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과 그의 부친 김순영(金淳永) 선생은 헌신과 시련으로 연결된 부자 관계였습니다.
부친 김순영의 생애와 인품
신분적 시련과 인품: 구 안동 김씨 가문이었으나, 선조 김자점의 역모 사건 여파로 신분을 숨기고 황해도 해주 텃골에 정착해 상민으로 살아갔습니다. 김순영 선생은 양반들의 행패와 천대에 맞서며, 약자에게는 넉넉하고 양반들에게는 굴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엄격했던 교육: 백범일지에는 어린 시절 김구가 집안의 돈을 슬쩍해 떡을 사 먹으려 하자, 부친이 대들보에 매달아 가혹할 만큼 엄하게 체벌했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을 위한 희생과 옥고
치하포 사건과 연좌제: 1896년 김구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일본인 스치다를 처단한 '치하포 사건'으로 체포되어 인천 감옥에 갇혔을 때, 부친 김순영 선생은 아옥(아들의 감옥) 근처에 머물며 옥바라지를 전전했습니다.
탈옥 사건과 수감: 이후 김구가 탈옥하자, 탈옥수의 부모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대신 옥고를 치렀습니다.
서거
감옥에서 얻은 병환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아들이 계몽운동에 정진하던 중인 190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친 김순영 선생의 강직함과 아들을 향한 희생은 백범 김구가 훗날 임시정부의 수장이자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