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의 성당 구조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미술사에서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라고 한다.
서 유럽의 왕국들. 성당 건축물
사회를 구성하는 데는 종교와 미술이 중심이 아니고, 정치와 민족, 민족문화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대의 유럽의 청치와 왕국들을 보기로 하자. 이 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동쪽의 비잔틴 제국이 성상 파괴와 옹호로 시끄러울 때, 서 유럽은 메로빙거-카롤링거로 이어지는 프랑크 족의 프랑스가 유럽을 제패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동, 서로 분리된 후에 동로마는 황제가 종교를 관장하면서, 서유럽 보다는 비잔틴제국의 동로마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에 로마 교황도 강력한 정치 권력의 후원이 절실하였다.
800년에는 로마 교황이z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 대제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고(대관식) 로마 카톨릭은 그의 보호를 받는다.
814년에 샤를 대제가 죽자 왕국은 그의 세 아들에게 분할된다. 이들이 프랑스, 독일, 이태리의 뿌리가 된다. 이때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에 복속된다.
서쪽은 훈족 계열이 침입하여 헝가리를 세운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천년왕국 사상’이 퍼지면서 1000년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하여, 유럽은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1000년이 올 때까지 계속하였다. 이때 프랑스에서는 위그 카페(재위 987-990)가 나타나서 카페 왕조를 세웠다. 카페왕조는 1328년까지 계속하였다.
이처럼 서유럽은 1000년이 될 때까지 공포 분위기가 지배했다.
이럭저럭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고 1000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다. 그렇다고 세상의 종말이라는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사람들도 마을을 이루어 생업에 열중하였다. 열심히 살면서 성당을 건립했다. 생업애 열중하는 마을이 여기저기에 생겨나면서 마을과 마을 사이의 교역도 일어났다.
마을이 형성되면 필수로 들어서는 것이 성당과 수도원이었다. 성당과 수도원이 마을의 중심이 되었다.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자 마을은 생업의 터였으나, 순례객들이 줄을 잇자 점차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으로 시끌벅적했고, 성당도 돈벌이 대열에 참여했다. 성당 건축물의 구조는 카롤링거 왕조를 거치면서 점차 바실리카 형식이 자리잡으므로, 로마네스크 건축물이 되었다.
성당은 성인들의 유물을 보관하였고, 유물의 복제품을 신앙과 결부하여 판매함으로 돈을 벌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수도원 건물이 들어서고, 성당이 들어서자 주변에 마을 형성을 형성하였다.— 순례객이ㅣ 찾아오자 이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여 번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