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이미 영생 (롬6:15-23)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얼핏 보면 “죄지으면 죽을 벌을 받고, 예수 믿으면 안 죽고 영생한다.”는 말처럼 보여서,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던 안 짓던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영원한 생명)이란 육신이 죽지 않는 불사의 상태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또 한 가지, 사람의 몸이 죽고 나면 그 이후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대한 아주 오래된 질문이 그리스도인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신약성서의 여러 군데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관한 주님의 언급이 나오고, 바울의 글 속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성도들의 부활에 관한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일단 몸은 매장 또는 화장을 통하여 그 실체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생겨난 사상이 종말과 심판사상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라, 저 세상이 사후에 존재한다는 확신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 세상의 삶에 대한 명확하고 일치된 신뢰할 만한 설명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은 성서에 기록된 “영원한 생명”(영생)에 대해서 막연히 이해하면서 스스로 “확신”한다고 자부하기도 하고, 반대로 “영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속으로만 고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 그리고 요한의 말씀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영생”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다는 점입니다. 긴 설명 대신에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영생의 의미에 대하여 바울이 그의 글에서 가장 먼저 언급했고,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말을 통해 “영생한다.”는 선언이 등장합니다. 요한의 문서들에서 영생이 자주 등장하는데, 요한문서는 비교적 후대의 문서로서 죽음을 경험한 이후에 영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의 글이나, 요한문서에서 영생은 사후세계 보다는, 현재의 삶속에서 영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인데. 그 영생은 우리의 현재적인 유한한 시간 속에 공존한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이미(already) 그리고 아직도(not yet)”라는 이중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용어입니다.
셋째, 이것이 가장 핵심인데요, 가장 먼저 나온 바울의 표현을 보면, 영생은 성령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성령이 영생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죄 때문에 죽음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자유롭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그 죄는 육신적인 생각입니다. 몸의 생각이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고 살고 싶지, 하나님의 명령이나 뜻을 따르기 싫어하는 삶이 육신의 삶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을 거부하고 자기의 판단과 생각대로 살려는 것에서 해방되어서, 비록 불편하게 느껴지고 당장은 하기 싫더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는 마음이 내 속에 생긴다면, 그것이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이 “영원성”을 계속되는 물리적인 시간만 의미한다고 착각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 번 내 손에 들어오면 영원히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영원”이란 그 핵심이 “생명”에 있습니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이고, 생명다운 생명을 말합니다. 그저 숨 쉬고 있다고 다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살았지만 마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 속에는 기쁨도 없고 평화도 없습니다. 생명이란 생명다운 삶속에만 거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을 “영원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기쁘십니까? 그리고 평화롭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일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 소망을 줍니까? 그래서 나의 욕심과 판단을 접고 그리스도의 가르침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2024년 1월 28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