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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제목: 그리스도와 정혼한 교회
본문: 마1:4-18
사람은 늘 사람과 환경에 쉽게 치우친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있어도 따르지 아니하니 좌우로 치우치는 과정에서 불의와 죄를 범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없으면서도 있어도 따르지 않으면서도 치우쳐 불의와 죄를 범하면서도 가인처럼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선악을 따르는 자의 옳음은 다 불의한 것이요 불의와 죄에는 사망의 심판이 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붙들고 누리던 모든 것을 잃고 육에서 나올 때 그의 육은 사망으로 들어갈지라도 그의 손에는 선악이 남아있으니 그 죄로 인해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은 생명의 아버지와 원수 되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라고 기록한다.
반면 아버지께서 세우신 의와 뜻에는 생명이 있으며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께서는 모든 둘째사람이 인간의 의와 뜻에서 돌이키므로 의롭게 여김을 받은 후에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 아버지의 의와 뜻을 이루기 원하신다. 하지만 시대마다 의롭게 여기심을 받는 자들이 항상 소수인 이유는 인격체인 사람이 진리를 따르려면 반드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고 순종하려면 자기를 부인하는 고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벨처럼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영혼의 살과 피와 물도 항상 소수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합당한 자녀들을 많이 얻으시어 자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주시고자 그리스도의 전에 의로운 핏줄을 항상 보존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메시아를 예비하게 하셨고 또한 그들을 통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으니 의로운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의 계보가 말씀에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렇게 의로운 핏줄을 보존하시는 것은 십자가 이후에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으로 더럽혀놓은 이 땅을 회복하시어 십자가에서 지어진 한 사람과 함께 그 땅을 천 년 동안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그리하여 구약의 의로운 핏줄이 아들의 초림을 예비했듯이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에는 아버지께서 택하신 신령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이렇게 구원자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의로운 핏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족보에서 몇 가지 살펴볼 것이 있는데 우선 살몬이라는 영혼이 나온다. 마1:4-5을 보자.
여기서 살몬은 나손의 아들이다. 그리고 룻기에서도 나손의 아들인 살몬이 나온다. 룻4:20-21을 보자. 그런데 역대상에서는 나손의 아들이름이 살마로 기록되어있다. 대상2:10-11을 보자. 이처럼 나손의 아들이름은 살몬이나 살마로 나오되 동일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살몬과 살마의 이름차이는 이것이니 하나는 호적에 오른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주위사람들이 늘 부르는 이름이다. 즉 나손은 아들을 낳고 호적에 ‘살몬’이라는 이름으로 올렸고 그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은 그가 하는 행위와 또한 그의 성격을 보고 ‘살마’로 불렀으니 어디는 살몬으로 어디는 살마로 기록된 것이다.
두 번째로 족보에 아비훗이라는 영혼이 나온다. 마1:13을 보자.
아비훗은 스룹바벨의 아들이다. 그런데 스룹바벨의 아들 중에는 아비훗이 없었다. 대상3:19-20을 보자. 이 말씀에서 분명히 스룹바벨의 다섯 아들 중에 아비훗이 없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스룹바벨의 아들이 아비훗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으니 당시 스룹바벨의 다섯 형제들 가운데 마음이 깨끗하여 아버지께 의롭다고 인정받은 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스룹바벨의 늙은 나이에 아비훗을 허락해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아비훗을 의롭게 보셔서 그를 택하셨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처음의 족보인 역대상에는 아비훗이 나타나있지 않고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아비훗이 기록된 이유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열 네 대로 끊겨있다는 것이다. 마1:17을 보자.
이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원수가 택한 자식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원수는 셋째하늘에서 아버지께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와 처소를 떠났을 때 둘째하늘의 종들 가운데 자신과 같이 교만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자식들을 택했으니 그 수가 14이다. 그러므로 14라는 오직 원수의 숫자다. 그리하여 원수에게 영감을 받고 있던 성전의 서기관들이 마태가 기록한 복음을 빼앗아 바꿀 때 원수의 수를 이용해 열넷과 열넷과 열넷으로 끊고 당시 초대교회의 거룩한 자들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바꾼 자들은 구약에도 있었고 그리스도 당시에도 있었으니 서기관들은 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원하는 대로 이 죄악을 저질렀다. 하지만 말씀을 바꾸는 자에 대한 경고가 말씀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와 2천년 전과 교회시대에 말씀을 바꾼 목자들은 아버지께서 미리 경고하신 대로 이미 땅속에 있는 그 무저갱의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 있으니 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말씀을 변경하며 그들의 아비에게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독사가 자신의 새끼들을 통해 말씀을 바꿀지라도 아버지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은 그 안에서도 아버지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열네 대에 속한 자들 가운데 아버지께서 의롭게 보신 자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믿음을 바꾸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깨끗했었다. 그러므로 원수가 자신의 숫자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끊었다 할지라도 그 안에 있는 의로운 자들은 결코 끊어 낼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에 죽기까지 따르고자 하는 의롭고 거룩한 영혼들을 영원히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의롭게 여기신 자들을 원수가 자신의 영으로 끊은 족보를 보며 또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라도 그의 마음이 원수에게로 빼앗길 수도 있으며 반대로 원수가 택한 자라도 돌이켜 아버지께로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함의 은혜를 받은 영혼이 생명을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겠는가?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하며 아버지의 말씀만 의지하는 그 의로움을 잘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럴 때 오직 말씀을 따르는 자로서 어린 양의 다시 오심을 그 거룩한 피로써 예비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지체가 될 수 있다.
사람의 눈으로는 누가 원수의 택함을 받은 자이고 누가 아버지의 택함을 받은 자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런데 택하신 신령한 교회는 그것을 모르고 아무나 받으면 언제든지 더럽혀질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통해 한 몸에 거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지체들로 하여금 원수가 택한 자와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를 알아가도록 해주신다. 그러므로 원수는 아버지께서 택하신 신령한 교회를 결코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의 영광과 인간의 선악으로 더럽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있는 자들은 늘 두 가지만을 간절히 원했으니 첫째 의로운 자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왔음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께로 왔음을 알기에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의로움과 온전함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둘째 의롭다는 인정을 받으므로 아버지께 은총을 입은 자는 자신의 자손가운데 오실 이가 아버지의 아들이신 메시아임을 알았다. 이처럼 그들은 자신의 핏줄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었기에 자신과 자녀들을 오직 큰 훈계로 다스렸으며 끝까지 말씀에만 순종케 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 의로움의 핏줄이 한 순간도 끊기지 않았던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다시 보내시는 것도 이렇게 예비하시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택하시는 자들은 잘 갖추어진 강한 자들이 아니요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이다. 그래야 그들의 마음이 가난해져 썩어질 것을 내려놓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거룩케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흠 없는 살을 찢고 흘려주신 깨끗한 물과 거룩한 피밖에 없음을 믿고 의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택하신 자들이 돌이킬 때 의롭게 여기시고 애쓸 때 거룩케 해주시고 일할 때 의를 이루었다고 인정해주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렇게 마음속에서 죄의 뿌리가 뽑혀지고 거룩케 되었기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예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초대교회로부터 라오디게아교회까지 또한 아들을 다시 보내실 그 마지막 때까지 거룩한 교회의 핏줄이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게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그 의로운 핏줄의 마지막에 한 영혼을 택하셨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요셉이니 그는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육의 아비로서 의로운 일을 감당했다. 마1:18을 보자.
요셉은 메시아를 예비한 의로운 핏줄가운데 마지막 영혼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말씀으로 올라간 그 의로움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육의 아비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와 정혼한 마리아가 육의 어미로서 그 핏줄의 마지막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의로움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셉과 마리아는 둘 다 아버지께로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았으니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의와 뜻을 좇는 그 고난에 동참한 자들이었다.
어느 민족이든 나라든 정혼풍습이 있다.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의 거룩한 후손들에게 정혼의 영적인 의미를 가르쳐주시고 그 혼인풍습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부부가 될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 먼저 혼인을 약속한다. 그리고 결혼해서 함께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약혼기간 동안에 여러 가지 혼인준비를 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와 함께 살 집을 준비하는 것이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그 준비를 마칠 때까지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도 이렇게 혼인을 약속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그 정혼기간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정혼기간에 아직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처녀였으며 임신할 수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리아의 태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주시므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 사망의 머리를 상하게 할 후손을 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셨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에덴에서 둘째사람과 약속을 맺으시고 오직 의로운 핏줄을 통해 오랫동안 약속을 이어오시다 자신의 뜻과 때에 맞게 약속하신 대로 메시아를 주셨으니 우리는 아버지를 신실하신 분이라 칭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에게 정혼의 영적인 의미를 가르쳐주시고 그 풍습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둘째아담이요 그의 뼈와 살에서 나온 둘째사람은 그의 신부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정혼하고 기다렸다 혼인하고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아버지께서 택하신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정혼한 영혼들이다. 고후11:2을 보자.
거듭남의 은혜로 약속을 얻은 자는 구약이 아버지의 말씀임을 믿기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오셨음을 십자가를 보고 안다. 또한 신약도 말씀임을 믿기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새로운 약속도 이루어주심을 믿고 재림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의 거룩하고 신령한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를 만날 때 즉 심판대에서 그들의 의와 거룩이 나타나기에 거룩한 몸을 얻는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와 중매된 자들이며 어린 양의 신령한 신부라는 것은 마지막 때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정혼한 여자가 순결을 지키며 신랑을 기다리듯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도 세상을 이기고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의와 생각에서 돌이키고 십자가의 거룩한 피로써 성전에 들어감을 믿고 자신의 거룩에 애써 영과 혼과 육의 정결을 유지한 영혼은 신랑이 둘째하늘을 이끌고 첫째하늘 위에 임하실 때에 공중으로 들림 받는다. 그리고 법적인 심판을 받은 후 그 영혼의 거룩에 맞는 신령한 몸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은 재림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남편을 기다리며 다른 남자와 간음치 않았기 때문이니 육체 안에 있을 때 자신의 마음과 몸이 세상의 썩어질 헛된 것을 취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피를 거룩하게 유지한 자마다 이와 같다.
그 후에 7년 대환난이 끝나면 그리스도께서는 새 예루살렘성전을 이끌고 이 땅에 내려오신다. 하지만 그 일이 있기 바로 전에 이 땅에 남은 거룩한 영혼은 환난복음을 전하고 목베임을 당한다. 그리고 법적인 심판대에서 그 영혼의 거룩에 맞는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얻는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후에 면류관을 쓰고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십자가의 흠 없는 살과 깨끗한 물과 거룩한 피로 그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행위도 의롭고 거룩하게 변했으며 또한 자신이 얻은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마지막에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7년간의 공중혼인잔치가 끝난 후 거룩하고 신령한 어린 양의 아내는 모두다 남편을 따라 에덴동산과 같이 회복된 이 땅으로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그 땅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약속을 믿고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단장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자들이 바로 교회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는 자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리니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씀의 인도하심과 또한 마음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따라 육과 세상에서 철저하게 구별되어 그 정절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선한 일에 애쓰고 있다.
이처럼 십자가의 피로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은 후 약속을 믿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영혼에게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남자와 함께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오직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 받은 첫사랑을 기억하며 그 피를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요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가꾸는 것이다. 모든 것을 완전히 준비하고 돌아온 남자는 정혼한 여자에게서 그 어떤 행위와 성과를 보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킨 여자의 정절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있는 영혼은 깊은 진리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유대인의 정혼과 혼인과 혼인잔치의 풍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에게 참된 소망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선 결혼 적령기에 이른 유대인의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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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유대인의 정혼부터 혼인과 잔치와 남자가 집으로 데려가기까지 풍습을 살펴보았는데 아버지께 십자가의 피를 붙들고 있는 영혼들은 그것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영혼과 마음과 몸이 거룩한 자만을 받으신다. 유대인의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찾으러 다닐 때 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 두는 것은 오직 음행치 않은 처녀를 찾는 것이며 또한 정혼한 후에도 여자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은밀한 곳에 거하는 그 순결한 피를 지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그가 아무리 불의한 죄인이라도 죄 용서의 믿음을 가지고 허물과 죄를 자백하면 그의 영혼에 구원의 피를 주실 것이요 또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의 영광으로부터 그 피를 거룩하게 지키는 영혼만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전에 들어가 혼인잔치와 안식에 참여하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우리는 남자가 정결한 처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를 원하듯 신랑이신 그리스도도 역시 거룩한 뼈와 신령한 살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과 믿음을 지킬 때 거룩의 복을 얻는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십자가로 세운 그 성전을 위해 마음과 몸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자를 원하신다. 남자는 깨끗하고 향기 나는 아내를 원하듯 그리스도 역시 영과 혼과 몸이 거룩하게 보존된 교회만을 기뻐 받으신다. 그러므로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자가 정혼기간에 남자를 위해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꾸미듯 그리스도의 한 몸에 지체로 거하는 우리도 우리자신을 거룩하고 신령하게 가꾸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하여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한 영혼이 신부로 들림을 받고 또한 거룩한 영혼이 흠 없는 몸으로 찬미의 제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맏아들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아버지께서는 셋째하늘에 그리스도께서는 천년왕국에 이미 모든 준비를 다 이루어놓으셨다. 정혼한 남자는 오직 자신의 신부를 맞이할 생각에 들떠 열심히 일하며 모든 것을 빈틈없이 준비한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마쳐지면 드디어 신부를 데리러 떠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도 혼인잔치와 천년왕국의 안식을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다시 보내실 때에는 이미 셋째하늘에도 모든 준비를 다 마치시고 자녀들이 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한 몸의 거룩하고 신령한 신부가 될 교회를 맞이하시고자 태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모든 영광과 권세를 열심히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영혼들도 그리스도와 정혼한 자들로서 썩어질 육과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철저하게 구별되어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선한 일에 애씀이 마땅하다. 또한 은혜를 베푸신 아버지와 아들의 몸을 위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의 거룩에 애쓰며 자신도 그 성전벽돌로 쌓아지는 날을 소망할 때 이 고난의 길을 오히려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