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53- 전라남도 목포 유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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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5월11일 월요일 목포로 갔습니다. 진도에서 해남을 거쳐 목포까지 약 한시간을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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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목포로 가는 다리에 조형물이 있습니다.
목포(木浦)라는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의 태조실록과 《고려사》에 처음으로 문헌상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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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옆에는 이런 조형물이 있습니다.
목포라는 이름은 고려때부터 써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래에 관해서는 '목(木)'자 때문에
'나무'가 많은 포구라는 뜻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서해로부터 영산강을 타고 육지로 들어
가는 '길목'에 위치한 포구라는 뜻으로 한자를 차자해 목포라고 썼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 한자음과 훈을 빌려 한국어를 기록하던 표기법을
말합니다. 이는 향찰(鄕札), 이두((吏讀)·구결((口訣) 군두목(軍都目)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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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위로 조형물이 멋있습니다.
고려 시대 946년에는 물량군(勿良郡)으로 개칭하였고, 995년에는 해양도 나주목 무안현에
속하였습니다. 목포 앞바다는 곡창지대이자 중국과도 멀지 않은 거리여서 고대부터 영산강
물줄기를 거슬러 나주에 이르는 교역로로 각광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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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으로 올라가는데 옆의 주택가의 물줄기가 흘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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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 3.23km목포해상케이블카는 목포 시내 북항스테이션을 출발하여 유달산
정상부에서 ‘ㄱ’자로 꺾여, 해상을 지나 반달섬 고하도에 이르는 국내 최장 케이블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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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의 금빛 낙조와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총 길이 3.23km의
압도적인 탑승거리와 볼거리로 베트남 빈펄케이블카를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의 노선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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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를 타니 목포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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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가 개항한 것은 1897년 10월1일로서 인천보다는 15년 뒤진 것이었지만 부산과 인천을 뺀다면 가장 이른 것이었으므로 상당히 빨랐습니다. 이는 지리적 요인 때문으로 목포는 후쿠오카
나 나가사키에서 보면 중국 대륙을 두고 가운데 있었고 곡창지대인 호남의 물산을 집결,
유통하기 위해 일본은 목포 개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개항이 되자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한편 자치기관이 설치됐습니다.
일본인들의 거류지는 항구가 바로 앞에 있는 현재의 유달동 일대였으며 국권침탈 전에는
일본영사관이 유달동 인근에 있었습니다. 그 건물은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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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인들은 개항장에서 상행위를 할 수는 있었으나 내륙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목포 근처의 영산포를 시작해 논밭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가
매겼던 세도 낮았던데다 일본의 논밭 가격의 십분지 일이었기에 땅 매입을 위해 주력
했습니다. 강압에 의해 개항되면서 곡창지대인 호남쌀이 집결되는 곳으로서 쌀을 일본에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포 개항 이후 국내 쌀값은 여섯 냥 하던 것이 1898년에는 14냥으로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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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1903년에는 목포 부두 노동자들이 자본가에 대항하여 동맹파업을 일으켰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일본인이 고용한 조선 부두노동자들이 점심을 물로 채우고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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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이후 유곽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확장되면서 그 세력이 더욱
커져 1914년 지금의 금화동지역으로 옮겨갔습니다. 이곳을 사쿠라마치(桜町)라고 불렀
습니다, 금화동은 현재 여객선터미널 뒤편에 있는 수산업협동조합 일대로서 유달동 근접하며
일본인 집단 거주지라 벗나무가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1910년 국권침탈(경술국치)후
무안부에서 목포부로 개칭되어 19면을 관할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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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의 남서단 무안반도 남서쪽에 자리하며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을 바로
앞에 두고 있으며 북동쪽에는 무안군, 남쪽으로는 영암군을 바라봅니다.영암군을 사이에
두고 영산강이 흘러가며 지금은 하굿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구도심 중심부에는 해발
228m인 유달산, 동쪽에는 입암산(121m),북쪽에는 양을산(156m)·대박산(156m)· 지적봉
(189m)등으로 둘러 있고 남쪽은 영산강 하구에 면해 있습니다. 목포의 최고 자랑 중 하나
인 유달산은 노령산맥 끝자리에 해당하며 남도의 개골산이라는 별칭을 지닌 기암괴석의
산으로 1351년 고려 충정왕3년에 봉수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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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군량미가 쌓여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는 일명 노적봉이 있으며, 영산강, 삼학도
와 함께 이곳 사람들의 시정(詩情)을 돋우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도심지의
중심에 산이 있다보니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언덕지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영산강
하구 주변에는 13개의 섬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치를 펼칠 뿐 아니라 해일이 생깁니다
해도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여 목포를 천혜의 양항으로 기능하게 하였고
이는 목포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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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하면 가수 남진이 생각납니다.
남진(본명 : 김남진,金南鎭, 1945년 9월27일~ )전라남도 목표 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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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남진이 사투리를 엄청 심하게 사용하여 목포는 사투리가 심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리 사투리가 심하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에 뽕짝을 별로 안좋아하고 팝송을 좋아하다보니 남진의 노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성애가 일본에서 "가슴아프게"를 힛트하니 한동안 가슴아프게를 따라부른적이
있습니다. "울려고 내가 왔나"를 (고)이권오가 그리 잘 따라 불럿었던것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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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의 또 다른 이름은 '영달산'으로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입니다.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한 곳, 유달산은 면적140ha,
높이 228.3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인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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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좋은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소요정 등의 많은 정자가 자리하고 있으며, 가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기념비,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 등의 볼거리가 많고2.7km의 유달산
일주도로는 목포 시가지와 다도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또한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는
일등바위(율동바위), 심판을 받은 영혼이 이동한다는 이등바위(이동바위), 이등바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극락세계로 간다는 전설이 내려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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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와 다도해를 조망하는 해양케이블카가 명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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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은 서남해안 지역의 군사적인 요충지로서 해남 화원의 일성산 봉수와 무안 왕산의
군산 봉수를 연결하는 천혜의 요새로서 일찍부터 영산강의 목을 지키는 역할을 하여 왔고
임진왜란 때 이엉으로 바위를 덮어 군량미처럼 가장해 왜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는
이순신 장군의 설화가 전해오는 노적봉(露積峯)을 비롯하여 역사상 의미 있는 곳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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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올라서면 다도해의 경관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
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목포의 유달 산, 그 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일몰이나 목포항의 야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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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면 유달산 둘레로는 개나리, 벚꽃, 목련 등 다채로운 봄꽃들이 만개하여 꽃소식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개최되는 ‘꽃피는 유달산 축제' 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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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초입의 계단을 올라서면 맨 처음 관광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ㄴ다. 충무공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1974년 5월 20일 총 209명ㅣ
으로 된 이충무공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1974년 8월15일 유달산내에 세워졌습니다.
비명은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 탁련하(卓鍊河)선생의 조각을, 이은상·최순우·최영희 선생의
사료에 의한 고증 및 심의를 거쳐, 1974년 문화공보부 등록 제1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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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신 애국정신의 상징이시다. 장군이 일찍 임진왜란때 1597년
5월 명량승첩 뒤 10월 29일 우수영으로부터 이곳 고하도에 이르러 이듬해 1598년 1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무릇 107일 동안 여기서 머무르면서 해를 가로 막아 전선 만들고 군량
모으고 군사를 훈련하면서 진을 쳤었다. 그러므로 목포 앞바다에는 장군의 숨결이 베어
들었고 지금도 다도해 하늘을 바라보면 장군의 모습이 나타난다. 저 산, 저 바다에 서려 있는
님의 맹세 조국의 제단에 자기 한 몸 바치셨네, 피 묻은 발자국 따라 나도 그 길 가오다.”
(이은상이 찬하고 서희환이 쓴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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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70cm, 너비 160cm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피사의 탑처럼 옆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는 동상은 중심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투구까지는 약 0.5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동상이
일본이 있는 쪽을 정확한 각도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장군의 사후에도 일본의
동향을 살피고 기운을 약하게 만들어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또한 칼을 뽑는 순간 모습의 자세를 나타내고자 하여 기울어지게 동상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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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람들이 즐겨마시던 소주는 삼학소주 였습니다. 삼학도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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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마지막 종착역입니다. 중간에 내리는 곳이 있지만 우리는 계속 타고 이곳에 와서
다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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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블카와 유달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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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것이 노적봉입니다.
첫댓글 이박사의 한국기행 세계여행기 한의기행은 정말 재밌고 공부도 많이 됩니다.
꾸벅
늘 고마워
조ㅡㅡ오 타!
탱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