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남산 아니 목멱산의 안후(安候)를 여쭈려 신발 끈을 맨다.
한강 건너편에 의연히 정좌하고 계시는 목멱산의 모습이 든든하시다.
이미 당신은 철 따라 언제나 그랬듯이 철 맞은 복색에 세소단장 정좌하시고
먼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신다. 어느 바지런한 시자(侍者)가 있어
저렇게 봄에는 봄대로 연초록, 또는 산벗나무 꽃구름무늬의 우아한
도포자락을 드리워 드렸을까?
한여름이 아무리 찌고 더운 바람이 불어와도
싱그러운 자세는 한번 흐트러짐 없이 그 위엄이 한결 같고.
저 가을날의 축제에 참가하시는 듯한 화려한 자태는
어느 저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이란 말인가?
어진(御眞) 그리는 화공의 신필이 그린 듯,
보기만 해도 탄성이 절로 난다.
그러나 우리의 저 목멱산의 가장 기품 있는 진면목은
청송 위에 백설 드리운 겨울의 당신 모습,
신선이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에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밤사이 안녕 하시온지요?
안쓰러운 마음에 안부를 물으면 그냥 좀 소란스럽기는 해도 괜찮다는 듯,
침묵의 답을 해주시니 더욱 경외롭다..
서울의 아침은 남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천만이 넘는 그 많은 군상을 밤사이 잠시나마 고단한 삶에서 다독거려 쉬게 하고,
이제 새날이 밝음에 각자의 하루를 위하여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마치 인자한 어머님의 손길 같은 아침 빛살로 희망의 문을 나서게 이끄시는 산,
바로 우리의 수도 서울에 한가운데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우리 서울 사는 사람의 축복이며 행운이다.
그러나 어디 저 남산이라고 이 산자락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서운한 점이 없으랴?
아는 이는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이름 불러주는 저 산 "남산"은 본 이름이 아니고
더구나 고유명사 또한 아니다.
경주에도 남산이 있고, 지방 어느 소읍이나 마을 남쪽에는
크든 작든 간에 여러 곳에 남산이라는 산이 있다.
아무래도 서울의 남산은 '남산 제모습찾기 운동' 전에
'남산제이름 불러주기 운동'이라도 먼저 해 달라는 듯이 내게 느껴져 온다.
이 태조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한이래 국태민안을 빌기 위해
이 산에 국사당을 세우시고 목멱대왕이란 산신을 모신 이후부터
가장 오래 동안 불리어진 이 산의 이름이 목멱산,
그사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뫼, 인경산, 목밀산, 와우산 ,잠두봉
등등의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러 왔으나
그래도 본명은 분명 목멱산이 가장 옳고 힘있는 이름이니,
어쩌면 못내 섭섭함과 어린 백성들의 미련함을 속상해 할 지도 모른다.
이 나라 역사가 반만년을 넘고 전국토의 70%이상이 산이니
전국 어느 곳이라도 전설 없는 곳이 있을까만,
그 중에도 우리의 이 목멱산은 더하고 특이하다.
조선 600년 역사의 흥망을 한자리에서 시종 지켜 봐왔으며
특히 개화기 이후부터 오늘까지 그 많은 질곡과 영욕의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한 증인으로,
때로는 환호하고 호통치고 가슴아파했으며
희망과 격려를 줄곧 내리신 산이
우리의 이 목멱산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목멱산은 수도 서울의 심장이며 또한 서울의 허파이기도 하다.
미련한 탓에 세계 여러 도읍지는 그리 많이는 못 가봤지만
수도 한가운데 저렇게 도시 어느 위치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았고
또한 볼수록 아름답고 정감 나는 산은 없었다.
비록 지금은 애당초의 면적이 이런 저런 이유로
헐리고 잠식당해 겨우 90만 여 평만 남아,
우리 나라 전국토의 0.003%에 지나지 않고,
높이 또한 265 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연중 800만 이상의 시민이 즐겨 찾는 친근한 산.
톱니바퀴처럼 짜여서 돌아가는 고단한 생활에
이만큼 사랑 받고 안위를 주는 곳이 어디 또 있으랴?
목멱산은 손짓하며 웃음으로 부른다,
고단하고 힘든 자 내 품으로 오라.
맨주먹으로 새 출발하고자 하는 자도 여기 내게로 가까이 오라,
홍역 같은IMF이후 일자리 잃은 자도,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한 자도,
사글세에 밀려 길거리에 내 쫓긴 자도 오라,
와서 내 위에서 저 넓은 사방의 움직이는 군상과
굳게 버티고 선 건물들을 보고 어금니 굳게 물고
두 주먹 말아 힘있게 쥐며 새 희망의 용기를 받아가라고 ....
나는 언제나 너의 편에서 너를 밀어 줄 것이다라고 약속해주는 산,
바로 네 곁에 내가 있다고...
또한 이미 삶의 안정을 찾은 자나
보다 높은 이상을 품은 자도 내게 좀더 가까이 와서
나의 소리, 나의 향기를 맡으며 나의 내면을 보고 배우기 간절히 바란다,
주저 말고 어느 하루 특별히 날잡아 목멱산 자락에 시간을 투자하라,
곳곳에 서있는 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동상 앞에서 조국을 생각하라,
굳이 소월 길이 아니더라도 요소요소에 서있는
고성 석축과 기념비며 문학비만 애정 깊은 마음으로 돌아봐도 좋다,
그러나 꼭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상을 오르는 그 많은 돌계단을 그냥 무심히 밟지 말고
정다운 사람과 눈맞춤 해가며 가위, 바위, 보, 하며
젊은 날의 추억도 만들어 보기 바란다,
그러고 우리는 목멱산의 소리 없는 호소도 들어야 한다,
개발이라는 단순 논리와 일시적인 인간들의 편의로 당한
그 내면의 신음과 고통의 소리도 귀담아들어야
진정으로 속 깊은 정을 느낄 것이다,
지금 이산 아랬편이 삼통으로 구명이 나서 매우 허하다,
푸른 학이 날았던 그 아름다운 청학동은 자취도 없어지고
누에 먹은 뽕잎 마냥 줄기만 남은 산길,
저 애국가 2 절에도 나오는 남산 위에 그 많던 저 소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야 목멱산이 소중함을 인정받는 것 같다,
90년대 초부터 시작한 남산 제모습찾기 운동으로
서울초입에서 낯가림하던 외인 아파트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담한 야외식물원이 들어섰다.
그간의 지은 죄 속죄하듯 목멱산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자그마한 전시관도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니
한번 찾아와 주기 바란다,
목멱산은 도심의 산이다.
때문에 산의 생태와 식생(植生)의 고단한 실상도 봐야한다,
그 많던 옹달샘은 이제 이름으로만 남아 목이 마르고,
너그러운 품에서 자라던 줄잡아 552종을 넘던
그 숲과 풀도 안부를 물어야 한다,
이미 이름조차 기억에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특산 '남산제비꽃', '남산귀룽나무'며
고귀한 품위를 자랑하던 '고란초'를 제자리에 돌려달라고
호소하는 신음 소리도 들러야한다,
아직은 이사온 몸살을 면치 못 한 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투리 같이 특색 있는 '팔도 소나무'도
한남동 산자락에 살고 있으니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한번 잦아주기 바란다,
목멱산은 그저 멀리서 바라다만 봐도 좋지만,
좀더 이해하고 아끼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와서 체험하는 것이 더욱 좋다,
목멱산의 주인은 서울 시민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거의 자생적으로 '남산을 사랑하는 모임'이 생겨나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봄부터 늦가을까지 '남산. 역사 생태 기행''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남산을 오르며 남산의 역사와 생태를 '숲해설가'들의 설명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과정이고
매 주말마다 야외 식물원에서는 '남산 식물교실'을 열어
가족단위로 재미있게 자연공부를 하며,
또 하나, 남산에도 반딧불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
어린이들에게는 꿈을, 어른들에게는 옛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매년 5월경 '반딧불이 교실'도 연다,
그 외 철마다 시기에 맞는 '곤충교실'이며 '나비교실'등
시민들과 함께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분명 목멱산은 우리의 영산 이며 민족의 정체성 곧 자체이다.
그저 어느 날 하루 오르고 난 후 경솔하게 느낌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계절마다, 비 오는 날, 눈오시는 날, 또는 구름 낀 날, 그리고 아주 맑은 가을날,
어느 때고 수시로 오르고 봐야 그제야 참 멋과 맛을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단호히 말한다,
우리의 목멱산을 가슴에 품어야 대한민국 서울 진정한 시민이라고...
오늘도 목멱산은 두 팔 벌려 그대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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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2003년 서울시가 공모한 서울이야기 입상작입니다
묵은 노트에 적힌것을 마감에 허덕이며 멜로 응모한 졸문 인데... 파적으로 읽어보시길>>
첫댓글 입상하셨다니 더욱 축하드리며 당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1960년도 공병대 복무시절에 목멱산의 축대를 쌓았는데 그때의 추억이 아련히 떠 오릅니다.
축하하고 축하합니다. 근데 노거수님의 목멱산 숲해설은 언제 있나요?
축하합니다. 목멱산을 선생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서울 시민들이 활발하게 사는 모양입니다. 축하 드립니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줄기를 타고 넘은 듯한 가슴 뿌듯함이 맴돕니다. 좋은글 넘 좋았구요. 입상까지 한 글이시라니 더욱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