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 문은 닫혀 있을 때는 벽이며 열리는 순간에 문이 됩니다.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다른 공간을 개방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문입니다.
벽이 문이 되려면 손으로 사물을 밀거나 여닫아야하지요. 요새는 ‘열려라 참깨’
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리는 자동문이 도심 속 큰 건물의 대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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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시골에서 한번 튀어 보려고 자동문을 달았습니다.
누가 인테리어 비용도 못 줄 형편을 알고서야 자동문을 만들었겠습니까만
무리해서 만든 자동문이 걸핏하면 고장입니다. 이전에는 나가는 쪽 센서가
고장 나서 속을 썩이더니 이젠 들어오는 쪽이 망가졌는지 손님이 벙어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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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흔들면 제가 센서를 향해 막춤을 추여야만 문이 열립니다. 연병.
매장 불을 다 켠 채 ‘식사 중’이란 사인을 남기고 숍을 나왔습니다. 센서가
고장이 나서 밖에서는 안으로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니 모두가 자동문 덕입니다.
지난번 다녀간 광릉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500m 는 먹고 들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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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바퀴만 돌면 오늘 쿼터 달성입니다. 처음 열 바퀴가 지겹지 일단 내장이
덥혀지기만 하면 그 열기로 남은 열 바퀴는 완주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7바퀴쯤 돌다가 60m 트랙에 들어설 때 갑자기 치기가 발동을 해서 볼트처럼
속력을 내봤습니다. 상큼한 바람이 볼 따귀를 때립니다. 지금 기록을 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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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는 나올 것 같습니다. 나 발전하고 있는 거냐? 푹신푹신한 아스콘 바닥이
발목을 보호해줄 것 같기도 하고 피로를 덜 느끼게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국기 게양대를 지나면서 숍에 빨리 국기 게양대를 만들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낄 즈음 학교 관계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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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옵니다. 아마도 오늘 숙직이거나 당번 교사일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 앞에 살았는데 밀가루 빵 타먹던 거랑
죽을 똥 살 똥 하면서 화단에 잔디 입혔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 시절엔
이북에선 ‘천 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이 유행했으니 남북의 바로 왕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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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이들 노동력을 착취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 반공방첩하면서 말입니다.
아, ‘바람이 서늘하여 들 앞에 나갔더니‘가 절로 나옵니다.
철학자 루소는 젊었을 때 자신의 후견인이자 연인이었던 바랑 부인과
우유를 탄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곤 했는데 이때가 하루 중 가장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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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편안하게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답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바쁠 것도 없이 사랑하는 여인의 눈을
마주보면서 부드러운 원두커피 한 잔, 생각만으로도 해피해지지 않은가?
루소의 아침 식사 시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한 대화가 그리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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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 서서 오늘 저녁은 그런 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저녁 바람과 커피 한잔을 함께 나누면서.
2014.8.14.fri.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