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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불교의 4대 산문(=종파) 중에서 법고산(法鼓山)은 우리나ㅡ라 불교와도 가장 친근감을 보여주는 불교입니다.
이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타이뻬이에서 뵈었던 시드니의 보안스님 역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님으로부터 이러한 평가를 듣는 순간, 저와 김응철 교수는 서로가 눈짓을 교화하였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보안스님은 타이완에서 2년을 사신 분이기에, 보다 더 정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의 평가가 저희의 평가와 일치하였기에, 우리는 서로 눈짓을 교환했던 것입니다.
저는 2009년 연말에 이 법고산에서 2박 3일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체험기가 바로 "대만불교의 겉과 속 2"였습니다만,
당시 저는 처음으로 성엄법사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분이 쓰신 책 중에 "성엄법사 --- 학사(學思)와 역정(歷程) ---"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중국어를 모르고 있기에, 한문 실력으로 이 책을 봤습니다. 그래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 대체적인 분위기만 파악할 수 있을 뿐, 정확하게 해독이 안 되기 때문에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책은 스님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평생 구도와 학문, 그리고 포교의 일생을 회고하시면서 쓰신 책이기에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타이완에서도 이 책이 무슨 문학 관련 상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또 스님의 문체나 문장은 정평이 나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런 류의 글쓰기를 언젠가는 한번 해보았으면 하고 선망할 정도로 담담히 자기의 학문적 구도생애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큰 장(章)들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서(自序)
어린이와 소년
군대에서의 세월
출가와 귀향
계율과 아함
종교와 역사
유학생활
일본불교의 이모저모
나의 박사논문
동과 서
유력(遊歷)과 창작
길가에서 마을의 풍경을 보다
이런 목차에서 보면, 크게 부각되는 것이 일본과의 인연입니다.
스님께서는 대륙에서 17세에 출가하셨지만, 군대에 입대해서 타이완으로 후퇴합니다.
이후 타이완에서 군대생활을 10여년 한 뒤에 제대를 하고, 다시 재출가를 합니다. 그리고서
무문관 수행을 하고, 몇 권의 책들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타이완에서의 스님, 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위상이 낮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공부가 필요했고, 유학이 필요했고, 박사학위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입정대학(일련종 계통의 종립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이 책의 큰 목차에서 "유학생활, 일본불교의 이모저모, 나의 박사논문"은 모두 일본 이야기입니다.
이 중에서 "일본불교의 이모저모"는 중국불교의 전통을 잘 잇고 있는 타이완의 스님이 바라본 일본불교 이야기입니다.
일본불교를 바라보는 중국불교적 관점과 한국불교적 관점이 어떻게 다른가? 성엄법사가 보는 일본불교와 제가 보는 일본불교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언어적 장애 때문에 작년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는데, 이번에 법고산에 갔더니 바로 그 책의 일본어 번역서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구입해서, 타이완에서부터 읽기 시작해서 한국에 돌아와서 마침내 독파를 하였습니다.
작년에 띄엄띄엄 느껴지기만 했던 것이 분명하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특히 "일본불교의 이모저모"는 다시 3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첫째는 '불교의 종교활동'입니다. 여기서 일본불교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스님 스스로 참여하면서, 견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말로 옮겨서 "일본불교사 공부방"에 실으면 좋을 것같아서, 김근혜씨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결국 이것입니다. (이 외에는 '본직 이외의 창작 목적', '일본불교의 학술회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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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엄법사는 일본의 유학시절 석사와 박사를 만 6년만에 마쳤습니다. 학교에서의 바쁜 생활을 보내면서도 일본불교의 모습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습니다. "타인을 알지 못하고서 타인을 비판해서는"(143쪽) 안 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일본불교를 먼저 비판하기 전에 겸허한 마음으로 일본불교의 여러 측면을 경험해 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활동에 직접 참여해 보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역시 배워야 할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일본불교사연구소" 역시 이러한 생각으로 출범한 것입닙다.
먼저 전통불교 교단의 수행활동에도 참여합니다. 예를 들면 조동종 대본산 에이헤이지, 임제종 대본산 엔가쿠지와 겐쵸지, 교토에서의 임제종 묘신지(妙心寺), 진언종의 고야산, 천태종의 히에이잔(比叡山) 등을 방문하여, 머물러 보면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전통 불교의 현장들은 우리 역시 몇 년에 걸친 "일본불교사 강좌기행"을 통해서 방문해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신흥 불교교단입니다. 후지산 대석사(大石寺)의 일련정종과 창가학회(그 당시에는 이 두 집단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으로 사료됨.), 도쿄 시내의 입정교성회(立正교성회), 효코하마의 효도교단, 그 외의 국주회,
영우회(靈友會), 불교는 아니지만 신흥종교인 천리교, 금광교(金光敎), 대원밀교(大元密敎) 등이었습니다.
오늘날 일본불교는 계율이 없는 불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님들이 경험하는 "수행의 과정은 대단히 엄격한 것이라"(149)고 보고 있습니다. 계율이 없는 일본불교에 대해서도,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승려이면서 세속의 재가생활을 보내는 것은 당연히 좋지는 않지만, 재가자가 위와같은 훈련을 받아서 종교인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149)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불교는 중국불교에서도 수, 당, 송나라의 불교를 받아들여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불교사의 후대에 발달된 여러 가지 참법(이에는 밀교적인 것도 있지만, 사실 기복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이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는 지적을 합니다. 중국불교사에서는 원, 명, 청 보다도 수, 당, 송의 시대의 불교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시대의 불교를 잘 보관하는 것이 일본불교가 되는 것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국불교는 이미 옛날의 일본인이 배웟던 중국불교와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있어서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중국불교도 현대의 우리들이 생각하는 중국불교와는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157)
장차 "일본불교사 공부방" 제10호에 번역하여 싣게 되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그리로 미루어 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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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하나만 더 언급해 두고자 하는 것은 일본유학 중에 스님께서는 많은 이야기를 타이완의 불교계 언론에 투고를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스님께서는 "본직(학문) 외의 창작"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말하자면 특파원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타이완에는 없는 새로운 경험을 갖고가서, 국내의 불교문화에 새로운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적 배려는 현장의 "대당서역기", 법현의 "불국기", 의정의 "남해기귀내법전" 등 인도에 갔던 구법승들이 다 가졌던 생각입니다. 그러니 성엄스님 스스로도 그런 생각으로
특파원처럼, 그때 그때 일본불교의 여러가지를 적어서 타이완에 투고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일본에서 1년 살면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바로 성엄스님이 했던 것처럼 "한국에는 없는 새로운 경험을 갖고 가서, 국내의 불교문화에 새로운 성장을 촉진하기" 위하여, 많은 글을 썼고, 당시 제 홈페이지에 "교토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올렸고, 마침내 그것이 추려져서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라는 책으로 귀결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성엄법사의 마음에 공명(共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우리를 아끼면서 밖으로 나간 사람은 마땅히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이 글로써 마치게 되는 "대만불교의 겉과 속 3"이라는 기행에세이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집필하게 된 것입니다.
나무성엄대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