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4. 30. 화요일.
오래전에 쓴 내 일기장을 밤중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조작이 서툴러서, 실수로 많이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껏 남아 있는 일기가 훨씬 많다.
하나를 퍼서 올린다.
2015. 2. 25.
만나이 95살이 된 지 며칠 뒤에 먼곳으로 여행 떠난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글을 더 골라야겠다.
<한국국보문학> 2024년 6월호에 올릴 글을 더 골라야겠다.
퇴화 진행중
최윤환
1.
충남 보령시 웅천읍 장날은 2일 · 7일의 5일장이다.
장터에서 배추모종을 사다가 심어야 하는데... 심어보았자이다. 농약 한 번도 안 치면? 나는 건달농사꾼이라서 온통 벌레 투성이의 못난 배추 몇 포기만 겨우 건진다. 올 가을에는 이것마저도 농사짓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모종을 심을 시기가 벌써 다 끝나가고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배추는 시장에 가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고, 돈이 없어서 못 사면 그냥 텃밭에서 무성한 잡초를 뜯어서 먹으면 그뿐이다. 꼭 배추와 무 같은 작물만 먹으라는 법이 있어? 아닐 게다. 민들레, 씀바귀, 왕고들빼기, 쑥, 머위 등 온갖 잡초들도 잘만 활용하면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 이를 어떻게 이용하고 활용하는 방법만 모를 뿐이다. 까짓것 아무렇게나 먹어야겠다.
내가 정년퇴직한 뒤 시골로 내려가서 산 지가 6년이 더 지났다.
늙은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살았다. 어머니는 나날이, 다달이, 해마다 더욱 늙어갔기에 늙은 자식인 내가 밥을 지어야 했다. 늙은이 사내가 조리해서 먹는 밥이니 오죽하랴 싶다. 아무것이거나 다 넣어서 국을 끓이고, 그것도 큰 냄비에 대중없이 무조건 많이만 끓여서 몇 날 며칠이고 퍼 먹었다. 이따금 가스레인지 불로 뜨뜻하게 덥히거나 끓여야 하는데도 마냥 방치해 두면 음식맛이 시큼털털하게 변질되고, 변한 흔적들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또 조리하면서 남은 식재료는 냉장고에 넣어 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식재료는 변질되고 부패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나는 아무것이나, 아무렇게나 다 먹고 마신다. 그런데도 이제껏 탈이 난 적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오래된 식재료와 조리한 지가 오래된 음식물이라도 내버릴 리는 전혀 없다.
이따금씩 시골로 내려온 아내가 반찬과 국을 만들어놓고는 도로 서울로 올라갔다. 아내가 잡다한 음식 물 쓰레기를 야외에 둔 플라스틱 통에 쏟아버리는 순간 내 눈은 동그랗게 커지게 마련이다. 예컨대 허멀건한 두부가 듬성듬성 썰어져서 잡다한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섞였다. 와르르 쏟아부어야 하는데도 순간 손이 멈칫했다. 저 아까운 것을.
2014년 6월 25일부터 충남 보령아산병원에서 노모를 입원시켜서 치료할 때다.
서울에서 사는 둘째 여동생과 대전에서 사는 누나가 대천시내 외곽에 있는 병원에 찾아와서 잠깐이라도 간병을 대신하면 아내는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에 있는 시골집으로 와서 부엌에 들어섰다. 아내는 쉬지도 않고는 냉장고에 든 식재료와 가스레인지 위에 방치된 냄비 속을 확인하고는 변질된 식재료와 음식물을 잔반 쓰레기통에 부었다.
아내가 "왜 썩은 것을 먹으려고 해요? 아낄 것을 아껴야지요?"라고 되받아치면 나만 화가 날 것이다. 나는 뭐라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입 꾹 다물고는 잔반통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2008년 6월 3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 MND 직장에서 벗어났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늙은 어머니와 함께 둘이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홀로서기에 성공하였다. 나는 아무것이나 다 먹고, 아무렇게나 그냥 마신다. '못 먹는 게 무엇이냐? 왜 못 먹는다는 것이냐?'라면서 그 어떤 식재료나 식품을 남김없이 다 먹으려고 한다.
또 아무것이나 다 식재료가 된다는 생각을 지녔다. 텃밭이 아닌 풀밭에서 억세게 자라나는 풀 뿌리와 잎사귀를 뜯어서 국솥에 넣으면 그런대로 국 건더기가 되었으며, 오래된 반찬도 냄비 안에 마구 섞어서 끓였다. 찬밥 덩어리도 부어 넣고. 그렇게 끓이면 영락없는 '개밥, 잡탕밥' 수준이다.
음식은 맛과 멋으로 먹고, 분위기로 먹고, 영양가로 먹을 수 있지만 나한테는 그냥 배 부르면 된다. 영양보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내 기준이며 평가이다. 신선하고 맛깔스럽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 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냥 배 부르면 되었고, 영양가가 많아서 살찌면 그냥 다 되었다.
나는 원시 유인원(原始 類人猿)으로 퇴화하는 과정에 와 있다. 굶주림을 면하려면 그 어떤 짓도 다 하고, 배를 채우려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다 먹어치우는 들짐승으로 퇴화하고 있다. 마치 밥을 다 먹고, 혓바닥으로 밥 한 톨이라도 싹싹 핥아먹는 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어쩌면 동물이라기보다는 들짐승이다.
시골 장터에서 사는 두부 한 모 값은 2000원. 두부를 사면 한참 동안 먹는다. 날것인 상태로 썰어서 간장 찍으면 반찬이 되며, 국에 섞어 끓이면 푸짐한 두부찌개가 되며, 때로는 두부만으로도 한 끼니가 되었다. 값이 싼 것은 사실이다. 두부 한 모가 왜 그렇게 싼 지에 대한 이유는 있을 게다. 어쩌면 수입산 콩으로, 또는 묵은 콩으로 제조했을까 싶다. 늘 배고프고, 먹을 것을 탐하고, 게걸 들린 나한테는 아무래도 좋다. 푸짐하며, 값싸며, 오래 먹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평가라도 달게 받아들인다.
2014년 2월 8일 내가 몸을 긁적거리며 대상포진(帶狀疱疹)*을 앓기 시작했다. 마침 시골집에 들른 큰딸과 큰아들이 내 상태를 발견하고는 나를 보령아산병원으로 이송했고, 병원에서 임시조치 응급치료를 받았다. 다음날 2월 9일에 큰아들이 모는 자가용으로 내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급히 올라왔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서 완쾌했다.
시골로 내려가지 않는 채 여러 달 동안 서울에서만 머물렀다. 그 사이에 시골 텃밭은 완전히 풀밭이 되었다. 밀식했던 다년생 작물은 풀 속에 갇혀서 햇볕 부족으로 사그라져 없어진 것이 태반이었으며, 작은 과수묘목과 화목들도 넝쿨성 식물에 뒤덮이고 줄기에 감겨서 수형이 변했고, 성장이 더뎠다. 또한 이렇게 폐농이 된 밭두둑을 조심스럽게 다녀야 했다. 풀이 무성하면 뱀(毒蛇)도 있을 수 있기에 긴 장화를 늘 신고 조심스럽게 텃밭을 들여다보았다.
만 나이 94살 늙은 어머니가 2014년 6월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에서 저녁밥을 자시다가 목에 걸리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내 큰딸이 119구급차를 불러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으로 즉시 이동했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치료받았다. '하도 연로해서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 없다'는 주치의 의사 말에 어깃장을 놓듯이 6월 25일 어머니를 충남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로 이송·입원시킨 뒤로는 나는 고향집에서 다시 머물기 시작했다.
날마다 보령시 죽정동에 있는 보령아산병원에 들러서 면회시간에 임종말년의 중환자인 어머니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틈을 내서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잠깐씩이라도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풀을 뽑아낼수록 부추, 두메부추, 방풍 등 푸성귀가 눈에 뜨이기 시작했고, 꽃이 진 도라지 뿌리를 캐고, 풀을 베어서 머위도 찾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이나 다 먹어치우는 게걸 들린 들짐승으로 퇴화(退化)하고 있다. 썩었거나 부패했거나 시었거나를 상관없이 다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 원시 유인원(原始 類人猿)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한다. 또한 풀조차 다 뜯어먹는 초식동물이며, 벌레도 먹어치우는 잡식동물로 진화 중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지난해(2013년) 여름철부터 텃밭에 있던 수십 년 된 밤나무 두 그루가 벌레와 병에 걸려서 죽기 시작했다. 서서히 말라죽으면서(枯死) 채 익지도 않은 밤송이가 밭에 떨어졌다. 밤송이를 주었더니만 태반이 벌레 먹은 흔적이다. 그랬거나 말았거나를 관계하지 않고 밤송이를 발랐고, 뜨겁게 삶아서 햇볕에 널었다.
다 먹지 못하고는 서울로 올라왔다. 몇 달간 방치했더니만 그 사이에 삶은 밤에 밤벌레가 기어들어서 밤을 갉아먹었다. 벌레 똥이 바글거리는 밤을 차마 내버리지 못했다. 한 줌씩 손에 쥐고는 입김으로 불어서 벌레 똥을 날렸다. 그런 뒤에 냄비에 넣고 물 붓고 다시 끓였다. 나한테는 먹을 만했다.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간병하다가 잠깐씩 시골집에 들른 아내와 노모를 간병하려고 대전에서 보령병원으로 온 누나한테 '밤을 먹어봐. 밤벌레가 나올지 몰라. 벌레 똥이 우글거릴 수 있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기에 나 혼자서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큰 밤나무가 죽었으니 올해부터는 큰 밤톨을 구경할 수 없게 되어서 조금은 아쉽다. 아름드리 거목인 밤나무만 죽었을 뿐이지 텃밭 안 여기저기에는 어린 묘목 몇 그루가 더 있고, 자잘한 밤송이 몇 톨씩 매달렸다. 풋밤일 망정 어느 정도껏은 건질 수 있겠다.
내가 생밤을 깎아 넣어 짓는 밤밥을 푸짐하게 먹으려면 아무래도 읍내 장터에서 알밤을 사야 할 것이다. 알밤 한 말쯤 사고 싶다.
지금은 서울에 있다. 늙고 병든 어머니가 충남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데도 우리 내외가 서울로 급히 올라온 이유는 있었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첫아이(딸)를 2014년 9월 6일에 낳았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나와 아내는 산모실에 들러야 했다. 친손녀와의 첫 대면이 끝났으니 곧바로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 밥 한 술 떠먹고는 아내가 모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 아내는 설거지와 살림살이를 서둘러 정리하면서 내게 말했다.
"점심 먹고 시골로 떠납시다. 이불 빨래도 해야 되고, 하필이면 왜 세탁기가 고장이 났는지 탈수가 안 되네요."
왜 시간이 이렇게 더디 가느냐? 나는 서울에 올라오면 머저리가 되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고작 pc 자판기를 두들기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객담과 수다를 길게 늘이고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문명인에서 야생동물, 심지어는 들짐승으로 퇴화(退化) 중인 나한테 시간 개념이 있겠느냐?
* 대상포진(帶狀疱疹) : 피부의 한 곳에 통증과 함께 발진과 수포들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수두(水痘)를 유발하는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에 의하여 초래되는 질환.
2014. 9. 14. 일요일.
2014년 6월 말 어머니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을 거쳐서 충남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과 일반병실로 오가면서 8개월간 입원. 섣달그믐 생일을 맞이했고, 다음날 새해 음력설을 쇠었고, 며칠 뒤 밤 11시 45분에 눈감으셨음.
* 어머니 이천동(李賤童) : 1920. 2. 19(음 12월 30일) ~ 2015. 2. 25.(음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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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가 불량인지 작동이 중단 되기에 졸지에 글 상당수가 사라지고 말았다. 기억을 되살려서 다시 쓰기는 뭐하다.
이 낡은 pc는 가끔 작동이 멈춰서 그간 쓴 글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게시하지 말라는 신의 뜻인가? 그 神, 참으로 못났다. 아니, 내가 잡글 쓰는 게 뭐 대단한 사건이라고 심술부려서 중간에 글을 없애냐? 그러니 내가 잡다한 雜神을 전혀 신임하지 않는 이유이다.
'알겠어? 또 그랬다가는 나한테 죽는 수 있어!'라는 경고에 神이 조금은 겁을 먹을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