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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1:1-6
거룩하신 영께서는 마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한다. 마태복음 1장1절을 보자.
아브라함이 아버지께 받은 약속은 천하만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시니 아브라함에게 썩어지거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복으로 약속하지 않으셨다. 즉 아브라함은 육적인 복과 이 세상의 영광을 약속 받은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말씀의 복과 영원하신 아버지의 나라인 셋째 하늘의 복을 약속으로 받았다.
그러므로 썩어질 것들이 많이 있으나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 살던 그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은 이것이니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그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는 복을 얻은 것이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육적인 복과 세상적인 복은 오히려 영적인 복을 해친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셋째 하늘의 복을 믿는 자들은 오히려 이 땅에서는 고난을 당하며 육적인 것과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그 약속을 얻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셋째 하늘의 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 말씀의 약속대로 아버지께서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모든 자에게 지금도 공평하게 그 생명의 복을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려주고 계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셋째 하늘에 준비하신 복을 믿지 않는 자들은 늘 이 세상에 마음을 둔다. 소망이 없으니 오늘의 것들을 취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거룩에 애쓰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생명의 복을 믿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백성가운데 다윗을 가장 마음에 합당한 왕으로 인정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다윗이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이유는 그가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역시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충성스럽게 전하셨다. 행13:22-23을 보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오직 자신의 마음과 육체의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이 악한 세상에서 구별될 것과 거룩에 애써 거룩에 이른 후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가 되라는 말씀만을 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충성스럽게 전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언급하신 것은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는 그 왕의 다스림을 받으므로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늘 충만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모든 믿는 사람들의 복을 위해 아버지께 택함을 얻으셨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오직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복만을 전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전 이미 아버지께 이 복된 말씀들을 받으셨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오직 거룩한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만을 전하셨기에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아들이 되신 것이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마태를 통하여 복음을 주시며 예수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선포하시는 것을 보며 읽는 자들은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마태복음을 보며 어떻게 하든지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생명의 복을 캐내어야 한다. 또한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고자 해야 한다. 그래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그 영원한 생명의 복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의 후손으로 오셨는지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 족보를 알려주신다. 마1:2을 보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적인 족보에서 가장 먼저 나온 세 사람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다. 누구든 만일 셋째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복을 원한다면 이 세 사람을 잘 보고 교훈을 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우선 아버지께 택함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당시 오늘의 미국과 같이 넉넉하고 편안하고 강한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의와 거룩의 뜻을 위하여 부르시니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고난스런 길을 떠났다. 창26:4-5을 보자.
아브라함은 그 무엇보다 오직 아버지의 약속을 믿었다.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 그 길의 마지막에 정말로 영광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모두가 이런 말을 해도 아브라함은 오직 아버지의 약속만을 믿었다.
또한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아버지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했으며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다. 약속을 믿었기에 또한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므로 순종한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약속대로 셋째 하늘의 생명을 복을 얻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복을 전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첫 번째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든 셋째 하늘의 생명의 복을 원한다면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아버지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아버지께서 택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신실하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다. 영의 가치를 알고 모든 육적인 유익들을 버렸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그들을 의롭게 보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므로 택하심을 얻은 모든 자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보며 두 가지를 깨달을 것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핏줄이 된 자들은 모두 아버지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택하심이라는 은혜가 없다면 절대로 그 의로운 핏줄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약속을 믿어야 한다. 순종이라는 행위는 약속을 믿을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함 받고 또한 순종하여 의로워진 자들만이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을 준비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믿는 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하며 따르겠다고 하는 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셋째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붙들고서 비 진리를 붙들 수 없다. 선을 행하면서 악을 행할 수 없다. 또한 영의 축복과 육의 축복 두 가지를 절대로 동시에 잡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의 축복을 위하여 이 땅의 모든 영광의 유혹들을 이겨내셨다. 그러므로 교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이 땅의 모든 육적인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따를 때 그것이 가능하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사람의 눈으로 불의하게 보이는 네 여인을 언급하신다. 마1:3-6을 보자.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자들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자신의 과거의 죄악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죄악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의 조그만 문제점을 보고 흥분한다.
이런 자들이 만일 며느리가 시아버지하고 성관계를 해서 애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반응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 여자는 음란한 여자라고 떠벌리고 다닐 것이다. 아마도 일년 동안 아니 평생 만나는 자들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악을 드러내는 진짜 의도는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을 말하므로 자신이 상대적으로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그 악함의 도가 이미 한참 넘은 자들임을 깨달을 수 있다.
반면 의로운 자들은 며느리가 시아버지하고 성관계를 해서 애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선 정죄하기 전에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 할 것이다.
게다가 거룩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그런 일이 기록되어있고 또한 그 후손으로 거룩하신 아버지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도대체 그 안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하며 진리를 알고자 애쓰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을 보시고 노아와 그 가족들만을 남기시고 모든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그 넓은 땅 위에 오직 노아의 8식구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이 땅에 번성하기를 원하셨다.
단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자들이 번성하기를 원하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거룩한 자녀를 얻으시는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사람들이 매우 적은 상황에서 그들에게 두 가지를 알려주셨다.
첫째 땅 위에 사람들이 번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자는 여러 여자를 둘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남자의 그 마음 중심은 자신의 아내인 한 여자에게만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세 명의 여자와 산다고 해도 그 마음은 절대로 자신의 아내로부터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마음이 빼앗긴다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간음으로 보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셨다는 말을 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자들이다.
둘째 결혼하여 자손을 이어가되 반드시 가까운 친척들 안에서만 배우자를 고르도록 하셨다. 아버지의 목적은 단 한가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의로운 핏줄이 끊기면 더럽고 불의한 핏줄에다 그리스도를 보내야 한다. 더러운 핏줄에서 나온 그리스도를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과 구별되고 또한 모든 육적인 것들을 내려놓은 자들의 가정과 친척 안에서 결혼을 하게하셨다. 즉 모든 인류의 속죄와 거룩을 이루시기 위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깨끗함을 보존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이 족보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자들은 모두 아버지의 의를 알고 있던 자들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의로운 자들의 후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들은 자신이 그 의로운 핏줄에 들기를 간절히 원했다.
또한 자신의 태로부터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는 의로운 핏줄이 이어져가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 의로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 그 의로움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것은 가장 힘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육적인 모든 필요와 욕심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철저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 네 여자들도 인격을 가진 똑같은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의를 따르기 전까지는 참으로 자신의 의가 대단했던 여자들이었다.
이중에 다말은 그 시애비와 성관계를 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그 중에 베레스가 그리스도의 의로운 핏줄이 되었다. 그런데 다말이 그리스도의 핏줄인 베레스를 낳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의였다.
다말은 그 의로움의 핏줄을 위하여 오직 가족과 친척 안에서만 의로운 후손들이 나와야 함을 알고 있는 여자였다. 시아버지인 유다 역시 집밖의 더러운 자들과의 사이에서 후손이 나오면 그것은 더러운 것이며 죄악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다의 첫 번째 아들과 두 번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악을 행하여 둘 다 죽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의를 거역하고 끝까지 자신의 의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는 셋째를 주면 그 아들도 죽을까 싶어 다말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유다는 아버지의 의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식을 더 사랑했던 것이다. 이때 다말은 그 시아버지의 의롭지 않은 마음과 행위를 보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를 마음껏 드러내게 된다.
‘아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남자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자신의 육적인 자식보다 아버지의 의를 생각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시아버지가 만일 집안 밖의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후손을 받는다면 그것은 죄악이요 깨끗한 핏줄이 더러워지는 것 아닌가?’ 하면서 이를 갈기 시작했다.
다말은 이렇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이를 갈았으며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다말이 참은 것은 자신의 의로 참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말은 자신의 마음 안에 화가 있는 것은 아버지께 범죄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께 간절히 구하였다. 그녀는 기도를 하며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자신도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고 또한 시아버지도 돌이킬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아버지께 구하였다.
이 다말의 의로운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에 합하였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다말에게 지혜를 허락하셨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직접 시아버지와 성관계를 하여 그 의로운 핏줄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다말은 아버지께서 주신 이 지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순종하였다. 자신의 체면도 명예도 그 어떤 육적인 것도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시애비도 의롭게 되어지며 자신도 아버지의 의를 따르기 원했다.
오직 자신의 태로부터 의로운 자녀가 나오는 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말뿐만이 아니라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모두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이 네 여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명예와 체면을 전혀 생각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의를 위하여 이 세상과 모든 육을 다 포기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 죽을 각오를 했으며 그때부터 평생 손가락질 받는 고난의 길을 걸었던 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버지의 의에 주려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처음에 모두 다말처럼 자신의 의로 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의에 자신의 의를 꺾고 순종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낳았으나 아버지께서 주신 자식들을 자신의 의로 기르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의 의와 말씀으로 그 자녀들을 훈계하며 그 후손의 영혼들을 먹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이 여자들은 모든 것을 아버지께 드렸다. 당연히 자기의 자식들도 아버지께 드렸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마침내 그 여인들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셨다. 왜냐하면 그 여자들은 자신의 의를 따르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의만을 원하며 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그 택하신 교회에 계시를 주신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교회는 오직 거룩한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며 나간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도 계시를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더럽고 악한 자들의 핏줄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의 핏줄을 통해서 오셨다.
마찬가지로 신약에서 약속된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교회의 예비를 통해서 오실 것이다. 교회는 오직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의 의와 거룩함을 이루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아버지의 택함이라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거룩에 이르고자 애써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약의 핏줄들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을 따라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들의 마음 안에 심긴 죄의 뿌리를 뽑아주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의와 거룩에 이른다.
거듭남이라는 택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누구나 아버지의 뜻인 의와 거룩을 이루기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복을 얻게 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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