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귀로歸路 외
가는 듯 마는 듯 굼 뗀 물줄기
새똥도 구정물도 깃들고
고양이똥 강아지 비듬까지
여린 품에 덕지덕지 담았기에
굼뜨게 느릿느릿 세월 따라 간다
해 저물 무렵 삼거리에 이르면
북쪽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만나
밀어주고 끌어주며 속도전을 펼친다
뉘엿뉘엿 달빛을 탄다
일렁일렁 검푸른 큰집에 도착하면
무거운 짐 내려놓고
가쁜 숨도 엿가락처럼 늘여놓고
달빛으로 머리를 감는다
동녘에서 서쪽을 드러내 줄 적에
얼마 만에 돌아왔나 내 고향
구름 되어 아득히 먼 길 헤매이다가
짠 내 나는 울 엄니 젖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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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마치고
청춘, 그때의 낙엽은
왜 그리도 쓸쓸하기만 했을까
가슴에 구멍 뚫린 양 공허했을까
아마도 미래를 상상했던 것이었을까
중년, 지금의 낙엽은
왜 그리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울까
가슴에 오색단풍이 들어와 일렁이니
아마도 오늘의 나와 같다고 생각하나보다
차가운 봄바람 비집고 일어나
아낌없이 할 일 마치고
한해의 노고를 추풍이 위로하니
낡은 옷가지를 하나둘 벗으려한다
입새에 한 자 한 자 심어놓은
한해의 기억들을
날실과 씨실이 하는 일처럼
땅 위로 차곡차곡 내려서 겹쳐놓는다
한덕수
충북 진천 출생으로 2022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산문집 『버릴 줄 아는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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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귀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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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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