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올레길 쟁투기(爭鬪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마주하면 “나는 걷는다. 고로 살아있다”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올레,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라는 제주 지방의 방언이다. 제주 올레는 전체 437km, 27개의 서로 다른 길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길을 처음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7년의 겨울 무렵이었을 것이다. 식당을 하면서 화요일을 쉬었는데 그 하루동안 가열찬 여정을 했던 것이다. 올레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계절마다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가게가 문을 닫는 화요일의 전야는 특히 정리할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제법 퇴근이 늦다. 거의 1시경에 집에 들어가면 그제서야 짐을 꾸리고. 뭐 사실 크게 짐을 챙길 것은 없지만. 서너시간 겨우 잠들었다가 김포 공항으로 향한다. 이른 비행기를 타려면 4시 30분 경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우리를 아는 어떤 사람들은 동네 길이나 서울에도 괜찮은 둘레길들이 많은데 굳이 멀리까지 돈을 써가면서 힘들게 걷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들도 우습기는 하다. 하지만 그 보상도 충분했다.
비행기에서 보는 일출은 잠을 확 달아나게 한다. 눈꺼풀은 무거운데 뭔가 샘솟는 희망같은 것이 보인다. 제주 공항에 착륙하기 전의 바다는 태양 빛에 부딪친 파도의 포말이 출렁인다. 마치 물고기들이 번뜩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한 첫 번째 올레 코스는 17번째 길이었다. 어쩌다보니 제주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다음 택시를 이용하여 광령1리 사무소(17코스의 끝이자, 18코스의 시작점)로 향했다. 무수천 트멍(틈새)길을 지나 이호테우 해수욕장과 도두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배낭에는 물과 한라산 소주, 약간의 안주가 있다. 초겨울의 길에 이따금 올레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제주도의 흙길을 걸으면서, 계곡길을 지나면서 피곤했지만 뭔가 좋은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길에서 배가 아파온 것이다. 가도 가도 돌담이 연결된 그곳 어딘가에서 실례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참고 또 참았다. 그때 이후부터 고질적인 장염이 생겼다. 웃음이 난다. 한참동안이나 정낭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흙길과 계곡길을 지나서 도로가 나오면서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력질주했는데, 아뿔사 그 카페는 문이 닫혀 있었고 인근의 주유소를 겨우 찾아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올레!
올레’하면 kt에서 진행한 광고 캠페인이 생각난다. 지금도 kt하면 올레가 떠오르는데 아이디어 회의에서 hello를 거꾸로 표현한 것이 채택되었다는데, 세상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반대로 생각해보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당일치기로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것도 한달에 두 번 쉬는 휴일에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제주에서 동네 언니를 만났는데 한라산 등반을 당일치기로 왔다고 했다. 그 일에 비하면 평지를 내키는 만큼만 걷는 우리 여정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루가 제법 길다는 것은 하루의 긴 여정을 돌아보면 알게 된다. 생각보다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알차다.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삼시세끼 밥은 다 먹고, 좋은 풍광을 보면서 걷고, 낮술도 한잔 마시고, 땀 흘렸다고 사우나도 하면서 할 것 다하는 그런 시간을 보낸다. 금쪽 같은 휴일의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일이 힘에 부쳐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음에도 길 위에 서보면 그때서야 긴 숨이 쉬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힘도 생긴다. 제주도의 올레길은 어찌나 평온하고 아름다운지 가파도의 청보리밭이, 함덕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송악산의 바람들이 내 몸 구석구석을 치유해 준다.
첫 번째 올레길을 걷고난 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길을 걸었었다. 한 여름 7월에는 딸 아이와 사라공원 길을 걸었고 또 어떨 적에는 아이들 둘을 함께 데리고 와서 걷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은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그 순간의 기억들이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2024년 3월에도 올레 길을 걷는다. 때마침 서귀포에서 유채꽃 걷기 대회를 하는데 남편과 함께 참가하기로 했다. 아마도 3월 24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바다가 보이는 어느 올레길을 맨발로 느껴볼 것이다. 아직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식당의 휴무일이 이틀이 된 다음부터는 1박 2일로 올레 길을 걷는다.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올레길 쟁투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궁(窮) 즉(則) 통(通)
1. 다시 봄
춥다 춥다 추워
겨울
찬 바람 바람 바람
봄이 온다
꾀부리지 않는 계절
찾아온 봄
고맙다
2. 부활
겨울은 가고
봄이 살아났다
부활이다
다시 태어남은
이전의 나는 없다는 것
새로운 내가 되는 것
살아 있을 때의 예수와
다시 살아난 예수는 다르지
예수는 예수고
나는 나이며
부활은 그의 것이다
봄은 부활이다
3. 봄을 보다
봄에 보는 것은 무엇이든 봄이다
눈 뜨고 장님되는 것이,
봄이라 그런 게 아닌데
이제 몽우리 터뜨리려
그 속에서 얼마나 몸을 꿈틀거릴지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 온다.
아, 그 찰나의 순간이 아니면,
그렇게 오래동안 참지 못했다면
우리들은 결코 봄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봄은 시작된다
봄은 겨울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