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그리운...... -복기완
“여보세요? 거기 주엉엄마 댁 이죠?
내 물음에 수화기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그런데요” “아 주엉엄마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여기 서울인데요”
“예, 잠깐만요” 수화기에서 먼 음성으로 “어머니 서울서 전화 왔어요”
들리는 소리로 보아 며느리구나 생각하고 속으로 자기 남편 이름을 존칭 없이 불러댄 나의 서먹함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긴 세월을 느끼게 한다.
요즘 한참 자연산 김을 채취하는 철이었던 옛날을 생각 하며 지금도 김 양식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것부터 시작하여 쪼르르 그 시절의 오천으로 내 닫는다.
허리띠 조르던 보릿고개를 흉년의 탓으로만 돌리던 시절 청악산 고갯길의 잔설을 밟고 어린 조막발이 타박타박 삼십리를 흥얼거리며 걸어 다녔다.
저 고개만 넘으면 고모네 집이다. 라는 믿음과 반겨주는 피붙이들을 만난다는 즐거움이 그를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다니는 힘이 되었다.
도시에 살다 갑자기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호구지책이 없어 초등학교 6학년인 나를 비롯하여 두 동생을 앞세워 큰집 근처에 가서 자투리 농사라도 지어 살아보려고 이사 온 그 해였다.
겨울 끝자락에는 북풍은 늘 심술쟁이다. 남쪽 바람을 시기하며 꼭 먼저 품속을 파고들어 속빈 소년의 몸을 휘어 감고 흔들어댄다.
이윽고 올려다 뵈는 고모네 집 대문에 대고 “누나 나 왔어” 소리치면 언제나 고모와 누나가 동시에 안방과 윗방에서 나오신다.
누나는 그 시절 약혼한 처녀로 군 에 간 매형이 제대하면 안 터로 시집가 살기로 되어있어 늘 그 매형만 그리며 살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어서 오너라, 추운데 어이 들어와” 고모와 누나의 살가운 마중은 추위를 앞세워 달려온 나의 고생이 싹 사라져 버리는 촉매다.
밤이면 고모는 “오느라고 고단 할 테니 윗방 네 뉘 방에서 같이 자거라”하시고 내가 윗방으로 넘어가면 밤늦은 시각 까지 일찍 요절한 아버지의 애석함과 어린것들의 미래를 걱정 하시는 고모부와의 대화가 고단한 내 잠을 막는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에서 잠들었다가 온돌의 뜨거움과 광목 솜이불의 따뜻함이 합쳐서 땀이 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몸을 뒤척이다 어둠속에 눈을 뜨면 내 몸뚱이는 누나의 양팔에 안겨 있고 얼굴은 가슴에 묻혀 쌕쌕 거리며 고단함을 풀고 있다.
후에 생각해 보았지만 누나의 의식인지 무의식인지는 지금 까지도 알 수가 없다.
곧 시집갈 성숙한 처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지 샌 그날 밤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고 간직하고 살아왔다.
어쩌다 서로 만나도 그 일에 대한 대화는 서로 꺼내지 못하고,
비록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니었으나 당시에는 갑갑하고 더워서 찜찜했었으나 이성을 느끼게 된 이후부터는 부드럽고 포근한 여인의 품으로 변환시켜 느꼈다는 감정이 맞을 것 이다.
몇 년 전 누나의 마음에 누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전화로 그 일을 말하며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생각난다고 했더니 “왜 아녀 나두 잊지 않고 생생헌디” 하며 정감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매형은 수년전 병고로 죽고 둘째 아들 가족들과 시집 올 때부터 살아온 그 집에서 살고 있다.
무척이나 외롭게 지내시나 보다. 자식들이 홀로되신 부모의 외로운 고충을 얼마나 챙겨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 해 본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 나 기완입니다. 누님”
“이잉 나여 잘 지냈남”
“봄이 오는 계절만 되면 누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해서 전화 했어요, 누님”
“그려, 나도, 지난번 어머니 돌아 가셨을 적에 동생보고 전화번호 물어 본다 는 것이 경황 중에 깜빡 해서 전화 허고 싶어도 못허구 이냥 지내네 그려”
“누님 늘그막에 몸이나 건강 하시고 아름답게 사세요, 그리고 고종사촌 네 애들 여울 때 서울 오시면 그때나 보지요”
“잉 그려, 인제는 가고 싶고 보고 싶어도 혼자 다닐 수 도 없고 그럴 수밖에 없네 그려, 뭣 하면 동생이 한번 다녀가지 그려,”
못내 아쉬워서 그리고 보고 싶기도 한 모양이다.
“하하, 누님, 아마 우리가 그 시절의 나이라면 전화로 안부 물을 것도 없이 그리우면 막 바로 달려갔을 것이요, 그러나 그 시절을 잘 비꼈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 아니겠소?”
“그려, 그려, 동생, 얼굴 붉어진다, 괜시리....”
“모쪼록 건강하게 지내시고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누님”
둘 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고종사촌 간 오누이의 정다운 통화가 서로 웃음소리를 주고받으며 한참 이어졌다.
진부한 사랑놀이보다 아름다운 그리고 순수했던 추억의 대화가 모쪼록 누님의 나이를 한 십년만 젊게 후퇴 시켰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보는 밤이다.
2007년 월간문학지 "시와창작" 수필부문 입선작품
첫댓글 좋은작품을 만날수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