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상에서 현명하게 살다간 사람은 누구인가?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돈에 대한 집착이고, 권력과 명성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다.
하나만 만족해도 되는 데 온갖 것을 다 갖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그 돈에 걸맞게 감투를 써야 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어떤 상징, 늦게 만학도가 되어 학위를 취득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말 그대로 쉬운 일이 아니니까, 시인이나 수필가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이름이 나면 그만큼 좋아지는 것일까? 루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단지 친구들에게만 그 존재가 알려진 사람의 운명만큼 행복한 운명은 없다고 생각한다.“ 루소가 그의 친구인 르니에프에게 한 말이다.
조금 유명한 것이 가장 살기에 편하다. 익명匿名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도 편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 나와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다가 보면 조금씩 자기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을,
그렇다면 과연 명성이나 재물이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일까? 나는 살루스티우스가<카탈리나>에서 말한 그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재산(富)이나 아름다움(美)이 주는 명성名聲은 덧없고 부서지기 쉽다. 정신적인 우수성은 찬란하고 영원한 재산이다.”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데,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도 그와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내가 왜, 이이야기를 하는가? 여러분에게 내가 왜 악명을 듣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가장 어리석을 뿐이며, 그다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더 현명하고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시인은 지혜가 있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소질과 영감에 의해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자나 점쟁이와 같습니다.
나에게는 시인들도 점쟁이나 예언자와 거의 같은 경우에 속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은 시를 쓴다는 것을 믿고 다른 일에 대해서도, 사실을 그렇지 않건만,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내가 정치가들보다 우월한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에 그들보다는 우월하다는 것을 믿으며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장인匠人들을 찾아갔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장인들은 많은 훌륭한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나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많은 일을 알고 있었고, 이 점에서는 그들은 확실히 나보다 더 현명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장인들까지도 시인과 마찬가지의 잘못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기술자들이므로 자신들이 모든 종류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결점이 그들의 지혜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탁을 대신해서 나는 그들과 같은 지식도 그들과 같은 무지도 같지 않고 현재와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좋은가, 또는 그들처럼 두 가지를 다 갖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을 자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과 신탁에 대해 현재와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와 같은 탐구로 말미암아 나는 최악의, 그리고 가장 위험한 적을 만들었으며, 또한 많은 비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현인賢人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자 한 지혜를 나 자신은 갖고 있으리라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사실은 오직 신만이 현명합니다. 신은 신탁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는 보잘 것 없거나 전혀 가치 없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이름을 예로써 든데 지나지 않으며, 말하자면, 신은,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그의 지혜가 사실은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신의 뜻을 좇아 세상을 돌아다니며,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지혜를 조사 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현명하지 못하면 나는 신탁을 옹호하여 그에게 현명하지 못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공공의 관심사에 대해서나, 나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나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에 대한 봉사로 말미암아 나는 극단적인 가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일부분이다.
나 역시 이 세상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물 중의 하나라는 것,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다가 누구나 가는 그 길을 예외 없이 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 지상에서 겸허하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후회 없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명성이란 무엇인가? 가수의 오래된 낡은 옷 위에 번쩍이는 기운 헝겊 조각“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시인인 푸시킨의 말이 얼마나 지당한 말인가?
2025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