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튜디오 본프리에서 출간된 황의웅작 『1982, 코난과 만나다』라는 책에서 퍼온 것입니다.
왠지, 위의 글(귀여운 여인과 나르시시즘)이란 글을 읽다보니 이 부분이 생각나더군요...물론, 어떤 대안적인 생각으로 이런 글을 올린것은 분명아니구요... 비슷한 주제에 대해 여러사람들의 여러생각들을 비교해보시라는 의미에서 올린 글입니다.
좋은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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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가 좋다! 소녀가 좋다!』
<미래소년 코난>은 제목으로만 본다면 코난이라는 소년이 단독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작품에는 코난뿐만 아니라 라나라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여주인공이지만 라나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 이전까지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나오던 여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그려지고 있다.
즉, 아무 능력도 용기도 없이 남자 주인공의 액세서리처럼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극 중 자신의 몫을 당당히 갖는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아니, 스토리 면에서는 코난보다 라나의 중요도가 훨씬 높다고도 말할 수 있다. 코난이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끌어가는 역할을 한다면 라나는 그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진원지로서 극 전개의 중심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애니메이션 평론가와 연구가들은 라나를 일본 애니메이션 사(史)에서 여주인공의 상(象)을 바꾼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미래소년 코난> 이전에는 라나와 같은 여주인공 모습은 거의 그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것은 세계 애니메이션 史에도 어김없이 해당된다.
애니메이션하면 떠오르는 세계적인 디즈니의 작품들을 보라. 1980년대말 이전까지(정확히 말하면 <인어공주> 이전까지)라나처럼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개척해 나가려고 했던 히로인들이 어디 한군데라도 등장하는가? (Ryoma 주 : <미래소년 코난>은 일본에서 1978년 방영되었고, 한국에서 처음 방영된 것이 1982년입니다) 그들은 모두 왕자나 기사에 의지하며 자신의 생명과 삶을 남자들에게 내맡겼다. 물론 라나도 코난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상대역인 코난을 위해서도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날린다. 그것이 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2001년 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까지 이어지고 잇는 이 같은 라나의 여주인공상을 좇아 올라가다 보면 러시아의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에 나오는 여주인공 '겔다'가 그 원조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긴 금발에 푸른 눈, 하얀 피부의 이 여주인공은 연약해 보이는 외모 안에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눈의 여왕에게서 구하려고 험난한 여행을 할 정도로 강한 마음과 의외의 행동력을 지니고 있다.
햇병아리 애니메이터 시절에 이 작품을 본 미야자키에게, 겔다는 마냥 왕자들의 도움만을 학수고대하는 디즈니의 상투적인 공주들과 너무나도 다른 신선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던져주었고, 미야자키는 그것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 같다. 결국 겔다를 기점으로 '해방(解放)과 정화(淨化)의 히로인(Heroine)'이 미야자키의 마음 안에서 조금씩 움트게 된 것이다.
미야자키 공주형 히로인의 시초로 알려져 있는 <걸리버의 우주여행>의 '보랏빛별의 공주'는 겔다의 영향을 첫 번째로 받은 여주인공이다. 일개 동화맨이던 미야자키가 연출자에게 라스트 장면을 바꾸자고 제의해 작품의 테마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린 일화로도 유명한 데, 여주인공은 무표정하고 차가운 가면을 벗고 따뜻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며 극도의 해방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런 여주인공상은 이후 <장화 신은 고야이>의 로자 공주, <루팡3세>의 리사, <아카도 스즈노스케>의 사유리를 거쳐 내려오며 라나로까지 발전되어 그 완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루팡3세-카리오스트로의 성>의 클라리스, <붉은 돼지>의 지나 등에서는 연령대를 올리는 변형된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미야자키의 라나에 대한 유별난 애착은 뒤에 만드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시타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재확인되었다. 시타는 외면과 내면에서 쌍둥이라고 해도 이의가 없을 만큼 라나와 똑 닮은 캐릭터로 그려진다(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두 갈래로 딴 긴 머리칼이다). 이 때문인지 스토리 구성, 등장인물 설정 등 작품성 면에서도<미래소년 코난>과 <천공의 성 라퓨타>는 많이 닮아 있다.
종합해 볼 때, 라나는 확실히 히어로를 향한 관심을 뛰어넘어 '미야자키 히로인'이라는 관용어를 탄생시키고 그것을 애니메이션 팬들의 머리에 각인시킨 첫 번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또 어정쩡했던 소녀 캐릭터들의 인기를 한곳에 결집시켜 하나의 붐(Boom)으로 조성시킨 구심점이기도 했다. 1970년대 말부터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로리콤(Loricom: Lorita Complex의 일본식 줄임말)현상'도 라나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 정례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어린 여자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증상'을 뜻하는 로리타 콤플렉스는 어래 전부터 미야자키가 그려온 여주인공에게는 모두 나타나고 있다. 연령상 대부분 10살 전후로 해서 아담한 몸집에 하얀 피부, 퍼머끼 없는 생머리를 한 일편단심의 소녀 캐릭터들이다. 알아둘 것은 이런 여주인공들의 등장은 의학적인 정신병으로서 얘기할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런 유형의 소녀들은 일반적으로 소년들이 항상 꿈꾸는 이성(異性)의 이상형이기 때문으로, 어른이 아닌 아이들 입장에 서서 창작에 몰두하는 미야자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단, 예외적인 것도 없지는 않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여주인공 '치히로'가 그런 케이스다. 이 10살배기 평범한 소녀는 깡마른 체형과 못생긴 얼굴로(난...귀엽기만 하두만...-_-;;;;..헉..Ryoma 였습니다..) 미야자키가 이전까지 묘사한 백색피부에 청초함이 넘치는 소녀 캐릭터의 외적 이미지를 과감히 깨버렸다.
이같은 변화에는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과거의 영화에서는 예쁘고 잘 빠진 몸매의 여자만이 여주인공 역을 맡았지만, 요즘은 외모에 치중하는 천편일률적인 캐스팅에서 탈피해 그녀만의 매력을 제일로 쳐 여주인공을 뽑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히로는 그런 외모와 상관없이 '내면 속 잠재적인 힘을 끌어내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이를 돕는다'는 미야자키 공주형 히로인의 정형을 여전히 갖고 있는 좀 독특한 캐릭터다.
"<센과 치히로의행방불명>을 통해 미야자키는 만화영화로 회귀했다"는 평이 나온 데에는 이런 치히로의 모습에서 라나와 같은 외유내강형의 여주인공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만화영화란 현대적인 캐릭터상보다는 고전적인 캐릭터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을 말하는데, 치히로는 디자인 면에서는 현대성을 따르면서도 성격묘사에서는 고전성을 추구하고 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저명한 영국의 문학가 루이스 캐럴의 로리타 콤플렉스에 비교되기도 하는 미야자카 애니메이션 속의 소녀성... 연약하기만 해 도움만 바라보는 여자이기보다는 연약하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목숨도 내던질 수 있는 그런 여주인공의 모습을(이 부분이 상당히 거슬리더군요....-_-;;;; 차라리 사랑하는 남자라기 보다는 "자신이 믿고있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이라고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아...Ryoma 였습니다...), 우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미야자키 작품속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코난을 믿고 돕는 라나가 그런 미야자키 소녀 캐릭터의 대표주자임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