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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샘터 화랑에서 열렸던 김기철 선생님 전시 자료를 퍼왔습니다. 그때 그 전시장 분위기가 잊히질 않아서
만약에 도심 한 복판에서 문득 먼 옛날 산속 선사 주거지를 만난다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몇 년 전 지헌 김기철 선생님의 도예전시회에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전시장은 샘터 갤러리. 그곳은 샘터사 뒷문으로 나가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좁다랗고 남루한 계단 아래 작은 화랑예요. 두어 계단 쯤 내려갔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깊은 숲 향기가 부드러운 실크처럼 제 살갗에 휘감기는 거예요. 음. 이게 뭐지? 계단 밑을 보니까 김기철 선생님 사모님이 우리 일행을 올려다보며 반갑게 웃고 계셨습니다. 인사를 나누느라고 냄새에 대해선 까맣게 잊었다가 뒤이어 일행들이 내려와 왁자하게 김기철 선생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동안 전시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역시 지헌 선생님이십니다. 지헌 선생님은 정말 특별한 분입니다. 그곳에, 그 지하의 작은 공간에 곤지암의 보원요 뒷산을 고스란히 옮겨 놓으셨더군요. 마술을 부리듯이.
진열대는 모두 선생께서 직접 켜오신 송판이었어요. 켠 지 얼마 되지 않아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악시 볼빛같은 송판을 양 끝에 통나무로 괴고 진열대 밑에는 생솔가지를 작은 숲처럼 그득히 채웠더군요. 그리고 살빛 송판 위에는 곱디고운 모시천을 깔고 그 위에 도예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속살이 비치는 여인의 어깨 같은 송판과 그 위에 신화처럼 숨을 쉬는 적송빛 도자기. 물고기 연적, 연꽃 모양의 항아리, 빗살 무늬 접시, 무르익어 막 터지는 석류 모양을 한 연적, 연꽃 문양의 백자 연적, 넓은 연잎 모양의 수반에서 폴짝 뛰어오르는 개구리, 등등.
도자기들은 드문드문 놓여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솔향이 그 공간을 그윽하게 휩쌌습니다. 전시장 네 귀퉁이에는 둥글고 큼직한 항아리가 놓이고 항아리마다 줄기가 굵은 진달래 한 그루를 통째로 잘라다 꽂았는데 분홍빛 꽃잎이 만개했더군요.
그때 전 아득한 이 세상 밖의 어느 공간으로 떠밀린 듯 혼미해지고 말았지요. 황홀한 멀미! 아 이거 최민자 선생님 수필에 나오는 표현인데 그래요, 황홀한 멀미를 실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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