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
파스카와 무교절 축제가 시작되기 이틀 전,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유다 이스카리옷이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가 협상을 벌입니다. 그들은 유다의 이런 행동에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고, 그 후 유다는 예수님을 넘기기 위해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고 마르코는 전해줍니다.
시간이 흘러 무교절 첫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가운데 두 명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먹을 장소를 마련합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곳에서 마지막 식사를 함께 나누십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만이 그 식사가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때보다도 중요한 말씀, 달리 표현하자면 당신의 ‘유언’을 제자들에게 남기십니다.
사실 파스카 만찬은 일반적인 식사와는 다르게 예식적인 특성, 곧 주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탈출 12장 참조) 모세를 통해 자신들의 조상인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적 성격의 식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누룩 없는 빵을 들고 하느님께 강복을 청하며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시는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린 후, 그것을 제자들이 나누어 마시게 한 다음,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의 표정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단순한 은유로 빵과 포도주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라 여기며 그 중요함을 놓쳤던 것은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반응보다 그 말씀을 통해 제자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 당신을 따르게 될 수많은 이들에게 전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실 온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구원 업적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분명, 제자들은 그 옛날, 자기 조상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양 또는 염소를 죽여 그 피를 그들이 사는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라고 명하신 하느님의 말씀과 파스카 규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피가 아닌, 당신의 살과 피로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시고자 십자가의 희생 제사에 자신을 봉헌하십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모세를 통해 준비하신 옛 계약을 완성하는 새로운 계약의 제물이며, 그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는 이 새로운 계약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만찬 식사 때,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온 인류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성체성사의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야, 부활의 빛으로 그분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 곧 성체와 성혈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2024년 9월 29일(나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문화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