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묵상 글 > ... 위령 성월에...
여보시오, 벗님네...
윤 마태오 (형중)
< 사제 / 1903 ~ 1979>
여보시오, 벗님네.
이 내 말 듣소.
지금 말한 이 죽음 잊지 마시오.
남의 일로 알고서 잊지 마시오.
이런 운명 당신은 피할 줄 아오?
하늘땅이 무너져 변할지라도
그대 역시 죽어서 썩어질 것은
중천에 뜬 해보다 더 분명하오.
재깍재깍 초침의 도는 소리는 우리 생명 그만큼 깎는 소리요,
한 치 두 치 나가는 해 그림자는 우리 일생 그만큼 덮어 나가오.
남의 부고 우리가 받지 않았소?
우리 부고 남에게 한 번 갈게요.
남의 시체 우리가 보지 않았소?
우리 시체 남들이 한 번 볼게요.
우리 죽어 사심판 들어갈 때는 부모처자 형제도 따를 수 없소.
친한 친구 동지도 따를 수 없소.
혈혈단신 혼자만 끌려갈게요.
+++++++++++++++++++++++++++++++++++++++++
<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11月을 보내며...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11월이 저물어가는 하루
산속 수도원에서 머문다.
때로는 한 시간의 여유를 갖기에도
사치스러운 주중의 시간들로 지내고,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미사와 강론 등으로 주일을 보내고 나서
오늘은 여기 산속에서 하루를 숨었다.
노령산맥 끝자락 작은 한 줄기에 있는
이 깊은 산속 수도원은 이내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 빛 다가서는 길목에 서 있다.
낙엽수(落葉樹)는 하나둘씩 가을의 찬란한 옷들을 벗어내고,
여름, 가을을 지낸 산속의 단풍나무, 맹감나무, 싸리나무는
벌써 겨울채비를 하였다.
산 쪽 수도원 담장 곁의 은행나무, 감나무도
이제는 마지막 잎새들 몇 개씩 남겨 두었다.
오늘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하늘의 아쉬움도 비가 되어 이 땅위에 내리는가 보다.
아침에는 작은 기도들과 미사를 드리고,
오전에는 꼬박 산속 수도원 동정녀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점심 후에는 낮은 산에서의 등산 후, 오후에는 이 작은 글들을 쓴다.
11월이 지나간다.
11월이 흘러간다.
여느 달처럼 속절없고, 어느 때처럼 미련 없이...
어느 시절에는 애달파하고, 어느 길목에서는 그만큼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그러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는 속절없음과 애달픔이 오가고,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는 빛과 어두움이 교차되곤 한다.
어느 때는 견디기 어려운 힘듦으로, 어느 날은 서있기에도 가슴이 아픔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듯이 서 있기도 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생애와 길인 줄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러하다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는
희망과 절망,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환희와 아픔이
스치거나 지나가기도 한다.
엊그제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움을 다짐하고,
어제 저녁에 여름을 보내면서 이 가을을 맞았는데,
지금은 벌써 겨울이다.
이제는 또 하나의 겨울이다.
문득문득 삶이 휘청대고, 사랑하고 추구하던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에는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생은 흘러가고 인간 삶의 꿈과 그리움은 흐른다.
그 누구에게도 세월의 강은 기다리지 않고,
그 어느 것도 멈추어 서있지 않는다.
잘 살고 봉헌해야 하며 제대로 머물고 헌신해야 하는데,
나는 오늘도 여기에 서서 생애의 강이 흐르는 것을 바라다본다.
시절의 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산속 수도원에 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나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이 저녁 길을 나서야 하지만,
나는 길 위에서도 여기 산속 수도원에서처럼 하늘의 님 우러르며,
가슴으로 가슴으로 사랑하며 길들을 달려가야 하리라...
산다는 것은 길 위에서 언제나 빛과 진리를 향하여
살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어니,
중단하거나 머뭇거림도 없이 ...
11월이 떠나는 이 산하에서
당신을 향해 그리움 다하여 오늘도 나는 작은 기도를 드린다.
하늘을 보고 세상을 향하여 늘 못 봉헌 드리는 이 몸 맘 영혼으로,
언제나 미완성인 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한 순례자로 떠나가는
11월의 언덕위에 서 있다.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
연중 제31주일 / 모든 성인 대축일
2015. 11. 1
마태오 5, 1 ~ 12ㄴ
♠ 안내
- 그 옛날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하느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다뤄질 산상 설교는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요,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인 삶 안에서 구현해야 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산상 설교를 복음서의 다섯 설교(산상설교 5-7장, 파견설교 10장, 비유설교 13장, 공동체 설교 18장, 심판설교 24-25장) 가운데 가장 먼저, 가장 길게 다룬다. 이는 그가 이 가르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산상설교 전체의 열쇠가 되는 ‘참행복 선언’을 산상설교 서두에 8가지로 요약, 역설적으로 제시하면서 모든 이에게 최대 행복인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자격을 제시한다.
♠ 복음 연구
* 1-2절 : 산상설교의 전체적 배경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앉아 ‘복음 중의 복음’이며 하느님 나라의 토대가 놓여 있는 산상설교를 시작한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설교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보이신 엄숙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율법을 받기 위해 산으로 오르는 모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탈출19,3). 또한 군중은 시나이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다. 모세는 하느님의 계명이 적힌 판을 받고 내려왔을 따름이지만, 예수님은 산에 오르자, 좌정하듯 자리를 잡고 직접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물론 그 말씀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한다.
* 3절 : 이 구절에서의 ‘행복하다’라는 말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로 귀하게 여김을 받으며, 인정과 존중으로 지지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늘나라 백성의 참행복은 현실 자체가 비참할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 때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이러한 행복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한 물질의 부족이나 어떤 결핍으로 인한 표면적인 궁핍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것을 뜻하며, 어떤 현세적 재물이나 쾌락도 채워줄 수 없는 텅 빈 상태를 말한다. 즉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4절부터 이어지는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린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모두가 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특징이다. 이렇듯 진정으로 가난한 제자의 삶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신뢰하는 삶으로서 실제로 세상 재물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그것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들의 목표가 되고 하늘나라만이 그들의 유일한 보상인 것이다. 따라서 이 첫 번째 참행복이 사실상 산상설교 전체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 4절 : 세상의 고통, 죽음, 병, 불행한 갖가지 사건으로 슬픔을 겪는 이들에게 약속되는 위로는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최종적으로 오실 거라는 약속에서 비롯된다. 슬픔은 인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가 하느님께 마음을 연다면 그분의 사랑과 자비로 위로를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참조 : 묵시 21, 4 ⇒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 5절 : ‘마음이 가난한 사람(3절)’과 ‘온유한 사람’(5절)은 성경에서 동의어로 ‘겸손한 사람’ 곧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온유함’은 독선으로 인해 타인을 속단하거나 경멸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료 인간들에게 드러내는 가난과 겸손의 정신이다. 이 온유함의 대표적 모범은 예수님 자신이시다(참조 : 마태 11, 29 ; 21, 5). 하느님백성이 약속된 땅을 선물로 받았듯이 이러한 온유한 사람들도 하늘나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 6절 : 마태오가 강조하는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이들 모두에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 자세이다. 하느님 안에서는 정의와 자비가 함께 가는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셨듯이 우리 또한 자비를 실천할 때 우리를 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 ‘흡족하다’라는 말은 하늘나라의 표상으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초대하시는 크고 풍요로운 잔치를(이사 25, 6-10) 뜻한다. 우리가 의로움에 주리며 목말라 할 때 바로 이러한 하느님 나라에 초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 7절 : 자비롭다는 말은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느님 최고의 자비는 죄의 용서이다. 구약에서도 하늘나라 도래를 죄의 용서와 동일시했다. 자비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또 행복하다는 것이다.
* 8절 : 구약 시대에 하느님 계신 곳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몸과 마음이 깨끗한 자들에게만 허용되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와서 “깨끗하다”는 개념이 단순히 법이나 세칙을 엄격히 따르는 것으로 퇴화해 버렸다. 예를 들면 시체나 나병환자의 접촉을 피하거나, 식사 전에 손을 씻으면 깨끗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외적 청결함만 강조하는 바리사이인들을 지적한 것이다. 깨끗함은 정의와 동의어로 마땅히 하느님께 돌려야 하는 것을 돌려드리는 것,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둔 사람들로서 오롯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9절 : 성경 안에서의 “평화” ⇒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하느님의 백성 사이에 이기심 없는, 흠 없는 삶을 의미한다. 예수님 자신이 ‘평화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죄나 온갖 형태의 불의에 의해 파괴된 평화를 인류에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 하느님 자신의 일이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에게 맡긴 임무이다(이사 9, 6). 그러므로 평화를 이루는 이들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 불린다는 것이다.
* 10절 : 지금까지 나온 행복의 결론 구절로서 박해 받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약속하신다. 참행복에 서술된 대로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위해 일하다 보면, 당시 마태오 공동체의 신자들이 겪어야 했던 것처럼 박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이 구절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다가 그 결과로 당하는 박해를 감수하는 것, 바로 그 자체가 하늘나라를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 11-12절 : 구약 예언자, 예레미야, 에제키엘, 아모스도 모두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 박해를 받았다. 즉 예부터 하느님을 증언한 사람들은 항상 고통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를 따를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 인해 생긴 박해라면 기뻐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잘못된 삶 때문에 가해지는 비난도 박해라고 합리화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생긴 질책을 박해라고 여긴다면 곤란하다.
♠ 복음 요약 :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고,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제의를 준수해야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참행복 선언을 통해 율법의 참뜻,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축복을 받는다고 하신다. 그런데 인간들에게 최대의 보상을 가져다주는 이 길은 세상적인 기준을 완전히 뒤집는 반전을 요구하는 만큼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 대화 방향 : ⓵ 물질만능의 현세에서 8가지 참행복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나 혹은 주변에 실제로 참행복 선언을 살아낸 성인이나 이웃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예: 성 프란치스코 등)
♠ 참고 문헌 : ▪ 생활성서 여정, 베소라 성서주해, 200주년 성서주해 참조
+++++++++++++++++++++++++++++++++++++++++++++++++++++++++++++++++++++++
연중 제32주일
2015. 11. 8
마르코 12, 38 ~ 44
♠ 복음 연구
* 38~39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사들의 그릇된 신심행위와 명예욕과 사기행각을 경계하라고 이르셨다. 그들은 사제가 입는 긴 예복을 몸에 걸치고 장터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인사 받는 지체 높은 사람으로 으스대기를 좋아한다. 이 율사들은 회당에 가면 윗자리에, 잔칫집에서는 주인 옆 첫째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는 회당예절에 참여하는 대중을 마주볼 수 있는 자리이고 고관들, 학자들과 율사들과 같은 귀빈만이 앉을 수 있는 제일 좋은 좌석이다.
* 40절 : 예수님은 첫째 자리를 차지하려 드는 위선자인 율사들이 과부들의 가산을 집어삼키는 이들이라고 비난하셨다. 어떻게 그들이 과부들의 가산을 강탈하는지 본문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율사들은 과부와 고아들을 도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저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지도자들을 단죄하셨다. 예수님은 율사들이 과시하기 위해 길게 기도한다고 비난하셨다. 이 과시용 기도자세는 율사들의 복장과 영예로운 높은 자리에 대한 집착과 연결된다. 그들이 길게 기도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신심 깊은 저명인사로 존경과 신임을 받아 과부와 같은 약자들의 재산을 관리할 기회를 그전보다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이처럼 율사들은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을 우롱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하기 때문에 가혹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벌은 사랑의 이중계명을 지키지 않는 율사들에게는 당연한 대가이다.
* 41절 :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 헌금함에 돈을 던져 넣는 군중을 바라보고 계셨다. 성전 안에 여자들 구역의 담 주위로 나팔 모양 헌금함이 열세 개나 놓여 있었다. 그 중 몇몇은 특별한 목적을 위한 헌금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발적인 헌금을 위한 것이었다. 예루살렘 시내나 근교에 사는 많은 부유한 지주들은 거액을 헌금했다.
* 42절 : 어떤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었다. 렙톤은 팔레스티나에서 유통된, 단위가 가장 작은 돈이었다. 약 백 렙톤은 로마제국의 은전 한 데나리온(노동자의 일당) 가치가 있었다. 두 렙톤으로는 빈약한 한 끼 식사거리인 밀가루 한 움큼을 살 수 있었다.
* 43~44절 :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이 많이 바친 봉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높이 사신다. 돈의 액수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길 줄 아는 과부의 신앙심을 높이 평가하시는 것이다. 부자들은 가진 재산의 부스러기 정도를 봉헌했지만, 과부는 가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쳤다. 생계유지에 꼭 필요한 것까지도 바친 것이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심과 오만한 태도를 비판하고 엄한 심판을 예고하신다. 이와 대조되는 과부의 참된 신앙심이 더 돋보인다. 율법학자는 열심하고 거룩한 체하며 특권의식으로 섬김 받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그러면서 전문 지식을 악용하여 약한 자들의 돈을 교묘히 갈취하였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하느님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이 중요함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액수보다 과부가 치른 희생의 크기, 정성의 크기를 계산하고 칭찬하셨다. 과부의 헌금은 하느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었고 가치 기준의 표현이었다. 과부에게는 어떤 무엇보다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가치기준이 있었고, 이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하였다.
♠ 대화 방향 : ① 자기가 너무나 초라해서 열등의식 때문에 잘난 척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를 과시하고 존경받기 위해 잘난척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생각해봅시다.
② 자신은 율법학자와 과부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취할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참고 문헌 : ▪말씀의 등불 (가톨릭신문사)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사)
++++++++++++++++++++++++++++++++++++++++++++++++++++++++++++++++++++++++++++
연중 제33주일 / 평신도주일
2015. 11. 15
마르코 13, 24 ~ 32
♠ 복음 연구
* 24~25절 : “모든 것은 사라질지라도 주님의 말씀만이 영원하시다.” 라는 베드로서의 말씀과 연결이 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날이다.
* 26~27절 :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아 들이신다. 어떤 분은 당신의 묵시문학적 배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 28~32절 : 그날이 오기 전에 가까이 온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신다. 그렇지만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그러니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기도와 복음묵상과 그리고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지막 날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삶의 자세이다.
♠ 복음 요약 : 우리는 오래 전 휴거사건을 기억한다. 개신교 일파에서 모든 재산을 팔아서 모여서 하늘로 올라간다고 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또 최근 몇 년 전에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개신교 어느 일파에서는 미국에 땅을 사서 피난처를 마련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께서만이 아신다.
성녀 데레사의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고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마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 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영원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완전한 것은 그분께서 오시는 날 완성이 된다. 나까이 다카시박사의 이야기 <영원한 것을> 이라는 책을 대학생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3년 전 그분이 사셨던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그곳은 마지막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원자폭탄의 잿더미 속에서도 빛나고 있던 나까이 박사 부인의 묵주알은 ’영원한 것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 대화 방향 : 말씀 안에서 믿음을 북돋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보자
♠ 참고 문헌 : ▪ “영원한 것을” ( 나까이 다카시 )
++++++++++++++++++++++++++++++++++++++++++++++++++++++++++++++++++++++
그리스도왕 대축일 / 성서주간
2015. 11. 22
요한 18, 33 ~ 37
♠ 복음 연구
* 33절 : 유대인들이 이미 내린 판결을 단순히 승인만 한다는 것은 총독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라도는 자기가 다시 재판을 하려고 한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라는 번역은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냐?’ 로 바꿔야 한다.
여기서 ‘네가’ 라는 말은 ‘너 따위가’ 라는 뜻으로 비웃음이 담긴 말이다. 즉 빌라도는 ‘너 따위가 유다인들의 왕이란 말이냐?’ 라고 비웃는 태도로 질문하고 있다. 또한 지금 빌라도의 질문은 ‘네가 유다인들의 왕으로 자칭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냐?’ 라는 뜻의 질문이다.
* 34절 : 예수님은 답변 대신에 반문을 하신다. 예수님의 질문은, ‘너 자신의 판단과 생각으로 나를 심문하는 것이냐? 아니면 유대인들이 나에 관해 고소장에 기록한 것을 그대로 읽는 것이냐?’ 라는 뜻의 질문이시다. 이것은 ‘너 자신의 생각은 무엇이냐?’ 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예수님에게 ‘유다인들의 왕’ 이라는 정치적인 반역죄를 적용한 것은 빌라도인가? 유대인들인가? 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에게 정치적인 반역죄를 적용한 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35절 : 빌라도의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그건 알아서 뭐하느냐? 대체 너의 죄가 무엇이냐?’ 라는 말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반문에 다시 반문으로 대답하는데, 이것은 답변을 해야 할 피고인이 오히려 질문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음을 나타낸다. ‘내가 유대인이냐?’ 라는 말은 빌라도가 신경질적으로 반문한 것인데, ‘내가 유대인들의 최고의회가 고발한 죄목을 단순하게 따르기만 하는 유대인이란 말이냐?’ 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말은 ‘내가 유대인이 아닌데, 최고의회가 고발한 죄목을 그대로 따라서 재판해야 한단 말이냐? 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빌라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가 고소장대로 질문한 것임을 시인한다.
‘너는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라는 빌라도의 질문은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런 죄로 고발당했느냐?’ 라는 뜻인데, 이것은 예수님께 변론할 기회를 주기 위한 질문이다.
* 36절 : 예수님은 빌라도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얻으셨다. 예수님은 ‘나는 왕이 아니다.’ 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라고 답변하신다. 여기서 ‘내 나라’ 라는 말은 ‘내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나는 세속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그 나라가 하늘나라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이 세상과 분리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의해 이 세상에 건설되는 나라이다.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라는 말은 자신이 정치적인 반역자가 아니며, 반란을 일으킬 의사가 없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말이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것은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 37절 :“아무튼 네가 왕이라는 말 아니냐?” 참으로 빌라도의 세속적인 질문에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드러내신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위한 증인, 현세를 주관하는 죄의 세력에 도전하는 증인이 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으며, 인류에게 진리를 드러내시어 인류로 하여금 진리를 발견하게 하여 인간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는 기적을 행함으로써 신앙의 진실함과 하느님 계시의 참됨, 하느님의 완전하심과 그의 섭리, 그분의 약속과 계약의 참됨. 이 모든 것을 당신을 통하여 믿을 수 있음을 증거하셨던 것이다. 이 일은 이루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왕이 되시며 또한 그를 믿는 이들에게서 왕국을 이루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복음 요약 : 오늘날 정의가 사라지고 양심이 짓밟혀도 자기 한 몸 편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빌라도가 많다.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은 빌라도의 변명이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고 하는 것도 빌라도의 변명이다. 책임회피, 직무유기, 우유부단, 위선 등 이런 것들이 겉으로 드러난 빌라도의 죄였다. 이기심, 탐욕, 무관심, 허영 같은 것들은 속에 숨어 있었던 빌라도의 죄였다. 그리고 그 죄들은 결국 죄 없는 분을 죽게 한 살인으로 이어졌다.
♠ 대화 방향 : ① 지금의 나는 빌라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는지 묵상해 봅시다.
② 내가 빌라도의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을지 생각하여 봅시다.
♠ 참고 문헌 : 송 모세(영진) 신부 성경 해설
++++++++++++++++++++++++++++++++++++++++++++++++++++++++++++++++++++++++++++++
대림 제1주일
2015. 11. 29
루카 21, 25~28. 34~36
♠ 안내
- 묵시 문학은 B.C 2C - A.D 1C까지 성행한 문학 양식으로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 시달리던 난세 때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선민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서는 로마의 압제에 짓눌려 있지만 종말, 새 세상이 오면 사람이 아들이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이스라엘 선민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 묵시문학 사관 : 세상을 이 세상(역사)과 ‘오는 세상’(종말)으로 양분한다.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 후 사탄 벨리아르가 통치한다고 여겼는데, 죄가 난무하는 이 세상은 종말이 임박할수록 가정과 세상, 크게는 우주에까지 파국에 이르러 천체에 이변이 생기고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반면 ‘오는 세상’은 이 파국에 이르렀을 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와서 죽은 이를 부활시키고 산 자를 모아 심판을 하여 영생과 영벌을 가린다고 여겼다. 그리고 난 뒤 사탄과 졸개들을 없애고 불로 이 세상을 소멸시킨 다음,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성전, 곧 하느님 나라를 세운다고 생각했다.
* 묵시 문학의 특징 :역사의 퇴화 과정, 종말 전조, 부활, 심판, 구원받을 수, 멸망할 사람의 숫자를 자신들만이(꿈, 무아경, 환시를 통해)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밀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종말을 서술 할 때 상징이나 비유 우화 숫자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것은 자기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절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꼭 인류사나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한 인물을 필자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묵시문학은 예외 없이 가명작품이다.
* 묵시문학과 예수님의 관계 : 예수님께서도 묵시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하느님 나라, 부활, 영생, 영벌, 재림 등은 묵시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기나 구원 받을 사람의 수를 계산하는 등의 일에 대해 일축하시고 그 대신 현재의 중요성 강조하여 회개와 믿음의 결단을 강조한다.
초대교회와 묵시 문학의 관계 : 종말-묵시사상이 초대교회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져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종말 심판 설교’라는 묵시 문학적 내용으로 전하고 있는 데, 이 영향을 받은 초대교회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만찬례 때 ‘마라나 타’(주여 오소서)라며 예수님께 대한 재림 신앙으로 재림을 재촉하는 환성을 질렀다(1데살 1,10 ; 4,13-15/ 1고린 15,55-58).
♠ 복음 연구
25-28절 : 종말이 오기 전에 해와 달, 별들이 뒤흔들리는 대 우주적 혼란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공포에 떨게 된다는 이 구절은 세상 종말에 대한 묵시문학적 서술이다. 이러한 대 재난의 묘사를 통하여 불의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증거의 삶은 참으로 위험하지만 이러할수록 복음사가는 사람들이 깨어 살도록 촉구한다. 우주적 재난과 함께 심판을 내리는 사람의 아들은(다니 7,13-14) 예수님으로서 죽음과 부활과 제자들의 증거를 통하여 심판을 내릴 것이다. 이때야말로 진실이 드러나고 해방이 올 것이다. 즉 정의로운 사람과 무죄한 사람을 박해하고 죽이는 사회는 불의에 뿌리를 둔 사악한 사회임이 예수님을 따르는 믿는 이들에 의해 드러날 것이다. 28절은 이 믿는 이들을 격려한다. 신앙 안에서 일상을 기도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오심이 결코 위협적, 파멸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34-36절 : 이 구절은 종말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즉 종말을 잘 맞이하기 위해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고 한 것이다. 이 말씀대로 믿는 이들은 항상 깨어 기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거의 삶을 버리고 무감각, 탐욕, 술주정, 게으름, 집착 등등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즉, 이론적으로는 믿음을 고백하면서, 실제의 삶은 증오와 불의나 앞에 열거한 그러한 삶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34절 참조).
♠ 복음 요약 : 심판은 예기치 못할 때에 들이닥칠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항상 깨어 있으면서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그런 공동체는 난관과 박해에 직면할 때, 깨어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 믿는 이들이 이렇게 정의를 선포하고 실천하는 일에 항구하다면 심판 날에 정의롭고 무죄한 이로 간주될 것이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표현으로 저자는 독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묵시적 표현을 이용한 당시의 삶의 자리를 망각하고 쓸데없는 호기심 등으로 종말의 때를 계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
♠ 대화 방향 : ⓵ 오늘날 과연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묵시문학적인 종말이 온다고 가정할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될까요?
⓶ 현재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떻게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나요? 나는 어떻게 주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지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생활성서 여정, 이보 스토르니올로/김수복 옮김, 루카복음 읽기 참조
++++++++++++++++++++++++++++++++++++++++++++++++++++++++++++++++++++++++++++
< F·B 연수회 스케치 >
익산 봉쇄수도원을 향한 안개길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mc vxz
봉쇄수녀원으로 향한 안개길은 우리를 무겁게 시작합니다. 안개길은 초행길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조정봉사자는 집안 일로 서울팀이 떠나고 나서야 수도원으로 들어옵니다. 잠시 월례회의내용을 정리하고, 전주 팀의 다음 일과인 성지순례를 행해 늦은 출발을 했고, 안산 팀은 수원에서 오신 미카엘과 함께 집으로 길을 떠나서
수원집을 거쳐서 11시가 넘는 시각에 되어서야 집으로 옵니다.
안개로 인해서 수도원에 도착하니, 전주팀 19여명이 이미 도착하여서 노랫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옵니다. 안산팀이 주차장에서 만난 모니카 외 2명의 전주분을 봅니다. 조그마한 경당에서 제대 앞에 원형으로 사람들이 둘러져 있었습니다. 지도신부이신 윤양호 클레멘트 신부님주례로 미사가 시작된다.
지금 신부님은 일 년간 안식년이신데도 불구하시고, 저희를 위해서 헌신하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미사는 어느 때처럼 참석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신부님은 짧게 마무리 짓습니다. 통상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에도 이런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일정이 분명히 있는데 마치 여유 있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이야기는 최근 시작한 코이노니아팀의 모습을 듣게 되고,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런 경험을 하신 광주의 형제님의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전주의 여러 팀으로부터 활발한 모습도 듣게 됩니다.
그전 참석자 모두의 자신의 인사소개를 받게 되고, 그 이후 서울팀 3분이 도착되고, 이 팀들과 익산역에서 갈라진 미카엘 형제가 30여분이 지나서 도착하게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도 계속됩니다. 신부님은 예수의 데레사가 만난 예수님이야기며, 데레사의 기도로 알려진 말씀을 강하게 스페인어로도 말씀하십니다. 지난해의 에콰도르의 방문을 기억하시면서 말입니다. 창설자신부님과 그 공동체를 만나신 생각을 하시면서...
늦은 점심은 풍성하게 일어나고 조그마한 식탁에서도 바깥 수도원정원에서도 일어났다. 아주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군산 전주에서 가져온 풍성한 식탁에도 남은 것들은 오신 분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식사가 끝나고, 앞으로 약 5년 이후인 ‘FB 창립 50주년’을 맞이할 준비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코이노니아 나눔을 한 후, 짧은 월례회의가 이어지고, 먼저 서울팀이 기차예매시각으로 인해 수도원을 떠나고, 그 이후에 수도회에 들어온 조정봉사자에 의해 그 회의는 2가지 결론을 내고 마칩니다.
첫째는 초기에 활동한 형제, 사제, 수도자를 찾아서 초대하자는 이야기이고, 둘째는 50주년을 위한 팀을 구성하지는 것입니다.
다음 월례회합은 2째 토요일(11월 14일)에 원곡성당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어떤 방향만이 공감을 하였기에 조그마한 기록만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주 팀의 사랑으로 떠나는 차량 안에서 밖에서 우리들만의 긴~사랑으로 작별하는 시간만이 길어집니다.
늦게 도착한 필자는 그 다음날 성경잔치에 참석하느라 행사 익일 저녁이 되어서야 기록을 남기게 되고, 그 시각엔 전주팀의 다음 행선지인 성지순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들을 수가 없었다. 기록으로 나타낼 수 없었던 묘한 봉쇄수도원의 향기... 떠나기 전에 모인 우리들이 사진에 들어가기 위해서 깜짝 등장한 프란치스코 전교수녀님의 유머스러운 발언과 함께 함이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할 것입니다...
안개 낀 도로를 넘어온 사람들이 봉쇄수도원에 들어가서 그들만의 의식을 하고 여유 있는 웃음을 머금는 어느 수녀님은 우리들을 모두 카메라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들 간은 긴~ 작별시간을 좁은 수도회 정문을 떠남을 지연하고 있습니다. 아주 환상적인 수도원에서의 한 장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각자 마음속에 들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 안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사랑으로 자리 잡고 그들이 언젠가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 힘을 드러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도 신부님은 며칠이 지나면 지금 거처하시는 그 수도회를 떠나신다는 것과 내년 초에는 본당으로 갈 것이고, 내년 한 해의 첫 행사인 묵상회 일정의 골격을 이야기로 남기셨다... 아멘!
+++++++++++++++++++++++++++++++++++++++++++++++++++++++++++++++
< 복음 묵상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복음 28, 16~20 -
복음연구 담당 FB 회원
장 도미니꼬사비오 (철호)
안녕하세요, 성서형제회 형제자매님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세상 끝 날까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십니다.
한글날에 오전 미사를 마치고 목포에서 광주로 이사 오신 예수의 작은 자매의 우애회 수녀님들과 약속이 있어서 출발했습니다. 모고페서는 달동네 언덕 판잣집에서 사셨는데 그곳에는 저도 가보았지만 오르고 내리는 계단이 너무 많아서, 예전에는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은 연세가 드시어 관절 때문에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길거리 언덕에서 난간을 잡고 계단을 내려 가 보았는데 경사가 너무나 가파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나 눈이 오면 계단 내려가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는데 나이 드신 수녀님들은 이젠 무릎 관절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광주 철거지역으로 이사를 오신 수녀님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이사 온 지 처음이라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웃고 떠들었는지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수녀님들 3분이 모여 사는데 대구에서 잠깐 다니러 오신 수녀님이 한 분 더 있어서 같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부족해서 살기가 힘들어지고 있는데, 역시 수도원 성소도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4개강 사업 안하고 청년실업 해결했더라면 조금 더 나아졌을 거라고 수녀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셨습니다. 중세때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러 다녔을 때 명분은 전교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꼭 동반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강압적인 복음전파일까요? 아닙니다. 작은 자매회 수녀님들처럼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편안하게 해주고 자신들의 평화스러운 삶을 보여 주는 것이 전교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앞으로의 미래 희망인 청년들이 삶이 안정되지 못하면 전교도 어려워 질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이 너무 심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은 외국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얼마 전 대통령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떠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경제가 휘청거린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상황은 앞으로 다가 올 한국의 상황이 될 수 도 있습니다.
[ 스페인의 젊은 여성 마르셀라는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달에 500유로(약 60만 원)를 받고 노환으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 아마도르라는 노인의 말동무를 해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생활비 걱정을 덜게 된 마르셀라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 간병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도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장 눈앞의 돈이 절실했던 마르셀라는 아마도르의 죽음을 딸에게 알리지 않고, 시신과 함께 생활하며 계속 간병하는 것처럼 속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스페인 특유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자, 이웃들이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르셀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꽃집에서 팔다 남은 장미를 집 안 가득 채워놓고 방향제까지 뿌리면서 시신과 함께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르의 딸이 불시에 찾아오면서 그가 이미 숨졌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시신을 목격한 딸은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도 아빠의 연금이 계속 필요하니 두어 달만 시신과 함께 더 버텨달라는 충격적인 부탁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인 한 사람의 연금에 매달려 살아가는 두 젊은이의 절박한 모습을 통해 스페인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 영화 ‘아마도르(Amador, 2010)’다.
스페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늘어난 국가부채 때문에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8년 40% 수준에서 2013년에는 92%대로, 5년 만에 2배가 넘게 급증했다. 이런 최악의 경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11년 총선에 나선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는 노인연금을 2%나 올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덕분에 기성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총선에 승리한 라호이는 취임 직후 첫 TV 인터뷰에서 “(재정적자가 아무리 커도) 건드리지 않을 부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연금”이라며 공약 실천의지를 강조하였다. 결과 직격탄을 맞은 것은 바로 청년들이었다. 지난해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이 54%까지 치솟아 OECD국가 중에 가장 높았다. 이처럼 높은 실업률에 신음하던 스페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탈출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 통계청(NSI)은 2020년까지 해마다 50만 명의 스페인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스페인 정부는 나라 빚을 줄이겠다며 2013년 400억 유로(약 50조 원) 규모의 대대적인 재정적자 축소 방안을 내놓았다. 그 주된 내용은 공공기관들의 청년 채용을 대폭 줄이거나, 빈곤층과 청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이었다. 이처럼 경제위기 속에서 ‘버림받은 세대’로 전락한 스페인 청년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다. 청년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 등 대부분의 남유럽 국가들은 연금 재정의 불안이 가속화되자 결국 연금 지급시기를 늦추거나 연금액을 줄이고 있다. 이에 비해 청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독일과 덴마크, 벨기에 등은 앞으로 연금 수령액을 점진적으로 올려나갈 계획이다. 이들 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했는데도 연금이 흔들리기는커녕 여전히 든든한 노후 보장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청년에 대한 투자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나중에 우리를 위해 천문학적인 국민연금 재정을 감당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우리가 이미 남유럽에서 목격한 것처럼, 청년이 무너진 나라에선 우리의 연금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라도 청년과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지금부터라도 강력히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성서형제 형제자매님들! 이제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전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전교’입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교육비가 너무 심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인구소멸로 이어지는 나라, 생산연령이 줄어드는 나라, 그런 나라가 이젠 반대가 되는 나라가 되게 기도합시다. 오늘 미사를 끝내고 집에 오는데 동네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열만 나아서 잘 기르자” 정말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이런 나라가 되도록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전교’ 라 생각합니다.
성서형제회 형제자매님들! 한주간도 은총의 한주간이 되시길 바라며…
++++++++++++++++++++++++++++++++++++++++++++++++++++++++++++++++++++++++++++
< 회원 기고 1 >
역설적인 ‘주님의 기도’
자료 제공 : 김 효주아녜스(향자)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하늘에 계신’ 이라고 하지 마라! - 매일매일 땅에 것만 생각하면서...
‘우리’ 라고 하지 마라! - 언제나 너 혼자만 생각하면서...
‘아버지’ 라고 하지 마라! - 전혀 아들, 딸답게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마라! - 제 이름만 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마라! - 오로지 황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나라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마라! -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마라! -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 두려고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마라! - 여전히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하지 마라! - 죄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매일 죄지으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마라! - 악을 뻔히 보면서도 피하려 하지 않으면서...
‘아멘! ’ 이라 하지 마라! -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 로 바치지 않으면서...
< 남미 우루과이 농촌 어느 작은 성당 벽에 붙어 있는 글 >
++++++++++++++++++++++++++++++++++++++++++++++++++++++++++++++++++++++++++++
< 회원 기고 2 >
성서형제회 50주년은 처음으로 되돌아가자...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 찬미예수님
FB 창설자 신부님의 자료를 들여다보면, 그리고 신부님을 만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분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영성을 우리는 반드시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 신부님과 함께 한 이들을 물러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코이노니아 부터 각종 행사가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는 이에 걸맞은 인적조직을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저는 잘 모르지만, 신부님께서는 무엇인가를 지켜나가시려고 온힘을 다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이것들이 50주년, 그리고 그 이상 성서형제회를 지탱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
<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5년 9월 입출금 내역
일자 | 내 용 | 수 입 | 지 출 | 잔 액 |
8 /30 | 전월 이월금 |
|
| 1,619,886 |
9 / 2 | ‘사회복음화 지원금 (전주 교도소) |
| 50,300 | 1,569,586 |
9 / 2 | 예수그리스도 수녀회 후원회비 |
| 30,300 | 1,539,286 |
9 / 3 | 승희 자매님 팀의 의연금 | 47,000 |
| 1,586,286 |
9 / 4 | (전주 효자우전) 성모마리아 팀 F·B | 30,000 |
| 1,616,286 |
9 / 9 | (서울 당산동) 이안셀모(기대) F·B 일반후원금 | 200,000 |
| 1,816,286 |
9 /14 | (전주 서신동) 천국의 문 팀 FB | 50,000 |
| 1,866,286 |
9 /19 | 예금 결산 이자 | 308 |
| 1,866,594 |
9 /30 | 주교님과 영적지도신부님 명절인사 방문경비 |
| 100,000 | 1,766,594 |
9 /30 | <기쁜소식지> 인쇄비 (10월호) |
| 168,000 | 1,598,594 |
9 /30 | <기쁜소식지> 발송 우편요금 (10월호) |
| 59,500 | 1,539,094 |
|
|
|
|
|
월간 입출금 합계 | 327,308 | 408,100 |
| |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 1,539,094 | |||
봉헌금을 보내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2-649-272793 이강진>> |
+++++++++++++++++++++++++++++++++++++++++++++++++++++++++++++++++++
< FB 소식란 >
♠ 11월 < F·B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 안내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을 다음과 같이 갖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15년 11월 14일 (토), 오전 11시 정각, 묵주기도로 시작
※ 장소 : 안산 원곡 성당 (☎ 031-491-2064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1동 844-3번지 )
** 교통편 - 안산역 또는 초지역에서 하차한 후, 택시를 타고 원곡성당으로 이동.
※ 참가 대상 : 각 지역, 각 팀 봉사자 형제자매님 ( 각 팀 1명 의무 참석 )
※ 안건 : ① 각 지구, 팀별 현황 보고 ( 팀 월례보고서, 지구 월례보고서를 2부씩 작성, 발표, 1부 제출)
② 창립 50주년을 향한 FB 발전방향 협의
③ 기타 안건 협의
※ 문의사항 : 전국조정말씀선포자 (이 보나벤뚜라 /강진) ☎ 010-3066-5147
♠ <기쁜소식지> 내용 정정 안내
- 지난 2015년 8월호 <기쁜소식지> 11쪽 하단과 12쪽 4째줄에 표현된 ‘수도원 안성 이전 소식’ 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검토 수준의 의견’ 으로 정정합니다.
♠ 각 팀 <코이노니아 회원 명단> 제출 안내
- 모든 팀은 <코이노니아 회원 명단>을 ‘11월 전국봉사자 월례회의’ 때 1부씩 제출바랍니다...
<회원 명단> 작성 양식은 홈페이지 공지게시판에 올려놓았으니, 양식을 다운받아서 작성 바랍니다...
♠ <코이노니아 팀 월례보고서> , <지구 월례보고서> 양식 활용 안내
- 모든 지구 봉사자와 코이노니아 팀 봉사자들은 매월 월례회의에 참석할 때 ‘월례보고서’를 2부씩 작성하여 보고한 후, 1부는 본부에 제출 바랍니다... ( F·B 홈페이지 ‘행사 및 관리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가능 )
++++++++++++++++++++++++++++++++++++++++++++++++++++++
♠ 11월의 겨자씨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마태오 복음 5장 3절, 9절>
+++++++++++++++++++++++++++++++++++++++++++++++++++++++
“ 우리가 모든 사람과, 우리와 다른 신념을 지닌 이들과도 인격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마음을 지니도록...
그리고 교회의 목자들이 깊은 사랑으로 자신과 양 떼와 함께하고, 그들의 희망을 북돋아 주도록 기도합시다... “
++++++++++++++++++++++++++++++++++++++++++++++++++++++++
|
첫댓글 예수의 작은자매들의 우애회가 목포에서 광주로 옮기셨다는 글(사비오형제님이 쓰신글)을 읽고 감회에 젖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1979년도에 제일모직에 근무하는 수녀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제가 서울로 올라오는 1983년까지 한달에 한번씩 공동체모임에 참가했고 그 가운데 제가 1980년도에 세례를 받았지요 그이후한참지나서 1997년인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광주교구 정경수신부님이 목포삼학도성당에 계실때에 목포항을 바라보는 언덕에 공동체가 있을때 다녀왔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금융대란때라서 수도공동체가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공동체가 광주로 이주하셨다니 참으로 감회가 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