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東洋文化)의 향기(香氣)
=마지막으로 중국의 고대사(古代史) 이야기
1. 오손공주(烏孫公主) 비수가(悲愁歌)
오손국(烏孫國)은 서역 지방에 할거하던 투르크계의 유목 민족으로, 한때 그 세력이 천산(天山)산맥 북쪽의 이르츠크 호수로부터 일리강(伊犁河) 유역의 분지까지 이르렀을 만큼 강대했다.
전한(前漢) 당시 중국의 북방을 장악하고 있던 흉노(匈奴)는 오손(烏孫)보다 강했는데, 자주 한(漢)나라를 침범했다.
한(前漢)은 고조 유방(劉邦) 이래 6대 황제 경제(景帝)에 이르기까지 줄곧 펼쳐 왔던 흉노에 대한 화친(和親) 정책을 펴왔으나 무제(武帝)에 이르러 강공책으로 바꾸고 오손(烏孫)과 함께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우고 장건(張騫)을 사신으로 보내 오손(烏孫)과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10년 후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무제의 형 강도왕(江都王) 유건(劉建)의 딸인 세군(細君)을 공주라 속여 늙은 오손의 왕에게 시집보냈다. 그 이후 흉노는 한나라와 오손의 협공을 견디다 못해 한층 더 북방으로 밀려났으며, 서역(西域) 50여 나라가 한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고 한나라는 이민족의 이반을 막기 위해 쿠자(龜玆)에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었다.
세군은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 땅에서 사는 슬픔을 노래한 것이 오손공주비수가(烏孫公主悲愁歌)이다.
♣ 오손공주비수가(烏孫公主悲愁歌)
吾家嫁我兮天一方(오가가아혜천일방 ) 우리 집에서 나를 시집보내니 하늘 한쪽 끝이어라
遠托異國兮烏孫王(원탁이국혜오손왕 ) 머나먼 타국에 몸을 맡기니 오손왕이로다
窮廬爲室兮旃爲墻(궁려위실혜전위장 ) 천막이 집이 되고 모전은 담장이 되었으며
以肉爲食兮酪爲漿(이육위식혜락위장 ) 고기가 밥이 되고 양젖이 국이 되었네
居常土思兮心內傷(거상토사혜심내상 ) 살면서 항상 고향 그리워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願爲黃鵠兮歸故鄕(원위황곡혜귀고향 ) 황곡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황곡(黃鵠)-누런 고니<세군(細君)을 일명, 황곡(黃鵠)이라 부르기도 한다.> ♣旃(전)-모전<장막>
이 노래를 전해 들은 한무제(漢武帝)도 세군(細君)을 가엾게 여겨 해마다 세군에게 선물을 보냈다.
수년이 지나 노령(老齡)이 된 오손왕은 오손(烏孫)의 풍습에 따라 세군을 자기 손자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풍습이었지만, 세군에게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군은 한나라에 사자를 보내 이 사실을 알리고 귀국하게 해 달라고 무제에게 부탁했으나 무제는 끝내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세군은 오손왕의 손자인 손잠(孫岑)의 아내가 되어 딸을 낳았다.
이처럼 한나라를 흉노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한, 일등 공신인 세군(細君)은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 땅에서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부르며 슬픔 속에 살다가 늙어 죽었다.
2. 비련(悲戀)의 여인 왕소군(王昭君)
전한(前漢, BC206~AD5) 원제(元帝)의 후궁이었던 왕소군(王昭君)은 중국 역사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여인으로 훗날 흉노(匈奴)의 왕 호한야(呼韓耶)에게 화친을 목적으로 시집을 가게 되는데 왕소군의 원래 이름은 장(嬙)이고, 자는 소군(昭君)이며, 아명은 호월(皓月)이다.
BC 36년, 전한의 11대 황제 원제는 전국에 궁녀를 뽑아 올리라는 조서를 내렸다. 왕소군은 열여덟 살에 이미 가무(歌舞)와 비파(琵琶) 연주에 능했고 자색이 뛰어나 궁녀로 선발되었는데 당시에는 뇌물을 주면서까지 궁녀로 선발되려는 경우가 많았다. 선발되는 궁녀의 수도 수천 명에 달했고 황제가 일일이 선발된 궁녀를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했기에 화공(畵工)이 초상화를 그려 올린 것을 보고 간택했다고 한다.
당시 궁녀들은 황제를 하룻밤이라도 모시기 위해 화공들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고 궁(宮)에 연줄도 없었던 데다 원제(元帝)를 속일 마음도 없었던 왕소군은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고, 그 결과 평범한 얼굴에 큰 점이 찍힌 추녀(醜女)로 그려진 초상화를 얻게 되었다. 그녀는 5년간 원제(元帝)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궁녀 신분에 머물며 외롭고 쓸쓸한 궁 생활을 비파(琵琶)를 연주하며 이겨냈다고 한다.
당시 흉노(匈奴)는 정권다툼이 심했는데 친형인 질지선우(郅支單于)와 정권을 다투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는 형에게 밀려 한(漢)의 장안(長安)으로 와서 신하의 예를 갖추었다.
BC 51년, 한나라와 동맹 관계를 구축한 호한야(呼韓邪)는 이번 기회에 스스로 한나라의 사위가 되길 청하며 화친을 강화하고자 했다. 한나라는 건국 후 계속되는 흉노와의 갈등 속에서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와 종실(宗室)의 공주를 정략 결혼시켜 평화를 유지하기로 했다.
원제(元帝)는 크게 기뻐하며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고 자신의 부름을 받지 못한 궁녀들에게 연회 자리에서 술을 따르도록 했다. 그중에는 왕소군(王昭君)도 끼어 있었는데 왕소군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긴 호한야는 종실의 공주가 아닌 궁녀 중 한 명을 택해도 좋다며 왕소군을 선택했다.
원제는 공주를 선택함으로써 생길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는 기회로 보고 호한야의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원제는 ‘흉노에 시집가는 궁녀는 공주와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로써 뒷일을 보장해주기까지 했다.
원제는 호한야선우와 왕소군을 장안에서 결혼시키고 그녀에게 ‘한나라 황실과 황제를 빛내라’는 의미가 담긴 ‘소군(昭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흉노족 차림의 붉은 옷을 입은 신부 왕소군을 태운 말이 떠날 때 원제는 처음으로 절세미인이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왕소군의 미모를 알아차린 원제는 자신의 결정을 크게 후회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왕소군의 출가를 번복할 경우 호한야선우와의 신뢰가 깨지고 흉노(匈奴)와의 관계가 악화(惡化)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궁으로 돌아와 궁녀들의 초상화를 대조해 본 원제는 왕소군의 초상화가 실물과는 전혀 다르게 그려진 데다 얼굴에 커다란 점까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분노한 원제는 초상화 제작 과정에서 뇌물이 왕래했음을 간파하고 자신을 기만한 화공(畵工) 모연수(毛延壽)를 참수(斬首/사형)했다고 한다.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과 이별하고 오랑캐로 부르던 흉노 훈족(Hun族)의 옷으로 갈아입고 홀로 먼 북쪽 오랑캐의 땅으로 떠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왕소군이 훈족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 마침 기러기 떼가 그녀의 머리 위를 날았다.
그러자 그녀는 비파(琵琶)를 꺼내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 포함되어있는 노래 출새곡(出塞曲)이 바로 그 노래인데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노래와 미모에 취해 날갯짓하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 왕소군은 ‘기러기가 떨어졌다’라는 의미의 ‘낙안(落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 출새곡(出塞曲)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훈족)의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겠구나.
BC 31년, 호한야선우가 세상을 떠나자 20대 초반이던 왕소군은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는 흉노의 풍습에 따라 호한야의 장자(長子) 복주루(復株累)와 혼인해야만 했다. 왕소군은 이러한 풍습에 거부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한나라의 제12대 황제 성제의 만류로 그 뜻을 접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젊었던 복주루가 왕소군을 사랑하여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다.
복주루와 다시 결혼한 왕소군은 11년간 그와 살면서 두 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사이 한나라에 있던 왕소군의 형제들이 제후(諸侯)의 신분에 봉해졌으며, 그녀의 두 딸인 수복거차(須卜居次)와 당우거차(當于居次)도 장안에 머물며 원제(元帝)의 황후를 모시는 등 두 나라 간에 평화가 계속되었다.
BC 20년, 복주루가 사망했고 이후 왕소군은 홀로 생활하다 흉노 땅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소재지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묻혔다. 그녀의 무덤은 가을에 북방의 풀들이 모두 누렇게 시들어도 오직 그 무덤의 풀만은 늘 그 푸른색을 잃지 않았다고 해서 ‘청총(靑塚)’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훗날 시선(詩仙)이라 불리던 당(唐)나라의 시인 이태백(李太白)이 쓴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시이다.
♣ 왕소군(王昭君)
昭君拂玉鞍 上馬啼紅頰(소군불옥안 상마제홍협)
소군이 옥으로 만든 말안장을 잡고 말 위에서 울어 뺨이 붉어졌구나.
今日漢宮人 明朝胡地妾(금일한궁인 명조호지첩)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사람인데 내일 아침이면 오랑캐 땅의 첩이 되는구나.