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4. 30.
4월 마지막 날이다.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 끼어서 흐릿하나 맑고 밝고 환하고, 봄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온다.
<한국국보문학카페> '등단 시인방'에는'노중하' 시인의 시가 올랐다.
겨릿소를 아시나요
시 문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내가 댓글 달았고,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내 댓글:
겨릿소를 아시나요
농경문화 전승 놀이의 재현
논두렁 굽이굽이 황금 물결 출렁인다.
'겨릿소'
위 낱말을 처음으로 익혔습니다.
겨리 : 쟁기의 방언
소 두 마리 목에 멍에를 채우고 쟁기로 논밭을 가는 이미지를 보았어도 겨리, 겨릿소 낱말(용어)은 전혀 몰랐습니다.
논밭을 갈려면 소가 무척이나 힘이 들겠지요. 일하고 난 뒤 소의 몸뚱이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요.
소 두 마리로 일하면 소가 그만큼 덜 힘이 들겠지요.
저도 젊은 날에서는 위 3번째 사진처럼 모내기를 직접 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제 고향마을 앞뜰은 일반산업단지로 토지수용되어서
이제는 산밑에나 있는 다랑이논이 조금만 남았을 뿐이지요.
지금은 중장비 농기계가 혼자서 모를 심지요.
정겨운 우리말(토박이말)
위 글 문학지에 꼭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일소를 배려한 '겨릿소' 쟁기질, 가래질 등에 엄지 척! 합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두 마리 소가 쟁기로 밭을 간다.
두 마리 소가 무논에서 써래질을 한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서 나는 1970년 초까지 벼농사를 지었다.
일꾼(머슴)이 나가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농사를 지어야 했다. 동네 형님들과 일꾼의 도움을 받아서 벼 농사지를 지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화망마을의 앞 논은 토지수용으로 산을 깎아서 메꿔서 일반산업단지로 변해버렸다.
물받이 구렛논이 다 없어지고 평평한 산업단지 공장지대로 변했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 70년대 초의 산골 아래 두렁이 논.
머슴(일꾼아저씨)를 두고 벼농사를 지었던 시절이 이제는 꿈만 같다.
20 ~ 30여 명의 청장년 일꾼들이 한데 모여서 모 심고, 김 매고(세 차례), 벼 베고, 볏나락을 지게와 달구지로 운반하고, 바깥마당에 누리로 쌓아 올리고, 물기를 말린 뒤에 벼 바슴하고(홀태 등으로), 동네 방앗간에서 벼를 찧어서 쌀가마니에 담고, 트럭으로 쌀 가마니를 팔았던 시절이 이제는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내 기억도 대부분 다 사라지고.....
인터넷 지도로 '화망마을' 용어로 검색하면 지도가 뜬다.
'차다맥이산'
잘못 표기된 엉터리 지명이다. '차돌배기산'이어야 한다.
개발되기 이전의 야산에는 아주 단단한 돌, '차돌'이 무척이나 많았다.
야산을 깡그리 깎아내려서 지대가 낮은 논을 메꿔서 일반산업단지로 조성했다.
천지가 개벽한 것만 같다.
서해안고속도로 '무창포나들목'이 있는 곳이다.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임.
많은 것을 떠올린다.
나중에 보탠다.
잠시 쉬자.
2024. 4. 30.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