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신갈나무처럼
- 양선희
몸을 침범하는 벌레를
중심을 어지럽히는 곰팡이를
속을 갉아먹는 나무좀을
그 속에 둥지 트는 다람쥐나 새를
용서하니
동공이 생기는구나
바람을 저항할 힘을 선사하는
-『그 인연에 울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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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 1960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가 당선되었다.
시집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와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를 펴냈으며,
이명세 감독과 영화 의 각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에세이로는 『엄마 냄새』, 『힐링 커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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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하며>
지난여름은 지독한 불볕이었다.
그 중에도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불길하고 끔찍한 뉴스들이었다.
세상 어디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아도 더러운 악취가 새어나왔다.
시정신이 없는 혼탁한 기회주의 시인을 향해 어떤 시는 “이 땅은 방부제도 썩었다”라고 탄식했다.
신갈나무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 이파리를 짚신의 신발창처럼 갈아 쓴다하여 신갈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참나무 잎으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할 것 같다.
온갖 설익은 말, 벌레 먹은 말, 끔찍하고 억지스러운 말,
다 가리고 크게 다시 숨 쉬고 용서하고,
가을 밤 하늘에 새로 떠오르는 처녀별 같은 그런 시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싱싱한 생명의 시를 골라 배달하겠다고 했던
첫 인사말이 떠올라 가슴 아릿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