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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3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빌 3:1-9 /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 0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0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0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0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0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06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0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0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0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오늘 말씀
지난주 평안하셨나요? 오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죠.
1.“0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기뻐하라고 하였을까요?
2장부터의 흐름으로 보면,
①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옥중에 갇혀있지만 빌립보교회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날에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있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빌립보교회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자신이 제물로 바쳐져 죽는다고 할지라도 기뻐하라고 하였으며(2:12-18) 이 말씀의 연장으로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② 동역자로 일하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말하였습니다. 든든한 일꾼으로 일하는 그들이 사도 바울 자신과 빌립보교회를 연결해주면서 좋은 소식을 보내올 것이기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19-30).
③ 3장 지금부터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 즉 탁월하기 때문에 예수를 위한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이며,
가치가 있는 예수를 위해 죽어 부활에 이르려는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기에 기뻐하며 적들과 싸워 이겨내고, 기뻐하며 고난도 이겨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오늘 우리에게는 세 번째가 의미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가장 가치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며 적들과 싸워 이겨내고, 고난이 있어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0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사도 바울은 다른 교회에 말했던 것처럼 빌립보교회에게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권면의 말씀은 율법주의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① 개들을 삼가고 - 개들은 사납고 때론 더럽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사납고 덤벼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 악한 일꾼들이라는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100% 행할 수가 없기에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③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 다른 번역(개역성경)은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참신을 가리는 경쟁을 했습니다. 850대1의 싸움에서 이 거짓신을 믿는 자들을 엘리야는 비웃으며 잠을 자는지 다른 곳에 갔는지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자신들의 몸을 상해하면서 신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과 같이 율법에도 없는 이방제사에서 행하는 자신의 몸을 베면서 드리는 제사를 따라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 율법주의자들은 사도 바울의 적대자로 사도 바울을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공격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였고, 사도 바울의 사도직을 부인하고, 복음을 공격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 오늘날에는 여러 이단들이 성경과 복음을 왜곡하고, 교회를 왜곡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단 신천지는 교회의 성도인척까지 하면서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가진 사악함이 드러나는 증거입니다.
이런 개들을 우리는 조심하며 우리의 신앙을 수호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3.“0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진정한 할례파는 육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①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기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②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어지는 은혜와 사랑을 자랑합니다.
③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육체(헬, 사르키)는 몸, 인간의 성품, 타락한 본성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로움을 얻을 수 없는 의식, 지식, 노력, 자랑을 말합니다. 이런 육체를 신뢰하면 안됩니다.
→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4.“0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0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06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도 바울은 자신도 율법적이고 육체적인 면으로 따지자면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①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 유대인들은 태어나서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방인은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일 때 유대인이 되는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 어머니가 낳았으며,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② 이스라엘 족속이요 – 이스라엘은 이삭의 아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후에 얻은 이름이며, 하나님과 약속을 맺은 언약 백성,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민족(성민)이라는 것입니다.
③ 베냐민 지파요 – 야곱이 사랑한 라헬을 통해 얻은 자녀는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요셉지파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 지파로 나뉘어져 큰 복을 받았고, 베냐민은 막내로서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베냐민 지파에서는 역사적 인물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 왕이 있었고, 하만의 계략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또한 베냐민 지파는 유다지파와 다른 지파들이 나뉘어져 분열하였을 때 유다지파를 도와 다윗 왕조에 신실하게 충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할 때 유다지파와 함께 돌아와 예루살렘으로 가서 나라를 재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라는 것은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자부심이요 명예입니다.
④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 히브리는 헤브루 Hebrew를 번역한 말인데, 그 뜻은 강을 건너온 자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인데, 이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 주변의 늪이나 호수 지역에 거주하였던 유목민들이 사는 곳이었으며, 아람(시리아)족에 속하는 한 분파들이 살았던 지역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강을 건너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왔으며, 이를 가리켜 히브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요셉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들을 구별하여 히브리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고, 노예가 되었을 때는 하비루라는 하층계급처럼 경멸의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향하던 목적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따라 사는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성민)을 말할 때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혈통적으로 히브리인이며, 유대인 방식으로, 그리고 히브리말로 양육을 받은 순수한 히브리인이라는 것입니다.
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리새는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파라쉬’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잘못된 세상과 분리하여 말씀을 지키고 거룩함을 추구하려는 파입니다.
이 바리새파의 전통은 하시딤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하시딤은 헬라화하려는 것에 대하여 저항하며 싸웠습니다. 알렉산더 이후에 휘하 장군들에 의해 세워진 헬라제국은 헬라화를 꾀하였습니다.
헬라화는 동양과 서양의 모든 것들을 서로 섞이게 하여 하나의 모습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섞여 발전하려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지켜야 할 믿음과 영성 마져 잃어버리게 만드는 세속화하려는 전통입니다.
하시딤은 이런 헬라화 정책과 맞서 싸우는 경건한 사람들이었고, 성경에 나타나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풀무불과 사자굴 속에 들어간다고 해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며 싸웠고,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헬레니즘과 반대되는 시오니즘을 강조하는 하시딤의 유산으로부터 바리새파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정책과 싸우며 신앙의 유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바리새파의 최고의 스승인 랍비 위에 있는 랍바 가말리엘이란 스승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바리새파입니다.
B.C.1세기경에 바리새파는 온건하게 율법을 지키려는 힐렐 학파와 완고하게 율법을 지키려는 샴마이학파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초기에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는 역할에 산헤드린의 꼭두각시로 등장하여 과격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완고하게 율법을 지키려는 샴마이학파가 아닐까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⑥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산헤드린 공회의 꼭두각시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역할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으로서 자신들이 지켜온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명령들과 기준들을 철저히 지킴으로 의를 얻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이렇게 사도 바울은 세상적으로, 율법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와 믿음의 소중함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해로 여겼고,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많은 자랑거리들이 있습니다. 돈, 지식, 명예, 집안, 전통, 다양한 능력, 소속 집단, 건강... 하지만 이런 내세울만한 모든 자랑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랑거리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설명한다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 성령을 통한 회개와 믿음,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전통 등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는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이며,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으며, 가치로 인정되며, 상급으로 연결이 됩니다.
(예) 노벨상이 생긴 이유
1833년에 스웨덴에서 노벨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조간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인즉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기자가 동명이인을 잘못 알고 “노벨이 죽었다” 하니까 그 노벨인 줄 알고 당장 ‘노벨 사망하다’ 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고 되어 있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 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노벨은 마음속으로 깨닫고 결단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 이렇게 삶을 다르게 보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는 시각을 바꿔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며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