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기 황진이에 대하여
요즘 삶방의 나의 고향이며 나의 글을 쓸 수있는 유일한 공간인데 이거 자주 못 들어오니
죄를 지은 사람 같으며 대화의 소통도 못하니 미안합니다 나이 먹은 늙은이가 주책없이
그 어려운 고전문학과 시 문학에 열심히 하느라고 못 들어오고 있습니다.이제 1개월이
남았습니다 어려우며 갈수록 재미 있고 보람도 느낌니다. 깊은 양지를 하여 주시기를 ...
그 죄책감으로 힘들게 하고 있는 고전문학의 이야기를 하여 볼 까 합니다. 황진이는 우리
국문학사에 고산 윤선도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에 어깨를 겨루는 조선의 당대의 여류
시인이며 문장가입니다. 황진이는 조선중기 개성의 명기 본명은 진량(眞娘)이며 개성출신
아버지는 황진사이며 그녀의 어머니가 기녀여서 기녀의 몸을 빌려 태어 났다는 이유로 신
분이 그녀의 명월(明月)이이다.
당대의 최고의 기녀의 미모로 태어나 사뭇남성들의 사대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한여
성으로 기녀가 아니였다면 아마도 당대의 불세출의 명분장가로 문학계에서 주름을 잡았
을 것이다. 그와 동거를 같이 했다는 이야기로는 유학자 지족선사 서경덕, 담양의 면안정
송순, 이언방,소세양이며 백호임제는 평안도 어느 산골에서 그녀의묘소에서 시조 한 수로 남기
고 있다.
청산리(靑山里) 벽계수(碧溪水)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萬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쩌리
이 시조에서 벽계수는 청산과 푸른 시내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벽계수(碧溪守)하면 왕가의 친척
으로 관직명으로 정4품이며 실제 이름은 이창곤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님과 아름다운 벽계수
계곡의 물이라는 중의법으로 글을 지은 것이다. 여기서 이창곤의 호이기도 하며 경관이 아름다운
경치 좋은 계곡이기도 한다. 벽개수라는 근엄하여 다른 여자를 절대로 가까히 하지 않는다 하여
개성의 만월대를 산책하는데 이것을 알고 황진이가 이 노래로 벽계수의 마음을 떠 보았다 한다.
당대의 맑은 청산인 벽계와 미모의 여인 기생의 명월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었으며 벽계수를
유혹하는수단으로 읊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유한성과 인생 무상을 자연의 이치에 비유함으로
깊은 의미를 다해주고 있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디
월침(月枕)삼경에 온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이 시조는 만중운산(萬中雲山)에 '어느님오리오마는/지는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하노라'라고 화답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사이이지만 이성으로 은근히 대하는것은 서경덕이나 황진이나 다름이 없다.
당대의고매한 서경덕과 총명한 황진이의 연정히 그리면서도 화답한 것은 체념하면서도 속으로 더욱 간
절한 애정이 담고 있다.
☎ 이 글의 자료는 '시조가사 '류인석'교수님의 순천대학교 교수님의 책에서 참고 하였으며 통신대 고전시가
강독을 참고 하였슴을 알려드림니다 조금이라도 고전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황진이는 요즘치면 월드스타.
우리는 월드 스타를 몰라보고 기생으로 치부해.
감사합니다
조선시대 여류문인으로는 황진이와 허나설헌을 최고로 치지요
문장이 사대부들의 뺨을 치지요 그래도 사대부들의 상대를 할수있는 가녀들이 시와 서 가무등의
자질이 훌륭하여 국문학사에 기녀들의 문장이 30 여수 보존하고 있습니다
벽계수는 화담 선생에 비해 인간적이라 여겨져요
재기와 미색에 빠진다는 거
시를 알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거만 봐도 전 벽계수를 화담보다 높이 삽니다 ㅎㅎ
운선작가님 자주 들어오지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번에 공부를 하다보니 벽계수가 호이며 수자를 水자를 쓰면 자연경과이고 수(守)를
쓰면 벼슬이름이랍니다 그래서 호이자 벼슬이름이며 벽계수 자연인의이름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고전문학을 좀더 심도있게 공부를 하는거 같습니다 또다른 황진이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에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 하노라.
--------------------------------------------------------- 백호 임 제
박시인님 녹음방초가 우거진 좋은 계절에 잘지내십니까?
교과서에도 없는 백호 임제 선생님의 시한수로 화답합니다
열다섯 아리다운 아가씨 十 五 越 溪 女
남 부끄러워 말 못하고 헤어졌고야 羞 人 無 語 別
돌아와 중문을 닫고서는 歸 來 掩 重 門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흘리네 泣 向 梨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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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의 사모의 일차대상입니다
현새애도 남성이라면 누구나 품어보고져 하는 미모의 여성이 아닌가 합니다
시잘하지 문장가이지 ........
감사합니다
시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지만,
그녀의 시 몇 수는 늘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빼어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자연과 사랑울 노래함에 있어
전체를 관통하면서도 표현의 절제 속에 디테일함마져 느껴지는 통찰력과 감성이 놀랍습니다.
화담 서경덕, 백호 임제 선생의 시를 통하여 추측할 수 있는바,
학자들과도 가히 세상과 삶에 대한 가치를 논할 정도의 분이 아니셨을까 생각합니다.
그분의 시조는 시조 특유의 운율과 더불어 묘한 끌림이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감히 친구가 되고 싶은 분입니다~~~ ㅎ
감사합니다
저도 조금 고전문학을 한다고 떠들어되어서 그렇지 시에 문외한입니다
당대의 훌륭한 내놓아라하는 사대블이 주로 미모와 재색을 겸비한 여류시인 황진이는
아무나 같이 상대를 하여주지를 않지요
그의 시조와 문학성은 천재의 수준입니다 그러한 작품들이 남아서 국문학에 빛을 보고
문학을 하는 보람을 느끼지요
요즘 국문학 공부에 한창 물이 오르신 것 같습니다.
그 덕에 삶방의 문학수준도 더 높아진 것 같구요.
오랜만에 황진이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네요.
늘 건강하셔서 학문의 뜻을 골고루 펼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냥 심심하여 노후의 시간을 보내는 수준이지요
삶방에서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문학은 우리인간들의 삶의 정신적인 수준을
놓여서 문화강국으로 가야한다고 보아짐니다
지금은 각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투어 문학관을 짓고 시비들을 세워서 관광객들의 유치와 자기지방을알리는
형국입니다 가요의 자기지방의 인기를 누렸던 노래비들도 많이 세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진이는 맨 처음 어는 남자한테 정을 주고
죽도록 사랑을 했는데
어라 그 남자가 배신을 했다(양반)
그래서 그 후로는 철저하게 양반들을 농락하였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그때당시에 기녀라는게 신분이 천민신분이어서 사대부들의 노래개 감이지요
그러면서 글잘하는 문장가들의 눈에는 기녀들이 재와 색을 겸비하고 문학적으로 상대가
되는 상대면 아주 좋았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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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부럽습니다 옆지기가 황진이 정도라 아이구 만복중에 상파라자입니다
내몸이 다ㅣ망가지도록 잘 받드십시요 그래야 가정이 만산형통입니다
부모님의 복이요 하늘의 복을 주심입니다 축하합니다
평생토록 행복하시기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원래가 학문을 좋아합니다
특히 이렇게 좋아할지는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가서는 평생 책속에 살았습니다 그게 공직을 은퇴하여서도 이렇게 노후를 시가을 보내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아주 정신건강이 아주 좋습니다 나이들었어도 정신이 쇄락하고 맑아짐니다
누구나 자기의 노후의 취미생활에 몰두를 하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