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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산행기
오늘은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 시산제를 올리기로 한 날이다. 몇 일전 정병협 회장을 만났을 예기를 참가 권유를 받았으나 당초 오늘 누구를 만날 일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고 했는데 그 일을 어제 앞당겨 보게 되어서 참가하게 되었다.
작업을 하다 시간이 빠듯해져서 서둘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전에는 산행할 때 챙겨야 할 것들을 미리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냥 집을 나서면서 둘쳐메고 나서기 일쑤이다. 산행 입구에 가면 식사 등 산에 가서 먹을거리들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나절 걷는 산행의 배낭에는 스케치 북이나 물 한 병 정도만 넣고 사진기 등을 챙기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가면서 정회장과 남상길 사무총장 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 모이는 날이라 분주할 것 같았다. 집결 장소에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코스를 알기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새해를 맞아한지 엊그제 같은데 어언 2월의 중순을 지나고 있다. 2월 산행은 아직 매운 겨울의 얼럴한 한파 속에 머잖아 찾아올 대 자연의 변화와 세월의 운행 속에서 미래에 대해 기대하는 인간의 막연한 희망의 부풀려지는 나들이 길이 되기도 한다. 이따금 몰아치는 거센 한파로 아직 봄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절기는 입춘을 지났다.
사람들의 마음에 봄은 아직 멀리 여겨질 때지만 보름쯤 후 3월이 되면 언어적 힘 때문인지 길어진 햇볕이 대지에 고여서인지 2월과 퍽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생동하는 생명력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은 4월 초순이 되어야 하지만 3월 중순쯤이면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땅김이 서린 아지랑이와 물오른 나뭇가지의 윤기에서 봄을 느낄 수 있다.
10시 15분, 사당역에 도착했다. 6번 출구 나가 좌측 공터 쪽으로 가면서 일행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많은 인원이 모였을 것으로 상상했던 것과 달리 몇 분만 보였다. 정병협 회장과 남상길 사무총장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다른 일행은 앞서 출발했다고 하면서 명찰을 달아주었다.
오늘 산행의 목적지를 오가는 길은 많이 오간 편이어서 훤히 알고 있었다. 작년에 서울 전경을 스케치 하면서 예정 없이 많이 오르게 되었다. 처음엔 산행 당일 연필로 스케치 한 것을 조금 보완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국기봉을 올랐었는데 전체적인 구도를 조정하면서 다시 그리게 되었고, 그 후로도 수많은 건물 들을 그려 넣으면서 여러 차례 오게 되었다.
관악산 산자락과 건물이 세워진 경계 부분을 지났다. 맞은편에서 중학생쯤 되는 언니와 초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여동생이 아주 정답게 에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맑게 느껴졌다. 골목을 지나는 동안 청정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연의 맑은 기운과 그들의 맑고 밝은 표정이 잘 어우러져 보였다. 진정으로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다 보면 심성이 맑아지게 될 것 같다. 선현들이 집터를 잡거나 공부를 할 장소를 물색할 때 입지를 중요시한 것도 그 때문일 것 같다.
시장 골목에 접어들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주 동선이라 등산 차림을 하고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산을 향해 대열을 이뤄 행진을 하는 듯한 모습이 마치 도시를 탈출할 결심이라도 한 듯 보였다.
등산로 입구 가까이 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두런두런 예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분이 “어디서 쉬냐”고 하자 다른 분이 “아직 산에 들어서지도 않았어” 라고 했다. 산을 자주 가지 않는 사람들은 산행에 대해 벅찬 느낌을 갖기도 한다. 특히 겨울 산행은 더 어지럽게 느껴져서 마음먹고 나섰을 것 같았다.
산에 들어섰다. 도로에서 산으로 들어서는 언저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허리를 굽히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겨울 산을 오르려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았다. 평소 가급적 도구를 쓰지 않고 맨몸으로 자연 상황에 적응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겨울 산행을 나서면서도 특별히 무엇인가를 준비한다는 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자연을 더 체험하는 길이라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다져진 눈길이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래도 걸음이 빠른 편이라 가면서 차례로 일행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잠시 후 낙성대 방행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에 올라 좌측 방향으로 국기봉을 향해 걸었다. 조금 지나 나타난 암릉에 햇살을 받아 눈이 조금씩 녹고 있었다. 물기가 베인 바위를 디디며 미끄러질 위험이 있기에 더 조심해 디디며 지났다.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 개울을 건넜다. 좌측, 산 위쪽으로 개울에 누군가 쌓아놓은 작은 탑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숫자가 작년보다 줄어든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나며 모진 비바람에 그리 되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탑을 세운 분이 날이 풀리고 나면 다시 일으켜 세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울을 건너 조금 오르다 좌측 길로 올라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외길을 걷고 있었다. 행렬을 이루며 가느라 걸음이 더디게 되었다. 이처럼 산에서 길이 막히면 마치 도시에서 차량이 막히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연의 품 안으로 와서 심신을 추스르며 다시 기운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일상의 팍팍한 우리네 일상적 삶의 모습이 떠올려지기도 했다.
가면서 각각 함께 온 일행들이 주고받는 예기들을 듣게 된다. 그 예기들에 소박하면서도 진솔함이 배어 있어서 때로는 그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처럼 북적거리는 틈새서 산을 오르고 있는 동안 겨울 산 특유의 시린 느낌을 잘 느낄 수가 없었다. 만양 이 시간에 조용한 산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면 겨울 숲에 벌거벗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시리고 맑은 감각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약수터가 있는 쉼터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고 물을 마시기 위해 계단 아래쪽 약수물을 뜨는 샘가로 가니 앞에 선 분이 우물 통처럼 함실을 만든 안에서 약수물을 떠서 나눠 주었다. 물을 마신다음 국기봉에 올랐다. 작년에 그곳에 올라 스케치를 했던 곳이다.
그곳에 도착하는 동안 하늘을 바라볼 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투명하게 보였었지만 시야를 멀리 두고 바라보니 조금 북한산은 조금 뿌옇게 보였다. 작년에 시산제를 한 날은 기온은 낳았지만 정말 시야가 맑아서 북한산의 산세까지도 힘 있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처럼 맑은 날씨에 서울과 주변 산세의 광활하면서 빼어난 산수의 입지를 느끼며 과연 서울을 도성으로 잡은 사람들의 안목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북한산 쪽을 바라보다 뒤돌아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 쪽을 바라보며 스케치를 했다. 짧은 시간에 그리기도 어렵지만 바람에 종이가 펄럭여 애를 먹었다. 전에도 그 쪽을 보고 그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시야를 넓게 포착해 그렸다. 그러고 보니 관악산 주 산세를 이처럼 드넓게 화폭에 담는 일이 처음 인 것 같았다. 혼자서 서울 외곽 일주를 할 때 청계산에 올라 관악산 전경을 그린 것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 작게 보였었다.
관악산은 칠현산 칠장산에서 강화도 앞 문수산 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의 줄기를 이루는 산인데 특히 서울의 외사산을 이루며 한강 건너의 한양의 지세의 일각을 이루고 있는 산으로 의미가 크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올라와 국기봉 깃대 부분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 일행이 올라와 타이타닉 포즈를 취하며 번갈아 사진을 찍었다. 뒤가 절벽이라서 양팔을 버리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공중을 나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다시 길을 나서 오늘의 목적지인 마당바위로 갔다. 윤원석 고문이 내려오면서 “앞서 가더니 사진을 찍고 오르나 지금 오는가 보다”고 하며 자신은 걸음이 더디니 앞서 가겠다고 했다.
마당 바위에 오르니 많은 일행들이 모여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주변 풍광을 돌아보다 바위에 올라 서을쪽을 바라보며 스케치를 했다. 관악산 봉우리와 한강 그리고 북한산이 함께 어우러진 광활한 구도가 되었다. 바라보이는 곳이 어디까지든지 화폭의 크기에 따라 결국은 범위를 정할 수밖에 없다. 일행이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사진을 찍고 계속해서 그렸다.
얼추 그린 다음 오늘 올라온 입구 근처 시산제 장소로 향했다. 오를 때보다 내려가는 눈길이 더 조심스러웠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중간 중간 기다려 길을 비켜주기도 했다. 시산세 시작 전에 도착하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눈길을 조심스럽게 걸었지만 올라갈 때보다 시간이 덜 걸렸다.
약수터에서 개울로 가는 도중 한 일행을 스쳐 지나는 동안 그들이 하는 예기가 들렸다. 한 분이 옆 사람에게 “저승사자 보험 알아? 라고 했다. 옆에서 다른 분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요즘 유행하는 말인데, 보험에 들라는 저승사자가 와서 1년짜리로 할래. 3년짜리로 할래. 하고 물어보는데 1년짜라는 3개월 아프고 자리에 눞다 가고 3년짜리는 다르다고 했다.
그런 말이 유행하는 데에는 요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세태가 반영되어진 것 같았다.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요즘은 웰다잉 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본래 죽음이란 사람의 의식 박의 일처럼 여겨져 왔다. 인간은 죽음의 순간이나 그 다음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죽기까지의 마무리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죽음이후는 의식할 수 없지만 살아생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반듯하게 지켜가고자 하는 생각들은 현명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개울을 건넜다. 한동안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한족하게 걷다보니 벌거벗고 서 있는 나무나 여기 저기 쌓여 있는 흰 눈이 더 깨끗하게 느껴졌다 .개울에 거울처럼 얼었던 얼음이 녹고 그 안에 맑은 물살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흐르는 맑은 개울물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살갑게 느껴졌다.
산에 들어서던 곳에 도착하니 몇 분의 우리 일행이 아이젠을 벗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시산제 장소로 이동했다. 아파트 단지 뒤쪽의 시산제를 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주변이 넓고 완만한 산세가 평온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키 큰 나무들이 파란 하늘 위로 솟구쳐 그윽함을 자아냈다. 나무들이 맨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앙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대지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본래의 골상을 느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처럼 잎이 없는 겨울 숲에 들어서면 나뭇가지 사이도 시야기 트여 본래 산세와 공간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겨울에는 잎이 무성할 때 느낄 수 없던 지형공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본협이나 서울시 회장과 감사 등에 나서려는 분들도 여러분이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운데 식당을 하면서 야외 식탁으로 썼던 듯한 너른 평상이 보였다. 그것이 마치 시산제 행사장처럼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여기를 행사 장소로 가끔 쓰게 될 것 같았다.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게 2월에 시산제를 올린다. 민속의 명절의 설날을 음력으로 쇠는 것과 같이 음력 절기로 정월에 하는 것이 의미에 맞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산을 찾는 사람들이야 행사라는 의식을 특별히 갖게 되지 않지만 각종 등산회에서는 이맘때 함께 산을 찾는 일행의 안전을 기원하며 시산제를 갖곤 한다. 단체 산행에서는 일행 중 누군가 사고가 나거나 하는 일이 결국 회 전체의 일이 되고 모임의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함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순수하게는 그야말로 산행을 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다듬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일행이 다 보이자 집행부에서 시산제를 시작한다고 했다. 영신례, 초헌, 아헌, 종헌 순으로 제를 올리고 오늘 참석한 여러 임원들과 지역별로 회원들 각각 제례를 올렸다. 그리고 소제 후 음복을 하며 회원들끼리 떡과 김치 막걸리 등의 음식을 단란하게 나누어 먹는 시간을 가졌다.
시산제를 마치고 일행이 뒤풀이 장소로 이동해 갔다. 대가 볼테기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식당인데 작년에도 거기서 뒤풀이를 한다며 그리로 오라고 했다. 스케치를 마치고 뒤따라가서 식당에 들어서니 너른 공간에 1층 가득 우리 일행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회장 등 몇 분이 건배 제의를 하고 즐겁게 식사를 했다. 대구찜과 탕 등을 안주로 술잔을 나누며 테이블마다 도란도란 즐겁게 예기들을 나누었다. 테이블을 옮겨 예기를 나누기도 했다. 식사 중간에 행운권 추첨을 하여 당첨된 분들이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다. 평소의 일을 벗어나 산기운을 쏘이고 마음 편하게 술잔을 나누는 시간에 각자에게 매우 편안한 기분을 갖게 할 것 같았다.
(20130216)
첫댓글 김석환건축사님 정갈한 후기 잘 읽었구요. 바쁘신데도 시산제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석환 건축사님 후기 넘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시산제 장소에서 스케치 하시는 모습 보기 좋았어요.감사합니다.
정병협회장님 큰 행사 치루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황을 이루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박성만 건축사님 덕담말씀 감사합니다. 함께 산행을 하여 반가웠습니다. 늘 건강하고 즐거운 산행길 되시기 바랍니다.
건축사님 올해도 예전처럼 늘 자연에 동화되면서 한발한발...화이팅
건축사님은 이제까지 집필하신 모든것을 책으로 만들어 보심이~
박기호 건축사님 늘 매사에 성심으로 대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기훈 건축사님 항상 발전하시는 모습을 대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짧은 시간에 쓴 글들이라 부끄럽습니다. 졸고의 덕담 감사합니다.
간만에 만나서 반가웟습니다. 또 한편으로 낮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음이 아쉬운 ...
예 저도 반가웠습니다. 시산재 때마다 명필로 축문을 쓰느라 큰 수고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