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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月. 구름을 미는 바람처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같은 것이라면
08월24일, 오늘의 이름은 木요일 3.
이동과 정보의 공유, 그리고 유랑流浪과 접촉接觸.
1990년 9월12일 한강이 넘쳐 물난리가 났다. 서울 아산병원으로도 황톳물이 넘쳐 들어가 수술 중이던 환자들 이송작전이 벌어지고 한강변 대부분 지역들이 침수되어 수해水害가 막심했다. 그중에서도 성수동과 뚝섬 인근 피해가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그때 성수동에서 살고 있다가 집으로 마구 밀려들어온 물에 지붕까지 잠겨버린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때를 회상하면서 한 말이 흥미로웠다. “글쎄 말이야, 사방이 물 천지이니까 막상 먹을 물이 없더라구.” 지금 그 친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중이다. 어느 개그맨도 어느 TV방송에 나와 그와 비슷한 재담才談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응, 그런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단 말이지.” 나는 그 말들을 생각할 때마다 요즘 세태와 관련지어 방송이나 출판물,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지식과 정보들을 규정規定하고 싶어진다. “글쎄, 정보가 너무 많으면 쓸 만한 정보는 없단 말이지.” 그 많은 정보와 상식과 지식들도 용用과 사捨를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꿰어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면 넘쳐나는 쓰레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정보 제공자나 유통자가 서로 다 알고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인터넷을 통해 어떤 내용들을 검색해본다는 일이 불편하고도 싫어지는 경우까지 생기는 것 같아서이다. 향기도 맛도 느낌도 없는 무미건조하고도 판에 박은 듯한 통조림 같은 내용의 정보를 그렇게 제공이나 유통을 하고 싶어질까. 그건 그렇고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을 돌아보고 몇몇 생각을 돌이켜보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지나가버렸다. 딸아이와 약속시간에 조금 늦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총총히 호텔로 돌아왔다. 작은 바 앞의 라운지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는 딸아이를 만나 바로 Lexington Ave에 있는 51st 지하철역으로 가서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뉴욕의 맨해튼이나 그 외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뉴욕의 유랑객이 뉴욕 지하철MTA New York City Subway을 한몫에 수족처럼 다루기는 쉽지 않으나 어쨌든 점차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딸아이와 동행으로 인해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상황과 환경을 조목조목 관찰을 할 수가 있어서 아기자기한 일상의 맛을 놓친 점도 있겠지만 사실의 조각이나 느낌의 편린片鱗들로부터 사고를 형성시켜가면서 얻은 내용도 꽤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년 전이나 삼년 전의 여행에 비해 장시간 운항運航한 비행기의 여독旅毒으로 인한 것인지 무엇보다도 몸이 피곤했다. 수많은 여행 경험 중 나도 처음으로 당한 일이라 스스로도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몸의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정들을 생략하거나 수정해가면서 여행과 일을 봐야했다.
51st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이십여 분 뒤 Canal St Station에서 내려서 계단을 오르면 바로 차이나타운에 들어가게 되었다. 뉴욕의 다른 지역에 비해 차이나타운에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은행과 복권판매점이 유독 많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은 브런치로 딤섬點心을 먹으려고 갔기 때문에 대략 정오경이었을 것인데 찰랑찰랑 햇살 가득한 차이나타운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딸아이가 회사 친구인 중국인 미아와 몇 차례 와본 적이 있다는 딤섬 전문점의 상호인 기린금각주가麒麟金閣酒家는 나란히 써놓은 영문으로는 GOLDEN UNICORN이라고 되어있었다. 왜 기린을 황금 유니콘으로 번역을 해놓았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상상 속 동물인 동양의 기린麒麟이나 서양의 유니콘은 일각수一角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런데 상징물로 그려놓은 기린에는 일각수가 없어서 암컷 기린을 그려놓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징상기徵祥記에 모왈기빈왈린牡曰麒牝曰鱗, 즉 수컷을 기麒라하고 암컷을 린麟이라고 한다. 고 기록되어 있어서 기린이라도 수컷인 기麒에는 뿔이 있으나 암컷인 린麟에는 뿔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음식점 현관으로 들어가 1층에서 약간 무뚝뚝한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더니 홀 안의 여기저기 둥근 식탁에는 사람들이 가득 둘러앉아있었다. 우리들도 한 식탁을 배정받아 마찬가지로 둘러앉았다. 딸아이 말에 의하면 중국인 친구 미아는 자주 이곳 딤섬 전문점에 오는데 차이나타운에 있는 여러 곳의 딤섬 전문점 중에서도 중국에 있는 집에서 먹었던 딤섬과 가장 가까운 맛을 내는 여기가 음식 맛이 제일 낫다며 추천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아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영어가 서툴렀을 때 처음 몇 달 동안 머물렀던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라서 이곳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딤섬을 맛보았는데 글쎄 홍콩이나 대만에서 먹어보았던 특유의 쫀득거림과 부드러움을 갖춘 딤섬에 비해 특별히 잘근잘근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고 그저 무난한 맛이라는 평가가 혀끝에 있었지만 딸아이가 물어보았을 때는 매우 맛이 있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아마 딸아이는 홍콩이나 대만의 딤섬을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어서 차이나타운 안에서의 맛을 평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있는 중국요리 집에서는 팁이 없는데 뉴욕에 있는 중국요리 집에서는 다른 일반 레스토랑처럼 팁을 따로 계산해 주어야했다. 일반적으로 뉴욕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식사를 할 적에 비싼 음식 가격보다 더 아까운 것은 음식 가격의 20%에 육박하는 팁이라는 사실은 동양인이라면 혹은 최소한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감을 하리라고 생각을 한다.
딤섬을 담은 접시가 작기는 했으나 접시 개수가 열 개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슬슬 배도 차오르기 시작을 했다. 그래도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자꾸 시켜서 먹이고 또 먹이고 남은 것은 내가 꾸준하게 먹어주었다. 서울보살님이 먼저 젓가락을 놓고 항복을 하고 그 다음으로는 딸아이가 젓가락을 놓고 항복의사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내가 접시에 남아있는 것을 모조리 정리한 뒤에 끄읔~ 하는 퇴각나팔을 소리 높이 불었다. 미지근히 식어있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입을 개운하게 한 뒤에 계산서를 요구했다. 이곳 중국음식점에서는 서비스가 별로 좋지 않아서 뜨거운 차를 부탁하려해도 몇 차례씩이나 요청을 해야 했으나 계산서만큼은 빠른 속도로 탁자위로 올라왔다. 그때 딸아이가 예전에 중국친구인 미아와 함께 왔을 때는 계산서의 음식비용을 현금으로 계산을 해주면 10%씩 할인을 해주었다면서 직원에게 물어보고 현금으로 계산을 하겠다고 말을 했다. 딸아이가 손을 들어 지배인을 불러 그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더니 지배인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결제를 하든지 할인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결제는 결국 카드로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런 내용은 중국어로 대화를 했을 때만, 그러니까 중국 사람인 경우에만 통용이 되는 은밀한 거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중국 사람들은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도 중국 본토에서 하는 것처럼 내부 중국인과 외부 관광객을 구별하여 두 가지 가격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에 생각나는 것이 건국 초기에 미국으로 이주했던 유태인들과 2,000년을 전후해서 미국으로 몰려드는 중국본토인들과 홍콩인들의 미국 접근방식이 너무도 유사하고 공격적이며 민족감정을 앞세운 집단 폐쇄적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부류의 ‘우리가 남이가’ 방식의 생활 형태는 이민자로 이루어진 다민족 공동협력체제의 범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커다란 장애물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하고 탄력적인 공동체 형성에 융화하지 못하고 나와 우리만을 주장하는 배타적인 방식으로 경제나 사회의 독점이나 장악만을 줄기차게 시도한다면 결국에는 커다란 문제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과 중국인들의 장점이자 강점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허점虛點이나 단점短點이 되지 않도록 지나쳐도 될 만큼 대비를 충분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딤섬으로 여유 있게 브런치를 마친 다음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아래로 출렁이는 햇살을 받으면서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다가 중국 상점처럼 보이는 대덕사大德寺와 맨해튼 브릿지 앞에 위치한 마하야나 부디스트 템플, 한역으로는 대승사大乘寺를 돌아보았다. 붉은 진열창에 서있는 관운장상이 마치 도교의 도관을 연상시키는 대덕사大德寺는 절이라기보다는 포교당 분위기 물씬 풍기는 불교 기념품 판매점을 겸하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황색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은 대만스님 같았으나 포교당 맨 안쪽의 유리창 안에 모셔진 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이었다. 맨해튼 브릿지 입구 큰 도로변에 위치한 대승사大乘寺는 예전에 몇 차례 와본 적이 있는 절이라서 반가웠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신도님이나 관광객도 전혀 보이지 않고 삼사년 사이에 내부 시설들이 많이 낡고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 있어서 어딘가 모르게 어두워진 기분이 들었다. 맨해튼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사찰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모양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신도들이 넉넉해야 사찰도 윤택하고 여유가 있을 터인데 요즘 맨해튼의 경제특수구인 차이나타운 경제가 예전만 같지 않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일이지만 오후2시경의 차이나타운은 상인들이나 관광객들의 흥청거림이나 들썩임보다는 8월말의 미지근한 바람과 탱탱한 햇살만이 거리거리를 팽팽한 녹색 풍선처럼 부풀리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무얼 할까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지금부터는 딸아이의 안내를 받아 뉴욕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조건 공짜로 가본다는 브루클린 브릿지와 이스트 강의 바람을 만나러 그곳까지 얼마 되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을 했고 먼저 은행에 잠깐 들릴 일이 생겨서 다시 힘을 내어 일단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더 돌아보게 되었다. 기웃기웃 다양한 상점들의 진열대에 전시되어있는 상품이나 물품들과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복권방의 창에 걸려있는 전광판을 슬쩍 쳐다보기도 하고 몇몇 눈에 익은 음식점과 상점들을 향해 또렷한 두 줄기 시선을 쏘아주기도 했다. 맨해튼 경제특수구인 차이나타운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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