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은 1876년 안동 김씨의 집안에서 태어나게 된다. 어렸을 적에 김구 선생
은 개구쟁이였는데 한 번은 엿을 하도 먹고 싶어서 부모님 몰래 성한 숟가락을 팔
아먹어버리기도 했다. 김구 선생이 과거를 포기하고 동학에 발을 들여 활동 할 적
에 고능선이라는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이 스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김구가 되도록
도와준다. 스승의 권유로 청으로 가던 중 김이언이라는 사람이 청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반항할 의병을 꾸민다는 말을 듣고, 김구 선생도 참가하게 되지만 안타깝게
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싶패하게 된다. 그리고, 안악으로 가던 중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고 일본 육군 중위를 칼로 죽여버린다. 그로 인해 김구는 잡히게 되었다. 김
구는 이 감옥에서 새로운 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배외 사상만을 가지고는 나라
가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사형을 면한 김
구 선생은 탈옥을 하게되었다. 탈옥에 성공한 김구는 어렵게 생활을 연명해 나가다
가 중이 되었다. 절에서 나와 숨어다니던 중에 '유인무'라는 사람을 만나 '김구'라고
이 때 개명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당시 18살 이었던 준례와 혼인을 하게 된다. 이
시기 때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어서 대한 독립권은 없어지고, 일본의 속국이 되고 만
다.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워보자고 안창호와 김구 선생 등이 주축이 되어 신민회
가 결성된다. 활동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지사들이 잡혀들어 간다. 김구 선
생도 잡혀들어가서 다른 지사들과 말도 안 되는 죄명으로 엄청난 고문을 받게 된
다. 김구 선생은 5년이라는 감옥살이를 받고 출옥하게 된다. 그리고 3.1 운동이 일
어난 뒤 각지로부터 모여 온 인사들이 임시 의정원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게 된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해야 되는데 맨날 네 사상이 옳으니, 내 사상이
옳으니 그런 것만 따지고 있었지만 김구는 몇 안 되는 독립운동자들과 힘을 합쳐
오로지 광복에만 정신을 쏟았고 김구는 이봉창 사건과 윤봉길 사건의 주모자가 된
다. 김구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당을 통합하고 임시정부의 힘을 더욱 키웠다. 그러다
가 1945년 8월 15일 우리 나라가 해방 되어 김구의 평생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 이
후로도 김구 선생은 쉬지 않고 남 북이 갈라진 것을 어떻게든 합칠려고 했지만 끝
내 이루지 못하고 안두희의 총에 암살되고 만다.(1949년 6월 26일)
항일투쟁과 임시정부의 활동에서 우리가 애국자라고 하면 다른 누구보다 김구 선생
을 꼽게 된다. 애국의 성실성과 헌신성이 누구보다도 대단했고, 항상 나라를 위해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께서 갖춘 인품은 뛰어난 것이었지만 특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의를 매우 중시했고, 또한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백범선생님은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 천황과 일본군
들을 조국광복을 위해서 암살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 암살 후에는 그 뒤에 닥쳐질
일제의 잔혹한 고문, 아니 자신의 죽음까지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인
간이 자신을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봉창은 동경에서 일본 천황을 저격하
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윤봉길 역시 일본군을 향해 폭탄을 던진다. 그들이 이런
의거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불타는 애국심이 작용했겠지만 김구 선생에 대
한 믿음과 존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김구
선생은 자기 자신만의 애국을 실천한 분이 아닌 후진에도 존경을 받고 또 후진들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신 애국자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현대에 들어와서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전에 가수 유승준도 군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그렇게 쉽게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
들을 보고 아마 하늘 나라에 있는 김구 선생께서도 뭐라고 한 마디 하셨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또 우리나라보다 복
지제도가 더 잘 되어있다는 이유로 떠난다고 한다. 일제 시대 때 우리 나라를 독립
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일제와 대항한 사람들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안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우리 나라 사람이라
면 대한민국 국적을 자랑스러워 하고 이 땅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요즘에 축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정치권은 맨날 나라가 어떻게 하면 더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안하고
여당, 야당이 계속 남의 잘못만 들추어 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구 선생의 나
라 사랑하는 마음이 반이 아니라 십분의 일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첫댓글 요약 2/3하고 네 글 1/3로 했네. 이렇게 말고 네 글을 앞에서 부터 치고 나가렴. 뒤에 네 생각과 의견이 짜임새있고 좋은데.....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