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杜甫)-강촌2(羌村)
晚歲迫偷生(만세박투생) 늘그막에 쫓기듯 구차히 사노라니
還家少歡趣(환가소환취) 집에 돌아와도 즐거움이 적구나
嬌兒不離膝(교아불리슬) 어리광 부리는 아이 무릎을 뜨지 않음은
畏我復却去(외아부각거) 아비 다시 가버릴까 두려워함이리라
憶昔好追凉(억석호추량) 시원한 바람 쐬던 옛날 일 생각나서
故繞池邊樹(고요지변수) 일부러 못 가 숲을 거닐어 보았으나
蕭蕭北風勁(소소북풍경) 쓸쓸한 북풍만 세차네
撫事煎百慮(무사전백려) 온갖 일 온갖 시름에 가슴만 타고
賴知禾黍收(뇌지화서수) 다행히 가을 곡식은 거둔 듯 하고
已覺糟床注(이각조상주) 술 거르는 소리 들린다
如今足斟酌(여금족참작) 이러한 때는 술이나 마심직하니
且用慰遲暮(차용위지모) 이로써 잠시 또 늙음을 달래노라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동정호(둥팅호)에서 사망] 시인은 중국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인데,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선(詩仙)이라 불린 이백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주로 낭만적이고 호방한 시를 쓴 이백과 달리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두보는 인간의 심리를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현실을 반영한 서사시와 서정시를 주로 썼는데, 안녹산의 난 등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과 산하를 노래하여 역사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시를 많이 쓰기도 하였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북정(北征)”,“추흥(秋興)” 등이 있습니다.
*두보는 비록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지만 전란이 끝난 후 친구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사천성(쓰촨성) 성도(청두)에 완화초당을 짓고 농사지으며 전원생활을 하며 오랜만에 여유가 생기는 생활을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위 시는 한문학계의 원로이신 손종섭 선생님의 “노래로 읽는 당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羌村(강촌) : 두보의 처자가 피난해 있던 부주의 마을 이름
迫偷生(박투생) : 구차히 살아가기에 쫓김
歡趣(환취) : 즐거운 맛
追凉(추량) : 시원한 바람을 쐼, 납량納凉
撫事(무사) : 온갖 일을 생각함
煎百慮(전백려) : 온갖 시름에 애가 탐
賴知(뇌지) : 다행히 앎
禾黍(화서) : 벼와 기장, 收는 수확함
已覺糟床注(이각조상주) : 벌써 쳇불에서 술 내리는 소리를 들음, 糟床은 술을 거르는 장치
如今足斟酌(여금족참작) :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지금과 같은 때를 술을 마심으로써 마음을 달랠 만도 하다는 뜻, 足은 족히, 斟酌은 잔질함
遲暮(지모) : 늘그막, 만년晩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