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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8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땅에 무언가를 쓰고 지우듯이
옛날 시골에 가면 서낭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여러 가지 색깔을 한 천을 새끼줄에 달아놓고,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낭당의 돌무더기에 돌을 던져 놓으면서 무병장수를 빌거나 소원을 말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돌멩이를 하나 둘씩 던져 놓은 것이 오래 되면 돌무더기가 되어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낭당은 적들이 쳐들어오면 돌멩이를 던져 방어하는데 쓸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놓은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서낭당에 있는 돌무더기는 사람을 때리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동네에 들어올지 모르는 잡귀와 악귀를 물리치기 위한 돌멩이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돌들이 모여서 큰 돌탑이 되듯이 사람들의 정성과 소원이 모여서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작은 돌탑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서낭당에서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굿이 벌어졌고, 시루떡이나 과일들이 놓여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배고프던 어린 시절에 많이 주워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율법에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거나 죄를 지은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는 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서 처형되었다면 분명 돌에 맞아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선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돌에 맞으실 뻔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돌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첫 번째의 순교성인 스테파노 성인도 돌에 맞아 순교하셨지 않습니까? 죄지은 사람을 큰 운동장 같은 곳 가운데에 세워놓고 성난 군중이 큰 돌멩이와 작은 돌멩이를 던져 사람을 때려죽이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형벌을 당하고 상대방 남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 율법의 정의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다그칩니다. ‘단죄를 내려 주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올가미를 씌우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만약 율법에 따라서 ‘돌로 쳐 죽이라!’고 한다면 ‘사랑과 용서를 설교하는 자가 죽이라고 한다.’고 트집을 잡을 것이고, ‘살려주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또 트집을 잡을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고 합니다. 아마 무언가를 쓰셨다면 틀림없이 발로 지우실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쓰셨는지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쓰시고 지우실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그 여인의 죄를 기록하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지우고 용서해 주시고 단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상징하고 계신 것입니다. 무언가를 쓰신다는 것은 지울 것이라는 것도 묵언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채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사실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죄는 하느님께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계획에 어긋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대부분은 사람에게 잘못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사람에게는 잘못(error)이고 하느님에게는 죄(sin)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이중성은 이래서 생깁니다. 사극을 보면 사또가 죄인을 보고 “네가 네 죄를 알렸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하느님에게 죄를 지은 것과 사람에게 잘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람에게 용서를 받아도 하느님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용서를 받지 못한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 하느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주님의 기도에서와 같이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순결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돌멩이를 버리고 그 자리를 물러났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반성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먹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간음한 여인이 딸이나 손녀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질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당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비로소 땅바닥에 썼던 것을 모두 지우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녀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용서하는 마음을 이끌어 내시기를 더 바라셨기 때문에 땅에 무언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아! 용서하라! 내가 땅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듯 이웃을 용서하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3,1-9.15-17.19-30.33-62
그 무렵 1 바빌론에 요야킴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2 그는 수산나라고 하는 힐키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3 수산나의 부모는 의로운 이들로서 그 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교육시켰다.
4 한편 요야킴은 아주 부유한 사람으로서 넓은 정원이 그의 집에 맞붙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늘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5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빌론에서,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재판관인 원로들에게서 죄악이 나왔다.”
6 그들이 줄곧 요야킴의 집에 있었으므로, 소송거리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리로 그들을 찾아갔다.
7 한낮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수산나는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다.
8 그렇게 그곳에 들어가 거니는 수산나를 매일 눈여겨본 그 두 원로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게 되었다.
9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린 채, 의로운 판결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15 그들이 알맞은 날을 엿보고 있을 때, 수산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녀 둘만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이 무더웠으므로 그곳에서 목욕을 하려고 하였다.
16 거기에는 숨어서 수산나를 엿보는 그 두 원로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17 수산나는 하녀들에게, “내가 목욕을 하게 올리브 기름과 물분을 가져오고
정원 문들을 닫아걸어라.” 하고 말하였다.
19 하녀들이 나가자마자 두 원로는 일어나서 수산나에게 달려가
20 말하였다. “자, 정원 문들은 잠겼고 우리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소.
우리는 당신을 간절히 원하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함께 잡시다.
21 그러지 않으면, 어떤 젊은이가 당신과 함께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당신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소.”
22 수산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꼼짝 못할 곤경에 빠졌소. 그렇게 하면 그것은 나에게 죽음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오.
23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편이 더 낫소.”
24 그러고 나서 수산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두 원로도 수산나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더니,
25 그 가운데 하나가 달려가서 정원 문들을 열어젖혔다.
26 집에 있던 사람들이 정원에서 나는 고함 소리를 듣고, 옆문으로 뛰어들어 가 수산나에게 일어난 일을 보았다.
27 원로들이 저희 쪽의 이야기를 하자 하인들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수산나를 두고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28 다음 날, 수산나의 남편 요야킴의 집으로 백성이 모여들 때,
그 두 원로는 수산나를 죽이겠다는 악한 생각을 가득 품고서 그리로 갔다.
29 그들이 백성 앞에서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요야킴의 아내, 힐키야의 딸 수산나를 데려오게 하시오.”
그러자 백성이 사람을 보냈다.
30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모든 친척과 함께 나왔다.
33 그러자 수산나 곁에 있던 이들과 그를 보는 이들이 모두 울었다.
34 그 두 원로는 일어나 백성 한가운데에서 수산나의 머리에 자기들의 손을 얹었다.
35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 그 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단둘이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이 여자가 여종 둘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가더니, 정원 문들을 닫아걸고서는 여종들을 내보냈소.
37 그때에 숨어 있던 젊은이 하나가 이 여자에게 가더니 함께 누웠소.
38 정원 구석에 있던 우리는 그 죄악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들에게 달려갔소.
39 그리고 둘이서 정을 통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자가 우리보다 힘이 세어 붙잡을 수는 없었소.
그래서 그자는 문을 열고 달아나 버렸소.
40 그 대신 이 여자를 붙들고 그 젊은이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41 이 여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소. 이것이 우리의 증언이오.”
그들이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들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축일3월 18일 성 치릴로 (Cyril)
신분 :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 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 연도 : 315?-387년
같은 이름 :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315년경 예루살렘에서 로마 제국 황제 가문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듯한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으며, 342년 또는 그 후에 성 막시무스 2세(Maximus, 5월 5일)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성 키릴루스는 수년 동안 예비신자 교육에 전념하다가 350년 또는 351년에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막시무스 2세가 사망하자 그를 승계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교계적인 관할권을 주장하던 카이사레아(Caesarea)의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이던 아카키우스(Accacius)와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는 자신의 주교좌에서 해임되고 유배를 당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성 키릴루스가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산을 매각하여 기근의 희생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회 재산을 불법으로 매각했다는 누명을 쓴 성 키릴루스는 타르수스(Tarsus)로 갔으나 359년 셀레우키아(Seleukeia) 주교회의에 의해 복직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재차 아카키우스의 음모에 의하여 황제 콘스탄티우스로부터 축출되었다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다시 복직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성 키릴루스는 367년에 세 번째로 유배되었으나, 발렌스 황제가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 유배된 모든 종교인들을 사면함으로써 석방되어 다시 주교좌로 돌아왔다.
또 다음 해에는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를 팔레스티나(Palestina)로 파견하여 그가 역설하던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로 인한 잡음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이 용어는 니케아(Nicaea) 신경의 기본 용어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예루살렘 주교좌는 파벌주의와 아리우스주의로 뒤엉켜 있고 또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성 키릴루스의 신앙과 그 주교좌는 올바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성 키릴루스와 성 그레고리우스는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여기서 성 키릴루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주교로 인정받았다.
사실 성 키릴루스는 성서학자이자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24편의 강론으로 구성된 “예비자 교리”(Catecheses)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콘스탄틴 대제가 336년 예루살렘에 완공한 성묘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er)에서 348년 사순과 부활시기에 한 강론으로 예비신자와 새 영세자들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명쾌한 지침서이자 교리 해설서이다. 또한 전례적으로도 4세기의 팔레스티나 전례를 자세히 보여주는 소중한 문헌이다. 역사가인 소크라테스와 소조멘은 성 키릴루스는 철저한 아리우스주의 반대자였고, 그의 정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387년 3월 18일에 세상을 떠난 그는 교황 비오 10세(Pius X, 1903-1914년 재위)에 의해(또는 1882/3년에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치릴로 (Cyril) 형제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