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의 ‘우정과 경쟁심’
김순은 조간과 함께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조간이 1등이고 김순이 2등이었다.
조간이 늙었을 때 악성 종기가 생겨서 심하게 고생했다. 종기가 얼마나 지독하였던지 목과 어깨가 거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부기가 가라않지 않았다. 여러 의원이 와서 치료를 했으니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손쓸 방법이 더 이상 없었다. 그때 묘원이라는 중이 찾아와서 말했다.
“이 종기는 뼈에까지 깊이 들어가 뿌리를 박았으므로 아마도 뼈까지 반쯤은 썩었을 것이다. 그 썩은 부분을 깨끗이 긁어내어야지 다른 치료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뼈를 긁어내면 그 아픔으로 참으로 극심하여 참기 어려운데,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가?”
조간이 이 말을 듣고 작정한 듯이 말했다.
“어차피 병으로 죽을 것이므로 치료를 하다가 죽으나 병으로 죽으나 마찬가지이다.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소.”
중 묘원은 이 말을 듣고 날카로운 칼을 꺼내어 살을 찢고 뼈를 드러내어 살펴보니 과연 뼈가 많이 썩어 있었다. 그 썩은 부위를 깨끗이 긁어내고 약을 정성껏 발랐다. 뼈를 긁어낼 때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던지 조간은 기절하고 말았다. 이틀 동안이나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김순은 조간의 병이 아주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문안을 갔다. 조간이 있는 방문 앞에 앉자 김순은 큰 소리로 울면서 한참이나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조간이 김순의 울음소리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김순을 보고 좌우에 있는 사람을 시켜서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공이 나를 위해 슬퍼하는 것이 이와 같을 줄은 미처 물랐네. 그런데 마음 속으로는 몰래 기뻐하면서 얼굴 빛은 어찌 이다지도 슬픈 척 하는가?”
김순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어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4기(四記-1記는 12년이므로, 48년이란 뜻이다) 동안이나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사이인데 그 동안 서로 나눈 교분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다 말인가?”
조간이 바로 응수했다.
“만약 내가 죽으면 그대는 같은 합격자 중에서 공이 가장 앞서는 1등이 되지 않겠는가?”
김순이 눈물을 거두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늙은이가 아직은 죽지 않겠구나.”
그리고 비로소 돌아갔다.
우정과 경쟁심은 실로 종이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이재현의 역옹패설 중에서-
첫댓글 1000년 전의 글인데, 인간 심리를 정말 멋지게 그려냈습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