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고양이기운, 콘푸레이크
- 그래.. 그렇다니까.. . 마누라 싫은게 아니라
'결혼'이 무서워서 다시는 못하겠다야.
- ㅋㅋㅋㅋ핑계는... 야 너 전화오는거 아냐?
- 어? 어...
마눌련이다.
퇴근후 친구좀 잠깐 만났는데, 벌써 닥달 전화가 온다.
야자 짼날 걸려온 담탱이의 전화같다.
- 어.. 여보..
- 어디야?
- 응, 회사 앞인데, 잠깐 현우좀 만났어..
- 아 현우 오빠? 그 오빠 뭐해 요새?
마눌련을 나에게 엮어줬던 바로 그 잦친구다.
- 뭐 그냥... 회사 다니지 뭐
- 암튼 빨리 들어와. 애기가 떡볶이 먹고 싶데.
염병.. 지가 먹고 싶은거면서..
- 어.. 그래 이제 갈거야..
- 뭐야 벌써들어오래? 캬.. 김헌동이도 어쩔수 없구나
- 닥쳐 새꺄.. 그건 그렇고..... 넌 언제 결혼 안하냐?
- 때 되면 하겄지 뭐~ㅋㅋㅋㅋㅋ
떡볶이를 사들고 집에 온 헌동.
현관문 앞, 뾰로통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마눌련.
눈빛에 가시가 잔뜩있다.
통화할때 까지는 괜찮더니, 또 뭔 수가 틀렸나 보다.
- 나, 왔어.
- ....
- 왜 뭔일 있어?
- 너무 한거 아냐?
- 뭐가?
임신한 와이프는 배가 불러서 밖에잘 나가지도 못하고
입덧때문에 음식도 제대로 못먹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퇴근후에 곧장 집에와서 와이프 수발 들 생각은 안하고
친구랑 노닥거리고 놀고, 전화 안했으면 블라블라블라블라블라블라
또 시작이다.
남들은 이 마눌련이 호로몬 과다 분비로 임신우울증, 조울증 같은게 온거라고,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심한거라고, 남편잦인 내가 이해 해야 된다고 한다.
하, 그런데 이 냔은 분명 출산전에도, 결혼전에도
원래 이랬단 말이다.
- 미안해 미안해, 금방들어올려고 했어.
하지만 토를 달면 안된다.
떡볶이를 건내주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물을 빼면서 거울을 보다
딴생각에 잠긴다.
왜 내가 여기 있지?
어떻게 해서 결혼을 하게 된거고
내가 누군가의 남편이 된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히키짓으로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던 헌동.
아주가끔씩 친구들이랑 피시방 가는 정도가 대외활동의 전부였다.
늘 더먹머리에, 바지에 똥싼놈처럼 어기적 어기적 걸어다니는 뿔테충.
20대 중반의 김헌동.
흠. 내가 변한건가...?
그때 나는 혼자였는데, 외로웠나?
맨날 캬캬 꿀잼 꿀잼 키득키득.... 철이 없긴 했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낙천적으로 지낸거 같기도 하고....
헌동 자신도 스스로가 낯설어 볼을 꼬집어 본다.
꿈은 아니다.
마눌련 배가 부르는 만큼, 부담감도 커진다.
하지만 설레이기도 하다.
내 아이.
내 아이가 태어 난다라...
- 여보~~ 빨리 안나오고 뭐해~~
- 어, 어 그래 ~
마눌련은 아주 떡볶이청소기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왠지 사랑스럽다.
내 아이를 가진 '여자'는, 사랑스러운것 같다.
내 아이가 지금 떡볶이를 먹고 있...
흑,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그래 이게 행복이 아닐까?
다음날 아침.
헌동은 잠을 설쳤다.
마눌련이 떡볶이 먹다 체했는지,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걱정이 되서 한숨도 못잤다.
지금은 좀 나아진것 같다.
옆에서 코까지 곯며 잘 자고있다.
주방으로 오니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다.
싸이즈를 보아하니 어제 점심때 부터 미룬것 같다.
출근시간이 약간 널널 하니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앉힌다.
아침거리가 없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본다.
막상 차려먹기가 귀찮다.
식탁위엔 반쯤 줄어든 시리얼 봉지가 있다.
음.. 오늘도..
우유 유통기한이 하루 지났지만, 괜찮을것 같다.
콸콸콸... 사부작 사부작
씨리얼을 와그작 와그작 씹다보니
어릴적 생각이 난다.
'참, 어릴땐 이걸 좋아했는데, 엄마가 해주시는 밥보다 더...
... 요번 주말에 집에가서 반찬이나 얻어올까?'
마눌련 이불을 덮어주고 집을 나선다.
머리도 한번 쓰다듬어준다.
'흠.. 아프지 마라'
피곤하긴 한데, 견딜 만하다.
왠지 더 힘이 나는것 같기도 하다.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잡는다.
헌동,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금의 내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누구지.
띵동
엘리베이터에 탄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어깨를 꽉 짓누르는것 같다.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생각한다.
'이 부담감에 지고싶지 않다.'
어릴적 티비에 나오던 시리얼 광고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안녕 토미~ 난 니가 정말 좋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
좋았어!
그래, 김헌동!
좋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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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자료실 퍼나르며 다시 보는데너무 슬프다ㅠㅠ
첫댓글 진짜 슬프다 ㅜㅜㅜㅜ
ㅋㅋㅋ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