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皆知美之爲美 천하개지미지위미
斯惡已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개지선지위선
斯不善已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고유무상생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주고
難易相成 난이상교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며
長短相較 장단상성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며
高下相傾 고하상경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音聲相和 음성상화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前後相隨 전후상수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是以聖人處無爲之事 시이성인처무위지사 자연의 이러한 원칙을 본받아 성인은 무위하는 일을 하며
行不言之敎 행불언지교 불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작언이불시 만물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이 시작하도록 했다고 하지 않고
生而不有 爲而不恃 생이불유 위이불시 잘 살게 해 주고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되 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
功成而弗居 공성이불거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에 자리 잡지 않는다.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오로지 그 공 위에 자리 잡지 않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
p26
내 손의 손가락이 '길다'고 할 때 그 길다고 하는 것이 내 손가락 자체에 본질적으로 들어 있는 성질로 보는 것이 보통의 상식적 관찰이다.
이런 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본질론적 사고(essentialist view)'라 할 수 있다. 반면 내 손가락이 길다고 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로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 길고 짧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 등을 보도록 하라는 것이 도가의 가르침이고 이런 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비본질론적 사고(non-essentialist view)'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분별의 시계, 일상적 상식의 시계를 초탈하라는 것이다. ... 이원론적 세계관을 벗고 양쪽을 동시에 생각하는 변증법적 사고방식, 양쪽으로 대립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하나라고 보는 '양극의 조화'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를 터득하라는 것이다.
p27
우리말로 성인이라고 하면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성인의 본래 뜻은 이런 윤리적 차원을 넘어, 말하자면 '특이한 감지 능력의 활성화'를 통해 만물의 근원, 만물의 '참됨, 만물의 '그러함'을 꿰뚫어보고 거기에 따라 자유롭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 <도덕경>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이런 성인은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무위'라는 것은 <도덕경>에서 그리고 <장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행동 원리다. ... 무위란 보통 인간사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 보라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natural) 너무 자발적(spontaneous) 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여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추한 것이다. 세상 사람이 모두 좋다고 하여 좋은 것으로 안다면 이미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가치 통일 또는 집중을 강조하는 공자식의 문명관에 반대하는 구절이다. 즉, 미지위미는 정해진 미, 정의되어진 미,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미에 동조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집중 통일되면 그 가치는 이데올로기화하여 권력으로 작용하고 폭력을 낳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노자는 가치 중립을 표방하는 것이다. 공자식의 전통과 역사는 사람들을 모두 거기에 통합시키길 원한다. 그러나 노자는 통합적 욕구를 발산하는 이런 가치를 진정한 가치로 아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그런 이유는 합의된 가치를 정점으로 인간이 차별화되고 그 차별화 안에서 극심한 경쟁과 갈등이 생기며, 그 가치가 결국은 권력으로 작용하여 사회는 혼란해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해치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무상생은 노자 철학의 핵심이다. 유가 유인 이유는 유 자체 때문이 아니라 무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서 유가 되고, 똑같이 무도 유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서 무가 된다는 것이다.
난이상성, 장단상성, 고하상경,음성상화, 전후상수(해석 뒷 부분 참조)도 다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이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은 그 반대편 것과의 관계속에서 비로서 그것이 된다는 것이다.
확실히 공자의 '군자'와 장자의 '성인'은 많이 차이가 안다. 하지만 공자의 배우고 익혀서 '군자'가 되는 것은 알겠는데 '장자'의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도 될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