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속에서 모시는 당신은 삼신으로 표현하였다. 3에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이정웅씨의 글은 제천단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으나 찾지 못하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2003년에는 동봉의 본래 이름을 찾아주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더하여서 중봉에 대한 관심도 무척 높아졌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그 때에 장방형의 돌무지가 발견됨으로 제천의식을 올린 제천단을 발견하였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신문기사가 난 이유는 ‘모씨’가 일방적으로 제천단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팔공산을 부계면 쪽에서 바라보면 가파른 바위 벽에 가로막혀 동봉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를 부계면 사람들은 장군봉이라고 불렀다. 이 장군봉을 산봉의 본 이름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삼국사기에서 중사(中祀)라고 말하는 것은 제천의례를 치루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신은 원래 토지신의 성격이 강하다. 산신제를 올릴 때는 토지신의 요소가 더 강하지만 천신에 대한 개념도 일부 혼합되어 있다. 굳이 지신이니 천신이니를 따지지 않고, 그냥 신의 개념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보았다. 그러나 팔공산의 제사의례는 천신제는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렇다면 팔공산의 정상에 있는 사각 형태의 돌무지는 천신제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사각형과 하늘도 어울리지 않는 도상이다.
하늘의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산의 정상에 단을 쌓는 경우가 많다. 태백산에도, 강화도의 마니산에도 산의 정상에 제천단이 있다. 우리나라가 제천의례를 올리는 기본 원리는 삼신(三神)이라고 하였다(박성주). 천신이 하강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산의 정상이 바로 제천의례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강한 곳인 태백산 정상이 곧 제천단을 설치하는 장소가 된다.
천지인(天地人) 즉 삼재(三才) 사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천신이 하강하는 장소는 산 봉우리가 세 개인 산을 대상으로 하였다. 소위 삼위태백(三危太白)이라 하여 삼봉의 산을 신성시 하였다.(박성주)
우리 선조의 세계관은 동북방 몽고와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과 태양숭배사상이 결합된 것이다. 이들은 수렵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우주를 삼계(三界)로 봄으로 3의 수에 신성을 부여하였다. 이로서 3으로 분화되는 3수(三數)문화를 형성하였다. 일(一)이 삼(三)으로 분화함으로 우주를 형성한다. 이로서 삼신사상, 삼재론이 태어났다. 다시 3의 곱수인 9는 이 세상의(인간세상읭) 가장 높은 수가 되고, 9보다 높은 0은(10) 완전무결한 절대수가 된다.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수는 9이고, 10은 신의 수이다. 3에 대한 아주 강한 친화력이 이루어지면서 3수 문화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사상이 되었다.
우리나ᄅᆞ 3수 문화에 깊숙이 빠져 있다고 하여 천신제를 올렸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천신제를 올렸으면, 올렸다는 근거를, 아니면 아니라는 반박 자료를 제시해야 하리라. 그런 자료의 제시는 없이 논쟁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나라는 토지신인 산신에게 의례(산신제)를 올릴 때 하늘의 의미도 일부 담겨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