가게 하는 힘이 돼 주기도 하지만, 배 때문에 그와 현실의 관계는 차가운 미지근함으로 어딘지 외롭다. 화자의 몸은 현실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다른 곳을 떠돈다. 그의 얼굴에는 그 다른 곳의 그림자가 어룽거린다. 폐선, 낡아버린 꿈의 유령이.ㅡ황인숙 (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책 읽는 남자 ㅡ남진우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잘 가꿔진 책 페이지를 넘기면 잎사귀들이 푸르게 반짝이며 제 속에 숨어 있는 나이테를 알아달라고 손짓한다
나는 매일 한 그루씩 책을 베어 넘긴다 피도 흘리지 않고서 책들은 고요히 쓰러진다 아니면 한 장씩 찢어 입에 넣고 오래 우물거린다 이 나무의 성분을 나는 짐작하지도 못하겠다
글자들의 푸른 잎맥을 따라가다가 간혹 벌레가 파먹는 자리를 발견할 때도 있다 비록 이 나무는 꽃도 열매도 맺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시원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책이 덩굴을 내밀어 내 몸을 휘감아오른다 무수한 문장들이 내 몸에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기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아무리 베어내도 무성하게 자라오르는 책나무
책나무 속에 들어가 눕는다 내 속에 뿌리 뻗은 나무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저 눈부신 새떼
.................................................................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내기를 했다. 책으로 가득해 서서 잠을 자야 할 지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죽는 방법을 골라야 한다면 책에 깔려 죽는 걸 택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어떤 이가 제 독서일기를 펼쳐 보였다. 최소한 세 권의 감상평을 하루하루 기록한 노트가 열 권이 넘었다. 아침저녁으로 책에 물을 주고 영양제도 먹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자랑은 며칠을 이어졌다. 한 명을 남기고 모두 제 말을 마쳤다. 아무 말도 없느냐고 다그치자 그는 무수한 문장들이 내 몸에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기고 있어 생각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며 잠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ㅡ 조재룡(문학평론가)
ㅡㅡㅡㅡㅡ 킹 퀸 그리고 잭 (외 1편)
남진우
탐정이 내 꿈에 들어와 방을 수색했다 벽과 천장의 모든 틈을 살피고 서가의 책을 뒤지고 양탄자 무늬를 헤아리며 탐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의 범인으로 나를 지목했다 뻐꾸기시계가 자정을 알렸고 테이블 위 체스판의 왕과 왕비는 한가로이 정사각형의 뜨락을 산책하고 있었다 가끔씩 분수대에서 물보라가 솟구쳤다 가라앉는 동안 왕을 시해할 청년이 궁전의 그늘진 계단을 지나 회양목과 석상이 늘어선 정원으로 한없이 다가가고 있었다 혈흔 한 점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는 범행의 끝 탐정은 기어코 욕실의 거울 뒤편에서 다음 사건에 사용될 칼과 노끈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제 당신은 나와 함께 가야 하오 그가 손가락으로 체스판 위의 기사 하나를 쓰러뜨리며 말했다 희생자는 아마도 다른 꿈에서나 밝혀질 것이오 그 꿈에선 당신이 나를 쫓을 것이고 나는 어느 새벽 길모퉁이에서 이 칼로 당신을 찌를 것이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노끈을 보며 언젠가 내가 목을 졸라 죽일 청년의 꺼져가는 눈빛을 떠올렸다 그토록 많은 꿈에서 탐정과 내가 이런 모습으로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수색은 끝났고 탐정은 다시 다른 범행의 수사를 위해 떠날 차비를 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저 아래 아득히 먼 정원으로부터 새벽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밀려왔다 끝없이 평평한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끝에서 왕이 왕비를 돌아보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우리 운명은 그냥 누군가 장난삼아 두는 체스판의 말에 지나지 않소 암살자의 칼날이 왕에게 막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꿈의 바깥 어디선가 체크!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