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우봉(牛峰)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는 우잠(牛岑: 牛嶺·首知衣)이라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우봉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현(平州縣: 平山)에 예속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경기도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1395년(태조 4)에 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황해도에 속하였다. 1469년(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652년(효종 3)에 강음(江陰)·우봉과 합쳐 금천군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음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우봉(牛峰)·토산(兎山)·강음을 금천군으로 통합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남도·북도로 분할됨에 따라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성씨의 역사
우봉김씨는 김오(金澳)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맏아들이며 고려 성종 때 시어사(侍御史)로 나라에 공을 세워 수지의후(首知衣侯)에 봉해졌다가 다시 우잠군(牛岑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관향(貫鄕)을 우봉(牛峰)으로 삼게 되었다. 우봉김씨는 〈오대봉군(五大封君)〉과 〈사대정승(四代政丞)〉을 낳아 고려조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병차호란 때 세보가 불타버려 문적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답곡리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
부산직할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경상남도 양산시 서생면 일원
평안북도 창성군 일원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우봉김씨는 915가구 총 2,98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