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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영
박 화 성
산에서 내려올 때에도, 그 좁욘 버스 칸에서 봄벼 댈 때에도, 입 한번 열지 않던 상애(相愛)가 집에 돌아와서 손발을 씻고 마루에 올라서자마자 그 역시 손올 닦고 난 타월올 막 벽걸이에 결고 돌아서는 상규에게 물었다.
“오빠, 그 여인이 대체 누굴까?”
“글쎄…….”
상규는 대청 바닥에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하필이면 꼭 우리 아버지 묘소 앞에서 울었다지 않아요?”
상애는 상규 앞에 펄썩 주저앉는다.:
“뭔데? 아가씨!”
상규댁이 부엌에서 머리통만을 내밀었다.
상규는 담배를 찾느라고 두리번대는데 상애는 올케에게로 상반신을 돌렸다.
“묘지기가 그러는데 오늘 오전 열시쯤에 얌전하게 생긴 부인네가 아버지 묘소에 엎드려 울고 갔다지 않아요?”
“저런!”
올케가 손을 털면서 부엌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대화는 이어 간다.
“아마 아버지가 어디다 애인을 두셨던가 봐. 그러게 오늘이 소상날인 것두 알았지 머에요?”
개름하면서도 폭신폭신 탄력이 튕기는 듯한 두 볼에 홍조가 올랐다. 가득한 호기심으로 상기된 모양이었다.
“설마…….”
올케는 남편의 눈치를 멀찌감치서도 살펴 가며 희미한 반응을 보였다.
“설마가 사람 죽인대는데.”
“넌 괜시리 흥분이냐? 내일이 한식이니까 오늘쯤 아무나 옴직도 하구 또 어쩌다 묘소를 잘못 찾는 수도 있으니까.”
상규가 담배 연기를 불고 나서 대수롭지 않게 응대했다.
“아이 오빠두, 언니서껀 똑똑히 들었지 않아요? 우리 얘기까지 묻더라구…….”
“추도식만 아니더면 아침 나절 일찍 갔을 텐데. 그랬더람 꼭 만났을 뻔했지 않아요?”
“만나나마나죠. 아이 언니가 있었음 분명히 증언을 댈 텐데…….”
상규는 상애의 안타까워하는 모양을 보며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이 삼월 오일. 아버지 서변호사의 일주기였다. 운명의 시간인 열시부터 간소한 추도식을 끝내고 오후에야 묘소 참배를 했다. 상규와 큰누이 상희 내외, 상애, 그렇게 네 사람이었다. 상규댁은 발목이 아파서 내일 한식에나 가족 총출동하자고 집에 남아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배를 마치고 나니까 묘지기가 은근히 말을 걸어 왔다.
“아마 친척이신 모양이던텝쇼. 얌전하게 생긴 부인네가 소복 차림으로 묘소 앞에서 한참이나 울고 갔습죠.”
“어머나! 그 웬일야?”
상애가 제일 먼저 내달았다.
“묘소를 헛짚은 게 아녜요?”
언제나 깐깐한 상희가 나직 이 그리고 느릿하게 물었다.
“천만엡쇼. 댁에서들 일찍 오실까 봐 전 아홉시부터 와 있었죠. 열시쯤 되니까 웬 부인네가 허위적허위적 올라와요. 새 무덤을 찾는 모양인지 그럴싸한 무덤은 다 들여다보던뎁쇼. 키두 몸매두 다 날씬하신 게 인물두 참 잘나셨던뎁쇼.”
묘지기는 기탄없이 퍼내던 말을 딱 끊고 사람들의 기색을 살폈다, 혹 자기의 말이 이들의 비위를 거슬리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다가 또 계속했다.
“축대 앞에 제가 서 있었습죠. 그분이 거기까지 와선 비석에 적힌 성함을 올려다보더니만 두말 없이 상석에 푹 쓰러지며 통곡을 내놓지 않겠습니까?”
상규의 가슴에 야릇한 파동이 일어났다. 잔잔한 수면을 거슬리는 바람기를 느낀 것 같았다.
“굽이굽이 마디를 꺾어가며 울어 대는데 그만 저꺼정 눈물을 비죽거렸습죠. 기어쿠 제가 그만두시라는 위로를 드렸으니까요.”
상규의 가슴은 거센 파동으로 흔들렸다. 감격도 동정도 아닌 감정이 맵싸한 연기처럼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몇 살이나 되어 보입디까?”
상규의 거친 말투에 동생들의 시선이 상규에게로 몰렸다가 다음에 묘지기의 입으로 흩어졌다.
“아무리 늘잡어두 오십 미만일 듯하던뎁쇼?”
“아이, 대체 누굴까?”
“누군 누구야? 산소를 잘못 찾은 거겠지.”
상규는 상애의 간절한 의문점을 무질러 버렸다.
“그런뎁쇼. 그분이 자제가 몇 분이냐구 묻지 않겠어요? 그래 제가 아는 대로 삼남매뿐이라구 여쭈었습죠. 그러니까 또 그분이 자제들이 성묘는 잘 오느냐구 또 몇 시쯤에 오느냐구 그러길래 일년밖에 안 되었어도 공일날은 흔히 아침 열시쯤에 오니까 퍽 자주 오시는 폭이라구 했습죠.”
“이상해라, 대관절 누군데 그렇게 자상스런 질문을 하죠?”
“곡절이 전연 없지두 않은가 분데?”
상희 내외가 제각기 한마디씩을 끼었어도 상애는 입을 꼭 다무리고 동그란 눈알을 살살 굴리며 줄곧 침묵을 지키다가 상희 내외가 중간에서 떨어져 나갈 때에야 겨우,
“그럼 언니들 내일 또 만나요.”
하는 인사를 던지고는 이내 말문을 닫았다가 이제야 터쳐 놓은 것이었다.
다음날은 한식날이라 교통도 어지간히 복잡할 테니 일찍 떠나자고 서둘러 여덟시쯤 집을 출발했다. 아버지의 운명 시각이 오전 열 시이어서 그들은 언제나 열시에 묘소 참배를 실천해 왔지만 오늘은 행여나 그 여인의 재현을 바라는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막연한 기대는 상규를 제외하고 상규댁이나 상희 내외나 상애나가다 각기 맘속에 사려 두었을 뿐 아무도 입이나 눈 밖에 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행이 망우리 산을 기어오를 때 상규는 다시금 아버지를 공동묘지에 계시게 하는 자신의 무능을 책망했다. 어느새 사람들이 산을 덮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가족묘지 하나 장만을 못 하고…….’
자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의 탓을 해야 될 것 같다. 사십 전에 벌써 민완 변호사로 이름이 높아 당지에서는 물론 서울에까지 명성이 울렸던 아버지였었더란다.
삼십 세 전에 그 어려운 사법 행정 고문시험에 양쪽 다 패스한 수재 중의 수재이었는데 찬란한 관직은 그의 높은 이상으로 하여 초개같이 여기고 변호사를 천직으로 정했더란다. 타고난 변설과 풍부한 학문과 겸허한 성격으로 세간의 인기란 인기는 독점하여서 국사범의 변호나 가난한 지사들의 무료 변호는 혼자 도맡다시피 하면서도 자연적으로 돈이 들어오게 되어 사십 당년에는 갑부 부럽지 않은 치부를 하게 되었더란다.
그러던 것이 뜻하지 않은 그야말로 목숨과 맞바꿀 만한 일생일대의 크나큰 사건 때문에 아버지는 왕성한 성장욕으로 뻗어나던 새싹의 윗동을 싹 도려내 버린 밑동의 신세(?)가 되었더란다. 보통의 남자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치명적 이 아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에게는 그 사건이 적어도 그에게서 빛과 힘을 앗아가 버린 탓으로 사업이나 가정이나가 모두 다 시들하게만 여겨져 그 후 이십 년을 그저 되는 양 살아온 까닭에 가족묘지 하나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된 것이었다.
‘아아 불행하신 내 아버님!’
상규의 콧머리가 시큰하게 띵 울면서 눈이 화끈 물이 어려져서 돌자갈이 안 보였다.
‘어떻게 꼭 하나 마련해야 할 텐데.’
어느덧 잔등 길에 올라섰다. 자동차가 부웅 하고 사무소 앞을 돌아간다. 상규는 아내를 생각했다. 아직도 발목이 좀 새큰거린다는데 택시를 태우지 못하고 비탈길을 걷게 한 것이 안되어 좀 어떠냐고 묻고도 싶지만 지금 그럴 심정이 아니어서 슬쩍 흘려보니까 아내는 자칫 발을 끌면서 잘룩거렸다.
상규를 제외한 일행 네 명은 멀리 묘소를 올려다보며 그럴듯한 소복 여인의 모습을 더듬었지만 저희 멋대로 웅성거리는 것은 모두 딴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만면에 웃음을 피우고 달려내려와서 그들의 손에서 보따리를 받아 드는 묘지기의 입을 주목했지만,
“어 이구, 일찌검치 출동을 허셨구먼요오.”
하는 인사 외에 아무런 말도 덧붙여 주지 않았던 것이다. 상규댁은 어제 못 왔었다는 미안한 맘에서인지 형식대로의 다례가 끝난 후에는 혼자 일어나서 묘의 앞뒤를 둘러도 보고 아직은 새싹이 비치지도 않은 금잔디를 쓰다듬기도 하고 축대 가으로 주욱 늘어선 개나리의 꽃망울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아픈 발목을 끌면서도 며느리의 도리를 하려는 아내의 안상한 맘씨를 상규는 새삼 고맙게 여겼다. 소위 대학 출신의 현대 여성이건만 아내는 때때로 전통 있는 동양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선 자부를 극히 사랑하셨는데 그나마 삼 년간의 봉양밖에 못 받으시고…….’
상규는 초라한 아버지의 묘비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가족묘지에 안장하는 날 훌륭한 비석을 세우리라고 우선은 자그마한 화강석비를 꽂아 둔 것이었다.
“오빠, 우린 언제나 어머니 산소에 갈 거예요?”
상애가 가끔씩(아버지 생전부터) 졸라 대던 것을 또 여기서 발언했다.
“이십 년 동안에 어머니 묘 한 번 구경한 적이 없담 아무두 곧이듣지 않을 거예요.”
“글쎄 너무 멀어서…….”
“아무리 멀다구 삼팔선 이북은 아니잖아요?”
“모두 일에 쫓기다 보니 그렇게 된 셈이지.”
“금년 여름엔 꼭 성묘하두룩들 해요. 오빠랑 언니랑 못 간댐 나 혼자라두 단행하겠어요.”
“오빤 여러 번 갔다 오셨지 않아요?”
상규댁 정옥이 조용히 끼여드는데 아래쪽에서 갑자기 울음소리가 터져 올라왔다. 모두들 내려다보니까 새 무덤 앞에 소복한 여인이 엎드려 있는 것이다. 주위엔 자녀인 듯한 애숭이 청년들이 서 있는데 통곡 때문에 들먹이는 등허리를 여기서도 알 수 있게 여인은 몸짓을 해가며 서럽게도 울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의 말림으로 일어나 앉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도 묘지기의 입이 열리지 않음으로 하여 상애네들의 머릿속에서 행여나 하던 의혹증도 풀린 듯했다.
“저쯤 되면 고인도 흐믓해할 거야. 우리 아버지두 요샌 고독하시지 않을 테니깐 말이지.”
“그 여인 때문에?”
상희가 느릿하고 나직하게 반문했다. 상희의 남편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애인이 나타났으니 말예요. 아버지두 참 능청스러우셨어. 어쩜 깜쪽같이…… 호호.
상규가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이 밀려드니까 그만 일어나자면서 아내더러 짐을 챙기라고 했다. 정옥과 상희가 이것저것 꾸리는 동안 상규는 묘지기에게 묘소의 좀더 손볼 곳을 지적했다.
“오빠, 우리두 아버지 엄말 합장하면 어때요? 친구들 보니깐 능처럼 굉장하게 부모님을 함께 모셨겠죠.”
“넌 꿈같은 소리만 지껄이는구나.”
“물론 가족묘질 사구 이장할 땔 말하는 거죠.”
상규는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막내라서 그런지 상애는 간절히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말끝마다에서 동무들의 어머니를 신나게 꼬집어냈다. 그리고는 꼭,
“아이 난 왜 어머닐 세 살 때 잃었을까? 그렇게두 일찌감치…… 아무튼 청승이야.”
하는 푸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상애는 돌연히 출연한 여인에게 대한 관심도 제일 크고 깊었다. 상애는 돌아올 때 묘지기에게 또 그 여인이 오면 재주껏 그의 주소와 정체를 알아서 곧 기별하라는 부탁을 하였다.
영원한 망각에 묻은 줄 알았던 괴로움이 요새 상규에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상규가 여덟 살. 민족이 기뻐 날뛰던 조국의 해방 그 이듬해였다.
국민학교 이학년에서 아니 그 학교 전체에서 상규가 제일 동무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동무들만이 아니었다. 교장님도 선생님들도 서상규라 하면 당시 첫째로 꼽히는 유지의 아들이라고 눈빛을 달리해서 보았던 것이다.
재산 있는 변호사, 명망이 높은 인격자가 아버지인데 어머니는 또 희귀한 일본 유학생인 절세의 미인이었던 것이다.
차르르 끌리는 비단옷을 감고 또 어떤 때는 백설 같은 털깃이 달린 검은 외투를 입고 또 여름에는 눈이 부시게 하얀 모시 치마 적삼으로 상규의 어머니가 학교에 나타나면 금방 교실이 화안하게 밝아지고 애들은 정신을 잃고 바라보고 선생님은 공연히 기를 못 펴고 쩔쩔맸던 것이다.
상규는 일등으로 이학년에 진급했다. 급장이었다. 집에서는 교장이하 여러 선생님들이 맘껏 먹고 가장 큰 환대를 받는 큰 잔치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때뿐만 아니었다. 그보다도 더 큰 잔치가 가끔씩 열리면 잘나 보이고 높아 보이는 신사들이 널따란 사랑 대청과 방 안에 가득 차고 넘쳤던 것이다.
언제나 어머니는 그런 잔치 맨 나중에 차를 들리고 사랑에 나왔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앞에서 신사들은 모두 못난이처럼 행동하는 것같이 보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여왕 같은 자태로 진주처럼 고운 미소를 풍긴다는. 그리고 밝고 은근한 음성으로 사교적인 인사말을 뿌린다는 평판이 높았던 것이다.
사실 그런 때는 어린 상규에게도 동화에 나오는 선녀가 저런가, 공주가 저런가 하고 분별 못 할 만큼 황홀만 했던 것이다.
용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맘씨까지가 부드럽고 너그럽다는 소문이 꼭 맞아서 아버지에게도 이상 더 헌신적일 수 없고 삼남매의 자녀에게도 이상 더 희생적일 수 없을 뿐더러 일가친척이며 이웃들에게도 골고루 은혜와 인정을 나눠 주었던 것이다.
행복을 그 혼자서 차지한 듯이 보이는 아버지에게 오직 한 가지 미흡한 일이 있다면 아버지는 천생 약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다고 골골거리는 약질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어깨와 가슴이 얄팍한 선비의 풍채일 뿐이지 일년 내내 감기나 몸살로 누워 본 일이 없는 강강한 기질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각종의 보약을 구해다가 먹이고 붕어곰이니 계삼이니를 사철 떨어치지 않았던 것이다. 애들에게는 또 얼마나 사랑이 많았던 어머니였던가. 상희가 다섯 살, 상애가 세 살이었는데 어쩌다가 누이들이 아프면 밤을 꼬박 새우면서 손수 약을 다리고 물찜을 해주면서 그야말로 희생적인 간호를 하였던 것이다.
시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학생시절에 항일투쟁으로 옥살이를 했다는 조건말고라도 아버지는 진짜 애국자였다. 그 덕분이었던지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중앙위원의 한 책임자로 상경하였고 상규는 그날따라 학교가 한 시간 먼저 파하게 되어서 등짝에 맨 가방이 떨어져 나갈 만큼 줄달음으로 집에 돌아왔었다.
상규의 집은 시내 중앙의 번화가에 있었던 까닭에 딴 곳에 법률사무소를 두지 않고 솟을대문인 큼직한 대문을 향한 바른편에 넓고 길다란 대짜 간판을 걸었던 것이다.
큰 대문을 들어서면 정원이 있고 바른편으로 날아갈 듯이 도사린 한식 별채가 사무실이며 거기에 사랑채가 관록과 위엄을 풍기며 잇달아 있었다. 사실 이 집은 순 한국식 건물이라는 데에 자랑과 아취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왼쪽에 안채의 대문이 화사하게 서 있었다. 사랑과 안채는 긴 낭하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무실 별채의 뒤뜰에서는 안채의 뒷담이 보이고 그 뒷담에는 청색의 칠문이 자그마하게 박혀 있었다.
사무실에는 아버지의 대학 후배이며 수재라는 황비서가 가끔씩 아버지의 대리역도 하기 때문에 자연히 수석이 되고 그 아래로 삼사 인의 사무원이 있었다.
황비서는 집이 먼데다가 아직 독신인 까닭에 숙식을 상규네 집에서 하게 되었다. 아담한 숙직실이 그의 침실이 되고 양풍의 응접실이 밤이면 그의 거실 겸 서재가 되었던 것이다.
황비서는 체격이 당당하고 인물도 번듯할 뿐 아니라 이십칠 세로는 조숙한 편이어서 삼십 세도 넘어 보일 만큼 장년티가 났다. 그러면서도 능동적이고 영리하여서 아버지의 편리한 수족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호기 있게 대문을 들어선 상규는 먼저 사무실로 달려가서 아저씨를 찾았다. 황비서를 이름이었다. 아버지보다도 더 영화관이나 과잣집에 잘 데려가고, 고분고분 여러 가지 장난감도 만들어 주는 그를 상규는 무척 따랐던 것이다.
“아저씬 법정에서 아직 안 왔다.”
어느 사무원인가가 일러 주었다. 상규는 두말없이 안채로 돌아와 대문을 박찼다. 열리지 않았다. 거칠게 흔들어 댔다. 주먹으로도 두들겼다. 순이를 불렀다.
“순이야! 순이야!”
안에서 신발 소리가 나고 빗장이 덜컥 빼지면서 어머니가 빠끔히 문을 열었다. 상규는 총알같이 안뜰로 들어갔다. 집 안이 조용하였다.
“엄마, 상희랑 다 어디 갔어?”
“큰댁에서 전화가 왔어. 할머니가 애들 보내라구. 그래 아줌마랑 순이가 데리구 인제 금방 갔단다.”
평소에 없는 긴 설명이지만 상규는 아랑곳없이 안방 미닫이를 드르륵 열었다. 윗목에 황비서가 단정히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아저씨가 여겄네. 법정에 갔다던데…….”
“응, 오는 길에 사모님께 여쭤 볼 게 있어서 바로 일루 왔다. 어떻게 넌 오늘 일찍 왔구나.”
황비서는 상규를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서류를 만지며 말만 했다.
상규는 가방을 벗었다. 여느 땐 엄마가 벗겨 주는데 오늘은 엄마가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다가,
“배고프지? 밥 차려 줄게.”
하고는 밖으로 나갈 때 힐끗 보니까 엄마의 저고리 등짝이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다.
상규에게는 아저씨가 엄마와 단둘이만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이상스럽지 않은 것이다. 엄마랑 영화관에 갔다가도 돌아올 때는 반드시 마중 오는 아저씨와 함께 오는데 매양 둘이는 뒤에 떨어져서 소곤거리며 걸어왔었고 아버지가 출장 가시고 사무실이 조용한 밤에 애들과 식모가 다 잠든 후에도 엄마가 먹을 것을 가지고 사랑으로 나가는 것을 상규는 몇 번이나 자면서도 보아 왔던 것이니까.
다만 대문을 잠갔던 것이 부앗감이었다. 그리고 전에 없이 엄마가 당황해하는 것 같고 엄마랑 아저씨가 꼭 내외간처럼 보이는 것이 비위에 탁 거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아저씨와 엄마가 더 어울려 보이는 것은 어쩐지 상규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다. 하기야 엄마는 삼십이 훨씬 넘었지만…….
아저씨는 휘익 밖으로 나가더니 부엌에 있는 어머니와 한참이나 조용조용 얘기하다가 대문 소리도 없이 나가 버린 모양이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어머니는 상규와 둘이만 있을 때 상규의 등을 안고,
“상규야, 엄마가 죽구 없음 넌 어찔래?”
하고 그의 턱을 상규의 머리통에 사뿐히 얹었다.
“엄만 안 죽어. 엄마 죽으면 나도 즉어야.”
“그래서 쓰나? 상희랑 상애랑 데리구 잘 살아아지, 아버지랑…….”
“싫어 싫어.”
상규가 몸을 흔들며 홱 돌아앉자 어머니는 씩― 외면했으나 그의 옆볼을 흘러내리는 눈물을 상규는 놓치지 않았다.
“엄마! 죽지 말어, 응?”
상규는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랫목에서 쌕쌕 자고 있던 상애가 눈을 번쩍 뜨고 이 광경을 보댜가 저도 아앙 울어버렀던 것이다.
추위가 계속되던 십이월 어느 날 상규가 학교에 갔다 오니까 아버지가 방에 누워 있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어디 갔대?”
상규가 물어도 식모나 순이가 못 들은 척하는데 상희가 냉큼 나섰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러 갔어. 상애가 따라간다고 울다가 맞었어. 아빠가 막 때렸단다. 그래 나는 안 울고 엄마만 울고 차 타고 갔단다.”
“뮈? 어떤 병원에?”
말을 끝내지도 않은 채 상규는 마구 대문 밖으로 내달았다. 단골로 다니던 병원에 가는 것이다. 순이가 따라오며 무어라 소리쳤어도 상규는 단숨에 병원 언덕까지 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긴호부에게 엄마 왔느나고 물으니까 간호부는 머리를 저었다. 상규는 다시 언덕을 내리달렸다. 또 다른 병원에 가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주 오는 순이에게서 엄마가 야주 멀고 먼 섬으로 요양하러 갔다는 말을 듣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어 댔다
“챙피하단 말야. 울지 말어 야.”
순이가 앙칼지게 내뱉은 창피하다는 말끝이 왠지 상규의 가슴에 맺혔다. 상규는 울음을 거두고 집을 향해 걸었으나 태양이 있는지 없는지 그저 캄캄한 길목을 더듬었을 뿐이었다.
이십 년이라는 날과 달과 해가 쌓이는 동안에 서변호사는 차차로 변해 갔다. 어머니를 잃은 그날에 함께 잃었던 빛이라는 것을 아버지 역시 아내와 함께 빼앗겼던 모양으로 그날부터 아버지의 얼굴은 늘 그늘져 있기만 했다.
어린 상규가 종합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어머니가 황비서와의 관계를 미리 아버지께 고백하였고 자기는 이미 버린 몸이니 더 큰 망신을 남편에게 안기기 전에 조용히 물러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아버지는 단박에 승인하고 친척과 집안에는 어려운 병이 있어 먼 섬으로 치료차 보내노라고 선언했으나 가족들은(순이까지도) 제각기의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집이 인물값 하느라고 그래 제 비행을 제 입으로 감히 당돌하게 큰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고성(高聲)으로 그런 배신자들을 집에 두고 부정을 조장했다는 타매를 하였다. 능변이던 아버지의 말수는 제로에 가까울 만큼 줄어졌고 그에게서는 웃음을 찾을 길이 없었다. 관대하고 명랑하던 아버지는 다음해 어머니의 객사를 알린 후에 좀더 침울해졌던 것이다.
자녀들에게 미칠 영향을 염려했음인지 아버지는 상규의 삼남매에게 모친의 별세를 선언했다. 상희와 상애는 곧이들었으나 울 줄을 몰랐다. 오직 상규만이 종일 방 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내 가산을 총정리하여 서울로 이사하였고 당주동에 큰 집을 사서 법률사무소와 주택을 겸했다.
상규는 어머니가 황비서와 거제도에서 살림을 차렀단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혼자만의 비밀로 아무에게나 발설을 하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 상규의 성격에도 많은 변화가 온 것이었다.
어느 여름에 아버지는 파리채로 파리를 잡았다. 늦은 봄부터 파리가 성할 때면 서변호사는 종일이라도 파리채를 놓지 않았다. 집무중에만은 하는 수 없어도 그 외엔 대개 파리잡이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때에 보면 아버지는 딴 인상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꾸욱 박아 파리를 노리고 입은 야무지게 맺혀졌는데 그 입이 파리를 모질게 쳐서 죽일 때마다 입술을 옥물어 짧은 말을 깨무는 듯했다.
아버지가 한창 열을 올릴 때는 결에 누가 있는 것도 잊고 흥분하는 것이어서 한번은 상규가 분명하게 들었다. 그 짧게 짓씹는 마디는, ‘황가놈아 황가놈아 황가놈아’였던 것이다. 상규는 정신이 아찔하도록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구곡에, 핏줄에, 원한이, 저주가 맺히고 엉겼으면 그 관대하고 명랑하던 아버지가 이토록 잔학하게 되었을까.
상규는 밤새도록도 골똘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체 어머니는 무엇을 갈망하였었던가?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아버지였다. 그들은 연애결혼인만큼 피차의 사랑도 작렬적이었던 것이다. 무엇에 충족을 얻지 못하였던가? 지위, 명에, 재산, 사랑, 가족, 무엇 하나에 기우는 것이 있었던가? 황가는 아버지에게 없는 무엇을 가졌기에 어머니는 자녀까지 다 버리고 끌려갔던가? 그들은 현재도 행복하고 있는 것일까?
아들도 아버지도 침울해만 가는 이 가정에서 상희는 달, 상애는 해의 구실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지극히 동정하는 일가댁 과부아주머니(아버지의 누이뻘)가 살림을 도맡아 짭짤한 주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까닭에 달과 해는 맘껏 빛을 내서 이 집의 그늘과 냉기를 곧잘 몰아내고 녹어 주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6·25의 동란도 무사히 지내고, 4·19와 5·16의 혁명도 평탄하게 맞이하는 동안 상희는 대학을 나와 결혼하여 달의 구실에 종지부를 찍었으나 상애는 아직도 새 주부인 정옥과 함께 이 가정의 광명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애를 다루기에 상규는 힘이 들었다.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애는 언제나 어머니의 노래만 부르는 셈이었다.
어머니와 찍은 사진은 아버지가 전부 없애라고 하는 것을 상규가 깊숙이 보관했는데 상희 자매가 그것을 발견하여 그들의 차지가 된 것이다.
“제발 아버지의 눈에 띄게만 말아 다오.”
어머니가 절세미인이라는 둥 상애가 꼭 엄마를 닮았다는 둥 아버지와 어쩌면 그렇게 사이가 좋으냐는 둥 지저귐이 끝이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상애는 꼭 엄마를 오려 낸 것처럼 키나 몸매나 윤곽이나 생김새까지가 엄마 꼭 그대로인 것이다.
“그만큼 정다우셨으니깐 남이 다 하는 재취도 안 하시는 거 아냐?”
딸들의 이런 허울 좋은 추측과는 정반대로 서변호사의 눈에 여자란 요물로만 보였고 황가 때문에는 인간 불신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인지 정치가의 소질도 풍부한 그는 어느 정당에나 어느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쓸쓸하고 고적한 육십 평생을 마친 것이었다.
“아아 불쌍하신 내 아버님.”
아버지를 생각만 하면 언제나 연민의 정이 샘물처럼 고이면서 동시에 강렬한 증오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일주기에 소복 여인이 묘소를 찾아와 통곡했다는 것이다. 운명의 날짜와 시각까지 알고 있는 중년기의 여인을 상규는 육감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영원한 망각에 묻고자 하던 괴로움에 시달리는 요즈음인 것이다.
상애는 묘지기의 기별을 고대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정옥에게 오빠가 언제와 어느 때에 어머니의 산소에 갔다 왔느냐는 질문도 반복하는 모양이었다.
상규가 출장 가는 길에 정옥에게 체면 닦음으로 내던진 거짓말이지만 정옥은 주저하지 않고 그 시일(時日)을 내세우기 때문에 상애는 점두하면서 하기 휴가에 성묘할 것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상규는 차라리 상애에게 사실을 틸까도 생각했지만 누이에게 아픈 상처를 줄 수는 차마 없었다.
‘어디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하자.’
졸업 직전에 D신문사의 견습기자에 합격한 상애는 여름까지 부지런히 출근하더니 며칠 동안의 휴가를 얻어서 기어코 이번의 계획을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표시하고 나섰다.
“상애야, 너 혼잔 못 간다. 그 지역이 도저히 설명으론 이해 못 하는 데야. 그리고 더구나 뱃길이란 말이다. 이번엔 모든 여건이 틀렸으니 우리 내년엔 꼭 단행하기로, 응! 그때쯤이면 아마 아버님을 다른 데로 모시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야.”
상규는 여건을 들어서 상애를 달랬다. 그 여건이란 삼 년 만에 정옥에게 태기가 보인다는 것과 상희 남편이 병증에 있다는 것이다. 상애도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여건임에서 슬그머니 주저앉았지만,
“그 여인은 왜 감감무소식 일까?”
하는 말은 잊지 않았다.
“넌 대체 그걸 알아서 어쩌자는 거지?”
“오빠두, 생전에 고독하시던 아버지께 애인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워요? 알게만 되면 난 그이랑 친하게 지낼려구 그래요. 서로 맘의 위로가 되구 조음 좋아요?”
“꿈같은 얘기야.”
“실현성이 농후한걸요.”
“난 모르겠다.”
사실 상규에게 있어서 더 큰 문제는 하루밥비 개인 소유의 묘지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법학을 전공하겠다는 상규에게 반대하였다. 결국 변호아가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규는 공과대학 건축과를 마치고 어느 건설회사에 근무중이라 당장에 마련할 수는 없지만 내년 대상만 지나면 삼주기만은 새로운 묘소에서 맞이할 예산도 서 있는 것이다.
상규는 가을과 겨울 내내 행여나 거제도의 소식을 들어 볼까(가장 싫은 일이지만) 하고 그럴싸한 몇 군데를 넌지시 듣보았다. 혹은 딴 곳으로 이사 갔다는 모양이더라 하고, 혹은 황가가 6·25때 없어졌다고도 하였다. 정확한 소식은 아니더라도 분명 변동이 있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어느 아낙네는 그들에게 남매가 있더라는 것도 알려 주었다. 자기가 불행하기에 옛 정을 추모하는 것일까, 한껏 행복하면서도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일부러 멀리서 찾아온 것일까. 상규의 머리는 이래저래 늘 혼탁해지려고만 하는 것이다.
드디어 이듬해 사월 오일에 제이주기를 맞았다. 공교롭게도 작년 같이 대상 다음날이 한식이어서 군중의 대혼잡을 피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상애는 굳이 아침 열시에 가겠다고 하였다. 상규는 당황해서 버럭 화를 냈다.
“탈상인데 넌 추도식이 중하지 않니? 허황한 일에 왜 가법게 날뛰는 거냐? 언제나 철이 들 거야.”
난생 처음인 오빠의 꾸중에 상애는 멀쓱 가라앉았으나 돌아서서 훌쩍이고 있었다.
‘오죽 어머니의 사랑에 주렸으면…….’
상규의 눈도 솟아나는 눈물로 뜨거워졌다. 여인의 출현은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격으로 결코 평온하지 않을 성싶다.
추도식이 끝나 손님을 대접하여 보내고 나니 오후 두시나 되었다.
“세시에 떠난대도 네시 넘어서야 당도할 테니 빨리들 서둘러라.”
상규는 작년 그대로의 일행을 거느리고 망우리 산 아래 이르렀다. 길바닥에도 즐비하게 물건이 벌여져 있고 가파로운 오르막 산길에도 빈틈이 없이 사이다 콜라 맥주 등의 병이 무더기로 널려 있었다. 빵 오징어 문어발 땅콩 과자 따위가 산 위 넓은 길가에도 주욱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상혼(商魂)은 묘지에까지…….”
상애가 말하면서 깔깔 웃었다. 내일의 혼잡을 피하려는 심산에서 손에 낮을 들고 성묘를 끝내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들 이러니 정작 내일은 물건이 더 많아지겠지?”
“해마다 더 극성 인가 봐.”
상희와 정옥이 좌우를 돌아보며 소곤대는데 뒤에서 묘지기의 소리가 났다.
“인제들 오십니까요?”
일행은 모.두 뒤를 돌아보고 상규는 묘지기에게 어딜 갔다 오느냐고 물었다.
“아침에 안 오시기에 잠깐 문안에 좀 다녀오는 길인뎁쇼.”
“그 부인 오지 않았어요?”
상애가 묘지기의 곁에 붙어서며 가만히 물었으나, 묘지기는,
“안 오셨던뎁쇼.”
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묘지기가 앞장을 서고 일행은 그 뒤를 따라 산소를 향하고 올라가는데 처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야 도착하는 이들 남녀에게 집중되었다.
“아, 저기 오셨군요.”
묘지기가 두어 걸음 되돌아와서 은근히 소리쳤다. 묘지기의 은근한 외침은 상규의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다. 심장이 덜컥 멈추는 듯한 충격이었다.
“어쩜!”
“우릴 일부러 피한 모양인데 짓궂게 만났군.”
상희 내외가 중얼댔다. 정옥과 상애도 무엇이라고 재잘대는 모양인데 상규는 한마디도 의식하지 못했다.
묘지기의 손끝을 따라 올려다보니 과연 아버지 상석 앞에 흰 그림자가 엎드려 있었다. 상규의 발길은 자연히 헛디뎌져서 뒤로뒤로 처지기만 했다. 아내가 가끔씩 상규를 기다리면서도 눈은 위에 주고 있었다.
제일 앞장은 묘지기와 상애였다. 인기척에 놀란 듯 여인은 일어섰다. 상애와 여인이 마주 보고 있었다. 다음에 상희 내외가 이르렀다. 여인은 몸을 움싯거리면서도 상희 내외와도 빠안히 마주 서 있다가 드디어 상규의 부부가 최후로 비석 앞에 이를 때 여인이 그들과 마주쳐 지나려 했다.
상규는 여인을 보았다. 그때와 별로 다름없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여인은 여덟 살 때의 상규를 회상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뗬다. 그의 전신에서 놀람과 반김과 수치의 빛이 강하게 섞여 흘러나온다고 느낀 것은 상규였다.
상규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여인은 상규의 시선을 피하여 그 중에서도 무엇을 확인하려는 듯 상희와 상애를 눈여겨보고 다시금 남편과 정옥을 둘러본 후 다시 상규의 앞에서 멈싯멈싯하다가 와락 앞으로 내걸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심장이 정지된 듯이 모두 머엉하니 서 있던 일행에서 상애가 정신이 든 듯,
“여보세요!”
가늘게 부르면서 뒤를 쫓으려 했다.
상규가 무겁게 눌렀다.
“상애, 가선 안 돼!”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는 오빠의 얼굴과 오열 비슷한 말소리에서 상애는 동작을 멈추었다. 상규가 제 눈물을 깨닫지 못하듯이 상애에게서도 절로 눈물이 흘렀다. 다음엔 상희에게서 그리고 정옥에게서도…….
그들이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때 여인은 이미 저만큼 내려가 있었다. 석양을 안은 그림자를 길게 뒤로 남기면서 그는 가고 있었다.
(《신동아》, 196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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