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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에 따라 '신상괴 버스정류장 → 홍은수도원 → 노송 → 594봉 → 770봉 → 통천문 → 873바위봉 → 뇌정산 → 953조망바위 → 891봉 → 야유암 → 봉암사입구 버스정류장’의 8km 코스를 4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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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정산(雷霆山, 991.4m)은
경북 문경 가은읍의 명산인 희양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이 백화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이만봉과 시루봉을 솟구친 후 희양산으로 이어진다. 뇌정산은 백화산에서 이만봉으로 벋어나가는 주 능선 한가운데인 973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친 지 능선 위의 우뚝 솟은 산이 뇌정산이다. 뇌정산은 백화산과 능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백화산과 함께 산행할 수 있다.
뇌정산 들머리는 가은읍 상괴리 신상괴마을. 922번 국도 상괴리의 상괴교(도태교) 삼거리에 내려서면 북쪽으로 희양산이 눈부시게 솟았다. 북쪽으로 곧게 이은 길이 그 유명한 구산선문 봉암사를 향한 절 길이건만 세인의 출입을 금한지라 그 흔한 빗돌이나 팻말, 이정표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 K.San
초록뱀의 해, 2월 두 번째 토요일인 8일은 2024년 5월 25일 원주 삼봉산과 십자봉 연계 산행[산행기] 이후 거의 8개월 만에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가 진행하는 문경 뇌정산에 오르기로 했다. 거의 8개월이 넘게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를 멀리했던 건, 대기업 안내산악회의 목요 오지팀과 겹치는 산행이 많아,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를 버리고, 목요 오지 팀의 산행에 집중하기로 해서다. 하지만, 몇 가지 사건을 겪은 후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과거처럼 둘 중 입맛에 맞는 산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말인즉 산악회나 팀이 아니라, 산에 집중하겠다는 거다. 물론, 한쪽이 진행한 산행을 늦으면 1년, 이르면 다음 달 다른 쪽이 진행할 확률이 높아, 한 쪽에 집중하기로 했던 거였지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고, 그 첫 번째가 문경의 뇌정산이다. 뇌정산은 막연하게 어디에서 인가 듣기는 했지만(희양산행 계획을 세우다가 알게 됐을 확률이 높다), 아는 바는 전혀 없이,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산행 게시판을 구경하다가 발견한 산이다.
문경에 있는 뇌정산은 대중교통 반경 내라, 당연히 대중교통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한지 확인했고, 가능하다! 해서 이후 갈만한 산이 없을 때를 대비해 대중교통으로 가는 목록에 넣어둘지, 이번에 산악회를 따라갈지 고민하다가, 산악회 산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본의 아니게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짧으면 1시간 30분, 역으로 진행하면 2시간을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뇌정산행 코스 자체가 8km로 길어야 4시간 30분의 산행이라, 시간은 충분하나,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포장도로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월요일 태백 연화산행, 목요일 영월 회봉산행, 그리고 하루 쉬고 바로 토요일 문경 뇌정산이라 약간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취소할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다음 한주가 내리 가족 행사라, 화요일 즉 2월 11일 정선 백운산 외에는 산에 갈 수 없어, 일단 산악회 산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런 사정덕에 13일 목요 오지팀의 영주 옥녀봉 산행도 취소해야만 했다.
처음 뇌정산행을 발견하고, 신청할 때만 해도, 신청자가 간신히 열 명을 넘었는데, 이후 같은 날 출발하기로 한 다른 산행이 성원 미달로 취소되면서, 그 산행을 신청했던 등산객이 성원을 채운 뇌정산으로 몰리는 바람에, 산행 사흘 전에 만석을 채웠다. 덕분에 좋은 자리를 놓치고, 시끄러운 산행을 하게 되는 바람에 다시 취소 여부를 심각하고 고민했으나, 일단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중소 안내산악회의 두 가지 문제가, 막판에 신청자가 몰리는 것과 정확하게 공지된 소요 시간이 없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중소 안내산악회를 멀리하게 된다. 어쨌든 뇌정산행 준비도 최근의 다른 산행과 같다. 김밥은 오랜만에 신사역표를 준비하나, 계속 영업 중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뇌정산과 가까운 문경새재의 산악날씨에 의하면 구름이 조금 껴 흐리고, -8℃~-4℃로 기온이 오르고, 5㎧ 약간 강한 바람이 불어 체감 기온은 -15℃~-10℃ 사이라 약간 추울 듯하나, 목요일 다녀온 회봉산에서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뇌정산 또한 그럴 거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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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10분 강남 신사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라, 사당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늦은 5시 10분 기상으로 알람을 맞추고 잤으나, 늘 그렇듯이 4시 반경 잠이 깼다. 억지로 잔다고 다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기상해 아지트로 나와 기상 의식을 치르며 밤새 변한 게 있는지 확인했다. 예상대로 31인승 버스는 만석에서 잘 아는 노년의 산꾼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환급이 안 되는 시점에 취소했다. 취소 사실은 하루 전 이 산악회를 잘 알고 있는 산꾼은 이미 알고 있어, 주인장에게 그 빈자리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사실 가장 먼저 요청한 게 나였으나, 주인장이 어떠한 해명도 없이, 요청 글을 삭제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열 받을 일이나, 뭐 그러려니 하고 없었던 일로 했다. 이후 또 몇이 요청했으나, 역시 삭제됐고, 최종 아직 취소가 결정되지 않아,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댓글을 보고, 다들 이해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이후 기상청 날씨누리로 들어가 '뇌정산' 관련 특보와 일별 예보, 레이더 정보를 찾아본바, 전날 확인한 문경새재 예보와 큰 차이가 없다.
산행 관련 정보를 확인한 후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아침에 급하게, 아니 몇 가지만 추가하면 되니, 급할 것도 없이 싼 배낭을 둘러메고, 6시 5분경 집을 나서 오랜만에 마을버스로, 불광역으로 향했다. 7시 10분 신사역 출발이라, 7시보다 약간 일찍 신사역에 도착하면 돼, 6시 21분 열차를 탈 생각이었으나, 마을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버스가 조금만 일찍 역에 도착하면, 6시 12분 열차를 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느긋한 기사 덕분에 12분 정각, 불광역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12분 열차를 탈 기회는 사라져, 21분 열차를 탈 수밖에 없어, 유유자적 역으로 내려가,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21분 열차를 타고 신사역으로 향해, 6시 50분경 도착했다. 이후 바로 개찰구로 나가, 화장실에 들른 후 오랜만에 즉석 빵집의 틈새 상품인 김밥을 사,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었다. 산에서는 얼음과자가 될 확률이 높아, 뜨거운 물과 컵라면을 준비할지도 고민해 봤으나, 번거로워 포기했다. 이후 4번 출구로 나가려는 데, 그 입구에 친숙한 산꾼 몇을 포함해 많은 등산객이 추위를 피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여, 나도 같이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4번 출구 방향으로 갔다.
와중에 나를 발견한 목요 오지팀 산꾼 몇이 아는 체를 해, 어쩔 수 없이 안면이 있는 등산객과 인사를 나눴다. 이 산악회와는 8개월만의 산행임에도 생각보다 날 아는 등산객이 많아서 약간 놀랐다. 갑작스러운 인사를 마치고 4번 출구로 나가서 보니, 역 밖에도 알만한 등산객 몇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추위를 피해 역에서 나오지 않고, 버스를 기다린 사람들이 현명했다. 그렇게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렸는데, 평소와는 다리, 그래봐야 가장 빠른 게 8개월 전이지만. 시청에서 출발한 버스는 7시 10분 되어서야 도착해, 버스에 타고, 보조 가방 둘을 배낭에서 뺀 후 배낭은 선반에 올렸다. 그런데, 당연히 비어 있어야 할 내 옆 통로 건너 자리에 여성 등산객이 앉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버스와 함께 나타난 산악회 주인장이 앉으라고 했다는 거다. 이건 뭐! 그런 거 가지고 시비 거는 것도 피곤해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중간에 나머지 승객을 태우는 바람에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와중에 내 옆자리는 승객은 신갈에서 탑승해 그 이후에나 잠이 들어,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간 후 잠에서 깼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일단 볼일을 보고 오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하며 휴게소 정체를 확인했다. 금왕이다! 원주, 아니면 횡성 부근이라 생각했는데, 금왕이라 의외였다. 이후 화장실을 다녀온 후 자리에 앉아, 작설차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많이 다닌 강원도 산이 아니라, 오랜만에 경북 문경으로 가고 있다. 고로 신갈에 정차한 이유도 깨달았다. 그런데, 아직 휴식 시간 20분이 지난 것도 아니고, 모든 승객이 탑승한 것도 아닌데, 인솔 대장이 지도와 코스 소개가 있는 안내문을 나눠 준 후 이번 산행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오지 산행과 특별히 다른 건 없다. 다만, 그동안 내린 눈이 쌓여 있을 확률이 높으니, 키가 크고 체력이 좋은 산꾼이 선두에서 러셀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기는 키가 작아 깊은 눈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 그렇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2018년 설 연휴 기간에 간 화악산에서 심설에 빠져 고생한 경험[산행기]이 있는 인간으로 대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8km에 불과한 코스에 5시간 반이라는 소요 시간을 책정한다고 발표했다. 응? 많이 봐줘서 5시간 정도라 생각했는데 30분을 더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책정한 건 한파로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으니,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진행할 수 있도록 시간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으로 책정했다는 거다. 물론 다들 일찍 내려오면 일찍 출발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여, 뭘 먹겠다고 멈추는 동안, 땀이 식으면 역시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으니, 산행 중 먹는 건 하지 말고 대신 산행 후 식당에 들를 거니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이다. 물론 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고, 거기서 씻거나 옷을 갈아입는 것 등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야 대환영하는 바지만, 이 안내산악회에서 인솔 대장이 공지에 없는 식당을 거론한 건 놀랍다. 아니, 오히려 공지에서 중요한 걸 거의 빼먹고 인솔 대장에게 위임하는 안내산악회라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어쨌든 모든 설명이 끝나고 다시 취침 상태로 들어간 버스가, 고속 도로를 벗어나 힘겹게 고개를 올라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잠에서 깨,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은 후 롱 스패츠를 착용했다. 이후 선반에서 배낭을 내려, 아이젠을 꺼내,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는 거로 산행 준비를 마친 조금 후인 9시 58분경 산악회 버스는 들머리인 ‘상괴1리’ ‘신상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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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산행 준비가 끝난 상태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산행 들머리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산길샘의 '기록 시작'을 누른 후 위성에서 데이터를 받는 동안, 기상청 '날씨알리미'로 현 위치의 기상 정보를 확인했다. 늘 그렇듯이 새벽 서울에서 확인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만약 있다면, 기상청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지구에 거대한 격변이 생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후 주변의 이정표가 될 만한 걸 기록으로 남기며 보니, 왼쪽으로 고깔 모양의 암봉이다. 위치상 희양산인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산행 중 오른쪽으로 백두대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확신했다. 당연히 1년에 한 번, 초파일에만 산문을 개방하는 봉암사가 희양산 밑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처음부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아이젠을 착용하는 일행의 모습도 기록으로 남긴 후 두 등산 앱의 지도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두 앱 다 등산로는 없고, 고도는 165m~193m로 생각보다 많이 낮다. 뇌정산이 거의 1,000m에 육박하니, 800m 이상의 고도차로 차이가 꽤 크다. 말인즉 다른 건 다 차지하더라도 올려야 할 고도만 놓고 봐도 쉽지 않은 산행이다.
이후 마을을 관통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저만큼 앞서가는 선두의 뒤를 따라가, 10시 1분 '신상괴 경로당'을 지나, 10시 2분 포장도로 갈림길에 도착했다. 오른쪽은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로로, 왼쪽 위로 올라가는 길이 아마, 산악회 계획 코스에 있는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 아닐지 생각된다. 그런데, 선두가 인솔 대장을 부른다. 다른 건 몰라도, 등산로 입구까지는 안내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할 게 뭐 있나? 대장이야 있든 말든 좌회전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개활지가 있고, 거기서는 전봇대나, 전깃줄 같은 인공물의 방해를 받지 않고 희양산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 도로에서 벗어나 개활지로 가, 희양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실 여기서는 희양산의 뒤가 보이지 않아,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하지, 뒤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해서, 2018년 8월은 대학 동기들[산행기]과 2022년 8월에는 백두대간 연결 산행[산행기]으로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도로로 들어가려고 보니, 선두가 가는 곳은 아무리 봐도 사유지고, 등산로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있는 방향에서 올라가야 한다.
해서 선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예상대로 그중 한 명은 무리해서 개울을 건너고, 대장을 포함 대부분은 뒤로 돌아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먼저 위로 올라가, 왼쪽의 무덤 뒤로 난 길로 가, 10시 8분 등산로에 들어섰다. 덕분에 개울을 건넌 한 명 다음으로 선두의 두 번째가 됐다. 이 상황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바라, 가던 길을 멈추고 지도를 확인하는 등 시간을 지체했다. 그리고 급해 보이는 일행이 다 지나간 후 그 뒤를 따라 구 임도로 보이는 등산로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다, 10시 14분경 등산로 갈림길에 도착했다. 왼쪽은 구 임도, 오른쪽은 등산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오른쪽 등산로는 갈지를 쓰고 있는 임도를 가로지르는 길이라, 결국 위에서 두 길은 만난다. 고로 어느 길을 택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선두가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더니, 오른쪽 등산로를 택해 올라간다. 해서 나도, 굳이 혼자 행동할 이유가 없어, 그 뒤를 따라갔다. 애초 임도보다는 그걸 가로지르는 등산로를 더 좋아하는 인간이기도 하고. 어쨌든 등산로를 따라 위로가, 10시 26분경 예상대로 왼쪽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다시 만났다.
이정표는 물론이고 산악회 리본도 구경할 수 없는 코스라, 선두의 뒤를 따라가며 수시로 지도를 확인했다. 그래봐야 두 지도 모두 등산로는 없지만, 등고선으로 가야 할 방향과 고지의 위치는 알 수 있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우리가 가고 있는 등산로라는 것도 사실 임도를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정확히는 등산로가 아니라, 산 중턱에 있는 밭으로 가는 길이다. 고로 어느 고도 이상 올라가면 임도가 사라지고 당연히 그걸 연결하는 등산로로 알고 있는 지름길도 없어진다. 이후는 선두가 지금 오르고 있는 봉우리의 정상을 향해 길을 만들며 가야 한다. 와중에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은 앞선 산꾼 중에 일행 또는 후배를 위해 나뭇가지에 단 리본이 있으면 길잡이는 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목표가 명확하니 등산로 유무는 중요한 게 아니다. 고로 선두의 역할이 중요하고 고생을 많이 할 거라는 건 명확해, 속으로 끊임없이 감사를 표하며 뒤에서 따라갔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내 페이스가 빨라,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면, 일행을 추월해 선두의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그럴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기록으로 남기는 등의 딴짓을 하며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을 앞장세우기를 반복했다.
한 짝밖에 없지만, 등산지팡이를 사용한 덕분에 평소보다 더 빠른 듯해, 심설이나 속도가 필요한 산행에서만 사용하지, 다른 산행에는 아예 등산지팡이를 가져가지 않는다. 그렇게 위로 올라, 10시 56분 산악회 계획대로 ‘594봉’ 정상에 도착했다. 물론 오지답게 정상석이나 이정표 하다못해 산꾼이 만든 정상 표지도 없지만, 두 등산 앱 지도의 GPS를 보고, 596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산행 첫 봉우리 정상으로 이제부터는 여기서 좌회전해, 주 능선을 따라가면 된다. 고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뇌정산을 지나, 날머리인 '봉암사 입구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찾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건 선두만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 뇌정산을 넘은 후 정신을 집중하기로 하고, 첫 번째 봉우리 정상 바로 앞에 보이는 ‘770봉’이라 생각되는 봉을 향해 선두의 뒤를 따라갔다. 쓰러져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고목을 넘기도 하며, 첫 봉에 오르기 전의 간신히 발등을 덮는 수준의 눈이 아니라, 발목을 넘어 무릎에 닿을 듯한 심설을 헤치고 전진해, 11시 30분 이번 산행 처음으로 뇌정산 정상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인 ‘770봉’에 도착했다. 이 역시 앱 지도의 GPS로 유추한 거다.
770봉 정상에서, 비록 울창한 숲이 시야를 가리고 있으나, 마치 쌍봉으로 보이는 뇌정산 정상뿐만 아니라, 그 왼쪽의 백두대간 특히 희양산의 모습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선두가 러셀해 그나마 쉽게 갈 수 있는 심설을 뚫고 다음 목표인 통천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지의 높이에 이름을 붙인 목적지야 GPS로 유추해 확인할 수 있으나, '통천문'이라면 모양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마다 통천문의 기준이 다른 게 문제다. 어쨌든 정확히는 '873바위봉' 길목에 있는 통천문으로 향해, 나도 모르게 추월한 일행을 앞세우려고 일부러 길목에서 벗어나, 주변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어차피 5시 30분이라는 소요 시간에, 하산주 식당 출발은 후미 도착에 좌우되는 거라, 일찍 내려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다. 와중에 가끔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백두대간과 희양산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그리고 뇌정산을 가로막아 마치 쌍봉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873바위봉' 단독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서는 그 봉만 따로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가다 보니, 슬슬 배가 고프다.
땀이 식어 저체온증에 걸릴 염려가 있으니, 점심을 먹기 위해 멈추지 말라고 한 대장의 권고를 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김밥을 쉬면서 먹는 인간이 아니고, 대장의 원 뜻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앞에 보이는 봉을 향해 가며 배낭에서 신사역표 김밥을 꺼내 먹었다. 말인즉 김밥을 먹으며 가, 작은 언덕을 넘자, 앞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바위가 있어,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예상대로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바위 군락이자 암릉이라, 당연히 동영상을 촬영하는 중에도 네발로 기어 바위에 올랐다. 이후 바위 전망대에서 그나마 시야가 트인 왼쪽 신상괴 방향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남겼다. 그리고 바위를 기어오르느라 가쁜, 숨을 고르고 김밥 먹은 입가심을 하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이후 다시 짐을 정리해 배낭에 넣고, 길을 재촉해, 12시 7분 등산 앱의 GPS로 유추하건대, 873봉 정상에 도착했다. 그럼, 통천문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하늘로 통할만한 바위문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통천문이지만,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길을 재촉해 이번 산행 최고봉인 뇌정산 정상을 향하다, 앞을 막는 바위를 우회한 후, 옆을 보니, 바위 군락이 만든 네모난 굴이다. 혹시 이게 통천문? 누군가는 통천문이라 부를 만한 모습이다. 해서 일단 기록으로 남겼다. 코스에 따르면 통천문 이후 873바위봉이다. 그럼, 조금 전 정상이라 생각했던 곳이 정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보면 바위봉이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심설 때문인지, 피곤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실수한 거로 생각하고, 뇌정산 정상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데, 반가운 리본이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기록으로 남겼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노년의 여성 산꾼의 개인 리본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에도 간간이 보기는 했으나,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 구간에서는 온통 바람에 부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선두가 길을 만들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중간중간, 위로 갔던 발자국이 되돌아 좌나 우로 방향을 틀어간 인적도 있다. 그 인적을 보며, 만약 내가 선두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장갑을 벗으면 바로 동상에 걸릴 거 같아, 함부로 벗지 못했고, 바람막이에 달린 모자로 귀를 보호하며 올라왔는데,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이제는 더워서 장갑을 낄 수 없을 정도라, 기온이 궁금해 ‘날씨알리미’로 확인했다. 그런데, 핸드폰에 날씨와 관련된 센서가 있는 게 아니라, 날씨 앱이 알려주는 정보는 산행 직전 확인한 것과 같은 기준의 기상청 정보다. 말인즉 시간에 따른 변화지, 고도에 따른 변화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는 고도와 시간의 변화에 따른 날씨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앱이 보여주는 정보는 시간이 지남에 따른 날씨의 변화일 뿐이다. 그래도 그거라도 알고 싶어 확인했다. 아래에서 확인한 것보다 기온만 2도 올랐을 뿐으로, 그 오른 기온도 -8.1℃, 체감 온도는 -14.5℃다. 이건 내가 뇌정산 정상 부근에서 느끼는 날씨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는 핸드폰에 날씨 관련 센서도 넣을 때가 되지 않았나? 날씨와 함께 앱으로 남은 거리, 고도도 확인한 후 길을 재촉해, 12시 39분 자연석에 한자로 '雷霆山(뇌정산)'이라 음각한 정상석이 있는 뇌정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앞서 도착한 선두가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기 위해 줄 서서 대기 중이다. 정확히는 부부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쌍의 남녀가 정상석을 차지하고 떠날 줄을 몰라, 다들 기다리는 중이다. 까만 소 인증 대상도 아닌 산에서 도가 넘는 인증이라, 다들 짜증 난 표정이다. 그 한 쌍이 정상석을 넘겨주고 떠나자, 다들 꼭 필요한 사진만 일사천리로 찍어 조금 지나자, 그동안의 병목이 사라지고, 정상석 주변이 텅 비었다. 물론 나도 최고령의 산꾼과 상부상조해 서로의 인증을 남겼다. 정상에서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는 하산이다. 그런데, 하산 방향으로 백두대간과 그 중앙 우뚝 솟은 백화산이 보이기는 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린다. 그럼, 한국 산꾼의 특성으로 봤을 때, 정상 부근 어딘가에 분명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야 한다. 해서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하산 방향에 바위가 있어 그곳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그래도 올라온 게 아까워 일단 파노라마로 남겼다. 이후 하산하는 길목에 전망대가 있을 듯해 선두가 러셀하며 만든 길을 따라 좌로 바위를 우회해 내려갔다.
그러자 조금 앞서 내려간 산꾼이 러셀한 등산로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난 지점이 전망대라고 빨리 오라고 손짓이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해 그가 부름에도 바로 내려가지 않고, 조금 위에 멈춰 그를 보고 있다가,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10여 미터 거리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러 개의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즉 등산로는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바위에서 좌로 우회하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직진한다. 정황상 등산로는 장애물이 없어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 선두가, 장애물이 눈을 막아준 왼쪽으로 길을 낸 듯하다. 그렇다고 심설을 피할 인간이 아니라, 아래에서 부르는 산꾼에게 산악회 리본이 있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전망대라고 외친 후 무릎을 넘는 심설을 뚫고 그곳으로 갔다. 역시 예상대로다. 방해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사진을 찍기에 따라서는 방해물 없이 작품을 남길 수도 있는 전망대다. 물론 그런 거 따지는 인간이 아니라,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나 계속 같은 방향을 기록으로 남기며 하산했다.
역시 햇볕이 잘 드는 남동 사면인 뇌정산 반대편과는 달리 북서사면인 하산 코스는 눈이 허벅지를 지나 궁둥이에 닿을 정도라, 비록 하산에 힘이 들기는 했으나, 이번 겨울 마지막으로 즐기는 심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와중에 길목을 막고 여성 산꾼 몇이 잡담 중이라, 짜증 내며 갔는데, 산행 후 알고 보니, 일행 중 여성 산꾼 한 명이, 눈을 뭉쳐 하트를 만들고, 가운데 산악회 이름을 새긴 후 올려놓은 걸 보고 흥분해서 나눈 대화였다 당시에는 그걸 모르고 지나쳤으나, 혹시나 해서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눈의 대 위에 놓인 하트도 살짝 찍혔다. 어쨌든 길목을 막고 있는 일행을 피하며 가, 12시 57분 산경표 지도를 보고, 날머리인 '봉암사 입구 버스정류장' 갈림길이 있을 거로 생각한 '953조망바위'에 올랐다. 조망 바위에 갈림길이 있을 거라는 건, 산경표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된 건 대부분 비공식 또는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등산로라 그렇게 생각했다. 더욱이 능선을 따라 백두대간까지 구간 중 거기에 유일한 점선이든 실선이든 등산로 표시가 있다.
물론 산길샘의 네이버 지도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그런데, 거기 정상에 도착해 왼쪽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그 방향으로 산악회 리본만 하나 달려 있을 뿐 심설에 가려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두는 백두대간 방향으로 계속 전진이라, 어쩔 수 없이 선두를 따라 대간 방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누가 명명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 조망바위다. 바위 정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바위를 넘어 조금 내려가자, 백화산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모습을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 모든 걸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긴 후 눈이 쌓여 보이지는 않지만, 이름으로 유추했을 바위 정상이라, 반대편은 암벽일 확률이 높다. 예상대로 급경사 아니, 거의 직벽에 가까운 심설 쌓인 암벽을, 동영상을 촬영하며 내려가다, 뒤로 ‘꽈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이는 걸 기록으로 남기며 가다,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쌓인 눈에 등산지팡이를 꽂았는데, 손잡이까지 들어갈 기세라 손잡이는 남기고 사진을 찍었다. 가끔 뒤로 돌아 지나온 심설을 기록으로 남기며 가는 동안, 두 앱의 지도로 갈림길 찾는 걸 잊지 않았다.
이미 산경표 지도의 점선은 지나온 후라, 앞에서 갈림길을 찾아야 한다. 상황은 선두나 나나 같아, 선두를 의지할 수도 없어, 지도를 유심히 살펴 왼쪽으로 그나마 완만한 등고선을 찾았다. 갈림길 유력 장소는 위의 지도 기준 현 위치에서 조금 앞, 등고선이 왼쪽으로 튀어 나간 첫 번째 고지 아니면 두 번째 고지일 확률이 높다. 두 번째가 경사가 더 완만한 게 내가 길을 낸다면 거기서 좌회전해서 내려갈 거다. 뭐 지도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저 앞 고지에서 왼쪽으로 줄 서서 내려가는 일행이다. 그럼, 첫 번째 고지에서 갈림길을 찾았거나, 선두가 하산한 거다. 굳이 나도 무리할 이유가 없어, 저기서 좌회전하기로 하고, 전진해 1시 15분 산악회 코스 계획에는 '891봉'으로 명명된 봉우리 정상 갈림길에 도착했다. 거기서 일단 백두대간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 나뭇가지가 방해하나, 뇌정산에서 대간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그 방향으로 가 봤다. 그런데, 계속 이어진 오늘 생긴 발자국이다. 우리 일행 말고 뇌정산행을 하는 산꾼이 있을 거 같지는 않으니, 일행 중 몇이 좌회전하지 않고 직진했다는 거다. 그럼, 선두일 확률이 높다.
선두의 인적을 무시하고, 처음 좌회전한 산꾼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나머지 일행을 살린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갈림길로 가서 보니, 여기가 백두대간 접속 구간 갈림길인지 아래와 대간 방향 모두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산악회 리본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해서 아래에 있는 리본은 못 보고 직진 방향 리본만 본 등산객이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직진했을 거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하산이다. 당연히 울창한 숲속 능선이라, 전후좌우 어디에도 조망이 없다. 와중에 중간중간 급경사라 다른 것에 신경 쓸 틈도 없다. 해서 그저 앞만 보고 내려가다, 머리 위가 이상해 고개를 들어보니, 열매가 매달린 겨우살이라 가던 길을 멈추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갈림길 도착하기 전, 만약 내가 선두라면 두 번째 고지에서 내려갈 거라고 했는데, 울창한 숲 사이로 문제의 두 번째 고지에서 왼쪽으로 뻗어간 능선이 보여 역시 멈춰 서서 기록으로 남겼다. 등고선에선 본 그대로 지금 내려가는 능선보다 완만하다. 그건 그거고 우리가 내려가는 능선은 급경사가 많아,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지체할 이유가 없어, 경사에 밀려 뛰어가다시피 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선두 대부분을 추월해 버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날머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오른쪽 희양산이 가까워진다. 말인즉 시야를 방해하는 게 없으면 선명한 희양산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내려가며 그런 전망대를 찾았으나, 없다. 그럼에도 전망대 비슷한 게 보이면 등산로에서 벗어나 그곳으로 갔다. 결과는 마찬가지나, 거기까지 간 게 아까워 방해물이 있든 없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저 아래로 양산천과 가옥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 왔다. 이대로 희양산 모습은 찍지 못하고 끝난다는 게 아쉬워하며 내려갔다. 그러다 길목 오른쪽에 전망대로 생각되는 바위가 있어 그곳으로 올라서서 보니, 전면은 방해물이 없는데, 희양산 방향인 오른쪽은 울창한 숲이 시야를 방해해 전면만 기록으로 남기고 실망해서 내려와 다시 등산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급경사라 미끄러져 뛰다시피 내려가자, 묘지다! 그런데, 여기 무덤이 희양산 최고의 조망처다. 해서 무덤가에 서서 희양산의 모습을 감상하고 사진에도 담았다. 이후 내가 길목 바위 전망대에 올라가 있는 동안 나를 추월했던 선배를 묘지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같이 내려갔는데, 인솔 대장에게 식당에 들렸다가, 가자고 한 게 본인이라고 알려준다. 역시 목요 오지팀 선배다!
그런 얘기를 나누며 묘지에서 나와 아래 도로로 내려가는 임도에 도착해 앞을 보니, 이 임도 정상이 진정한 희양산 조망처다. 오직 여기서만 고깔 모양의 희양산을 감상할 수 있어, 당연히 그걸 사진에 담았다. 물론 양산천 건너 야유암과 그 뒷산도 파노라마로 남겼다. 이후 임도로 내려가, 2시 5분 도로에 도착해, 버스를 찾기 위해 먼저 희양산 방향을 스캔했지만, 안 보인다. 다음으로 아래 방향을 스캔했다. 저 아래 주차해 있는 버스가 조그마하게 보여 당연히 좌회전해 아래로 갔다. 그런데, 아이젠이 걸리적거리는 게 걷는 게 불편해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젠을 벗고 그 시간을 기록했다. 이후 다시 길을 재촉해 50여 미터를 내려갔는데, 무언가 허전해 주머니를 뒤져보니, 핸드폰이 없다. 지난 민둥산행[산행기] 때도 그렇고 산신이 내 핸드폰을 요구하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 전 아이젠을 찍었으니, 여기서부터 그사이에 떨어져 있을 거라 걸음을 돌려 위로 가는데, 위에서 일행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내려온다. 내 핸드폰이다. 해서 고맙다고 인사 후 핸드폰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주차해 있는 버스로 가며, 등산지팡이와 아이젠을 배낭에 넣으려고 보니, 오물이 얼어붙어 있어 그대로 넣을 수가 없다. 해서 씻을 만한 물을 찾으며 가는데, 오른쪽 목책 너머에 양산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어, 바로 목책을 넘어, 계단으로, 양산천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먼저 등산지팡이를 계곡물에 씻었으나, 오물이 얼어붙은 건 떨어지지 않아 계곡 자갈로 때려서 떼어냈다. 아이젠에 붙은 오물 얼음도 같은 방법으로 떼어낸 후 계곡물로 깨끗이 씻고, 등산지팡이는 배낭 속에 넣는 게 아니라 접어서 배낭 외부에 매달고, 아이젠은 물이 마를 때까지 배낭 멜빵에 카라비너를 이용해 매달았다. 그리고 양산천에서 나와 버스를 향해 가, 버스정류장을 기록은 남기고, 산길샘의 '기록 멈춤'을 눌러, 산행을 마쳤다. 이후 버스로 가 에어건으로 몸과 등산화 바닥에 묻은 오물을 깨끗이 털어내고, 차에 타 자리로 가며 보니, 이미 옆자리 일행은 도착해 앉아 있다. 그런데, 그가 873봉 정상 직전 바위 군락에서 어제 산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가던 걸음을 돌려, 폰을 찾으며 거의 1km를 다시 내려온 산꾼이다. 확실히 난 안면 인식 장애가 있다. 아쉽게도 심설에 파묻힌 핸드폰은 찾지 못했다. 아! 뇌정산신도 신상을 좋아해 내건 돌려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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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참여한 일행은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의 주요 고객들로 다들 경험이 풍부한 산꾼이다. 물론 선두 몇은 이정표가 없는 산이라, 날머리로 좌회전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바람에 조금 더 긴 코스를 달리기는 했으나, 그들을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그 직진이 백두대간으로 향하는 거라, 이정표는 없으나, 직진 방향으로 산악회 리본이 꽤 많이 달려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직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역시 선두답게 마감 20분 전에 버스에 도착했다. 그렇게 다들 마감보다 일찍 도착해, 마감 15분 전인 3시 15분경 날머리를 떠나, 하산주 식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이미지의 기상정보는 시간을 기록할 수단을 찾다가, 현지와 지리산, 설악산의 날씨 정보를 캡처하기로 한 거다. 당연히 캡처한 시간이 주요 이벤트가 발생한 시점이다. 그 시각에 봉정사 입구 버스정류장을 출발한 버스는 간신히 차를 돌려, 하산주 식당인 한국관으로 향해 3시 42분 도착했다. 처음 한국관이라는 식당 이름을 들었을 때는 국도변의 휴게소라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그게 아니라 커다란 토산품 판매장을 같이 운영하는 800석 규모의 식당이라 조금 놀랐다.
버스에서 내려 한국관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토산품 판매장에 딸린 화장실을 다녀온 후 뭘 먹을지 메뉴를 확인했다. 어디나 그렇듯이 혼술이 가능한 안주가 없어, 식사류를 찾아보니, 차림표만 보면 올갱이 전골을 빼고는 삼겹살도 1인 주문이 가능해, 올갱이 해장국과 삼겹살 중 뭘 주문할지 고민하며, 빈자리를 찾아가는데, 목요 오지팀 선배가 인솔 대장, 그리고 안면이 있는 산꾼과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가, 합석하라고 해 옆에 앉았다. 이후 역시 목요 오지팀 선수 중 하나로, 정상에서 서로의 인증을 찍어 줬던 이번 산행 최고령의 노년 산꾼도 합석해 여섯이, 약돌 삼겹살을 안주로 하산주를 마셨다. 물론 고기가 구워지기 전 소맥으로 무사 산행을 축하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후 시중하는 베트남이 고향인 한국 사람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슬이를 마셨다. 최종 맥주 하나, 이슬이 여섯을 마시고, 식당 하산주는 공지에 없던 코스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일행에게 미안하지 않게, 마감 전에 술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4시 40분경 주인장과 시중했던 직원의 환송을 받으며 한국관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당연히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잠이 들어, 실내등이 들어오고, 인솔 대장이 10분간 휴식한다는 안내에 잠에서 깨, 차에서 내려보니, 안성맞춤이다. 이 휴게소 또한 오랜만이다. 소맥, 이슬이, 한국관 주인장이 마셔보라, 한잔 따라준 오미자 동동주의 후유증을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버스로 돌아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옆자리의 일행이 내린다고 해 잠에서 깨어보니, 신갈이 멀지 않다. 이후 승객 몇을 신갈에서 내려준 후 달리는 버스에서 대장이 죽전, 양재, 강남, 신사 순으로 정차한다고 알려준다. 과거에는 양재, 강남은 정차지가 아니었으나, 출발 시 기점인 시청까지 가지 않는 대신 추가한 게 양재와 강남으로 이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거에는 신사에서 하차하는 게 빠르고 편했으나, 지금은 양재에서 내리는 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방향의 선배가 불광역 순댓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해, "'삼오'요?'했더니, 그렇다고. 나도 거기서 해장을 겸해 2차를 하고 싶지만, 이미 1차 한 사실을 마누라가 알고 있는 마당에, 집 앞에서 2차를 하는 건 자살 행위라 거절하고 녹번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해, 7시 50분경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에 따라 '신상괴 버스정류장 → 홍은수도원 → 노송 → 594봉 → 770봉 → 통천문 → 873바위봉 → 뇌정산 → 953조망바위 → 891봉 → 야유암 → 봉암사 입구 버스정류장’의 9.46km(산길샘) 코스를 4시간 23분 동안 달렸다. 이동 3시간 49분, 휴식 34분!
※ 참고로 산악회 뇌정산 코스 계획과 지도에 맞게 진행한 산행이라, 계획대로 주요 지점을 통과했다고 믿는 것뿐으로, 주요 지점에 이정표나 정상 표지가 전혀 없어 실제로 통과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지맥, 정맥 산행에서는 맥꾼들이 정성 들여 만들어 설치한 이정표나 표지가 있어 그걸 기준(정확성 여부는 차지하고)으로 통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나, 맥과는 무관한 오지는 그것조차 없어, 확인이 어렵다. 고지 높이로 명칭을 붙인 지점이야 GPS로 유추할 수 있으나, 고유 이름을 가진 장소는 그런 보조 수단이 없다! 이게 오지 산행의 주요 맹점이다.
산행 초반에는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가락이 바로 동상에 걸릴 거 같은 추위였으나, 고도를 높일수록, 즉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해져, 막상 해발 1,000m에서 조금 모자란 정상에서는 더워서 옷을 다 풀어 헤쳐야 할 정도의 날씨였다. 거기에 더해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조망도 좋았으나, 보이는 건 백두대간이 다라 약간 아쉬웠다.
지난 회봉산처럼 정상석이 있는 게 놀라울 정도로, 이정표는 아예 없고, 그나마 산악회 리본은 가끔 볼 수 있는 산이다. 와중에 백두대간 접속 구간 갈림길에는 대간 방향으로 산악회 리본이 많이 달린 덕분에 선두는 날머리인 봉암사 입구 버스정류장 갈림길에서 직진해 백두대간 방향으로 두 개의 봉을 더 넘어, 계곡으로 하산하는 일이 있었다. 이걸 일러, 알바라고 하는데, 지도에도 등산로가 없으니, 등고선을 보고 감으로 찾아가야 하나, 산악회 리본의 유혹에 넘어간 예다. 선두가 잘못 했다기보다는, 뒤에서 따라가다 갈림길을 제대로 찾은 일행이 대단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희양산, 백두대간 등의 조망이 탁월해 오지를 좋아하는 산꾼이라면 한 번 정도는 달려볼 만한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