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3개
오래 전
어느 봉사 단체에서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돕느라 일주일에 세번씩을
무료로 도시락을 나눠주는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을때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영하 10도가 넘는 몹씨도 추운 날이었는데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라 그런지
급식소를 찾아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봉사자들은
도시락 한 개에다
따뜻한
국물을 따로 담아 포장지에 싸서 한 사람에게
한 개씩을 나눠 주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한개를
주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었지요.
봉사자들이 열심히 급식을 하고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인
어느 남자 아이가 급식대로 다가와
도시락 세개를 집어 자신의 가방에다
얼른 담았습니다.
그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절도
행위를 저지르는 아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료 급식소를 처음나온 초등학교
선생님인 여자 봉사자였습니다.
봉사자는 아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절도행위를 하는 것을
본 순간
그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 얘! 어디서 감히 도둑질을 하는거니?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이 먹지를 못하잖아!
왜?
어린 나이에 그런 나쁜 짓을 하는거야 !
좋은 말 할때 빨리 이곳에 도로 갖다 놔라!
그렇지 않으면
혼을 낼테니까! "
봉사자는 형사가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해 추궁하듯이 사람들 앞에서
아이를 큰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아이는 얼굴이 빨개진채
가방안에 넣었던
도시락을 모두 꺼내 탁자위에 내려 놓고는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 나갔습니다.
아이는
한 손으로 흘러 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와 아이를 쫓아낸 봉사자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 이곳은 가난한 동네예요!
그리고
오늘같이 추운 날은
일이 없어
부모들이 일을 못 나갑니다!
그래서
아이가 가족을 대신해서
나와
아빠와 동생을 먹일려고 도시락
세 개를 챙긴거예요.
저 아이의
아버지는 일하다 사고를 당해 방에서 누워 지내고
엄마는 파출부 일을 하러 다니느라
가족을 돌 볼 여유가 없다보니 장남인
저 애가 도시락을 세 개를 챙긴거라구요.
선생님 때문에 이 추운 겨울 날에
가족들이 꼼짝없이 굶게 생겼네요ㅠㅠ "
선생님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 저 애가 얼마나 효심이 깊고 착한 아이인데요.
가끔씩 이곳을 찾아와 청소도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심지어
설겆이도 도와주는
너무나 착한 아이거든요.
앞으로
한번 만 더 생각을 해주시고 나무라 주세요."
다른 아주머니의 말이
선생님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순간 부끄러움과 미안한 표정으로
가방에 넣었던 도시락을 꺼내는 그 아이의
서럽고도 슬펐던 눈망울이 생각나자 선생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추스린 선생님이 아주머니에게
그 아이의
집이 어딘지 알아냈고
도시락
네 개를 챙기고 사비를 들여 과자와 빵과 라면등
먹을 것들을
잔뜩 사가지고 아이의 집을 찾아 갔습니다.
입김이 솔솔 피어 나는 추운 방안에서
세 식구는 이불을 덮은채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봉사자는
그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 정말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아서 너에게 큰 상처를 준것 같아
너무 미안해...."
뜨거운 눈물이 목을 타고
솟구쳐 오르자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도 아이의 동생도 그
리고 누워있는 아빠도 함께 울었습니다.
모처럼 방안에는
아이의 가족들과 선생님의 사랑이 뒤엉킨채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품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선생님은 그 아이의 정식적인
후원자가 되어 온갖 정성을 다해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어
마침내 날개없는
천사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자신의 판단으로
지적을 하기 전에 먼저 한번만
더 생각하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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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글을 읽고 그냥 지날수 없었다.
망국의 기로에서 생각 없이 산다면...
당신도 민족과 역사앞에 배신자가 아닐까.?
무적의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망한 이유 .?
대한민국 사람들아 들으시라.!!
누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있는지...
기원전 246년부터 146년까지 약 100년간
지중해의 북쪽에 있는 로마와 남쪽에 있는
카르타고는 각자 국력을 쏟아가며 상대를
궤멸 시키려고 싸웠다.
그것이
저 유명한 1차, 2차, 3차 퓨닉 (Punic) 전쟁이었다.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과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근처 자마 평원에서
대회전을 벌인 것은 2차 퓨닉 전쟁이었다.
서로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지만,
로마는 카르타고를 섬멸할 수 없었고,
카르타고는 로마를 궤멸시킬 수 없었다.
그때 카르타고 성벽은
세계에서
가장 치밀하고 견고하고 거대하고
완벽하게 지어져서 함락할 수 없었고,
지하에는 바둑판처럼 수로들이 건설되어
있었고, 카르타고 자체가 비옥한 곡창지대였다.
그래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포위한다고 해도
카르타고는 10년 먹을 물과 곡식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적으로 난공불락 이었던 카르타고였다.
그러나
제3차 퓨닉 전쟁에서
로마는
간단하게 카로타고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어떻게.???
카르타고 원로원 위원이었고 카르타고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출세했던 귀족 "아스틸락스"가 카르타고의 성벽 도면들과 지하 수로들의 도면
들을 훔쳐 가지고 로마로 도망가서 로마 원로원
에 팔아넘겨 억만장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스틸락스는 카르타고를 공격하는
6만명의 로마군과 함께 카르타고에 와서
성벽의 약한 부분들과 샛길들과 지하 수로
들의 출입구들을 샅샅히 알려 주었다.
드디어 절대로 함락될 수 없는 카르타고
왕국이 철저히 폐허가 되고 카르타고
사람들은 도륙되고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갔다.
로마보다 일찍 건국되었고, 당시의 정치, 문화,
군사, 예술,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선두주자였던 카르타고는 이렇게 한 자 국민의 배신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지도에서 지워졌으며
가르타고 인들은 멸종했다.
당시에 살았던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카르타고의 서쪽 문이 뚫리고
나서 6시간 후의 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무 참혹해서 조금만 인용 해봅니다.
"전쟁터에 시체들이 나뒹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카르타고에서 본 것은 지난
30년 동안 어느 전장터에서 본 것보다 더
처참하고 말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발가 벗겨진 여자가 피범벅이 된 채 시체로
메워진 우물 맨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입에는 도려 낸 젖가슴이 쑤셔 넣어져 있었고,
두 다리 사이의 음부에는 병사의 잘린 팔뚝이
박혀 있었다.
신전 계단은 시체들이 즐비했고,
머리가 깨진 어린 아이들의 피로 인해 거리는
무척 미끄러웠다.
신전 입구에는 거세된 병사의
가슴 위에
목이 잘린 개가 얹혀져 있었다.
한 집 안에는 3~ 40명의 여자들이 있었다.
여자.?
이제는 그렇게 부르지 못할 터 였다.
흐느낌과 찢긴 옷가지, 바닥에 깔린 멍석들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백인대장이 말했다.
"모든 병사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15명씩 병사들을 받는다고쳐도
저 여자들은 곧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들의 복무기간에 따라...허락하고,
"일반 병사들은 3분씩 만 하고 나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머지는 생략한다.....
절대 망할 수 없던 카르타고가 망한 것은
카르타고 귀족의 배신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라~!!
(일부 생략)
(참고문헌: Carthage by Ross Leckie)
ㅡ구국의 소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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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