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예수
(눅 2:48-52)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신앙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찾고, 고백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예수님에 대해서 정의하고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라고 믿는다’는 것이 믿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계시는 곧 ‘말씀’입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교회의 전통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과 교회의 전통이 생기기 전에는 어떻게 예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었습니까? 그때는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스스로 ‘자기 계시’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구약에 예언된 말씀과 일치하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증거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증언이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전파되면서 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함으로서 예수님을 알고, 믿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자세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당대표가 연설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졸았다고 면박 주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런 말 듣고도 국회의원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린이들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하는 대표라는 사람도 권위의식에 찌든 사람으로 보입니다.
말씀을 듣는 우리의 자세는 말씀을 들을 때, 내 맘에 들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거부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중에 깨닫게 될 수도 있는데, 거부하면 그 말씀을 기억도 하지 못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하기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거부하지 말고, 기억 속에, 마음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그 말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음으로서 믿음은 시작됩니다. 마음으로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진리의 영이 그 말씀을 알게 하시고, 우리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기 예수는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때가 지나고 30세가 될 때까지 예수님의 생활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착한 아들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모습을 알려주는 데 있지 않고,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셨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절기에 맞춰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열두 살이 되면 처음으로 순례를 하는 나이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의 부모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척들과 함께 순례를 하기 때문에 또래들과 어울려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상해서 찾았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저기를 찾다가, 성전에서 어린 예수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선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성경과 지혜에 대해 토론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성경에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에 대해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부모는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화도 나고 걱정도 됩니다. 마리아는 생각을 표현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표현은 이렇지만 잔뜩 화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기가 찹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이게 걱정하는 부모에게 할 말입니까? 사춘기여서 그럴 수도 있고, 혹시 그때도 중2병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여튼 반항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그의 부모에게 처음으로 밝히신 것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며,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십니다. 곧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기 계시를 하신 것입니다.
비록 그의 고향과 집은 나사렛이고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예수님이 있어야 할 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그의 부모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얘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이상하게 되었다, 듣기 싫다’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내 아들’이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내 아들이 아닌 것을 아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내 아들인데 내 아들 같지 않은 낯선 모습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부탁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렸다는 소문이 돌아 찾아갔을 때도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 자매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 3:35)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지만 때로는 나와는 상관없는 낯선 분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관계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내 아들’이라고 한다면 부모의 뜻대로 아들이 자라고 일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부모에게 맞추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만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나에게 맞추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내 부탁, 내 기도를 들어주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낯섦은 ‘나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신앙이 옮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에게 적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듣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나사렛으로 돌아왔고,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한 절로 설명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지만, 부모의 아들로서 순종하고, 세상의 지혜와, 육체의 성장을 통해 하나님의 때를 준비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자랐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분이 되신 것은 아름답게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성장과정은 모르지만, 그의 어머니의 믿음을 통해서 훌륭하게 성장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듣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고, 또 듣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마음 속으로 판단하고, 거부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런 말 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거부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도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간직할 때, 순종할 때,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음으로써 신앙이 아름답게 성장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