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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도 값싼 항공기를 이용했기 때문에, 한 밤중에 도착해(01: 30),
밤에 움직이느니(위험하기도 하고, 또 어차피 아는 사람들 귀찮게 할 터라) 차라리 공항에서 밤을 새운 뒤,
다음 날 날이 샌 다음에 움직였지요.
그렇게 '마놀로' 집에 도착하니(아침 8시 경) '까르멘'(마놀로 처)이 문을 열어주었는데,
바로 마놀로를 보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마놀로가 작년에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겨우 조금 회복했다가, 올 여름에 고향인 '갈리시아'에 갔다가, 거기서 다시 쓰러져 급히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뒤라, 저는 어쩌면 그가 침대에 누워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그리 쉽게 만나리라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인데요,)
문, 마몰로가 아침에 일어나 말끔하게 씻고 준비한 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고 웃기에,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 문을 여니,
그가 멀쩡하게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쑥한 그 모습이... '종이 호랑이' 같기도 하더군요.
그는 커다란 덩치에(뚱뚱한 몸) 목소리마저 커서, '독재자' 같은 이미지였거든요. 그런데 정말 힘이 좍 빠져나간 모습이드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또 다시 많이 회복되어(약간 반수 불수), 혼자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이기는 했고, 저를 보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이 집 안주인은 바로,
아침을 먹자고 했습니다.(까르멘은 먹을 걸 챙기는 건 '아델라'보다 한 수 윕니다.)
그런데 이 집도 결국은 '갈리시아 사람들'(고향이 아델라와 같으니까.)이라,
집안 분위기는 갈리시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특히 먹을 것)
물론, 저는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의 그런 일들을 다 사진으로 남기고도 싶었지만,
이제 70대가 되어, 더구나 몸이 안 좋아 쓰러졌다 겨우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마놀로에게 폐가 될까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큰 집의 살림을 하느라(쓰러진 남편을 보호하는 건 물론(돌아가시기 전의 자기 부모님을 10년도 더 넘게 모셨던 까르멘이, 이제는 좀 쉴 수 있을까? 했을 때 마놀로가 쓰러져 이제는 마놀로를 돌봐야 하고, 큰 딸 손주들(아들과 딸 하나)도 보살피고 있는) 여전히 잠시도 쉬지 못하는(그렇지만 까르멘은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으로) 그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그런 뒤, 저는 마놀로가 재활 운동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공항에서 밤을 새웠기 때문에 이 집 2층에 있는 제가 올 때마다 이용하는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그래봤자 한 시간 여)
그런 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샤워도 하고 오면서 찍었던 사진도 정리하는 등, 나름 할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이 집 큰 딸인 '마리 까르멘'과 그녀의 아이들(고등학생이 된 '이삭'과 국민학생인 '블랑까')과도 인사를 나누는 등), 오후는 마놀로와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이 동네(오르따(Horta)'에 있는 맛사지방에 가야 한다기에 마놀로와 함께 갔다가,
너무 늦게 왔다고 다음에 오라고 해서, 둘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가,
거기 이 동네 사람들(노인)이 주로 지나다니는 길목의 한 벤치에 앉아,
그동안의 이야기(제 여행과, 마놀로의 상황)를 나누는 등 시간을 보냅니다.
(그제야 마놀로의 허락을 받아, 사진을 찍습니다. 아래)
그 다음 날인 오늘(12일)은 원래는 제가 살던(그 동네에서 마놀로네도 알게 된) '깐 까라예우(Can Caralleu)'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호아낀'씨 부인 '아말리아'가, 다른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가느라 없다며 다음 날(13일 목)에 오라고 하기에,
저는 아침부터 도심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여기 바르셀로나에 와서 처음 알았던 한 '일본인 친구'를 찾아나섰던 건데요,
그 친구와는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참 잘 지냈었는데(그 처와 두 아이들까지),
소식이 끊겨 못 만나고 있었는데,
기왕에 이번에 온 김에 그 친구도 한 번 찾아가기 위함이었는데,
(원래 한국을 떠나올 때 스페인에 들를 걸 예상했다면, 그에 따른 뭔가도 준비해 왔을 텐데, 여행 중에 마놀로가 쓰러졌기 때문에 그 일로부터 스페인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일본인 친구을 만난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그의 전화번호마저도 없이)도 안했기 때문에, 그저 그 집을 찾아나섰던 건데요.)
어제는 하루 종일 흐렸는데, 오늘은 너무나도 좋은 날씨였습니다.
게다가 여기도 '삘라르 축제'라고 휴일이어서, 거리는 뭔가 모를 축제 분위기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내려 '까딸루냐' 광장을 지나는데,
아, 저 광장에서...... 하는 지난 생각에, 그저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었고,(아래)
거기서 그리 멀지 않았던 '일본인 친구' 집이 있던 '고딕 지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원래 이 부근이 지저분해서 냄새도 많이 나고 늘 우중충했었는데,
물론 관광을 위해(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대대적인 도심 재생운동을 벌인 거겠지만,
제법 산뜻한 벽면에 거리도 깔끔하게 물청소를 한 모습이, 신선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최근엔, 여기 바르셀로나 보다 '갈리시아'에 더 자주 다녔고, 가장 최근인 3년 전(코로나 전)에는 아예 바르셀로나에는 오지도 않고 갈리시아 현지에서 전시까지 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또 이 동네는 10년도 더 넘게 지난 뒤 찾아와서)
낯설기까지 하더라구요.
겨우 한 오래된 가게에 가서,
혹시 이 근방에 일본인 가족이 사는 걸 아느냐? 고 물었더니, 가르쳐 줬는데,
옛날과는 반대편 건물이어서, 뭔가 이상하긴 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인이 아닌 중국인인 것 같았고(우편물의 이름을 보니),
그래서 다시 헤매다가 한 건물에 몇 년 전까지 일본인 가족이 살았다는(여기가 맞는 것 같았습니다.) 건물을 찾아냈는데,
말 그대로,
몇 년 전까지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꼭 그 친구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었고 확신은 더더욱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지금도 살고 있을 것 같았던 기대감으로 오전 몇 시간을 헤매고 다녔는데,
지금은 떠나고 없다는 걸 확인한 뒤라,
뭔가 이 세상 한 구석이 허물어지는 감정이 되어,
터덜터덜 그 지역을 벗어난 저는,
늘, 바르셀로나에 오면 들르는 '항구(바다 람블라)'로 발길을 옮겼는데요,
아, 내가 여기 와서 첫 번째 전시를 했던('피카소 미술관' 근처에 있는) 한 고 서점은 흔적은 있었지만,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어서,
그것마저도 씁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아래)
그렇게 항구를 찾아가는데, 힘이 빠져서,
그리고 한 성당 앞에 그늘이 있어서(날이 화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오전 내내 일본인 친구를 찾느라 헤맸고 또 조금 걸었더니 기운이 없어서,
거기에 한참을 앉아 있었답니다.(아래)
그런 뒤 다시 항구로 향했는데,
아, 날씨가 너무나 좋다보니,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여기 바르셀로나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항구(바다 람블라)에 도착했습니다. (아래)
거기서도 한 두어 시간을 앉아만 있었답니다.
그런데 배도 고프고 목도 타서,
'보께리아' 시장에 가서 과일이라도 사 먹으려고, '람블라' 거리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많이 바뀌어 있드라구요.
이번에 특히 많이 변한 건,
람블라 거리에 그 주변 식당의 야외식당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구요.
(그들이 돈을 뿌렸겠고, 또 관광객들은 거기서 뭐가 그리 맛있는지 (주로 '빠에야)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래)
그렇게 '보께리아' 시장에 갔더니,
오늘이 휴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드라구요.
그러니 갑자기 갈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마놀로'네는 작은 아들 첫째 딸의 생일이라고 오후 4시에 생일잔치에 간다고 했는데(저도 데려가려고 했지만, 제가 가기 싫어, 안 간다고 하면서 나왔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제가 처음 왔을 때 사귀어(접시닦이로 일할 때 알았던 주방장) 친구가 된,
(그래서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한국적인 음식점을 하고 있는) '서울정'에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여기 바르셀로나에 왔다는 신고(?)를 할 참이었지요.
그렇게 식당에 찾아가니,
그 부인은 지금 한국에 가 있다고 친구만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더라구요.
(식당이 너무 잘 돼서 좋긴 한데, 그 친구는 쉴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좀 머쓱할 수밖에요.
그런데도 그 친구는 제가 왔다고, 그 바쁜 와중에도 종업원을 시켜 저를 한 식탁에 앉게 한 뒤(제가 밖에 나와 있었거든요.),
바로 음식을 해서 보냈드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내온 따끈따끈한 '불고기'가 어찌나 맛있던지!
물론 제가 배가 고팠던 이유도 있었지만, 이 친구 음식 솜씨가 여전하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평소에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전데, 어찌나 맛있던지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집어넣을 정도로 먹었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또 '김치 찌개'를 내오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매콤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어선지, 매워서 저도 콧물까지 흘렸답니다.)
국물이 뜨거웠는데, 그것도 어찌마 맛있던지!
물론 그걸 다 먹지는 못했지만,
배가 터지게 한국 음식을 먹고난 뒤,
친구가 일을 끝내고, 그들 종업원들과 식사를 하는데(그가 편하게 먹도록 저는 잠시 식당 앞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이 친구는 그렇게 점심 식사 일을 끝낸 뒤, 밤에도 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휴일인 오늘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하던데), (제가 옆에 있어 봤자, 방해만 될 뿐이라)
이 친구의 휴일인(월요일 휴무) 일요일 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일요일 밤 2시경까지 일을 한 뒤, 그 집에 가서 한 잔 하기로 했지요.),
저는 다시 '마놀로' 집으로 향합니다.
열쇠를 갖고 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마놀로 집에 도착해 양말 벗고 발 씻고,
낮에 찍어두었더 사진 정리 등,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이집 식구들이(그래봤자 이젠 두 부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까르멘이 부르기에 내려가 보니,
근데, 문! 내가 저녁상까지 차려놓았는데 왜 건들지도 않았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실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한 상 봐놓고 나갔드라구요.
아, 까르멘... 난 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 탁자에 놓여있던(세탁을 끝내고 말끔하게 개서 준비해 둔) 내 옷만 들고 2층으로 갔었거든? 그리고 나, 지금 아무 것도 못 먹는데......
그래도, 차려놓은 음식이니, 내가 데워줄 테니 조금이라도 먹어야 돼!
하는 게 이 집의 분위기고,
그렇게 셋이 앉아서(이젠 자식들 셋이 다들 독립해서 나간 뒤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까르멘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갈리시아에 있는 까르멘의 이모인 '에밀리아' 부인이었는데,
문, 우리 이모 부부가... 당신 언제 갈리시아에 돌아오느냐 묻기에(저는 갈리시아에 돌아간 뒤, 포르투갈의 '뽀르또'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11월 초라고 했더니,
오면 꼭 다시 들르라고 하던데? 하기에,
물론 인사를 하러 가긴 하겠지만, 다시 식사를 하러 가지는 않을 건데......(그 노인 부부를 더이상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하자,
그래도 그렇게 될까? 하는 까르멘의 대답이었습니다.
(아, 그렇게... 제가 여기 바르셀로나에 와 있는데도, 에밀리아 부인 부부는 저를 챙깁니다. 그게 여기 갈리시아 사람들 인정입니다.)
첫댓글 콧등이 찡 할 정도로 정이 듬뿍 묻어 납니다.
저도 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이따금 그런 감정을 느끼곤 한답니다.
스페인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보며 스페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하, 가고 싶습니다.
스페인 생활이라고 항상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월이 너무 잘 가는 나라'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도 관광이 재개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보입니다.(순례객들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