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신 / 진윤순
친정아버지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고령인 데다가 아픈 데도 많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정에서 오는 긴급전화는 늘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응급실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다가 웃다가 밖으로 나와보니 신발이 짝짝이였다. 헛웃음이 터졌다. 병원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서 눈치채지 못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헬스장에 다닐 때였다. 신발장에 부츠가 들어가지 않아 출입구 앞에 놓아두었다. 어느 금요일, 운동을 마치고 귀가하려는데 내 신발은 보이지 않고 꼬질꼬질한 부츠 한 켤레만 보였다. 사무실 직원은 신발 사진을 보내주면 주말에 CCTV를 확인해 보겠단다. 이런 일이 흔하고 확인이 되더라도 물건을 훔친 자가 오리발을 내밀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구매처에 가서 똑같은 신발 사진을 찍어 사무실로 전송했지만 찾을 수나 있을지 속이 상했다. 내 구두는 새 구두요 남겨진 신발은 누가 봐도 헌것이었다. 그 신발을 신었을 때 이상하게도 내게 딱 맞았다.
일요일 헬스장에서 연락이 왔다. 사진 속 인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 덜렁대긴 했지만 나에게 참 살가운 회원 아닌가. 고의가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자 슬며시 화가 났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찾아갈까 말까,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정이 많은 여인인데 실수였겠지, 아니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거야, 혼자 소설을 썼다 지웠다 하다 보니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그녀가 헬스장에 나타난다면 성격대로 실수일 테고, 나타나지 않으면 고의적이니 상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헬스장 출입구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척하면서 감시 아닌 감시를 했다. 줌바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불길한 쪽으로 내 확신이 굳어질 즈음, 구두 지퍼도 열은 채 내 구두를 신고 달그락거리며 그녀가 들어 왔다. 반갑다며 인사까지 했다. 퉁명스러운 인사를 건넨 나는 그녀 팔을 잡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 디민 신발 한 짝을 신는 순간에 눈치를 챘는지 눈이 동그래지면서 퍽 주저앉았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니 고의는 아닌 듯했다. 그날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오해를 풀었다. 그녀가 내 신발을 신고 나타났으니 천만다행이었지만 찜찜한 기분은 오래 남아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사실 나는 그녀를 많이 경계했다. 그 부츠를 신고 가는 날이면 똑바로 보이느냐고 그녀를 놀려대기도 했었다. 나는 건망증도 없고 실수도 없이 똑 부러지는 성격인 줄 알았다. 짝짝이 신발을 내려다보며 그녀에게 심하게 대했던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맨 먼저 달려온 그녀에게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내 속내를 말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때도 울다가 웃다가 그녀의 위로를 받았다.
실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내 친구 시어머니는 노인정에 다녀올 때면 신발 한 짝만 바꿔 신고 돌아올 때도 있고, 두 짝 모두 각각 다른 신발로 바꿔 신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노인정 어른들끼리 아는 사이였기에 망정이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영락없이 도둑으로 몰릴법한 상황이었다. 그 실수로 치매 초기 증상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남편은 또 어떤가.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허다하게 신발을 잃어버리고 오는 남편을 나무란 적이 많았다, 장례식장엔 신발 도둑만 사느냐고 투덜거리곤 했었다. 어쩌면 경황없는 상갓집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요즘은 오히려 새 구두보다는 헌 것을 신고 가라고 한다.
내가 신은 짝신을 내려다보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은 용서할 줄 몰랐던 나를 지금도 꾸짖는다. 며칠 후면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가시는 날까지도 용서를 일깨워주셨던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 웃고 계신 걸 보니 저승길 가실 때 신발 바꿔 신고 가시지는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