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산 녹산 대, 하늘정원에는 겨울바람과 물안개만 자욱하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
다음 불 로그:-kims1102@
세상은 아직 가을인데 겨울이 호시탐탐 고개를 들이 밀어본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계절풍이 교대기에 들어가면서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먹구름이 끼고 가을 산들바람이 아닌 겨울바람이 모든 걸 날려버릴 듯 세차게
불어오기도 한다.
이맘때는 날이 맑다가도 어느 순간 추위가 밀어닥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을과 겨울의 기 싸움은 이렇게 밀고 댕기는 맛이 있지만,
저녁 해가 금방 지고 아침은 더디 오는데 해가 짧아지는 게 날마다 눈에 보인다.
한낮의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이지만 아침저녁에는 문밖을 나서기가 꺼려질 만큼
바람이 차갑다.
오늘은 절기상으로 입동(立冬)이다.
이날부터 겨울이라는 뜻으로 동양에서는 입동 후 3개월을 겨울이라 한다.
늦가을 나뭇잎은 떨어져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분다.
옛날 김장 시기는 입동 전후 1주일간이 적당하다고 전해 내려오지만 근래에는
지구온난화현상으로 김장철이 아주 늦어져 가고 있다.
세시에서는 물이 비로소 얼고,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가로수 늘어선 도로에는 비, 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며칠째 수북하게 쌓여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무게를 달리하고 있다.
새벽 04시, 아내가 나를 깨운다.
“내일은 산행지가 멀어 1시간 앞당겨 출발한다.”는 어제 내가 한 얘기 때문에
나를 깨운 것이다.
“다섯 시에 일어 날거야.” 나는 다시 누었지만 잠은 이미 끝나 버렸다.
오늘은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려고 06시 10분에 집을 나섰다.
김밥나라에 들려 점심용 김치김밥을 샀고, 편의점에 들려 Lotto복권을 구입하고,
09번 간선버스를 기다렸다.
입동(立冬)이라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침 날씨는 싸늘하고 추웠다.
오늘은 경남 밀양에 있는 천황산을 산행하는 날이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천황산(天皇山)은
경남 밀양시 단장면,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에 있는 높이
1,189m의 산으로 주봉(主峰)은 사자峰이란다.
남쪽으로 5km 부근에 솟아 있는 재약산(載藥山)과 맥이 이어져있어 천황산을
재약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혼동은 천황산이 일제강점기 때 붙은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사자峰을 재약산의 主峰으로,
재약산(主峰: 수미峰)을 수미峰(1,018m)으로 부르면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산세가 수려하여 삼남금강(三南金剛)이라 부르며,
인근 일대의 해발고도 1,000m이상의 준봉들로 이루어진 영남알프스 산군(山郡)에
속하는 산으로,
산세는 부드러운 편이나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벽을 갖추고 있으며,
수미峰, 사자峰, 능동산, 신불산, 취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드넓은 억새평원으로
“사자평고원지대”라고 부른다.
이 일대는 해발고도가 800m에 달해 목장으로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도 48명의 남녀회원들이 천황산산행에 동참했다.
산행버스는 07시 10분에 광주역 광장에서 출발 “하늘정원”이라 부르는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하부승강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되었다.
하늘과 맞닿는 곳, 구름이 머무는 곳,
천황산 하늘정원을 이어주는 신비의 하늘 길,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는 현존하는 국내 최장거리 왕복式 케이블카로,
선로길이만 1.8km에 달하며, 탑승정원은 50인승으로, 상부역사의 위치가 해발
1,020m의 고지로 표고차가 무려 680m(국내최고)나 된다.
승강장에는 케이블카를 타려는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정보가 부족한 우리들은 난감했다.
자유롭게 탑승할 줄 알았는데 승객이 밀려 우리회원 48명이 탑승할 탑승시간은
오전 11시 50분뿐이다.
요금은 성인 12,000원, 경로우대 9,000원이었다.
늦어지는 탑승시간 때문에 산행시간과 산행코스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황산과 재약산을 연계 산행하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하산시간 오후
4시를 기준으로 자기능력에 맞게 적당한 하산路를 선택해 내려오도록 자유산행을
하기로 했다.
탑승시간이 기다리기 지루한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근에 있는 명소를
다녀오기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회원들도 있었다.
오전 11시 50분,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하늘사랑 길”의 도착지인 녹산대를 향해 오르는데 짙은 물안개가 끼어 정상부가
조망이 안 된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전방에 위치한 백호바위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상을 닮은 웅장한 바위,
한 마리의 백호(白虎)처럼 네 발을 세우고 꼬리를 늘어뜨린 형상이 기이했다.
녹산대 좌측의 천황산과 재악산, 백호바위를 중심으로 좌우로 자리한 운문산과
가지산은 안개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케이블카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물든 깊은 골짜기와 무성한 숲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오늘은 하늘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상부주차장역사를 빠져나오니 갑작스럽게 겨울바람이 급습을 해온다.
물안개는 비처럼 온몸에 달라붙고 시야에는 흐릿한 안개바다, 하늘구름뿐이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부승강장에서 전망대까지 280m에 걸쳐 이어져 있는 데-그 길은 계단식으로
잘 되어 있었지만 나처럼 실망한 사람들만 허탈하게 걸어내려 오고 있었다.
문제는 전망대에서 천황산 사자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패쇠한 것이다.
여기에는 상부역사의 매표소를 없애고 하부역사에서 편도대신 왕복권만 판매하는
이기적 상술이 작용되고 있었다.
천황산을 홍보하면서 정상을 못 가게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출입통제”를 무시하고 울타리를 넘어 사자峰으로 올라간다.
이런 행정은 선량한 사람들을 불법자로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상부승강장이 있는 녹산대에는 바람도 세차게 불고 물안개가 몸에 젖어 추웠다.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는데도 사람이 붐벼 두 번을 기다리다 겨우 탔다.
하부승강장으로 내려오니 날씨는 달라졌다.
천황산의 북쪽 사면에는 가마볼, 호박소[臼淵] 등의 명소가 있었다.
호박소로 가는 길은 깊을 골짜기로 숲이 우거져 단풍이 아름답고 오솔길에는
낙엽이 떨어져 발밑에서 바스락거리고 있다.
마치 노랗게 익은 호박 한 가운데 소(沼)를 만들어 물이 가득하고 넘쳐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소 부근의 물 묻은 바윗돌이 미끄러워 건너가려던 어른 두 명이 미끄러져 다쳤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름까지도 / 가을이 되어 조락을 느끼려고 하네. /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거든 / 가만히 끈기 있게 매달려 있어라 /
그대의 유희를 계속하고 거역하지 말라 / 가만히 내버려다오 /
바람이 그대를 떨어뜨려서 / 집으로 불어가게 하라. (헤르만 헤세의 “낙엽”에서)
얼음골마을은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았다.
길가에서는 수확한 사과를 판매하는 노점상이 수없이 많았으며 사과밭에는 아직
수확하지 않은 붉은 사과들이 가지가 부러 질 정도로 많이 매달려있었다.
맛과 품질이 좋아서인지 가격대가 비싸다.
단장面의 대추도 유명해서 길거리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얼음골에는 단열냉각에 의한 물리적 현상으로 여름에도 골짜기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천연기념물: 제224호)이 있었다.
지금은 계절 때문인지 관광객도 없으며 매 마른 바윗돌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산행버스는 얼음골주차장에 주차되어있었으며 하산지점인 표충사로 향했다.
천황산 표충사(天皇山表忠寺)는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里 재약산(載藥山)에 있는 사명대사(四溟大師)를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表忠祠)가 있는 사찰이다.
경남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표충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인 일연국사가 1,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불법(佛法)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주요 문화재로는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 국보: 제75호)을 비롯하여 삼층석탑
(보물: 제467호) 이 있으며,
석등(石燈), 표충서원(表忠書院), 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서쪽 산기슭에는 내원암(內院庵), 서상암(西上庵) 등의 절과,
20m 높이의 폭포 2개가 연이어 있는 칭칭폭포, 무지개가 걸리는 높이 25m의
금강폭포 등 명소가 있다.
산행 팀이 하산을 하지 않고 있어 가을이 짙어가는 숲길을 걸었다.
낙엽은 떨어져 수북이 쌓여있어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승만대통령이 관리수로 지정했다는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기묘한
모습과 자세로 자라고 있다.
표충사스님들이 죽으면 화장했다는 다비소(茶毘所)도 있었다.
회색양복과 목관악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 그저 목을 늘어뜨리고 /
눈을 감으면 / 가을의 유혹은 나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
사랑의 사람으로 한다. / 눈물 젖은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면 /
인간이 매몰될 낙엽이 / 바람에 날리어 나의 주변을 휘돌고 있다 /
(박인환 (1926-1956년)의 詩 “가을의 유혹”에서)
오늘은 산행에 차질이 생겨 오후 4시 30분에 겨우 산행이 종료되었다.
늦가을 해는 짧아서 오후 5시면 어두워지는데 갈 길이 바쁜 산행버스는 서둘러
출발했다.
하산酒를 취소하려했지만 미리 준비한 음식재료들을 처리할 수 없어 한적한
도로변에서 라이트를 켜놓고 돼지고기 애호박찌게를 만들어 먹었다.
어둠속에서도 회원들은 맛이 있다며 열심히 먹고 마셨다.
음식준비를 해준 산행버스 최기사의 노고가 고마웠으며 뒤처리와 주변청소에
신경 써준 “산으로”와 “민들레”총무, 여러 회원들이 모두 모두 고마웠다.
(2014년 11월 7일)
첫댓글 하늘과 맞 닿은곳 구름이 머무는곳 하늘정원 .~~ 얼마나 멋진곳인지 글만 보아도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 아름다운곳 글로 감상 할수 있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