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내 허공의 빈방」감상 / 전다형
내 허공의 빈 방
이성희
내 허공의 빈방
아직 아무도 방문하지 마세요
빈 채로 그냥 둬주세요
상처가 덧나는 날 그늘의 강에 이르러
흐린 하늘 사이로 내려오는
곱게 다림질한 모시 몇 폭의 햇살을 고물에 받으며
거룻배 한 척으로 떠다닐 것입니다 내 빈방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리움으로 흐르다
갈대 무성한 바람에 묶이어
바람의 끝으로 풍화될 때까지
겨울 물새 떼들 입체로 날아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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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 1959년 부산 출생. 1989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안개 속의 일박』『허공 속의 등꽃』 등. 현재 시 계간 전문지 《신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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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룻배 한 척, 그늘의 강에 띄워놓았다. 그늘의 수심도 깊다. 발이 닿지 않는 허공의 빈방, 생(生)의 맨 끝 방, 상처가 덧나거나 무성한 세상 바람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 때 빈방을 찾아들리라. 내 안의 빈방으로 숨어들어 꺼이꺼이 나를 토해놓고 아무 일 없다, 시치미 뚝 떼고 나올 그런 내 허공의 빈방 하나, 우리 모두가 가슴속 깊이 숨겨둔 그리움의 처소(處所)!
전다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