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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기자 린다 그린하우스 : ‘그린하우스 효과’라는 말까지 탄생시킨 법조기자의 전설
- 신문과방송: 2018. 8. 3. 10:13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대법원은 미국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헌법 및 하위 법률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한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서의 판결은 미국 사회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1947년생인 그린하우스는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간 연방대법원을 담당했다. 그가 미국 언론계는 물론 법조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있다. ‘그린하우스 효과’다. ©연합뉴스
뉴욕타임스에는 법조 전문 기자로서 명성을 떨친 기자들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로 앤터니 루이스(Anthony Lewis)와 린다 그린하우스(Linda Greenhouse)를 꼽을 수 있다. 앤터니 루이스는 기자 생활 대부분을 연방대법원과 법무부 취재로 보냈다. 그는 미국 법률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연방대법원 취재 보도에서는 그전의 언론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했다는 평을 얻었다.
앤터니 루이스가 연방대법원 판결을 보도하기 전까지 언론 보도는 법률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일반 기자들이 판결문을 무미건조하게 인용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하버드대학에서 1년간 법학을 연수한 앤터니 루이스의 보도는 달랐다. 그는 판결문의 법적 추론 과정과 맥락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그 시대 법적 사고의 흐름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였다. 그 어렵고 딱딱한 판결문을 단순 명쾌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이해하기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것이다. 그 결과 법전 속에 묻혀 있던 법을 일상생활 속의 생생한 법으로 되살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앤터니 루이스는 법조 전문 기자를 하면서 두 가지 큰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정의’와 ‘민주주의에서의 언론의 역할’이다. 그는 ‘정의’와 관련해 돈 없는 형사 피고인에게도 변호인 도움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언론의 자유, 또는 일반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의 문제를 주로 다뤘다. 그가 기드온(Gideon)이라는 형사 피고인 문제를 쓴 책 ‘기드온의 나팔소리(Gideon’s Trumpet)’는 미국 로스쿨 졸업생의 필수 졸업 선물로 꼽히고 있다. ‘언론자유 제한 법 제정을 금지하다(Make No Law)’라는 책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다룬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교과서로 정평이 나 있다. 앤터니 루이스는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날리다가 2013년 85세를 일기로 숨졌다.
30년간 연방대법원 출입
또 한 명의 법조 전문 기자는 린다 그린하우스라는 여기자다. 이제부터 쓰는 글은 그에 대한 이야기다. 1947년생인 그린하우스는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간 연방대법원을 담당했다. 그가 미국 언론계는 물론 법조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있다. ‘그린하우스 효과(Greenhouse effect)’라는 것이다. 그린하우스 효과란 보통 ‘온실효과’를 뜻한다. 대기오염으로 늘어난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온실처럼 덮고 있어 나타나는 이상 고온 현상이 온실효과다.
그러나 미국 법조계와 언론계에서 말하는 ‘그린하우스 효과’는 그게 아니다. ‘언론 보도가 사법부 판결에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그린하우스 기자가 쓴 연방대법원 관련 기사가 미국 법조계에 워낙 큰 영향을 미친 데서 나온 말이다. 처음에는 ‘그린하우스 기자의 기사가 사법부 판결에 미친 영향’이라는 좁은 뜻으로 사용되다가 점점 의미가 확대돼 지금처럼 쓰이게 됐다.
구글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서 영어로 ‘그린하우스 효과’를 검색하면 온실 효과라는 원래 뜻과 함께 그린하우스 기자와 관련한 기사들이 줄줄이 뜬다. 미국 언론과 사법부에 관해 교수들이 쓴 전문 서적에도 그린하우스 기자 이야기와 그린하우스 효과가 단골로 소개되거나 인용된다. 대법관과 언론인들(Justices and Journalists), 미디어 권력, 미디어 정치(Media Power, Media Politics)가 그런 예다. 법관과 청중들(Judges and Their Audiences)이라는 책은 10여 쪽에 걸쳐 그린 하우스 효과를 분석, 검증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2008년 6월 그린하우스의 뉴욕타임스 퇴임 축하 파티에는 현직 연방대법관 아홉 명 중 대법원장을 포함한 일곱 명이 참석했다. 휴가 중이거나 해외 출장 중인 두 명을 빼고 다 왔다. 연방대법원장은 미국 대통령이 취임할 때 취임 선서를 받는 사람이다. 연방대법관들은 미국 사회에서 존경과 명예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런 대법원장과 대법관 들이 대거 기념식에 참석한 것이다.
도대체 법조 담당 신문기자 한 명이 언론계와 법조계, 학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기에 그의 이름을 딴 ‘~ 효과’라는 말이 생겨나고 그것이 공인된 용어로까지 자리 잡게 됐을까. 그리고 대법관들 거의 모두가 퇴임 축하 파티에까지 참석했을까. 기자라면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할 것이다.
그린하우스는 나중에는 큰 명성을 떨친 기자가 됐지만 기자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래드클리프대학에 다닐 때 보스턴의 일간 신문인 보스턴헤럴드에서 비상근 기자로 일했다. 졸업하던 해 이 신문사에 입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면접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린하우스는 또 다른 신문사인 보스턴글로브에 입사 원서를 냈으나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신문사가 여성을 기자로 채용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 같다.
그린하우스는 그 뒤 워싱턴포스트에 인턴으로 들어 가려고 면접을 봤다. 신문사 측은 그린하우스에게의회, 백악관, 연방대법원 그리고 버지니아 시골 지역의 작은 마을 중 어디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린하우스는 대법원을 취재하고 싶다고 답했다. “대법원은 뭔가 다르고 지적일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러자 신문사 측은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네가 정말로 언론인이 되고 싶다면 버지니아 시골 마을로 가겠다고 해야 해”라고 했다. 또 낙방이었다. 면접관이 속으로 ‘병아리 기자가 무슨 대법원이야. 주제 파악도 못하고’라고 했을 것 같다.
판결문을 읽고 또 읽고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그린하우스에게 1968년 뜻하지 않게 뉴욕타임스에 채용되는 기회가 왔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워싱턴지국장으로서 후에 저명한 칼럼니스트가 된 제임스 레스턴의 조수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린하우스가 채용된 것은 여성을 보는 눈이 갑자기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베트남전쟁으로 남학생들이 대거 징집되는 바람에 여성이 아니면 일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임스 레스턴이 주필이 돼 뉴욕으로 가게 되자 그린하우스도 그를 따라 뉴욕 본사로 갔고 정식 기자가 됐다. 뉴욕주의회 출입기자로 일하다 입사 9년 만에 다시 워싱턴으로 파견 갔고, 연방대법원 취재를 담당하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1977년 포드재단 후원을 받아 그린하우스를 예일대 로스쿨(법학대학원)에서 1년 동안 연수하게 했다. 법원을 담당하려면 법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신문사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는 예일대 연수를 마친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방대법원을 취재하게 됐다.
그린하우스가 대법원에서 처음 한 일은 판결문을 비롯해 변호사 의견서 등 온갖 소송서류를 읽고 또 읽는 것이었다. 그린하우스가 법조 담당 최고 전문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법조 기자로서의 이런 기본적인 업무 기술을 쌓는 노력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결문에는 법률 용어부터 사건의 쟁점, 원고와 피고의 주장과 반박, 각자가 제시하는 증거가 다 들어 있다. 법원이 양쪽 주장 중 어느 쪽을 사실 또는 거짓으로 판단하는지와 그 근거, 결론에 이르게 된 법적 논리와 추론도 담겨 있다. 판결문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 평가할 수 있느냐는 법조 기자의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판결문 읽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법조 신입기자의 기본 훈련 코스다. 필자가 법조 담당을 하던 30년 전의 경우, 기자들은 매일 오후 3~4시가 되면 법원장 부속실(일종의 비서실)로 모여들었다. 그날 나온 판결문이 부속실로 모이기 때문이었다. 판결문을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판결문은 암호문 같았다. 문장 하나가 ‘~이고, ~인 점, ~인 바, ~이므로’ 식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수십 쪽짜리 판결문이 이런 문장 두세 개로 구성돼 있었다. 여기에다 이중 삼중 부정어 같은 어려운 표현이 수두룩했다. ‘~라고 굳이 보지 못할 바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식이다. 그렇게 본다는 건지, 못 본다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뒤에 어느 판사에게 왜 그렇게 헷갈리게 쓰느냐고 물어봤다. 판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악습 탓도 있지만, 아무리 판사라도 원고나 피고의 어떤 주장을 사실인지 아닌지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워 그럴 것”이라고 했다. 고민스러움의 표현이자, ‘면피’를 위한 표현이라고나 해야 할까?
미국 대법원 판결문도 난해하긴 우리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린하우스는 2008년 7월 퇴임 나흘 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독자와의 대화’ 기사에서 “대법원에 처음 나갔을 때 판결문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너무나 장황하고 각주도 깨알같이 달려 있어 읽기가 정말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대법관들 간에 견해가 일치하는 부분은 뭐고 다른 부분은 뭔지, 판결문 결론은 무엇인지를 추적하느라 3색 도표를 다 만들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대법관들이 보다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는 걸 잘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그린하우스는 “그렇다고 전반적으로 금메달을 줄 정도로 판결문을 읽기 쉽게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했다.
철학과 역사가 담긴 기사
미국 연방대법원은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기능을 겸하는 곳이다. 굳이 따지자면 법률이나 대통령 행정조치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 재판소 쪽에 더 가깝다. 연방대법원 판결 중에는 미국의 역사를 바꾼 기념비적 판결이 많다. 흑백 분리 금지, 낙태 허용, 기본권 제한 원리로 자리 잡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형사 피고인의 묵비권 같은 게 그런 예들이다. 최근에는 중동 몇 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합헌 결정을 내려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우리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나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역할의 한계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법은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가 다수결로 정하거나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행정부가 시행령 등으로 정하는 게 원칙이다. 사법부는 국민 대표 기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회가 정한 법이나 행정부가 내린 명령을 사법부가 위헌이라고 결정해 무효화 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내린 간통죄 위헌, 군 복무만 병역 의무로 정한 병역법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그런 예다. 국회나 행정부가 결정할 문제를 사법부가 판결로 결정하는 이런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라고 한다. 이를 두고 사법부가 다수결 민주주의의 허점을 바로잡는 것인지, 아니면 대의 민주주의 원리를 침해하는 것인지 하는 논란도 있다.
어떻든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사법부 판결에 대한 언론의 정확한 보도, 합리적 분석과 비판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언론이 이 역할을 충실히 하려면 앤터니 루이스나 린다 그린하우스 같은 탁월한 법조 전문 기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린하우스는 연방대법원 출입 30년 동안 총 3,000여 건의 기사를 썼다. 그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예리하게 분석해 가장 중요한 쟁점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파악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떤 법적 사안을 그 사안을 둘러싼 역사의 맥락 속에서 파악해 현재 시점에서 갖는 중요성과 미래에 미칠 영향을 조망하는 큰 그림에서 기사를 썼다. ‘무슨 판결이 나왔다’는 식의 단편적 기사나 여기에 약간의 해설을 덧붙인 기사가 아니라 철학과 역사적 안목이 담긴 긴 호흡의 기사를 썼다는 뜻이다.
그가 이런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평소 풍부한 취재원을 확보해놓은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어떤 주제가 생기면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중도파이든 누가 그 분야에서 최고의 이론가이고 최고의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지를 꿰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기사에는 늘 다양한 관점의 당대 최고 전문가가 등장했다.
그린하우스는 뉴욕타임스 ‘독자와의 대화’ 기사에서 기자로서 남달랐던 준비 자세도 언급했다. 그는 중요 사건 재판 일정이 법원 일람표에 뜨면 바로 항소심(2심) 판결문과 변호사 의견서를 찾아 읽고, 법정 변론에는 꼭 들어가서 양측 주장을 직접 들었다. 사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어떤 내용의 판결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었고, 판결 내용에 따라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니 다른 기자들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기사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린하우스는 연방대법원에 관한 깊이 있고 전문성 높은 기사를 쓴 공로로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연방대법원-간략 소개, 낙태 합헌 판결문을 비롯해 역사에 남을 숱한 판결문을 작성한 연방대법관 해리 블랙먼의 평전 블랙먼, 판사가 되다, 저널리스트 되기 등의 저서를 남겼다. 블랙먼, 판사가 되다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됐다.<출처- Just a Journalist, Becoming Justice Blackmun 표지 캡처>
판결에 영향 미치는 기자
그린하우스는 사회윤리적 쟁점에 대해 개인의 견해를 서슴없이 드러내며 진보적 가치 실현을 위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공개 장소에서 낙태 권리를 옹호하거나 보수적인 종교적 가치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이는 언론인이 공개 장소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내놓고 옹호해도 괜찮은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그린하우스가 이런 문제에 편견을 갖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이에 대해 그린하우스는 “나는 사리분별력을 가진 성숙한 성인으로 행동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편집 책임자는 “그린하우스의 기사에 편견이 들어 있다는 불만 제기는 한 번도 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린하우스가 대법원 기사를 쓰면서 진보적 가치를 강조하고 대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지적은 계속 나왔다. 미국후버연구소 경제 학자인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람들은 대개 젊어서는 진보적이었다가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하는데 연방대법관들은 거꾸로 간다”면서 몇몇 대법관들이 보수 성향에서 진보 성향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 보수적 법관들을 폄하하고 진보적 법관들을 치켜세우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자가 뉴욕타임스의 그린하우스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관들이 언론의 영향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그린하우스 효과’라고 불렀다. 그린하우스 효과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린하우스 효과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은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우리의 서울고등법원에 해당) 판사인 로렌스 실버만(Laurence H. Silberman)이다. 그는 연방주의자협회 연설에서 “뉴욕타임스 법조 기자의 일차적 목표는 새로 임명된 연방대법관들이 진보적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법관들은 기자들로부터 자신의 판결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그 대표적 기자가 그린하우스다. 그래서 일부에선 법관들의 이런 경향을 ‘그린하우스 효과’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린하우스 효과는 그린하우스가 법관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을 꼬집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해 나중에는 언론 보도가 사법부에 미치는 영향으로 일반화됐다.
예일대 교수 프레드 스트레베이는 저서 평등: 여성들이 미국 법을 새로 만들다에서 “그린하우스 효과가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그러나 그린하우스가 미국 공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린하우스는 법에 관해서 얼마나 식견이 높은 보도가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우리는 그린하우스 같은 기자 덕분에 법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린하우스는 연방대법원에 관한 깊이 있고 전문성 높은 기사를 쓴 공로로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연방대법원-간략 소개, 낙태 합헌 판결문을 비롯해 역사에 남을 숱한 판결문을 작성한 연방대법관 해리 블랙먼의 평전 블랙먼, 판사가 되다, 저널리스트 되기 등의 저서를 남겼다. 블랙먼, 판사가 되다는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됐다.
그린하우스는 저널리스트 되기라는 책에서 “저널리즘에서 객관성의 반대는 편파성이 아니고 편파성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객관성의 반대는 판단이다”라고 했다. 그는 ‘판단’을 “거짓된 주장과 진실된 주장을 가려내 거짓된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히 거짓된 주장이라고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널리스트는 단순히 사실(fact)의 진위를 가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주장(claim)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객관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만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린하우스는 “판단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그린하우스는 요즘 예일대에서 강의하며 뉴욕타임스에 격주로 칼럼을 쓰고 있다.
글 / 김낭기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 본 기사는 <신문과방송> 2018년 8월호(통권 572호) 커버스토리 섹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한국도 판결에 대한 신문의 비판이 많은데 , 그린 하우스 역할을 할 전문기자가 나타나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