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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하느님,
헤아릴 수 없는 은총으로 온갖 복을 내려 주시니
저희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여
하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제1독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3,41ㄹ-62
그 무렵 회중은 41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녀의 죄는 어머니가 낳을 때 그 흘린 피로 이미 다 씻겼다
영화 ‘더 스토닝’은 이란에서 아직도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투석형(投石刑)’을 소재로 한 실화입니다. 두 손목과 양팔이 뒤로 묶인 채, 도망가거나 피할 수조차 없도록 허리까지 땅에 파묻힌 상태로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돌을 맞으며 죽어가야 한다면? 그것도 자신이 직접 낳은 아들들과 남편, 아버지와 친척 남자들, 평생 한 가족처럼 얼굴을 보고 지낸 마을 이웃들이 던지는 돌이라면? 안구의 핏줄이 터지다 못해 돌출되거나 머리뼈가 깨졌는데도 무더기로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 자신의 무죄와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아이 넷을 키우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라야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과 폭언 탓에 몹시 불행합니다. 자식들을 생각하며 힘겨운 결혼생활을 버티던 그녀는 14살 소녀와 결혼하기 위해 위자료를 주지 않고 이혼하기를 원하는 남편 알리가 꾸민 잔혹한 함정에 빠져듭니다. 간음한 여인으로 몰린 것입니다. 그릇된 탐욕과 거짓은 들개 같은 사내들의 횡포로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담한 죄악은 집단침묵으로 뒤덮여 묻힐 뻔하지만, 나중에 책을 쓴 자흐라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 힘입어 마침내 소라야의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 용서하는 방식은 장차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로 우리 죄를 용서하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돌을 들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죄를 땅에 쓰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당신 손가락은 땅에 박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죄를 흙에 쓴 글자처럼 사라지게 하시기 위해 우리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돌아가시고 묻히셨습니다. 우리 모든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땅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하신 순간은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라고 물으시고 여인에게서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직후였습니다.
나를 단죄하는 이가 없다면 나도 굳이 다른 이를 단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판관은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탓을 돌렸듯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자기를 단죄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부끄러웠고 이미 두려웠습니다. 자아가 바로 그들을 단죄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를 판단하는 이유는 그 죄책감을 가리기 위해 방어기제 중 하나를 발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위 영화에서 알리는 위자료를 주기 싫은 것과 14살 소녀와 결혼하고 싶은 죄를 용서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것이 용서받았다면 소라야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알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믿지 않았기에 악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2018년 연말에 어머니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대법원이 징역 20년형을 확정했습니다. 38살 A 씨는 술에 취해 TV를 보다가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A 씨는 평소에도 잦은 음주 등으로 꾸중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날 꾸중을 듣는 과정에서 뺨을 맞은 A 씨가 급기야 어머니에게 의자와 흉기를 휘둘렀고, 의식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내버려 둔 채 달아나기까지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아들의 흉기에 찔린 어머니가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고 도망가라.”하고 말한 건데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들을 걱정했던 겁니다. 전에 사망 보험금 노리고 지인을 시켜 차 사고 내 어머니를 죽이려 한 아들의 선처를 호소한 노모도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는 내가 칼을 휘둘러도 죽어가면서 그 죄까지 가지고 가십니다. 자신이 낳은 존재이기에 그 책임을 자신이 껴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를 짓고 나에게 유일하게 심판하셔야 할 분이 나를 죄 없다고 하시는데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벌도 받고 죄책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더 큰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책임으로 안고 대신 돌아가십니다. 부모는 낳을 때부터 그 피로 자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한 분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그 죄책감 때문에 이미 용서한 분을 찌르게 됩니다.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자녀를 낳을 때 자녀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피로 보속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뱀을 놓아주실 때 이미 죄지을 것을 다 용서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이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어 끝까지 하느님을 원망하고 칼을 들이댄다면 더는 구원을 희망할 수 없게 됩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대학생 아들이 있는데 게임만 하면서 인생을 낭비합니다. 성인이니까 그냥 놔둬야 할까요? 아니면 게임을 못하게 일일이 따라다니며 잔소리해야 할까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듭니다. 요즘에 취업하기 힘들다고 하니 그냥 꾹 참고 다녀야 할까요? 아니면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할까요?”
이런 식의 흑백 논리를 말하면서 답을 이야기해 달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 단순화하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잠깐이나마 편안한 심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다시 더 복잡한 마음이 되고 맙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세상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답이 많은 세상에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근시안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정확해야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하나의 기준을 정확하게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율법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벗어나는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하면서 돌을 던져 죽이라고 했다면서, 예수님의 생각은 어떤지 묻습니다. 살려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다고 트집을 잡을 것이고, 죽이라고 하면 이제까지 가르쳤던 사랑은 어디에 있냐면서 또 다른 트집을 잡았을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같은 상황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떠나갑니다.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억지를 스스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간음했다고 하는데, 혼자 그 자리에 온다는 것 자체가 큰 억지이요. 여자 혼자서 간음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그들은 사랑 없는 닫힌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먼저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야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으며, 이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사랑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배우며 삶을 완성해 간다(케리 이건).
사진설명: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