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목사들이 신자들에게 '뭐를 하라 하지마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자기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지 그 진면목에 대해서 말하지 않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성경은
1. 사례를 보여주거나
2. 선지자나 대언자를 통하여 직접 지시하거나
3. 예언적 서사를 통해 미래에 있을 일을 서술하고 그 안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방법
을 사용하신다.
문제로 돌아가서 십일조를 기다 아니다 얘기하는 것 자체의 뿌리 부분을 더듬어보자.
성경의 사례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뭘 어쨌으니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하는 것은 넌센스다. 아브라함이 전쟁을 해서 전리품을 얻은 것 가운데 십의 일조를 했으면 우리도 전쟁을 해서 전리품을 얻어야 하는가? 넌센스다.
01. 헌법과 나라
법이라는 것은 관계하는 방식을 정의하는 계약이다. 이스라엘 곧 유대인의 나라인 법은 태생적으로 속인주의 성격을 갖는다(그러므로 시오니즘을 부르짖는 유대인의 특성은 근시안적 안목이다). 유대인은 요셉의 초청으로 이집트 치하에서 수백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성장한 민족이다. 이집트 나라에 속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 가운데로 끌고 나오시고 이 때 법을 주셨다(계약을 하셨다). 곧 십계명을 주요 축으로 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에 맺어진 계약이다.
십계명을 분해해보면 크게 ❶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 ❷백성들끼리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후에 '토라'라고 해서 사회가 발전하고 분화함에 따라 기능적으로 율법의 체계가 보완되어졌다. 간략 정의하자면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의 법이다.
이스라엘에게는 토라가 헌법이었듯이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대한민국 헌법이 적용된다. 당연하다. 물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끼리, 사람과 법인이, 법인과 법인이 관계하면서 민법, 상법, 형법 등등으로 많은 법이 발전했지만 원칙적으로 법이라는 것은 충돌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끼리 관계하는 규칙을 정해놓고 법을 위반했다 안했다등을 따지는 일종의 사회 계약이다.
그러므로 '죄'라는 개념은 이 관계하는 규칙에 비추어 잘했다(법을 지켰다) 안했다(법을 어겼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02. 유대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바뀐 하나님의 선택
예수님이 오셨다. 그분께서는 유대나라의 왕으로 오신게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셨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신다고 선포하시고 거기 가운데로 백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방법을 썼다.
일반적으로 유대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유대인 혈통 가운데서 태어나 '할례'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정된다. 이 점은 당시 사회가 여자라는 성별은 숫자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이 할례는 하나님이 선택했음을 인정하는 일종의 속인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든지 말든지 할례를 했으면 그냥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인 이스라엘의 구성원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는 수천년 역사적 고요가운데 도도히 유지되어 온 메시아 국가의 도래라는 인류사적 의미를 갖는 지대한 사건이었는 바 세례 요한은 그 침묵의 역사 속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눈앞에서 펼쳐지는도다"라고 포효한다.
그러나 왠걸 이 하나님나라의 국민 되는 자격은 몹시도 어렵다. 전에는 그냥 태어나면 자동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되었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제시한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가지는 일은 꽤 난해(?)하다.
회개를 하고 세례(침례)를 받으라.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하나님 나라 국민 자격을 얻게 된다.
전술에서 '속인주의'라는 낱말을 썼는데 이는 원래 하나님의 인류사적 의도였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 표현도 이와 일맥 상통한다. 또한 다윗이 성막을 걷어 치우고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도 사실 이와 일맥 상통하는 개념이다. 하나님의 원래 의도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고 '사람 안에' 있고자 하는 것이다.
; 성막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 옮겨다니는 곳마다 함께 옮겨 다니겠다는 의지이다. 그런데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내는 성막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따라 옮겨 다닐 수 있으나 성전을 지어버리면 백성이 거기에 안주해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의 인도는 통하지 않는 상태로 바뀐다.
03.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방법
이 글의 원래 목적이 십일조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이스라엘의 토라인 십일조는 원래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법 규정이다. 다만 그 법적 정서는 십일조가 백성들 가운데 어려운이를 돌보고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제사장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공물적 성격을 갖는다는데서 굉장히 차원이 높은 법이다.
사실 신약 어디에서고 십일조를 강조하거나 돈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낸 사례는 없다. 예수님 또한 돈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규정한 명령이 없으셨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돈에 대하여 결백증을 보일 정도로 상당히 경계하는 입장을 보인다.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바울은 어려움에 빠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각 지역 교회들에 모금할 것을 격려하고 다만 자신의 눈앞에서 돈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낸다. 돈에 대해서는 자신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의 돈에 대한 관점 또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예수님의 방법은 상당히 난해하기 짝이 없다. 회개하고 죄의 사함을 받은 뒤에 침례를 받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거듭나서 성령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갖게 된다. 이는 교회 내부 사람들 끼리의 관계성을 엄격히 하는 규칙인 동시에 '성령으로 하나 됨'을 유지하는 변할 수 없는 규칙이다. 이는 바울이 전도 여행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을 만나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는 장면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다른말로 하면 단지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서는 '교회'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후에야 하나가 됨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바울의 고린도3차 여행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 또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각국의 유대인들이 모였을 때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하루에 수천명씩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사건이 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국적을 갖을 수 없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04. 이스라엘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이스라엘 나라 사람이 아니다. 이스라엘 나라이 되는 방법은 할례 의식을 통해서 외면적 표식으로 가능하지만 하나님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은 할례나 기타 어떤 외면적 표식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오직 성령을 받았는가?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한 내면적인 것이다.
혹자는 성령을 받는 것을 이상한 중얼거림으로 정신없이 몇시간씩 기도하는 것이라든지 기타 오컬트적 표징 따위로 정의하지만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방식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방식'을 사람의 내면에서 돕는 하나님의 원천적 힘이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거룩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성령을 받은 사람의 결과가 삶에서 나타나는 방식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결과)를 관찰하면 굉장히 이해가 쉽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베풀고, 인내하고, 자비하고, 온유하며, 절제하고, 기쁨의 당자가 된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령이 그 안에서 충분히 작용하고 계심을 보아 알 수 있다.
십일조라는 것은 이와 같이 법적 정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공의적 특성에서는 부합하지만 이미 폐기된 유대나라의 법이며 시효가 끝난 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스라엘 나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유대나라는 세례요한 때 까지'라고 못을 박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대나라의 시효(사용 종료)를 선언 하셨다.
이것을 이제와서 뒤집어 십일조를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정신없는 넌센스다. 거짓선지자는 자신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분별하는 능력도 없거니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십계명의 상위 단계 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선지자는 그 어떤 존재보다 가장 먼저 처벌을 받고 불구덩이로 떨어져 무려 천년동안이나 고통을 당하고서야 심판의 날을 맞게됨에 유의해야 한다. 목사짓이고 뭐고 그것이 두렵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할 일이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가 유대 나라의 백성인가?
첫댓글 오랫만에 명쾌한 글을 대합니다.
맞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고 전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십일조를 걷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통이 아닌 전통으로 내려온 것이 틀리다면 반드시 버려야됩니다.
(신 29:17-20_우리말성경)
17 너희가 그들 가운데서 가증스러운 형상들과 나무와 돌과 은과 금으로 만든 우상들을 보았으니
18 너희는 명심해 남자나 여자나 일족이나 지파나 오늘 너희 가운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마음이 떠나 다른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에게로 가서 경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 독초와 쑥을 만들어 내는 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19 그런 사람은 이런 저주의 말을 듣고도 스스로를 축복하며 ‘내가 내 마음의 상상대로 해 죄악을 물같이 마실지라도 내게 평안이 있을 것이다’ 할 것이다.
20 여호와께서는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분의 진노와 그분의 질투가 그 사람을 향해 불타올라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들이 그에게 떨어질 것이고 여호와께서는 그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