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진주 기생의 뜨거운 ‘훈계’
리영희 평전/[4장] 7년간 군대생활, 화랑은성공로훈장 받아 2010/05/08 08:00 김삼웅리영희는 군인생활 중에서 특이(?)한 사건도 있었다.
스캔들이라 하기에는 ‘숭고’한 사건이다. 지리산 공비토벌 임무가 한창이던 중위 시절에 겪은 일이다.
“내 옆에 앉게 된 권번기생이 나보다 나이는 여러 살 위였지만 용모나 허위대가 마음을 끌었다. 노는 가락도 과연 어렸을 적에 권번에 들어가 기생수업을 했다는 말대로 어딘지 다른 데가 있었다. 나는 매혹되었다.” (주석 19)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이 끝나갈 무렵 연대장이 장교들의 사기를 돋구고 그간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기생들이 나오는 소문난 술집에서 술판을 마련하였다. 리영희는 그때까지 담배는 피웠지만 술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교 1명에 기생 1명씩이 곁에 앉은 술집에서 몇잔을 거푸 마시다보니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나도 그날 밤은 논개의 후예들이 따르는 술잔을 거푸 받아 마셨고, 값싼 분내에 취하여 제법 사내의 본성을 드러내는 시늉도 해보였다.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인 이곳에서 위수사령부인 연대 장교들은 소위건 소령이건 모두가 장군이나 된 기분이었고, 취기가 한 차례 돈 우리의 눈에는 미추를 가릴것 없이 그 자리의 여인은 모두 논개의 후예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주석 20)
리영희는 옆 자리에 앉은 ‘논개의 후예’에게 자리가 파한 뒤에 ‘2차’를 갈 것을 제안했고 어렵게 동의를 받아냈다. 그런데 일행들과 어울려 한창 술잔을 나누다 보니 어느 틈에 ‘논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화가 나서 다른 여자들에게 ‘논개’의 집의 위치를 물어 사병에게 지프를 몰게 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쳐 부르자 ‘논개’가 한참만에야 툇마루에 나와 사과의 말도 없이 오연하게 버티고 섰다. 리영희는 취기와 감정이 함께 북받쳐서 차고 있던 권총을 공중을 향해 발사했다.
총소리에 기겁한 논개의 후예가 허둥지둥 뛰어내려와 장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리라고 기다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자는 높은 툇마루에서 자태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홀연히 서서 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한참 만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젊은 장교님, 아무리 하찮은 기생이라도 그렇게 흩어진 마음과 몸으로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진주 기생을 잘못 보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고 그렇게 천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돌처럼 굳어지고 정수리에서 술기가 싹 가셔버린 내가 벼락을 맞은 듯 서서 움직일 줄 모르자, 그녀는 다시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었다.
“젊은 장교님, 잘 들어두세요. 아무리 미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총으로 굴복시키려들지 마세요. 사람이란 마음이 감동하면 총소리 내지 않아도 따라갑니다. 당신도 차차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될 겁니다. 돌아가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나는 그녀의 너무도 당당한 기품과 위엄에 눌려 대답할 용기를 잃고 있었다. 하찮게 보고 덤볐던 자신이 너무도 왜소해져, 자신의 전존재가 나의 내면에서 산산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의 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맨손의 진정한 용자(勇者) 앞에서 가장 비겁한 존재가 되어버린 권총 찬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진심을 다하여 사죄한 다음, 깊은 절로 한 기생의 인격적 위대함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고 발을 돌려 싸리문을 젖히고 나왔다. (주석 21)
주석
19) 리영희, <분단을 넘어서>, 267쪽.
20) 앞의 책, 266쪽.
21) 앞의 책, 268~269쪽.
스캔들이라 하기에는 ‘숭고’한 사건이다. 지리산 공비토벌 임무가 한창이던 중위 시절에 겪은 일이다.
“내 옆에 앉게 된 권번기생이 나보다 나이는 여러 살 위였지만 용모나 허위대가 마음을 끌었다. 노는 가락도 과연 어렸을 적에 권번에 들어가 기생수업을 했다는 말대로 어딘지 다른 데가 있었다. 나는 매혹되었다.” (주석 19)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이 끝나갈 무렵 연대장이 장교들의 사기를 돋구고 그간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기생들이 나오는 소문난 술집에서 술판을 마련하였다. 리영희는 그때까지 담배는 피웠지만 술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교 1명에 기생 1명씩이 곁에 앉은 술집에서 몇잔을 거푸 마시다보니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나도 그날 밤은 논개의 후예들이 따르는 술잔을 거푸 받아 마셨고, 값싼 분내에 취하여 제법 사내의 본성을 드러내는 시늉도 해보였다.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인 이곳에서 위수사령부인 연대 장교들은 소위건 소령이건 모두가 장군이나 된 기분이었고, 취기가 한 차례 돈 우리의 눈에는 미추를 가릴것 없이 그 자리의 여인은 모두 논개의 후예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주석 20)
리영희는 옆 자리에 앉은 ‘논개의 후예’에게 자리가 파한 뒤에 ‘2차’를 갈 것을 제안했고 어렵게 동의를 받아냈다. 그런데 일행들과 어울려 한창 술잔을 나누다 보니 어느 틈에 ‘논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화가 나서 다른 여자들에게 ‘논개’의 집의 위치를 물어 사병에게 지프를 몰게 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쳐 부르자 ‘논개’가 한참만에야 툇마루에 나와 사과의 말도 없이 오연하게 버티고 섰다. 리영희는 취기와 감정이 함께 북받쳐서 차고 있던 권총을 공중을 향해 발사했다.
총소리에 기겁한 논개의 후예가 허둥지둥 뛰어내려와 장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리라고 기다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자는 높은 툇마루에서 자태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홀연히 서서 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한참 만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젊은 장교님, 아무리 하찮은 기생이라도 그렇게 흩어진 마음과 몸으로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진주 기생을 잘못 보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고 그렇게 천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돌처럼 굳어지고 정수리에서 술기가 싹 가셔버린 내가 벼락을 맞은 듯 서서 움직일 줄 모르자, 그녀는 다시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었다.
“젊은 장교님, 잘 들어두세요. 아무리 미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총으로 굴복시키려들지 마세요. 사람이란 마음이 감동하면 총소리 내지 않아도 따라갑니다. 당신도 차차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될 겁니다. 돌아가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나는 그녀의 너무도 당당한 기품과 위엄에 눌려 대답할 용기를 잃고 있었다. 하찮게 보고 덤볐던 자신이 너무도 왜소해져, 자신의 전존재가 나의 내면에서 산산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의 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맨손의 진정한 용자(勇者) 앞에서 가장 비겁한 존재가 되어버린 권총 찬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진심을 다하여 사죄한 다음, 깊은 절로 한 기생의 인격적 위대함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고 발을 돌려 싸리문을 젖히고 나왔다. (주석 21)
주석
19) 리영희, <분단을 넘어서>, 267쪽.
20) 앞의 책, 266쪽.
21) 앞의 책, 268~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