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 그것은 코로나 이전 14년간 세계 곳곳을 배낭여행 하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모두 가족 이상으로 다가온다. 국내 선수로는 유일하게 2024 윔블던에 출전하는 권순우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섰다. 기자는 미디어팀으로 언제라도 프리패스 할 수 있으나 동행한 가족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라운드 티켓이라도 끊으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만 했다.
전날 저녁에 내린 비로 체감 온도는 10도, 이른 새벽이라 윔블던역에서 올 잉글랜드 클럽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없어 각 3.5 파운드를 (7000원)내고 합승 택시에 올라탔다. 유일하게 택시를 탈 때는 현금을 내야 했다.
대기표 2887번. 축구장 몇 배 크기의 윔블던 파크에는 밤을 꼬빡 새운 텐트가 많고 이미 셀 수도 없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과연 입장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점치기보다는 꼭 권순우 경기만은 보고 싶다는 가족의 열망을 위해 대신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렸다.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손발이 굳어지고 온몸이 꽁꽁 얼어 감각이 없어졌다. 히트텍 내의도 가벼운 거위털 파카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추위에 특별히 약한 체질때문이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반바지 차림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얼추 6시간 만에 표를 사고(그리운드 티켓 30파운드,대략 6만원) 아이들 등교를 시킨 후 도착한 가족과 함께 윔블던 성전에 입장 할 수 있었다.
관람할 수 있는 자리가 제한적인 16번 코트에 배정된 권순우 선수의 경기를 보려면 전 게임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려야 했다. 11시에 시작한 미국의 코르다 선수는 5세트까지 접전을 했고 그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두 차례의 비가 내려 관계자들을 바쁘게 했다. 비가 오면 재빠르게 잔디를 덮고 또 맑아지면 다시 걷어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면 안 되었다. 오로지 자리를 지켜야만 다음 이어지는 권순우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권순우 경기는 오후 1시로 잡혀 있었지만 전 게임이 길어지는 바람에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다. 동행한 테린이 며느리도, 유길초 국화부도 입장하는 권순우 선수를 향해 힘찬 박수로 영접했다.
이미 몸은 새벽부터 추위에 장시간 노출된데다가 비를 피하지 못하고 코르다 경기가 중단되었어도 자리를 지킨 상태라 눈꺼풀이 한없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권순우의 상대가 세계 15위의 홀게르 루네(덴마크), 거의 체격도 비슷하고 잘 생긴 두 젊은이의 경기 관전에 집중했다. 첫 경기는 권순우가 몸이 안 풀렸는지 1대6으로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 군데군데에서 ‘권순우 힘내라 파이팅!!!’를 외치고 있었다. 한쪽은 권순우의 스텝진, 우리의 등 뒤에 서서 외치는 사람은 영국 유학생이었다. 한국에서 윔블던에 6년째 취재 방문했다는 소셜 미디어팀원도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국화부인 기자의 시각으로는 부상자 보호랭킹을 적용받아 윔블던에 자동 출전한 권순우는 잔디에 적응을 못 하는 것인지 백핸드 깊숙하게 떨어진 공 처리에서 많은 에러가 나와 안타까웠다. 루네 선수는 노골적으로 포인트 사냥을 하기 위해 깊숙한 백핸드 쪽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동안 2020~2021년 권순우가 루네 선수와의 경기에서 두 번이나 이긴 전력이 있기 때문에 경기 중간에 고비가 와도 가끔은 그래도, 그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늘은 다시 맑아져 흰 구름 둥둥 떠 있고 초록의 잔디에서 뛰는 권순우는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인들에게는 귀하디귀한 대한민국 대표선수였다. 1대6. 4대6. 4대6으로 경기는 마무리되고 통로까지 가득 메운 갤러리들을 제치고 코트 반대편에서 애타게 응원하던 한국인들을 만나러 갔을 때는 이미 모두 떠나고 없었다.
곧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권순우 선수가 더욱더 좋은 기량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런던 송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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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국화부 유길초는 6시간 줄서서 기다려 6만원에 티켓사서 입장한 후 밤 열시까지 대부분의 코트를 돌며 흡족해 했다. 윔블던 경기를 직관할수 있었던것은 돈으로 환산할수없는 귀한 자산이 된 경험이었다고 한다.글사진 런던 송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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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ue라는 단어의 뜻은 줄을선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